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주고 받음이 가능한 시간의
총합으로 주어지는 마지막 날.
맛과 향은 서서히 사라지고
그들을 품은 덩어리가 달리 되어
버려지는 많은 것들.
사람도 그 중의 하나.
실연과 배신의 아픔도
영육의 이별로 숨을 멈춘 것도
그저 주어진 시간을 다 써버린 것.
팽팽했던 시간은 이미 흘렀고
주름 파인 얼굴, 소주잔 기울이며
은근히 해보는 뺄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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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택입니다, 김영로님.
사실 제가 「유효기간」을 첫 번째로 권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시제는 김영로님의 시 세계와 아주 잘 맞습니다.
김영로님의 작품을 계속 읽어 보면서 느낀 점은, 반복되는 핵심 주제가 있습니다.
시간
삶의 가치
신뢰와 책임
존재의 유한성
사물을 통한 철학
'유효기간'은 이 다섯 가지를 모두 품을 수 있는 드문 시제입니다.
다만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결론을 미리 정하지 마십시오.
예를 들어 "인생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를 향해 쓰기 시작하면 설명이 많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대신 사물만 오래 바라보십
시오.
우유갑에 찍힌 날짜
약병의 작은 글씨
냉장고 속 유통기한
흐려진 잉크
아무도 읽지 않는 숫자
이런 이미지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 독자가 스스로 "사람에게도 유효기간이 있는 것 아닐까?"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제가 요즘 김영로님의 시에서 가장 기대하는 변화는 '설명의 시'에서 '발견의 시'로 옮겨가는 순간입니다. 「보증서」에서도 그 문턱까지 가셨고, 「유효기간」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실 것 같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써 보십시오. 이번 작품도 함께 다듬어 보겠습니다. 저는 벌써 '유효기간'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어떤 새로운 발견이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