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오디오와 컴퓨터

전자(電子) 발견(1581)

작성자관운|작성시간15.05.10|조회수100 목록 댓글 0

 

전자(電子) 발견(1581)

 

 

 

패러데이나 맥스웰과 같은 과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전기와 관련된 대부분의 현상들은 이해되었다. 그러나 정작 전기가 흐를 때 무엇이 흘러가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전기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전기의 실체를 재대로 이해하는 일은 모든 전기 현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자를 발견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크룩스관을 이용한 음극선 실험의 사진. 톰슨은 크룩스관을 이용하여 전자를 발견한다.

 

전기 현상의 원인을 찾아라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Sir Joseph John Thomson, 1856-1940). 흔히 J. J. 톰슨이라 표기. 전자를 발견. 190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전자를 발견하여 전기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발전시키고 원자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 현대물리학이 발전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사람은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Sir Joseph John Thomson, 1856-1940)이었다.

 

톰슨은 1856년에 영국 맨체스터 치담 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작은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14살밖에 안 되었던 1870년에 오웬스 칼리지에 입학했다. 톰슨은 1876년에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로 옮겨 1880년에 학사학위를 받았고, 1883년에는 석사학위를 받았다. 톰슨은 1884년에 캐번디시 교수가 되었다. 톰슨의 가장 큰 업적은 뛰어난 스승으로 현대 과학을 개척한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길러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제자나 조수 중 일곱 명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는 것은 이런 사실을 잘 말해준다. 톰슨은 기체의 전기 전도도에 관한 연구190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그의 아들(George Paget Thomson)1937년에 전자의 파동성을 증명한 실험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톰슨, 음극선관을 이용하여 전자를 발견

 

톰슨은 음극선관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전자를 발견했다. 음극선관은 형광등과 비슷한 장치로 공기를 뺀 유리관 안에 (+)극과 (-)극을 연결한 것이다. 관의 양극을 전지에 연결하면 (-)극에서 무엇인가가 나와 (+)극으로 흘러가는데 사람들을 이것을 음극선이라고 불렀고 따라서 이 관을 음극선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처음에는 관 안의 공기를 빼내는 기술이 좋지 않아서 음극선관의 성능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유리 기구 제작자였던 독일의 가이슬러(Heinrich Geissler, 1814-1879)1857년에 음극선관과 관 안의 공기를 빼내는 진공장치도 함께 만들었다. 이 관을 가이슬러관이라고 불렀다. 영국의 크룩스(William Crookes, 1832-1919)1863년에 진공도가 높은 음극선관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크룩스관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극선관은 X선의 발견, 전자의 발견, 전자 회로의 중요한 소자로 사용하게 된 진공관의 개발과 같은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이루어내도록 했다.

 

톰슨이 음극선에 관한 연구를 하기 시작할 때는 음극선관의 (-)극에서 나오는 음극선이 무엇이냐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대립되어 있었다. 음극선이 빛과 같이 에테르를 통해 전달되는 비물질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질량을 가진 입자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톰슨은 에테르와 관계된 비물질적인 흐름이라는 생각은 매우 허황된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입자의 흐름이라는 생각은 충분히 실험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극선이 자기장에 의해 휘어지는 현상을 연구

 

톰슨은 우선 음극선이 자기장에 의해 휘어지는 현상을 조사했다. 음극선이 좌측에서 발생되어 양극을 지나 우측 종모양의 용기로 들어가도록 했다. 음극선은 이곳에서 자기장에 의해 휘어졌다. 톰슨은 용기 안에 놓아둔 사각형 형광판을 이용하여 음극선의 경로를 조사했다. 그는 원자의 종류에 관계없이 항상 같은 정도로 휘어지는 음극선이 나온다는 것을 확인했다.

 

음극선이 에테르와 관계된 비물질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크룩스관에서 음전하를 띤 입자가 발생할 가능성은 인정했지만 이 입자는 음극선의 부산물로 음극선 자체는 비물질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톰슨은 음극선과 전하를 분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톰슨은 크룩스관의 음극 반대편에 형광판을 부착하여 음극선이 충돌하는 곳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톰슨은 이 실험을 통해 음전하를 띤 입자와 음극선은 분리할 수 없으며 동일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톰슨의 실험장치의 그림. 음극선이 좌측에서 발생되어 양극을 지나 우측 종모양의 용기로 들어가도록 했다. 음극선은 이곳에서 자기장에 의해 휘어졌다.

톰슨은 음극선이 자기장 안에서 휘어지는 정도와 음극선이 충돌했을 때 발생하는 열을 측정하여 음극선을 이루는 입자의 질량이 수소 원자의 질량의 1000분의 1보다 작다는 것과 이 입자들의 질량이 음극선을 발생시키는 원자의 종류에 관계없이 항상 일정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1897430일 톰슨은 그 때까지의 실험결과를 종합하여 음극선은 음전하를 가지고 있는 아주 가벼운 입자의 흐름이며 이 입자는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입자라고 발표했다. 톰슨은 이 입자를 미립자(corpuscles)라고 불렀다. 그러나 후세의 과학자들은 이 입자를 톰슨이 미립자를 발견하기 이전에 영국의 물리학자 스토니(George Johnstone Stoney, 1826-1911)가 전기의 기본 단위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던 전자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음극선이 전기장에 의해 휘어지는 현상을 연구

 

미립자의 발견을 발표한 후에도 톰슨은 음극선에 관한 실험을 계속했다. 18975월에서 6월 사이에 톰슨은 음극선이 전기장에 의해 휘어지는 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그 이전의 실험들에서는 음극선이 전기장에 의해 휘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톰슨은 이전의 실험이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음극선관이 너무 많은 기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톰슨은 더 높은 진공도를 가지는 크룩스관을 만들었다. 좌측 끝에 있는 음극에서 발생된 음극선은 두 개의 금속 슬릿을 지나면서 가는 선이 되었다. 이 음극선은 두 개의 알루미늄 전극이 만들어낸 평행한 전기장을 통과하도록 했다. 음극선관의 끝은 형광물질이 발라져 있는 둥근 유리구가 달려 있었다. 톰슨은 이 유리구에 눈금을 그려 넣고 음극선이 휘어지는 정도를 측정했다.

 

톰슨의 전기장에서 음극선이 휘는 것을 확인한 실험장치의 그림. 음극선(파란색 선)이 전기장(노란색)에 의해 휘는 것을 확인했다.

 

톰슨은 위쪽 알루미늄 전극을 전지의 음극에 연결하고 아래쪽을 양극에 연결하면 음극선이 아래쪽으로 휘어지고 전극의 방향을 반대로 하면 음극선이 휘어지는 방향도 반대가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실험을 통해 톰슨은 미립자의 전하량과 질량의 비를 구할 수 있었고, 그 비가 수소 이온의 전하량과 질량의 비의 1000배보다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은 미립자가 질량에 비해서 매우 큰 전하를 가지고 있는 입자라는 것을 뜻했다.

 

톰슨의 원자모형 - 원자가 더 작은 입자로 쪼개질 수 있다

 

톰슨은 음극선이, 전기장에 의해 음전하를 띈 입자와 같은 힘을 받고, 자기장에 의해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는 전하를 띤 입자에 가해지는 것과 같은 힘이 가해진다면, '음극선은 음전하를 띤 입자'라는 결론을 피해갈 수 없다고 봅니다.” 라고 하였다. 그는 또한 이 입자는 음극 주변에 있는 기체 분자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음극 주변의 강한 전기장에 의해 정상적인 원자들이 해체되어 이 미립자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톰슨은 이 미립자로는 원자의 구성요소라고 생각했다.

톰슨의 원자 모형 개념도. 음전하를 띈 전자가 양전하를 띈 원자 속에 골고루 퍼져 있는 형태다. 마치 푸딩 속에 건포도 등이 박혀 있는 모양이라 플럼 푸딩 모형이라고 한다.

 

미립자들이 원자에서 나온 것이라는 톰슨의 주장은 원자가 더 작은 구성요소로 쪼개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원자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가장 작은 입자라는 기존의 원자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톰슨은 원자가 음전하를 띤 전자를 가지고 있는 데도 전기적으로 중성인 것은 이 미립자들이 원자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는 양전하 속에 박혀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톰슨의 플럼푸딩(Plum pudding) 원자 모형이다.

 

톰슨의 전자를 발견하고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안한 외에도 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다. 그 중의 하나가 네온의 안정한 동위원소를 발견한 것과 질량 분석기의 초기 형태를 만든 것이다. 1912년에 톰슨은 실험 조수였던 애스턴(F. W. Aston, 1877-1945)과 함께 이온화 된 네온을 전기장과 자기장을 통과시키면서 휘어지는 정도를 측정하여 네온 이온이 원자량이 20인 네온과 원자량이 22인 네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네온의 두 가지 동위원소를 발견한 것이다. 소디(Frederick Soddy, 1877-1956)가 이전에 방사성 원소의 붕괴를 설명하기 위해 동위원소의 존재를 제안했었지만 안정한 원자에서 동위원소를 발견한 것은 이것이 최초였다. 톰슨과 애스턴이 네온의 동위원소를 분리하는데 사용한 것은 최초의 질량분석기였다. 후에 애스턴과 뎀스터(A. J. Dempster, 1886-1950)는 질량분석기를 크게 발전시켰다.

 

전자의 발견은 현대 과학의 시작으로 평가

 

과학사학자들 중에는 톰슨의 전자 발견을 현대 과학의 시작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 부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현대 과학에서 전자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새로운 이론들이 전자의 행동을 기술하기 위해 제안되었고, 전자를 이용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전자의 행동을 이해하고, 전자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글 곽영직 |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저서로는 [과학이야기], [자연과학의 역사], [원자보다 작은 세계 이야기] 등이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