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소리, 삶의 무늬 / 천양희
노을이 없는 나라가 있고 연애소설이 없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뭐? 하고 놀란 적이 있다. 노을이 없는 나라에 노을에 대한 시가 많고 연애소설
이 없는 나라에 성性에 대한 갈등이 없다는 것을 알고 또 한번 놀랐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해가 지면 곧 어두워지기 때문에 노을을 볼수 없다고 한
다. 노을에의 그리움 때문인지 노을에 대한 시가 가장 많고, 스웨덴에서는 성이
개방적이고 자유스럽기 때문에 성에 대한결핍과 갈등이 없어 연애소설이 없다
는 것이다.
이렇듯 문학이란 실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실감이 나도록하는 것이며,
실재에 대한 결핍이 시를 쓰게 하는 요인이 된다. 어떤 작가는 고독과 싸우는
인간의 의지에 매혹되어 문학을 했다고하고, 어떤 시인은 말이 하기 싫어서 시
를 썼다고 하지만. 모든 훌륭한 시는 강력한 감정이 저절로 넘쳐 흐르는 것이라
던 워즈워스의 말이, 시의 참 감동은 무엇인가하는 해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
다. 좋은 시를 만나는 기쁨이 바로 참 감동이라는 것을, 지금의 시로 살아 있는
서른아홉 편의 옛시를 읽으면서 절실하게 느꼈다.
가장 오래된 것 그것은 새로운 것이며, 오래된 것일수록 현재의 의미를 갖는
다는 말을 오래 생각해 보았다. 그때 나는 시를 남겨 두고 시의 뒤로 숨어버린
시인들이 가장 멋진 시인들이 아닐까 싶었다. 왜냐면 가장 멋진 시인들은 자기
독자들과 함께 죽어서도 살아 있는 시인들이기 때문이다. 그 멋진 시인들의 독
자가 되어 나는 시를 읽는 내내 감동하면서 행복했다.
"아픈 물고기들을 치료하려고 물에다 귀를 대요. 물고기의 말을듣고 치료해
주는 거죠."
<둘리틀 선생 항해기>에 나오는 수의사 둘리틀 선생의 말이다.
물에다 귀를 대고 물고기들의 말을 들으려는 수의사의 마음을 어떻게신기한 몽
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수의사의 말 옆에다 시인의 말을 놓아 본다.
" 아픈 사람들을 읽으려고 가슴에다 귀를 대요. 사람들의 말을 듣고아픔을
달래 주는 거죠."
시인이란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 앓아 주는 환자가 되고, 시는그 투병기가
되어야 한다면 너무 과한 말이 될까. 시인은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차서 가장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아가도록 운명지어진 사람이
라고 시인 백석이 말했다. 세상이 가난하고 쓸쓸할 때 옛 시인들은가난하나 높
게 빛났다.
중세 아랍문학의 대표작인 <아라비안나이트>에 여자 노예 이야기가 나온
다. '타와우드'라는 여자 노예는 재색을 겸비한 노예다. 빚진 금과 1만 디냐르에
팔려간 그녀에게 주인이 장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 시 짓는 일에 뜻을 두고
우드를 잘 타며 그 곡에 맞추어 어떻게 노래를 부를 것인지,그 현을 어떻게 울릴
것인지를 터득하고 있다" 고 대답한다. 이런 것들이금화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라고 자부했던 중세 아랍의 서정시는 우드의 현과 더불어 귀중한 재산이나 보물
처럼 여겨왔다. 나는 타와우드의 "어떻게"란 말이, 시는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
어떻게 쓸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에 겹쳐져서 예사로 생각되지 않는다.
어떻게란 말은 시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말이다. 시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체험과 상상력을 전제로 해서 어떻게 쓸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
다. 또 어떻게란 말은 자기만의 경험들을 보태어 참시를 태어나게 하는 첫 물음
이 되는 것이다. 그 물음으로 시인들은 새로운 잔에 그들의 영혼을 쏟아넣는 것
이다.
이 책에 실린 시와 시인의 이야기는 2004년 10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조선
일보 <문학의 숲>에 실렸던 것들이다.짧은 지면에 시인들의 열정과 사랑과 애환
을 다 쓸 수는 없었지만, 그 글을 쓰는 동안 그들은 나를 참 많이 울게도웃게도
했다. 나는 그때 무엇보다 시는 힘이 세다는 것을, 어떤 권력도 시를 넘어설 수 없
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시는 음악처럼 일시에 지치고 피곤한몸을 춤추게 할 수
는 없지만, 어둑어둑한 마음을 환하게 하고 절실하게 하리라는 것을, 그래서 많은
이들을 울게도 웃게도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져본다.
사막을 걷는 일로 일생을 보낸 테오도르 모노는 사막이야말로 지정한 생략하기
의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친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을 그 안에 감추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없는 듯한 단순함이 사막의 철학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는 철학 이상의
그 무엇이 아닐까. 시 쓰는 일로 일생을 보낸 이 책 속의 시인들은 시야말로 고통하
기의 삶으로 진정한 희망찾기의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친다고 말하고 있다.
하늘이 넓을수록 지평선이 커진다는 생각이 더욱 깊어지는 초겨울, 아직 남아 있
는 단풍이 역경을 이긴 사람의 해맑은 미소처럼 아름답다. 문학의숲에서 시를 읽고
하루를 너끈히 보낼 그대여. 이제은 바람 속에 얼굴을 묻고 울지 말기를. 어떻게 살지
하며 묵은 울음을 참던친구여. 이제는 문학의 숲에서 시의 세례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