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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야기

어둠을 닦으며 / 장미숙

작성자마운틴|작성시간26.06.13|조회수2 목록 댓글 0

어둠을 닦으며 / 장미숙

 

가스레인지를 드러내자 크고 작은 얼룩들이 날을 세우고 달려든다. 싱크대 상판에 눌어붙은 호일을 벗겨내고 싶은데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반복된 하루에 짓눌려 바닥과 일체가 된 얇은 호일은 부서지고 찢어져 또 다른 얼룩이 되어가는 중이다. 겨우 떼자 가쁜 숨이 터진다. 늘 그랬던 것처럼 거친 수세미로 얼룩을 닦기 시작한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눈에 띄지 않는 부분에 무생물을 많이도 키워놓았다.

무언가에 가려졌거나 손길이 가기 어려운 곳에는 어둠이 야금야금 세를 불린다. 얼룩과 먼지는 어둠을 먹고 공격적으로 변한다. 수세미로 문질러서 행주로 닦아내는 동안 팔이 아픈 게 아니라 가슴이 싸하다. 칙칙한 것들이 감정의 약한 부분을 건드리며 현실을 잔인하게 일깨운다. 희미한 시력을 벗어난 얼룩들과 먼지는 집안의 구석진 곳에서 포식의 자유를 누린다. 활개를 치며 점점 영역을 넓혀갔을 터이다.

가스레인지 아래는 엄마의 손이 미치지 못한 채 일 년의 시간이 응고되어 있다. 녹과 얼룩, 먼지를 닦아내는 동안 세월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구체적인 현실이 된다. 그렇다. 이제 엄마는 무거운 것을 들 수도 없고, 본래의 색과 변한 색을 구분하지 못한다. 흐릿한 눈으로 당신의 끼니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삶 앞에 다다랐다. 그게 가슴과 등을 짓누르더니 결국은 눈물샘을 두드린다.

반질반질하던 예전의 고향 집을 생각하는 건 부질없다. 그런데도 마음은 자꾸 그 시간으로 달려간다. 엄마의 발걸음 소리가 마당에서 세마치장단을 칠 때 사물들은 밝음으로 빛을 뿜었다. 활기가 집 안팎을 넘나들었다. 움직임과 재바른 손놀림이 만든 빛나는 집, 어둠이 숨을 곳 없던 환한 곳에서 한때 고향이 주는 안온함에 젖곤 했다.

햇살을 튕겨내던 가마솥은 사철 윤기를 뿜었고 장독대 항아리는 하루의 찌꺼기를 남길 틈이 없었다. 마당의 생명이 바람 부는 대로 휘몰려다니고 사물들이 키를 맞춰 줄을 섰던 담벼락 밑에도 엄마의 발걸음은 분주히 오갔다.

뒤꼍에 가지런히 걸린 농기구들, 색깔과 크기대로 곳간을 채웠던 곡식들도 깜냥껏 단정했다. 말끔하던 토방에는 조르르 화분이 놓이고 계절마다 바람은 다른 꽃을 피워냈다. 방이나 부엌이라고 달랐을까. 농사로 바쁜 와중에도 흐트러진 걸 참지 못할 만큼 바지런했다. 그러나 손에 청소도구를 든 젊은 엄마를 기억하는 건 이제 일상에서 멀어졌다.

손이 닿기 어려운 곳은 영역 밖으로 밀려났다. 허리를 구부리거나 흐릿한 시선으로 분별할 수 없는 컴컴한 곳도 마찬가지다. 반면 그런 곳이 내게는 오히려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의식은 곧 팔을 걷어붙이게 했다. 손길의 부재를 감지할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자리 잡았다. 그 후 고향 집 방문은 내게 처리해야 할 우선순위를 정해주었다.

왜 그토록 마음이 허했는지 모르겠다. 화장실의 물때를 바라보는 게, 냉장고의 얼룩들을 의식하는 일이 말이다. 장롱 뒤 부옇게 쌓인 먼지를 접할 때면 엄마를 잃어버린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혔다. 평생을 살아온 집이니 감각만으로도 엄마는 주변을 판별한다. 당신이 늘 오가는 곳에는 먼지가 쌓일 틈이 없다. 하지만 감각 이외의 영역을 벗어난 구석이나 높은 곳은 이제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일 년에 한 번씩 고향에 갈 때면 집안에 웅크린 어둠부터 찾기 시작했다. 어둠을 몰아내는 일이 내게는 의무로 다가왔다. 전등 빛이 닿지 않는 방의 구석에는 먼지와 함께 외로움이 웅크리고 있었다. 매일 TV를 켜놓고 자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실감은 더 큰 무게로 잠속까지 파고들었을 것이다. 일 년 사이에 엄마의 걸음은 더 느려졌고 시야는 좁아졌다. 그에 따라 내 마음은 조급해졌다.

지난달, 고향에 도착한 시간은 저물녘이었다. 가방을 벗기 바쁘게 집안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창틀에 걸린 거미줄이었다. 고무장갑과 수세미를 챙기는 동안 엄마는 마당에서 마른 마늘 손질로 분주했다. 수십 년 해온 일이라 손은 재바르고 빈틈이 없었다. 하지만 창틀에 걸린 거미줄은 이제 시야 밖으로 달아난 지 오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손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며 엄마는 구부정한 허리를 펴고 아들의 손을 어루만졌다.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없어서 눈물 둑이 무너졌다. 기억에 의지해 생김새를 가늠하는 일이란, 기억마저 희미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동안 노을이 막 산을 넘고 있었다.

깊어가는 밤, 철철 흐르는 물소리가 적막을 깨웠는지 엄마는 귀를 열어놓고 날 바라보았다. 종가 종부로 살아온 칠십여 년의 세월, 그 치열했던 삶에서 엄마의 작은 몸은 늘 누군가를 위해 존재했다. 당신을 챙기기보다 다른 이들이 먼저였던 강한 육체가 이제 시들어버린 고목 같았다. 뼈가 깎이고 살이 쪼그라진다는 말의 의미를 그렇게 보여주었다.

창틀을 닦으며, 화장실 물때를 문지르며 빛나던 날들을 생각했다. 가난하나마 부족한 게 흠이 되지 않던 때는 뒤 안의 어두운 곳까지 늘 비질이 돼 있었다. 엄마의 세월은 더디 흐를 거라 안심하고 장담한 날들이었다. 뭘 믿고 그리도 당당하게 노쇠를 부정했던 것일까. 텃밭의 상추 하나도 결을 따라 정갈하게 자랐다. 쓰지 않은 절굿공이마저도 반질반질 닦여 있던 집은 이제 과거의 어느 시점에 머물 뿐이다.

사람들은 슬픔을 이야기할 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지 궁금하다. 내게는 엄마의 집이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게 슬픔의 중심이 되었다. 먼지가 쌓여도 알아챌 수 없는 약한 시력, 기력을 상실해가는 몸이 밤을 뜬눈으로 밝히게 했다. 한해 한해 감정의 깊이는 끝을 모르고 바닥으로 치닫는다.

다음날, 집을 나설 때 엄마는 동그란 점이 되어 마당에 서 있었다. 작고 여윈 그림자가 오래된 돌담 아래서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사이에도 차는 밝은 세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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