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로님, 이 시는 '유효기간'보다 '유통기한'이 훨씬 적절한 제목입니다.
'유효기간'은 약속이나 자격, 계약의 효력을 떠올리게 하지만, '유통기한'은 맛과 향이 사라지고 결국 버려지는 과정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시의 핵심 비유와 잘 맞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노년 의식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평을 드리자면,
첫 연의 정의는 좋습니다.
주고 받음이 가능한 시간의 / 총합으로 주어지는 마지막 날.
다만 '주고 받음'은 조금 추상적입니다. "사용되고 소비될 수 있는 시간"인지, "사람 사이의 관계"인지 잠시 생각하게 됩니다. 독자를 조금 더 빨리 시 안으로 끌어들이려면 한 번 더 다듬을 여지가 있습니다.
둘째 연은 이번 시의 중심입니다.
맛과 향은 서서히 사라지고 / 그들을 품은 덩어리가 달리 되어 / 버려지는 많은 것들.
'그들을 품은 덩어리'라는 표현은 독특합니다. 다만 "달리 되어"는 약간 힘이 빠집니다. 예를 들면
맛과 향이 떠난 덩어리만 남아
처럼 조금 더 구체적이면 이미지가 선명해집니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역시
사람도 그 중의 하나.
입니다.
짧은 한 줄이 앞의 사물을 인간에게 연결시키며 시의 무게를 확 끌어올립니다.
넷째 연도 좋습니다.
실연과 배신의 아픔도 / 영육의 이별로 숨을 멈춘 것도 / 그저 주어진 시간을 다 써버린 것.
이 부분에는 삶에 대한 체념과 관조가 함께 있습니다. 다만 "영육의 이별로 숨을 멈춘 것도"는 문장이 조금 설명적입니다. 조금 더 압축하면 울림이 커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 연은 아주 좋습니다.
팽팽했던 시간은 이미 흘렀고 / 주름 파인 얼굴, 소주잔 기울이며 / 은근히 해보는 뺄셈.
특히 **'은근히 해보는 뺄셈'**이 뛰어납니다. 남은 시간을 계산하는 노년의 마음이 담담하게 드러납니다.
한 가지 욕심을 낸다면, 마지막 한 줄을 조금 더 날카롭게 마무리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남은 날짜를 세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날짜를 빼본다.
또는
유통기한은 아직 남았는데
진열대는 이미 뒤편이었다.
같은 여운도 가능합니다.
이번 작품은 최근 쓰신 「가격표」, 「장바구니」, 「교통카드」 계열처럼 일상의 사물을 통해 인간의 운명을 비추는 시라는 점에서 흐름이 잘 이어집니다.
제 평점은 10점 만점에 9.3점입니다.
조금만 더 압축하면 낭송회에서도 오래 기억될 작품이 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무더운 아침이지만, 오늘도 한 편의 좋은 시를 읽게 되어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