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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와 컴퓨터

LG데이콤(LG Dacom)

작성자管韻|작성시간21.12.18|조회수331 목록 댓글 2

LG데이콤(LG Dacom)

 

 

 

 

 

한국데이타통신주식회사(1982년∼1991년)

데이콤(1991년~2006년)

LG데이콤(2006년~2010년)

 

데이터통신이란 개념이 아직 한국에 낯설었던 1982년 3월, 한국전기통신공사를 비롯해 금성사, 대한전선, 연합통신, 한국전자통신 등이 출자해 '한국데이타통신'을 설립했다. 1983년 국제공중정보통신망 개통을 시초로 공중정보통신 사업을 개시했고, 1986년 비디오텍스 서비스 시범서비스를 개시했다. 1988년 '천리안 I'이란 이름으로 VT 사업을 정식 개시하고 1990년 'PC-Serve' 서비스를 개시했다. 1991년에 데이콤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국제전화 사업을 개시했으며, 1992년에 미주 현지법인을 세웠다. 1993년 상반기에는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데이콤종합연구소를 세웠으며, 하반기엔 한국통신이 지분 23.6%를 전부 팔아 민영화하고 동양그룹이 지분 일부를 인수해 대주주로 올랐다. 같은 해 자회사 데이콤인터내셔날을 세우고 1994년 한통과 함께 국내 최초로 상용 인터넷 서비스를 개시한 후 1995년 저궤도 위성통신(글로벌스타)에 참여했고, 1996년 시외전화사업을 개시했다. 1997년 데이콤새틀라이트멀티미디어를 설립한 후 하나로통신 설립에도 참여했다.

 

위와 같은 공적을 뒤로 한 채 1999년 LG그룹이 동양그룹 지분을 인수한 뒤 2000년 계열사로 정식 편입됐다. 그 과정에서 자회사들을 정리하며 LG인터넷으로부터 채널아이를 넘겨받아 새 운영자회사 '데이콤멀티미디어인터넷(이하 데이콤MI)'을 세웠고, 2001년 일본 TCI와 합작해 '한국고객서비스센터'를 세웠다.

 

2002년 천리안 사업부문을 데이콤MI로 넘긴 뒤, 2004년 시내전화 사업을 개시하고 2005년 인터넷전화 서비스를 개시했다. 2006년에 한국인터넷데이터센터를 합병한 후 사명을 'LG데이콤'으로 변경하고 2007년 IPTV 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2010년 LG파워콤과 함께 LG텔레콤에 합병되어 LG U+로 출범하였고 동시에 유선서비스 부문으로 개편됐다.

 

컴퓨터와 통신의 만남으로 펼쳐질 새로운 정보사회 건설을 위하여 데이콤은 탄생했다. 미래를 선도하는 세계인과 함께 인류문화의 새 지평을 여는 것이 우리의 이상이며 나아갈 길이다.

 

최신 기술과 능률경영을 바탕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하며, 국민의 정보통신 욕구를 충족시키는 신뢰받는 데이콤을 만든다. 이를 위하여 저마다의 재능을 갈고 닦으며, 서로를 존중하는 훈훈한 기업풍토를 우리의 전통으로 삼는다.

 

우리는 무한한 노력과 창의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슬기롭게 어려움을 극복하며, 고객을 생각하고 고객과 함께하는 데이콤인이 된다.

경영이념: 정보사회 선도, 신뢰받는 기업, 인간중심 경영

 

데이콤 시절에는 PC통신 천리안이 유명했으며, 국제전화 접속번호 002가 데이콤 시절부터 내려오고 있다. 국제전화는 1991년부터 시작했는데, 가격이 한국통신(현 KT)보다 5% 저렴했다. 이 때문에 당시 데이콤 국제전화의 주요 광고멘트는 5%가 어딥니까였다.

 

2000년대의 주력사업은 시내전화, 국제전화(002), 인터넷전화(MyLG070)를 위시한 전화 서비스와 인트라넷 구축,기업 인터넷 서비스 IDC 사업 등. 본래 인터넷 사업도 운영하고 있었으나 KT, SK브로드밴드의 1강 1중에 밀려 듣보잡취급을 받다가 LG 파워콤에서 인터넷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관시켰다. 시외전화 서비스도 했다. 처음엔 082부터 누르고 통화해야 했다.

 

전국대표번호가 1544-XXXX로 시작하는데 LG그룹, GS그룹 등 범 LG계 기업이나 과거 계열사의 전국대표번호가 거의 모두 1544로 시작한다. 이것도 데이콤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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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管韻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12.18 한때 데이콤에 입사하면 한국통신보다 월급을 더 준다고 했다. 한국통신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데이콤으로 많이 이직했고 통신업계에 있던 사람들도 데이콤으로 입사했다. 데이콤은 국제전화와 전용회선 사업을 했는데 둘 다 꽝이었다. 데이콤은 기간망이 없어 한국통신 기간망을 시설을 임대해 영업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 작성자管韻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12.18 2001년경 파워콤이 한국전력으로부터 독립했다. 한전에 통신직군들이 대부분 파워콤으로 이직했다. 파워콤은 우리나라 두번째 기간망을 가진 회사이지만 설비가 대부분 한전에 예속되어 있어 임대료를 내야 했다. 영업부진으로 데이콤으로, 다시 LG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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