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년~1493년)先生 한시모음
41. 서감(書感)-김시습(金時習) - 감회를 적다
不向金門浪掛名(부향김문랑괘명) : 대궐 향해 부질없이 이름 걸지 않고
却來靑嶂解塵纓(각래청장해진영) : 물러나 청산에 돌아와 세상 구속 벗었다
花如識面逢人笑(화여식면봉인소) : 꽃은 얼굴 알아보듯 사람 만나면 웃고
鳥不知情隨意鳴(조부지정수의명) : 새는 정을 알지 못해 제멋대로 우는구나
小院樹陰靑裊裊(소원수음청뇨뇨) : 작은 집의 나무 그늘, 푸른 빛 간드러지고
滿園蔬菜綠菁菁(만원소채록청청) : 정원에 가득한 나물, 푸른 빛 짙어간다
一生可是無功業(일생가시무공업) : 내 평생 곧 아무 공적 없을 것이니
管却淸溪洗耳聲(관각청계세이성) : 맑은 시내에 귀 씻는 소리나 관리하리.
42. 궁수(窮愁)-김시습(金時習) - 궁한 근심
窮愁如絮着旋粘(궁수여서착선점) : 궁한 근심은 솜같아 착 달라붙으니
除却淸吟不可砭(제각청음부가폄) : 맑은 노래가 아니면 치료할 수 없도다
懶性已如棲木鳥(라성이여서목조) : 게으른 근성은 이미 나무에 깃든 새 같아
營生何異上竿鮎(영생하이상간점) : 살려고 애쓰니 어찌 낚시에 물린 메기와 다른가
閑刳竹筧添寒井(한고죽견첨한정) : 한가히 대나무 홈통 쪼개어 찬 우물 끌어 와서
爲折松枝補短簷(위절송지보단첨) : 소나무 가지 꺾어 잛은 처마 보충한다
閉戶著書聊自慰(폐호저서료자위) : 문 닫아걸고 책을 쓰며 그럭저럭 자위하니
一庭疏雨正廉纖(일정소우정염섬) : 뜰에 성긴 비가 막 여기저기 뿌려지는구나.
43. 우탄(寓歎)-김시습(金時習) - 탄식에 부쳐
堪嘆浮生早不休(감탄부생조부휴) : 한스러워라, 덧없는 삶 일찍 쉬지도 못하다니
十年書劍買閑愁(십년서검매한수) : 십년 동안 책 읽고 검술 배워도 수심만 사왔구나
老無可却靈方少(노무가각영방소) : 늙음도 물리치지 못하고, 좋은 방법도 없고
生不長延宰木幽(생부장연재목유) : 삶을 연장하지도 못하고, 무덤가 재나무는 무성하다
寵極定如芻狗擲(총극정여추구척) : 은총이 지극하여도 돼지나 개처럼 버려지고
窮來還似涸鱗游(궁래환사학린유) : 궁해진다면 마른 수레바퀴 자국에 노는 물고기 신세
人人盡說人間好(인인진설인간호) : 사람들마다 모두 인간세상 좋아고 하지만
春到人間肯暫留(춘도인간긍잠류) : 봄은 인간세상에 와서 잠시 머물다 가려하는구나.
44. 감회(感懷)-김시습(金時習) - 내 마을 속 느낌
四十三年事已非(사십삼년사이비) : 마흔 세 살 전의 일은 이미 그릇되어
此身全與壯心違(차신전여장심위) : 한창적 마음과 전적으로 틀려진 이 내 몸이여
神魚九變騰千里(신어구변등천리) : 신령한 물고기 아홉 번 변해 천리를 날으니
大鳥三年欲一蜚(대조삼년욕일비) : 큰 새가 삼 년이 되면 한 벌레가 되려 한다
洗耳更尋東澗水(세이경심동간수) : 귀를 씻고 동쪽 골짝물 찾아가
療飢薄采北山薇(요기박채북산미) : 북산의 고사리를 캐어 요기하리라
從今陟覺歸歟處(종금척각귀여처) : 이제부터 돌아가 있을 곳을 말았으니
雪竹霜筠老可依(설죽상균노가의) : 눈 속 대나무, 서리 속 죽순은 늙어 의지하리라.
45. 장세(壯歲)-김시습(金時習) - 한창 나이
壯歲功名頗自期(장세공명파자기) : 한창 나이에는 공명을 자못 바라면서
虞庭吁咈接咎夔(우정우불접구기) : 우나라 조정에서 반대하는 고요와 기처럼 하였다
老駒伏櫪心千里(노구복력심천리) : 늙은 말 마구에 엎드려, 마음은 천리를 달리고
病鶴開籠笑一枝(병학개롱소일지) : 병든 학이라도 새장 열리면, 옮겨 한 가지에서 웃는다
樗櫟不能爲世用(저력부능위세용) : 가죽나무는 세상의 쓰임이 되지 못하나
麒麟豈肯作人羈(기린개긍작인기) : 기린이야 어찌 세상의 구속을 받아들이랴
衰遲自笑狂豪甚(쇠지자소광호심) : 우습고나, 쇠하고 느려진 몸이 미친 호기 심해지나
落筆崢嶸勝舊時(낙필쟁영승구시) : 붓끝은 뺏뺏해져서 옛날보다 더 낫구나.
46. 도승천포(渡昇天浦)-김시습(金時習) - 승천포를 지나며
浩渺煙波蘆葦潯(호묘연파로위심) : 갈대밭 물가에 넓고아득한 안개
舟人晚泊近楓林(주인만박근풍림) : 사공은 단풍숲 가까운 곳에 배를 댄다
雲生浦漵晚潮退(운생포서만조퇴) : 구름 이는 포구에 저녁 조수 밀려가고
木落洞庭秋水深(목낙동정추수심) : 나뭇잎 떨어진 동정호에 가을물 깊도다
嗚咽一聲何處笛(오인일성하처적) : 흐느끼는 피리소리 어디서 들려오는지
丁東雙杵幾家砧(정동쌍저기가침) : 쿵쿵하는 공이 소리, 어느 집 절구인가
乾坤不礙飄萍跡(건곤부애표평적) : 천지가네 막힐 것 없는 나부끼는 부평초 발길
剩得白雲千里心(잉득백운천리심) : 남은 일은 흰구름 얻어 천리를 가는 마음이도다.
47. 추령(槌嶺)-김시습(金時習) - 추령에서
逕入山腰石角危(경입산요석각위) : 좁은 길 산허리로 들고 돌부리 위태한데
野花初謝子纍纍(야화초사자류류) : 들꽃이 지기 시작하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十年往事夢初覺(십년왕사몽초각) : 지난 십년 일들 꿈속에서 처음 깨닭으니
百歲風光梁未炊(백세풍광량미취) : 백년 광풍에 짓는 조밥은 아직 익지도 않았구나
雙燕引雛低掠草(쌍연인추저략초) : 한 쌍의 제비 새끼 데리고 나직이 풀섶을 스치고
片雲拖雨恰催詩(편운타우흡최시) : 조각구름 비 몰고와 시 짓기를 재촉한다
登高可得槌千恨(등고가득추천한) : 높은 데 올라 천 가지 한을 망치질할 수 있다면
願上峯頭一展眉(원상봉두일전미) : 봉우리 높은 곳에 올라 눈썹 한 번 펴보고 싶구나.
48. 우두원(牛頭原)-김시습(金時習) - 우두원에서
牛頭原上暮煙收(우두원상모연수) : 우두원에 저문 연기 걷히고
萬頃黃雲麥隴秋(만경황운맥롱추) : 넓은 들판 누런 구름, 보리두렁 가을이라
白鳥一雙飜落日(백조일쌍번낙일) : 흰 새 한 쌍이 지는 해에 날아간다
蒼波十里送歸舟(창파십리송귀주) : 십리 긴, 푸른 물결에 떠나는 배 보내니
江山處處詩添興(강산처처시첨흥) : 강산 여기저기에 시 짓기에 더욱 흥겨웁고
風月年年酒解愁(풍월년년주해수) : 해마다 풍월은 술 마시어 근심을 풀어준다
野水斷橋村逕曲(야수단교촌경곡) : 다리 끊긴 들판 물에 시골 길은 굽어있고
牧童相喚穩騎牛(목동상환온기우) : 목동은 서로 부르며 평온히 소 타고 돌아온다.
49. 청평산(淸平山)-김시습(金時習) - 청평산에서
淸平山色映人衣(청평산색영인의) : 청평산 맑은 산빛, 사람옷을 비추고
慘淡煙光送落暉(참담연광송낙휘) : 참담한 연기 빛, 지는 햇빛 보냈구나
巖溜洒空輕作霧(암류쇄공경작무) : 바위에 떨어진 물 공중을 씻어 안개 되고
春蘿拱木碧成幃(춘라공목벽성위) : 봄 댕댕이는 나무를 둘러 푸른 장막 되었구나
玉沙瑤草人間遠(옥사요초인간원) : 옥 모래, 진기한 풀에 인간세상 멀리하고
琪樹瓊花世慮微(기수경화세려미) : 좋은 나무, 옥같은 꽃에 세상근심 적어진다
只好誅茅棲絶頂(지호주모서절정) : 다만 띠풀 베어내고 높은 언덕에 집을 짓고
從今嘉遯莫相違(종금가둔막상위) : 이제부터 숨어서 사는 기쁨을 어기지 않으리라.
50. 도중(途中)-김시습(金時習) - 도중에-김시습
野逕高低曲轉蛇(야경고저곡전사) : 높고 낮은 들길은 뱀처럼 굽어있고
深林日暮有鳴鴉(심림일모유명아) : 저무는 깊은 숲에 까마귀 우는 소리 들리네
靑山不管是非事(청산부관시비사) : 청산은 시비의 일을 가리지 않고
白鳥自占深淺沙(백조자점심천사) : 백조는 저마다 깊고 앝은 모래벌 차지하였네
十里尖峯濃似畫(십리첨봉농사화) : 십리 이은 뽀죡한 산봉우리 그림같고
一溪流水碧於紗(일계류수벽어사) : 개울에 흐르는 물 비단보다 푸르다네
紅塵三尺君休返(홍진삼척군휴반) : 홍진이 석자나 되니 그대는 돌아가지 말지니
縱是明珠也有瑕(종시명주야유하) : 비록 명주라도 티가 있을 것이라네.
51. 보제전음(普濟餞飮)-김시습(金時習) - 보제원에서 작별하며 술마시다
東風碧草雨新沐 (동풍벽초우신목) 푸른 풀에 봄바람 불고, 비에 씻겨 새롭고
聯騎公子餞行客 (연기공자전행객) 연이어 나온 말 탄 공자들이 가는 손을 작별한다
紅叱撥嘶嚼玉勒 (홍질발시작옥륵) 홍질발 말들이 옥자갈 씹어대고
金叵羅飛泛春色 (김파라비범춘색) 금파라 술잔은 봄빛 띄워 보낸다
鵾絃鐵撥響驪駒 (곤현철발향려구) 고니줄 거문고를 쇠채로 타니 이별의 노래 울리고
憑陵大叫呼五白 (빙릉대규호오백) 주사위로 <오>나오라, <백>나오라 크게 소리쳐 부른다
宴罷徘徊不忍別 (연파배회부인별) 잔치가 끝나도 서성대며 차마 떠나지 못하는데
女墻月上昏鴉集 (여장월상혼아집) 얕은 담장에 달 떠오르고 저녁 까마귀 모여든다.
52. 왕심연허(枉心煙墟)-김시습(金時習) - 왕심 연기나는 곳
依依墟里靑煙生(의의허리청연생)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에 파란 연기 나고
桑柘陰陰鷄犬鳴(상자음음계견명) 산뽕나무 아래로 닭과 개가 울어대는구나
十里麥壟一樣綠(십리맥롱일양록) 십리 보리밭 이랑이 모두가 파랗고
幾家繅車三兩聲(기가소거삼양성) 몇 집에서, 두세 번 울리는 고치켜는 소거차 소리
梨花落處白酒香(이화낙처백주향) 배꽃 떨어지는 곳에 흰 술 익는 향기
榕葉蔭中黃鸝鳴(용엽음중황리명) 용나무 그늘 속에 들이는 꾀꼬리 울음소리
老婦城裏賣菜還(노부성리매채환) 늙은 부인 성안에서 채소 팔고 돌아오니
兒童喜迓跳柴荊(아동희아도시형) 아이들은 기뻐 맞으며 사립문으로 달려간다.
53. 제단녹무(祭壇綠蕪)-김시습(金時習) - 제단에 푸른 풀
東城門外松萬株 (동성문외송만주) 동문 밖에는 소나무 일만 그루
松下祭壇多綠蕪 (송하제단다록무) 소나무 아래 제단에 우거진 푸른 풀
苞桑枝下兔領兒 (포상지하토령아) 뽕나무 가지 아래는 토끼가 새끼 데리고 있고
淺草叢邊烏哺雛 (천초총변오포추) 얕은 풀섶에는 까마귀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인다
無數野花自開落 (무수야화자개낙) 무수한 들꽃은 저절로 피고 지고
不盡細藤相緣扶 (부진세등상연부) 한 없이 가는 덩굴은 서로 얽혀 붙어있도다
點也情懷莫之禁 (점야정회막지금) 증점이여, 그대의 회포 금할 길 없었으니
風乎竟日空踟躕 (풍호경일공지주) 바람이 이는구나, 종일토록 헛되이 망설였다오.
54. 고암니활(鼓巖泥滑)-김시습(金時習) - 고암의 진흙 미끄러워
稻畦雨足水亂漂 (도휴우족수란표) 논두둑에 흡족한 비, 물은 넘쳐 흘러
沙石塡街浮溪橋 (사석전가부계교) 모래와 돌이 거리에 차고 개울다리 뜬다
濁浪汨汨沒馬蹄 (탁랑골골몰마제) 흐린 물결 출렁이고 말발굽도 묻히고
靑泥滑滑齊牛腰 (청니골골제우요) 푸른 진흙 끄꺼러워 소 허리에 닿는다
燕子銜將喜輕趫 (연자함장희경교) 제비들 먹이 물고 가볍게 날아다고
蛙兒鼓吹恣騰跳 (와아고취자등도) 개구리들 울면서 마음대로 뛰어다닌다
世路宦途亦如此 (세로환도역여차) 이 세상 벼슬길도 이와 같으니
何當一洗令其澆 (하당일세령기요) 무슨 방법으로 한번 씻어 갈아낼 수 있을까.
55. 입석맥랑(立石麥浪)-김시습(金時習) - 입석에 보리물결
萬頃芃芃含淺靑 (만경봉봉함천청) 넓은 들판 수북히 파란빛 머금어
綠波初漲雲浮汀 (록파초창운부정) 푸른 물은 불어나고 물가엔 구름 비친다
望中不盡翳遠野 (망중부진예원야) 눈길 가는 곳 끝없고 먼 들판 어둑하나
割後無痕乾滄溟 (할후무흔건창명) 보리 다 벤 뒤엔 흔적 없는 마른 바다 되리라
野雉藏深香穗潤 (야치장심향수윤) 들꿩은 깊이 숨고, 향기로운 벼이삭 윤기나고
雛燕掠去輕花零 (추연략거경화령) 새끼 제비 스쳐가니 가벼운 꽃 떨어진다
不用鼓枻遡牛渚 (부용고설소우저) 배를 저어 소내로 거슬러 갈 필요 없으니
眞一一勺通神靈 (진일일작통신영) 참으로 한 구기이면 진령에도 통하리로다.
56. 금계어약(金溪魚躍)-김시습(金時習) - 금계에 물고기 뛰놀고
圉圉洋洋吹細波 (어어양양취세파) 느릿느릿, 펄펄 가는 물결 치며
兩兩相戲遊盤渦 (양양상희유반와) 둘씩둘씩 희롱하며 여울진 물에 논다
有時聚藻飜金尺 (유시취조번김척) 때때로 마름에 모여 금빛 몸 들척이니
忽沫淸瀾拋玉梭 (홀말청란포옥사) 갑자기 맑은 포말 일어 옥같은 베틀북 던진다
綠荇深處避人影 (녹행심처피인영) 사람 그림자 피하여 푸른 미나리 속에 숨고
碧草磯邊依蟹窠 (벽초기변의해과) 푸른 풀 낚시터에서는 게 구멍에 숨는다
知汝得所濠梁間 (지여득소호량간) 너가 해자 다리 사이에서 얻는 줄, 내 안다마는
香餌微緡其如何 (향이미민기여하) 가는 줄에 매인 향기나는 낚시밥, 이를 어찌하나.
57. 압봉노화(鴨峯路花)-김시습(金時習) - 압봉 가는 길의 꽃
春山寂寂春鳥啼 (춘산적적춘조제) 봄산은 적막한데 새는 울고
竹杖芒鞋遊山蹊 (죽장망혜유산혜) 대지팡이 짚신 신고 산길을 노닌다
萬點燕脂綴芳叢 (만점연지철방총) 만점 연지자국 꽃떨기에 찍혀있고
數點紅雨流寒溪 (수점홍우류한계) 몇 방울 붉은 비, 찬 개울에 흘러간다
謝豹哀鳴亂山疊 (사표애명란산첩) 어지러운 첩첩 산에 두견은 슬피 울고
雄蜂狂唼繁枝低 (웅봉광삽번지저) 수벌은 비친 듯, 휘늘어진 가지에 입맞춘다
朗吟不覺攪花影 (양음부각교화영) 낭낭히 읊음에 꽃그늘 흔들리는 줄 모르고
香霧霏霏行徑迷 (향무비비행경미) 향기로운 안개 뭉개뭉개, 가늘 길 잃겠구나.
58. 원각사낙성회(圓覺寺落成會)-김시습(金時習) - 원각사 낙성회
給園初敝市街前 (급원초폐시가전) 도시에 버려졌던 급원 절터가
聖曆鴻圖萬萬年 (성력홍도만만년) 성군의 큰 생각에 만년 가게 되었구나
毳服圓顱逢竺日 (취복원로봉축일) 솜옷에 둥근 머리, 부처 만나는 날
緇巾曲領頌堯天 (치건곡령송요천) 치건에 도포 입으니 요순시대 송축한다
香煙裊裊隨龍駕 (향연뇨뇨수룡가) 향불연기는 임금수레 따라 너울거리고
瑞氣緜緜繞佛邊 (서기면면요불변) 상서로운 기운이 불상을 감싸는구나.
誰信逸民參盛會 (수신일민참성회) 평범한 백성이 성대한 모임에 참여하다니
五雲朶裏喜周旋 (오운타리희주선) 오색구름 꽃 속에 돌아다님이 즐겁구나.
59. 신역연경(新譯蓮經)-김시습(金時習) - 새로 번역한 연화경
蓮經譯自九重深 (연경역자구중심) <연화경> 번역을 구중 깊은 곳에서 하니
一句頻迦出衆禽 (일구빈가출중금) 한 구절의 빈가가 뭇 새 울음보다 뛰어나다.
梵筴到秦言尙澁 (범협도진언상삽) 범어 서적이 중국에 이르렀으나 언어가 난삽하고
華言自什趣難尋 (화언자십취난심) <구마라습>이 중국어로 번역했으나 취지 찾기 어려웠다
琅琅諦語昭雲漢 (랑랑체어소운한) 옥 같은 진리의 말은 은하처럼 밝고
歷歷眞詮演妙音 (역력진전연묘음) 역력한 참된 저울은 오묘한 음을 번역하였다.
觀彼漢唐飜解迹 (관피한당번해적) 한나라 당나라의 번역한 자취를 보니
奘蘭能似我王心 (장란능사아왕심) <현장>과 <등란>이 어찌 우리 임금님 마음과 같으리오.
60. 장지(壯志)-김시습(金時習) - 대장부 마음
壯志桑弧射四方 (장지상호사사방) 큰 뜻으로 뽕나무 활 사방에 쏘면서
東丘千里負淸箱 (동구천리부청상) 동쪽나라 천리길 푸른 상자지고 다녔네
欲參周孔明仁義 (욕참주공명인의) 조공과 공자에 참여하여 인의를 밝히며
又學孫吳事戚揚 (우학손오사척양) 또 손자와 오기의 병법을 배워 척야의 무술 익혔네
運到蘇秦懸相印 (운도소진현상인) 우수가 닿으면 소진처럼 정승이 되고
命窮正則賦離騷 (명궁정칙부이소) 운명이 궁하면 정칙처럼 이소경이나 지으리
如今落魄無才思 (여금낙백무재사) 지금은 낙백하여 한 치의 재사도 없으니
曳杖行歌類楚狂 (예장행가류초광) 지팡이 끌고 노래하기가 초나라 광접여와 같네.
61. 우중민극(雨中悶極)-김시습(金時習) - 비는 내리는데 속은 답답해서
連空細雨織如絲 (연공세우직여사) 베를 짜는 양 가랑비 하늘에 가득하고
獨坐寥寥有所思 (독좌요요유소사) 적적히 홀로 앉으니 생각나는 바가 많구나
窮達縱云天賦與 (궁달종운천부여) 궁하고 달하는 것 하늘이 준 것이라 하지만
行藏只在我先知 (행장지재아선지) 가고 머물고는 내게 있음을 알고 있다네
霏霏麥隴秋聲急 (비비맥롱추성급) 부슬부슬 비 내리는 보리밭에 가을소리 급하고
漠漠稻田晩色遲 (막막도전만색지) 막막한 벼밭엔 저녁빛이 늦어 드는구나
老大頤生何事好 (노대이생하사호) 늙어서 편안한 삶에는 어떤 일이 좋은가
竹床凉簟乍支頤 (죽상량점사지이) 대나무 평상에 서늘한 돗자리에서 턱이나 괴는 것이네.
62. 야심(夜深)-김시습(金時習) - 밤은 깊어가는데
夜深山室月明初 (야심산실월명초) 깊은 밤, 산실에 달 밝은 때`
靜坐挑燈讀隱書 (정좌도등독은서) 고요히 앉아 등불 돋워 은서를 읽는다
虎豹亡曹相怒吼 (호표망조상노후) 무리 잃은 호랑이와 표범들 어르렁거리고
鴟梟失伴競呵呼 (치효실반경가호) 소리개 올빼미 짝을 잃고 다투어 부르짖는다
頤生爭似安吾分 (이생쟁사안오분) 편안한 삶 다툼이 어찌 내 분수에 편안만 하리오
却老無如避世居 (각로무여피세거) 도리어 늙어서는 세상 피하여 사는 것만 못하리라
欲學鍊丹神妙術 (욕학련단신묘술) 오래 사는 범을 배우려 하시려면
請來泉石學慵疏 (청래천석학용소) 자연을 찾아 한가하고 소탈한 것이나 배워보시오.
63. 월야독보정중(月夜獨步庭中)-김시습(金時習) - 달밤에 홀로 뜰을 거닐며
滿身風露正凄凄 (만신풍로정처처) 몸에 가득한 바람과 이슬 쓸쓸하기만 한데
夜半鐘殘斗已西 (야반종잔두이서) 깊은 밤, 종소리 잦아들고 북두성은 서쪽으로 기운다
松鶴有機和月唳 (송학유기화월려) 소나무에 앉은 학 마음 있어 달에 화답하여 울고
草蟲牽恨向人啼 (초충견한향인제) 풀벌레 한에 끌리어 사람 향해 우는구나
半窓孤枕燈花落 (반창고침등화락) 홀로 누운 창에 등불 불꽃이 떨어지고
幽樹一庭簾影低 (유수일정렴영저) 나무 그윽한 뜰에 발 그림자 나직하구나
侍者正眠呼不起 (시자정면호불기) 시중 드는 이, 바로 잠 들어 불러도 일어나지 않고
好詩吟了便旋題 (호시음료편선제) 좋은 시 읊고나서 바로 시 제목 생각해본다.
64. 無題1(무제1)-金時習(김시습) - 무제
終日芒鞋信脚行 (종일망혜신각행) 종일토록 짚신 신고 내키는 대로 걸어
一山行盡一山靑 (일산행진일산청) 산을 다 걸으면 또 푸른 산
心非有想奚形役 (심비유상해형역) 마음은 물건이 아닌데 어찌 육체의 노예가 되며
道本無名豈假成 (도본무명기가아) 진리는 이름이 없거늘 어찌 위선을 행하리오
宿露未晞山鳥語 (숙노미희산조어) 밤이슬 마르지도 않는 새벽에 사내들 지저귀고
春風不盡野花明 (춘풍부진야화명) 봄바람 살랑 살랑 불어오고 들꽃은 밝구나
短笻歸去千峰靜 (단공귀거천봉정) 짧은 지팡이 짚고 돌아가니 수 천 봉우리 고요하고
翠壁亂煙生晩晴 (취벽난연생만청) 맑은 저녁 하늘 이끼 낀 푸른 절벽에 안개 자욱하다
65. 사청사우(乍晴乍雨)-김시습(金時習;1435-1493) - 개었다가 다시 또 비 내리네
乍晴乍雨雨還晴 (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 내렸다가 도로 개이니
天道猶然況世情 (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이치도 이러한데 하물며 세상 인심이야
譽我便是還毁我 (예아편시환훼아) 나를 칭찬하다 곧 도리어 나를 헐뜯으니
逃名却自爲求名 (도명각자위구명) 명예를 마다더니 도리어 명예를 구하게 되네
花開花謝春何管 (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을 봄이 어찌 하리오
雲去雲來山不爭 (운거운래산불쟁) 구름이 오고 구름이 가는 것을 산은 다투질 않네
寄語世人須記認 (기어세인수기인) 세상 사람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알아두소
取歡無處得平生 (취환무처득평생) 기쁨을 취하되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