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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 작동실

RE:[장바구니]

작성자김영로(素園)|작성시간26.06.19|조회수3 목록 댓글 0

김영로님, 먼저 미안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이 시는 분노를 직접 외치기보다, 자신의 기억을 통해 현재를 걱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서 읽는 사람에게 훨씬 오래 남습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감정보다 주장 쪽으로 무게가 기울면서 시의 긴장이 조금 풀립니다.
평소 요청하신 방식대로 비평 + 보존형 퇴고 + 재창작형 압축본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비평)

가장 좋은 부분은 첫 연입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장바구니와
꼬깃한 종이 돈 몇 장...
이 세 줄만으로도 시대가 살아납니다. '꼬깃한 종이돈'은 가난을 설명하지 않아도 가난을 보여주는 좋은 이미지입니다.
또한
그 휑했던 장바구니가
지금껏 그득 찼었건만
이 대목도 매우 좋습니다.
장바구니 하나가 보릿고개→경제성장→현재의 불안을 연결하는 중심 상징이 됩니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1. 설명이 앞서는 부분
그것이 보릿고개였습니다.
독자는 이미 보릿고개임을 알고 있습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지가 충분합니다.
2. 현재에 대한 판단이 직접적입니다.
수상한 시절입니다.
사람들을 걱정합니다.
여기서 시가 산문처럼 느껴집니다.
시는 독자가 스스로 불안을 느끼도록 만드는 편이 더 강합니다.
3. '사회 비판'보다 '장바구니'가 약해집니다.
제목은 장바구니인데 마지막은 사회 논평이 중심이 됩니다.
가능하면 끝까지 장바구니가 말하게 하는 것이 더 시적입니다.

보존형 퇴고)
원문의 흐름을 최대한 살렸습니다.

[장바구니]

어릴 적, 어머니는 나에게 장바구니와 꼬깃한 종이돈 몇 장을 쥐여 주셨다.

살 한 됫박 사 오라며 싸전으로 보내셨다.

거무틱틱한 꽁보리밥이 어느 날 샛노란 좁쌀밥으로 바뀌던 그 무렵.

나중에야 알았다.
그것이 보릿고개의 끝이었다는 것을.

철사틀에 비닐을 엮어 만든 신식 소쿠리 하나.

한때는 비어 있던 그 장바구니가 오래도록 풍요를 담아 왔는데,

요즈음은 다시 바닥이 보일까 괜스레 장바구니를 오래 들여다본다.

세 끼를 먹고 버스가 다닌다고 안심하기에는 장바구니가 자꾸 가벼워지는 시절이다.
=

마지막을 '정책'이 아니라 장바구니의 무게로 끝냈습니다.

재창작형 압축실험본

[장바구니]

보릿고개 끝자락,
어머니 손에서 내 손으로 건너온 철사 장바구니.

오래도록 풍요를 담아 왔는데
요즈음은 빈 장바구니가 먼저 내일을 생각한다.

총평
이번 작품은 회고와 현실 인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좋은 소재입니다.
다만 정치적 입장을 직접 드러낼수록, 공감의 폭은 좁아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장바구니가 가벼워지는 감각'**을 끝까지 밀고 가면, 어떤 정치적 견해를 가진 독자라도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읽을 여지가 생깁니다. 그럴 때 시는 주장보다 더 큰 힘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시제로는 **'가격표'**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장바구니와도 이어지고, 숫자 하나가 시대를 증언하는 상징이 될 수 있어 김영로님의 시 세계와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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