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음기(蓄音機. Gramophone)
음을 기록 및 재생하는 기구이며 영문으로 Gramophone, Phonograph, Talking Machine 등으로 불리운다. 최초의 축음기는 1877년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Phonograph이다. 전신소에서 일하던 에디슨이 송신 속도를 상향시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것이 음악처럼 들리는 데 착안하여 음악 기록 장치를 발명하였다고 전해진다. 1879년에 소리를 기계진동으로 바꾸어 이 진동에 대응하여 주석박에 홈을 파서 소리를 기록하였다. 이것은 10년 후인 1887년에 소리를 더욱 충실하고 용이하게 기록할 수 있는 납관을 사용한 납관식 축음기로 개량되었다. 초기의 녹음은 소리를 기계적 진동으로 바꾸어 이 진동을 녹음침에 전하여 레코드에 홈을 팠다. 재생은 이 레코드의 홈에 바늘을 대서 기계적 진동을 얻어 이것을 진동판에 전하였다.
에디슨의 발명으로부터 몇년 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연구소에서 에디슨의 원통형 축음기를 개량하여 소리 저장 매체로 주석 대신 왁스를 바른 원통을 사용하는 Graphophone을 개발했다. 1887년 에밀 베를린너가 아연 재질의 원반을 매체로 이용하는 Gramophone을 개발한다. 초기 그라모폰은 원통형 축음기에 비해 음질이 좋지 못했다. 베를린너는 엘드리지 존슨의 도움으로 그의 그라모폰의 음질을 원통형 축음기 수준으로 개선하여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 189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미국에서 원통형 축음기와 원반형 축음기가 시장에서 경쟁을 했으며 저렴한 가격과 마케팅으로 인해 원반형 축음기가 시장의 승자가 되었다.
주로 재즈와 블루스, 동양의 경우 초창기 트로트가 상당한 인기를 구사하던 1800년대~1940년대 정도까지만 주로 생산했으며 LP판 기반의 전축이 등장한 이후 사라졌다.
한국에서는 SP를 재생하는 기계(유성기)와 LP를 재생하는 전자기기를 둘 다 축음기라고 부르지만 둘은 호환성이 없다. SP와 LP는 녹음 방식도 다르고 재질도 다르다. 그래서 축음기로는 LP를 돌릴 수 없고 전축으로는 SP를 돌릴 수 없다.
의미만으로는 음악을 재생하는 모든 기구가 축음기가 될 수 있지만, 훗날의 물건들과 구별하기 위해 보통은 초창기에 나온 완전 어쿠스틱의 재생기만을 가리킬 때가 많다. 초창기 에디슨의 원통형 축음기부터 HMV등 유명한 회사들은 흔히 아는 나팔이 달린 태엽 축음기를 제작했다. 많이들 모르는데, 태엽과 나팔 시대의 축음기는 흔히 아는 LP판 대신 SP판을 사용한다. 이 시대에는 에디슨의 다이아몬드 디스크 라는 물건들이 만들어 지기도 했다. 수동식 태엽에서 벗어나 전기 동력을 사용하게 되고부터는 '전기 축음기'의 약자로 '전축' 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고, 80년대까지도 오디오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잡고 있었다. 처음의 축음기는 에디슨이 발명했다. 오디오가 기술상으로 크게 발전하는 데 발판을 만들어 주었고, 현재의 CD 플레이어의 원형이 될 수 있는 기계. 당시의 축음기는 아날로그 방식인 LP판을 사용하였기에 재생되는 소리는 지금의 소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빈약하지만, 이런 소리를 좋아하는 팬 층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한다.
SP판은 이후 나올 LP판에 비해 저장공간이 작아 한면에 거의 1곡씩만 들어간다. 축음기에 SP판을 올리고 태엽을 감아 바늘을 그 위에 올리면 음악이 나오는데 1곡이 끝나면 바늘이 내려온다. 뒷면을 듣고 싶으면 돌판을 뒤집어서 다시 축음기 위에 올려놓고 구동시키면 된다.
일반적으로 음반을 회전시키기 위한 크랭크와 태엽, 그리고 소리 증폭을 위한 나팔관과 재생용 바늘이 결합된 구조로 되어 있다. 간혹 대형 몸체에 화려한 장식이 된 물건도 있고, 가구의 일종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보통 축음기에 사용되는 판에는 미세한 홈이 파여 있는데, 바늘을 움직이는 판 위에 놓게 되면 바늘이 이 미세한 홈들을 지나면서 진동하게 되고, 그 진동을 나팔관이 증폭시켜서 사람이 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소리를 키운다.
전에는 1분정도 밖에 기록할 수 없었던 에디슨의 원통형 매체를 바로 개량하여, 더 오래 음악 혹은 다른 음성 매체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본격적으로 오디오가 사람들에게 보급될 수 있도록 한 발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크기와 재질, 기록 방식을 달리 하면서 SP판, LP, CD, SACD , DVD 그리고 디지털 음악 파일까지 발전해왔다. 이 과정에서 사라진 매체도 적지 않다.
원래 축음기는 일본식 표현이고, 한국에서는 유성기(留聲機)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축음기에 밀려 유성기 쪽이 쇠퇴한 상태이다. 국내의 경우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때 굉장히 많은 물건들이 수입되었다. 인사동 이나 황학동 풍물시장 뒷골목에 가면 골동품들이 널려 있으며 물량은 많은 편이다. 골동품 가격은 저렴한 편이지만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물건이 많다.
골동품이지만 신품상태의 상태가 좋은 제품을 구하고 싶으면 이베이 사이트를 검색해 보면 가끔 좋은 중고물건이 올라오는데 경매 입찰로 구매하면 된다. 보통 미국사람들이 판매자인데 상태가 좋은 축음기는 미국현지에서도 가보급이라 가격은 굉장히 비싼편이다.
축음기는 빅터 축음기, 에디슨 축음기, 콜롬비아 축음기 등 여러 브랜드가 존재했는데 이중 당시 상당히 인기가 많았던 쪽이 '빅터 축음기(Victor Gramophone)'이다. 빅터는 국내에도 많이 흘러들어왔으며 '죽은 주인을 그리워하는 강아지' 문양이 그 회사의 상표인데 황학동 종로 등지의 연로하신 분들에게 물어보면 '개표 축음기' 라고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래미 어워드의 로고와 트로피는 축음기 모양인데, 그래미라는 단어부터가 축음기의 영어인 그라모폰에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