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아름다운 시

노천명 시모음

작성자새벽샘|작성시간16.04.09|조회수253 목록 댓글 0

 

  

 

 

언제든 가리라
마지막엔 돌아가리라
목화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본향으로
아이들이 하눌타리 따는 길머리엔
鶴林寺(학림사) 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
등잔 밑에서
딸에게 편지 쓰는 어머니도 있었다


둥글레山(산)에 올라 무릇을 캐고
접중화 싱아 뻐꾹채 장구채 범부채
마주재 기룩이 도라지 체니 곰방대
곰취 참두릅 개두릅 홋잎나물을
뜯는 少女(소녀)들은
말끝마다 꽈 소리를 찾고
개암쌀을 까며 少女(소녀)들은
금방망이 은방망이 놓고간
도깨비 얘기를 즐겼다


목사가 없는 교회당
회당지기 전도사가 강도상을 치며
설교하는 산골이 문득 그리워
아프리카서 온 斑馬(반마)처럼
향수에 잠기는 날이 있다
 
언제든 가리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메밀꽃이 하ㅡ얗게 피는 곳
나뭇짐에 함박꽃을 꺾어오던 총각들
서울 구경이 원이더니
차를 타보지 못한 채 마을을 지키겠네

꿈이면 보는 낯익은 동리
우거진 덤불에서
찔레순을 꺾다 나면 꿈이었다

 





 

 노천명 시인 ( 시모음 )

 

女心

 

 

새벽하늘에 긴 강물처럼 종소리 흐르면

으레 기도로 스스로를 잊는 그런 여성으로

 살게해 주십시오.


한번의 눈짓, 한번의 손짓, 한번의 몸짓에도

후회와 부끄러움이 없는 하루를 살며

하루를 반성할 줄 아는 그런 女性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즐거울 땐 꽃처럼 활짝 웃음으로 보낼 줄 알며

슬플 땐 가장 슬픈 표정으로 울 수 있는 그런

女性으로살게 해주십시오.


주어진 길에 순종할 줄 알며 경건한 자세로 기도

드릴줄 아는 그런 여성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진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自畵像(자화상)

                   
대자 한치 오푼 키에 두치가 모자라는
불만이 있다. 부얼부얼한 맛은 전혀
잊어버린 얼굴이다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 하기를
어려워 한다. 그린 듯 숱한 눈썹도
큼직한 눈에는 어울리는 듯도 싶다
마는ㅡ
전시대 같으면 환영을 받았을 삼단
같은 머리는 클럼지한 손에
예술품 답지 않게 얹혀져 가냘픈 몸에
무게를 준다. 조그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못자고 괴로와하는 성미는
살이 머물지 못하게 학대를 했다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 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 세 온스의 살만
더 있어도 무척 생색나게 내 얼굴에
쓸데가 있는 것을 잘 알지만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가 어렵다
처신을 하는 데는 산도야지처럼
대담하지 못하고
조그만 유언 비어에도 비겁하게 삼가한다
대처럼 꺾어는질망정 구리모양
휘어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


 

 

고향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고향으로

아이들 하늘타리 따는 길 머리엔

학림사 (鶴林寺)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

등잔 밑에서

딸에게 편지를 쓰는 어머니도 있었다.

등글레산에 올라 무릇을 캐고

접중화 싱아 장구채 범부채

마주채 기륙이 도라지 체니곰방대

곰취 참두룹 개두룹 혼닢나물을
뜯는 소녀들은

말 끝마다 꽉 소리를 찾고

개암쌀을 까며 소녀들은

금방맹이 놓고 간

도깨비 얘기를 즐겼다.

목사가 없는 교회당

회당직이 전도사가 강도상을 치며

설교하던 산골이 문득 그리워

아프리카에서 온 반마 (斑馬)처럼

향수에 잠기는 날이 있다.

언제든 가리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모밀꽃이 하아얗게 피는 곳

나뭇짐에 함박꽃을 꺽어 오던 총각들 서울 구경

 원이더니차를 타보지 못한 채 마을을 지키겠네.

꿈이면 보는 낯익은 동리

 

우거진 덤불에서

찔레순을 꺽다 나면 꿈이었다.

 

 

 남사당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같이 머리를 땋아 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나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람프 불을 돋운 포장 속에선

내 남성이 십분 굴욕되다.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씨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나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솔밭 사이로 솔밭 사이로 걸어 들어가자면

불빛이 흘러 나오는 고가가 보였다.


거기-

벌레 우는 가을이 있었다.

벌판에 눈 덮인 달밤도 있었다.


흰나리꽃이 향을 토하는 저녁

손길이 흰 사람들은


꽃술을 따 문 병풍의

사슴을 이야기했다.


솔밭 사이로 솔밭 사이로 걸어

지금도

전설처럼-

고가엔 불빛이 보이련만


숱한 이야기들이 생각날까봐

몸을 소스라침을

비둘기같이 순한 마음에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드면 나도 사나이였으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갑옷 떨쳐입고 머리에 투구 쓰고

창검을 휘두르며 싸움터로 나감이

남아의 장쾌한 기상이어든


이제

아세아의 큰 운명을 걸고

우리의 숙원을 뿜으며

저 영미를 치는 마당에랴


영문(營門)으로 들라는 우렁찬 나팔소리


오랜만에

이 강산 골짜구니와 마을 구석구석을

흥분 속에 흔드네

 

 

묘지

 

 

이른 아침 황국(黃菊)을 안고

산소를 찾은 것은

가랑잎이 빨-가니 단풍드는 때였다.

이 길을 간 채 그만 돌아오지 않는 너

슬프다기보다는 아픈 가슴이여


흰 패목들이

서러운 악보처럼 널려 있고

이따금 빈 우차(牛車)가 덜덜대며 지나는 호젓한 곳


황혼이 무서운 어두움을 뿌리면

내 안에 피어오르는

산모퉁이 한 개 무덤

비애가 꽃잎처럼 휘날린다.


 

 별을 쳐다보며

 

 

나무가 항시 하늘로 향하듯이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친구보다

좀더 높은 자리에 있어 본댔자

또 미운 놈을 혼내주어 본다는 일

그까짓 것이 다- 무엇입니까 술 한 잔만도 못한

대수롭잖은 일들입니다.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장미

 

 

맘 속 붉은 장미를 우지직끈 꺾어 보내 놓고

그날부터 내 안에선 번뇌가 자라다

늬 수정 같은 맘에

한 점 티 되어 무겁게 자리하면 어찌하랴


차라리 얼음같이 얼어 버리련다

하늘보다 나무모양 우뚝 서 버리련다

아니

낙엽처럼 섧게 날아가 버리련다

 

 

 장날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전승의 날

 

 

거리거리에 일장깃발이 물결을 친다

아세아민족의 큰 잔칫날

오늘 싱가폴을 떨어뜨린 이 감격

고운 처녀들아 꽃을 꺾어라

남양 형제들에게 꽃다발을 보내자

비둘기를 날리자


눈이 커서 슬픈 형제들이여

代代로 너희가 섬겨온 상전 영미는

오늘로 깨끗이 세기적 추방을 당하였나니


고무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나오너라

종려나무 잎사귀를 쓰고 나오너라

오래간만에 가슴을 열고 웃어 보지 않으려나


그 처참하던 대포소리 이제 끝나고 공중엔

일장표의 비행기 은빛으로 빛나는 아침

남양의 섬들아 만세 불러 평화를 받아라

 

 

 

 비연송 ( 悲戀頌 )

 

 

하늘은 곱게 타고 양귀비는 피었어도연

그대일래 서럽고 서러운 날들

사랑은 괴롭고 슬프기만 한 것인가


사랑의 가는 길은 가시덤불 고개

그 누구 이 고개를 눈물없이 넘었던고

영웅도 호걸도 울고 넘는 이 고개


기어이 어긋나고 짓궂게 헤어지는

운명이 시기하는 야속한 이 길

아름다운 이들의 눈물의 고개


영지못엔 오늘도 탑그림자 안 비치고

아사달은 뉘를 찾아 못 속으로 드는 거며

그슬아기 아사녀의 이 한을 어찌 푸나


 

장날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임 오시던 날

 

 

임이 오시던 날

버선발로 달려가 맞았으련만

굳이 문 닫고 죽죽 울었습니다


기다리다 지쳤음이오리까

늦으셨다 노여움이오리까

그도 저도 아니오이다

그저 자꾸만 눈물이 나

문 닫고 죽죽 울었습니다

 

 

 

사월의 노래

 

 

사월이 오면, 사월이 오면은....

향기로운 라일락이 우거지리

회색빛 우울을 걷어 버리고

가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저 라일락 아래로  라일락 아래로

푸른물 다담뿍 안고 사월이 오면

가냘푼 맥박에도 피가 더하리니

나의 사람아 눈물을 걷자
 

청춘의 노래를 사월의 정령을

드높이 기운차게 불려 보지 않으려나

앙상한 얼골이 구름을 벗기고

사월의 태양을 맞기 위해

다시 거문고의 줄을 골라

내 노래에 맞추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유월의 언덕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하늘은

사뭇 곱기만 한데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고 안으로 안으로만 들다


이 인파 속에서 고독이

곧 얼음모양 꼿꼿이 얼어들어옴은

어쩐 까닭이뇨


보리밭엔 양귀비꽃이 으스러지게 고운데

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해 볼 사람은 없어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어가지고 안으로만 들다


장미가 말을 배우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사슴이 말을 하지 않는 연유도

알아듣겠다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언덕은

곱기만 한데...

 

 

 

당신을 위해

 

 

장미모양

으스러지게 곱게 되는 사랑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죠?


감히 손에 손을 잡을 수도 없고

속삭이기에는 좋은 나이에 열없고

그래서 눈은 하늘만을 쳐다보면

얘기는 우정 딴 데로 빗나가고

차디찬 몸짓으로 뜨거운 맘을 감추는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죠


행여 이런 마음 알지 않을까 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그가 모르기를 바라며 말없이

지나가려는 여인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죠.

 

 

 

구름 같이

 

 

큰 바다의 한 방울 물만도 못한

내 영혼의 지극히 적음을 깨닫고

모래언덕에서 하염없이

갈매기처럼 오래오래 울어보았소.

어느 날 아침이슬에 젖은

푸른밤을 거니는 내 존재가

하도 귀여운 것 같아 들국화 꺾어들고

아침다운 아침을 종다리처럼 노래하였소


허나 쓴웃음 치는 마음

삶과 죽음 이 세상 모든 것이

길이 못풀 수수께끼어니

내 생의 비밀인들 어이 아오


바닷가에서 눈물짓고...

이슬언덕에서 노래불렀소

그러나 뜻 모를 이 생

구름같이 왔다가나보오

 

 

 

아름다운 얘기를 하자

 

 

아름다운 얘기를 좀 하자

별이 자꾸 우리를 보지 않느냐


닷돈짜리 왜떡을 사먹을 제도

살구꽃이 환한 마을에서 우리는 정답게 지냈다


성황당 고개를 넘으면서도

우리 서로 의지하면 든든했다

하필 옛날이 그리울 것이냐만

늬 안에도 내 속에도 시방은

귀신이 뿔을 돋쳤기에


병든 너는 내 그림자

미운 네 꼴은 또 하나의 나


어쩌자는 얘기냐, 너는 어쩌자는 얘기냐

별이 자꾸 우리를 보지 않느냐

아름다운 얘기를 좀 하자.


 

 

 봄비

 

 

강에 얼음장 꺼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가슴속 어디서 나는 소리 같습니다


봄이 온다기로

밤새것 울어 새일 것은 없으련만

밤을 새워 땅이 꺼지게 통곡함은

이 겨울이 가는 때문이었습니다


한밤을 즐기차게 서러워함은

겨울이 또 하나 가려 함이었습니다


화려한 꽃철을 가져온다지만


이 겨울을 보냄은

견딜 수 없는 비애였기에

한밤을 울어울어 보내는 것입니다

 

밤의 찬미


삶의 즐거움이여! 삶의 괴로움이여!
이제는 아우성소리 그처진 밤
죽은듯 다 잠들고 고요한 깊은 밤

미움과 시기의 낙시눈도 감기고
원수와 사랑이 한가지 코를 고나니
밤은 거룩하여라 이 더러운 땅에서도
이밤만은 별 반짝이는 저 하늘과
그 깨끗함을__ 그 향기를 --겨누나니

오-- 밤, 거룩한 밤이여
영원히 네 눈을 뜨지 말지니
네가 눈뜨면 고통도 눈뜨리
밤이여 네 거룩한 벼개를 빼지 말고
고요히 고요히 잠들어 버려라

       눈 보 라


      눈보라 속에 네거리 사람들은
      오직 고, 스톱을 몰라 당황해 한다

      동상(銅像) 하나 못 선 로타리에도
      눈이 오니 괜찮다

      이런 날도 두꺼운 창 안에서
      사무를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겠다

      눈이 펑펑 쏟아지면
      내 속에선 사과꽃이 핀다

      이대로 걸음이 내 집을 향해선 안 된다
      어디를 가야만 하겠다
      누구와 더불어 얘기를 해야만 될 것 같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