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추노제공자이탄지(經鄒魯祭孔子而嘆之)-당현종(唐玄宗)
추노를 지나며 공자를 제사하고 탄식하다
夫子何爲者,(부자하위자), 공자는 무엇 하는 분이기에
棲棲一代中.(서서일대중). 일생 동안 바쁘게만 살았나
地猶鄹氏邑,(지유추씨읍), 땅은 여전히 추씨 고을인데
宅卽魯王宮.(댁즉노왕궁). 집은 노나라 궁궐이 되었구나
嘆鳳嗟身否?(탄봉차신부)? 봉황을 탄식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였는가
傷麟怨道窮.(상린원도궁). 기린의 죽음에 상처받고 도가 다함을 원망하였네
今看兩楹奠,(금간량영전), 이제 두 기둥 사이에서 제사지내니
當與夢時同.(당여몽시동). 꿈꾸던 그 때와 같아야하리
○ 鄒魯(추노) : 노(魯)나라 추읍(鄒邑)이라는 뜻이다. 노(魯)는 춘추(春秋)시대 국명(國名)이다. 여기서는 노나라의 도읍,
○ 夫子(부자): 공자를 높이어 이르는 말
○ 栖栖(서서) : 栖栖는 棲棲와 같다. 일반적으로 황황(遑遑)과 같은 뜻으로 보아 정처 없이 사방을 떠돌아다님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 鄒(추) : 고을 이름으로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 동남쪽이다. 일찍이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이 추읍의 대부였는데, 공자가 여기서 출생하였다.
○ 魯王宮(노왕궁) : 노왕(魯王)은 한(漢) 경제(景帝)의 다섯 번째 아들인 노공왕(魯恭王)이다.
○ 嘆鳳(탄봉) : ≪論語≫ 〈子罕(자한)〉편에 “봉황새가 오지 않고, 하수(河水)에서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나는 이제 끝이다.[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라 하였다.
○ 傷麟(상린) : ≪史記≫ 노(魯) 애공(哀公) 14년에 노나라 사람이 기린(麒麟)을 잡았는데, 공자가 그것을 보고는 ‘기린이 나왔으나 죽었으니, 나의 도(道)도 이제 다했다.’고 탄식하였다고 전해진다.
○ 兩楹奠(양영전) : 영(楹)은 전당(殿堂)의 기둥이며, 양영(兩楹)은 전당(殿堂)의 중간을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