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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고 노래하다

長恨歌 (장한가) 기나긴 한의 노래 / 白居易 백거이

작성자관운|작성시간16.12.09|조회수78 목록 댓글 0




양귀비(楊貴妃, 719~756)



長恨歌 (장한가) 기나긴 한의 노래 / 白居易 백거이




漢皇重色思傾國 (한황중색사경국) 한황제 색을 즐겨 경국지색 찾았으나
御宇多年求不得 (어우다년구부득) 오랜 세월 구하여도 얻을 수가 없었네
楊家有女初長成 (양가유녀초장성) 양씨 가문에 갓 성숙한 딸이 있어
養在深閨人未識 (양재심규인미식) 집안 깊이 길러 누구도 알지 못했네
天生麗質難自棄 (천생려질난자기)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一朝選在君王側 (일조선재군왕측) 하루아침 뽑혀 황제 곁에 있게 됐네
回眸一笑百媚生 (회모일소백미생) 한번 눈웃음지면 이는 애교 그지없어
六宮粉黛無顔色 (육궁분대무안색) 단장한 육궁 미녀들의 얼굴빛을 가렸네
春寒賜浴華淸池 (춘한사욕화청지) 봄추위에 화청지 목욕함을 허락하니
溫泉水滑洗凝脂 (온천수골세응지) 온천물 부드럽게 매끄러운 몸을 씻네
侍兒扶起嬌無力 (시아부기교무력) 시녀들 부축에도 연약하기만 한 교태
始是新承恩澤時 (시시신승은택시) 그때부터 황제 사랑받기 시작 하였네
雲빈花顔金步搖 (운빈화안금보요) 구름머리, 꽃 얼굴, 흔들리는 금장식
芙蓉帳暖度春宵 (부용장난도춘소) 부용휘장 안에 따뜻한 봄밤은 깊어
春宵苦短日高起 (춘소고단일고기) 짧은 봄밤 한탄하며 해 높아 일어나니
從此君王不早朝 (종차군왕부조조) 황제는 이로부터 조회를 보지 않았네
承歡侍宴無閑暇 (승환시연무한가) 총애로 연회에 매이니 한가할 틈 없어
春從春游夜專夜 (춘종춘유야전야) 봄에는 봄놀이에 밤에는 밤잠자리에
後宮佳麗三千人 (후궁가려삼천인) 빼어난 후궁에 미녀 삼천 있었지만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총애재일신) 삼천 명에 내릴 사랑 그녀 혼자 받았네
金屋粧成嬌侍夜 (금옥장성교시야) 황금방에 단장하고 교태로 밤시중 들고
玉樓宴罷醉和春 (옥루연파취화춘) 옥루 잔치 끝나면 봄기운에 취했네
姉妹弟兄皆列士 (자매제형개열사) 자매와 형제 모두에게 영지를 내려주니
可憐光彩生門戶 (가련광채생문호) 이윽고 그들 가문에 광채가 나게 되어
遂令天下父母心 (수령천하부모심) 이에 따라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不重生男重生女 (부중생남중생녀)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기게 됐네

驪宮高處入靑雲 (여궁고처입청운) 화청궁 높이 솟아 구름 속에 들어 있고
仙樂風飄處處聞 (선낙풍표처처문) 선악은 바람 타고 어디서나 들려오네
緩歌慢舞凝絲竹 (완가만무응사죽) 느린 노래 나른한 춤 여운 긴 가락에
盡日君王看不足 (진일군왕간부족) 황제는 하루 종일 넋 잃고 바라보네
漁陽비鼓動地來 (어양비고동지내) 돌연 어양 쪽 땅 울리는 전고 소리
驚破霓裳羽衣曲 (경파예상우의곡) 예상우의곡을 놀라 멎게 하였네
九重城闕煙塵生 (구중성궐연진생) 구중궁궐에 연기 먼지 솟아오르고
千乘萬騎西南行 (천승만기서남행) 수천수만 관군들은 서남으로 달아나네
翠華搖搖行復止 (취화요요행복지) 천자의 기 흔들리며 가다가 서곤 하며
西出都門百餘里 (서출도문백여리) 도성문 서쪽 백여리 마외역에 이르러
六軍不發無奈何 (육군부발무나하) 양귀비 처결하라 군사들이 멈춰서니
宛轉蛾眉馬前死 (완전아미마전사) 양귀비는 몸 뒤틀며 군마 앞에 죽었네
花鈿委地無人收 (화전위지무인수) 땅에 떨군 꽃비녀 거두는 사람 없고
翠翹金雀玉搔頭 (취교금작옥소두) 취교, 금작, 옥소두 땅에 흩어졌네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엄면구부득) 황제는 얼굴 가린 채 구하지 못하고
回看血淚相和流 (회간혈루상화류) 차마 돌린 두 눈에 피눈물이 흐르네
黃埃散漫風蕭索 (황애산만풍소삭) 누런 흙먼지 일고 바람 쓸쓸히 부는데
雲棧영紆登劍閣 (운잔영우등검각) 구름 걸린 굽은 잔도 검각산을 오르네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하소인항) 아미산 아래에는 오가는 이도 드물어
旌旗無光日色薄 (정기무광일색박) 천자 깃발 빛을 잃고 햇빛도 희미하네
蜀江水碧蜀山靑 (촉강수벽촉산청) 촉강 맑게 흐르고 촉산은 푸르건만
聖主朝朝暮暮情 (성주조조모모정) 황제는 아침저녁 양귀비 생각에 잠겨
行宮見月傷心色 (항궁견월상심색) 행궁에서 보는 달에 마음 절로 상하고
夜雨聞鈴腸斷聲 (야우문령장단성) 밤비 속에 들리는 단장의 말방울 소리
天旋地轉回龍馭 (천선지전회룡어) 천하 정세 변하여 황제 돌아오는 길에
到此躊躇不能去 (도차주저부능거) 마외역에 이르러는 걸음 뗄 수 없었네
馬嵬坡下泥土中 (마외파하니토중) 양귀비 쓰러져 죽은 진흙더미 속에는
不見玉顔空死處 (부견옥안공사처) 고운 얼굴 어디 가고 죽은 자리만 남아
君臣相顧盡沾衣 (군신상고진첨의) 황제 신하 서로 보며 눈물 옷깃 적시네

東望都門信馬歸 (동망도문신마귀) 동쪽 도성문 향해 말에 길을 맡겨 가니
歸來池苑皆依舊 (귀내지원개의구) 돌아와 본 황궁의 정원은 변함없어
太液芙蓉未央柳 (태액부용미앙류) 태액지의 부용도 미양궁의 버들도
芙蓉如面柳如眉 (부용여면류여미) 부용은 양귀비 얼굴 버들은 눈썹
對此如何不淚垂 (대차여하불루수) 이들을 대하고 어이 아니 눈물지리니
春風桃李花開日 (춘풍도리화개일) 봄바람에 복숭아며 살구꽃이 만발하고
秋雨梧桐葉落時 (추우오동엽낙시) 가을비에 젖어 오동잎이 떨어져도
西宮南內多秋草 (서궁남내다추초)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 우거지고
落葉滿階紅不掃 (낙섭만계홍부소) 낙엽이 섬돌을 덮어도 쓸어낼 사람 없네.
梨園子弟白發新 (이원자제백발신) 이원의 자제들은 백발이 성성하고
椒房阿監靑娥老 (초방아감청아노) 양귀비 시중들던 시녀들도 늙었네.
夕殿螢飛思초然 (석전형비사초연) 반딧불 나는 저녁 궁궐 더욱 처량하여
孤燈挑盡未成眠 (고등도진미성면) 등불 심지 다 타도록 외로이 잠 못 드니
遲遲鍾鼓初長夜 (지지종고초장야) 더딘 종과 북소리에 밤이 긺을 알았네
耿耿星河欲曙天 (경경성하욕서천) 은하수 반짝이며 새벽은 다가오고
鴛鴦瓦冷霜華重 (원앙와냉상화중) 원앙 같은 기와에 서리꽃이 무거운데
翡翠衾寒誰與共 (비취금한수여공) 함께 덮을 이 없어 싸늘한 비취금침
悠悠生死別經年 (유유생사별경년) 생사를 달리한 지 아득하니 몇 년인가
魂魄不曾來入夢 (혼백부증내입몽) 꿈에서도 혼백마저 만나볼 수 없었네.
臨공道士鴻都客 (임공도사홍도객) 임공의 도사가 도성에서 머무는데
能以精誠致魂魄 (능이정성치혼백)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올 수 있다하니
爲感君王輾轉思 (위감군왕전전사) 양귀비 그려 잠 못 드는 황제를 위해
遂敎方士殷勤覓 (수교방사은근멱) 방사시켜 양귀비 혼백 찾게 하였네.
排空馭氣奔如電 (배공어기분여전) 허공을 가르고 번개처럼 내달아
升天入地求之遍 (승천입지구지편) 하늘 끝에서 땅 속까지 두루 찾아
上窮碧落下黃泉 (상궁벽낙하황천) 위로는 벽락 아래로는 황천까지
兩處茫茫皆不見 (양처망망개부견) 두 곳 모두 망망할 뿐 찾을 길이 없는데
忽聞海上有仙山 (홀문해상유선산) 홀연 들리는 소문 바다 위에 선산 있어
山在虛無표묘間 (산재허무표묘간) 그 산은 아득한 허공 먼 곳에 있고,

樓閣玲瓏五雲起 (누각영롱오운기)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구름이 일어
其中綽約多仙子 (기중작약다선자) 그 곳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사는데,
中有一人字玉眞 (중유일인자옥진) 그 중 옥진이라 하는 선녀 하나 있으니
雪膚花貌參差是 (설부화모삼차시) 흰 살결 고운 얼굴 그인 것 같다하네
金闕西廂叩玉경 (금궐서상고옥경) 황금 대궐 서쪽 방의 옥문을 두드리고
轉敎小玉報雙成 (전교소옥보쌍성) 소옥시켜 쌍성에게 알리도록 말 전하니
楣漢家天子使 (문도한가천자사) 한황제의 사자가 왔다는 말 전해 듣고
九華帳里夢魂驚 (구화장리몽혼경) 꿈에 깨어 놀라는 화려한 장막 안의 혼백
攬衣推枕起徘徊 (남의추침기배회) 옷을 들고 베개 밀고 일어나 서성이더니
珠箔銀屛이이開 (주박은병이이개) 구슬발과 은병풍 열리며 모습을 나타냈네.
雲빈半偏新睡覺 (운빈반편신수각) 구름머리 반 드리우고 방금 잠에 깬 듯
花冠不整下堂來 (화관부정하당내) 머리장식 안 고친 채 당에서 내려왔네.
風吹仙袂飄飄擧 (풍취선메표표거) 바람 부는 대로 소맷자락 나부끼니
猶似霓裳羽衣舞 (유사예상우의무) 예상우의 무를 추던 그 모습인 듯
玉容寂寞淚欄干 (옥용적막누난간) 옥 같은 얼굴 수심 젖어 눈물이 방울지니
梨花一枝春帶雨 (이화일지춘대우) 활짝 핀 배꽃 한 가지 봄비에 젖은 듯
含情凝제謝君王 (함정응제사군왕) 정어린 눈길 돌려 황제에 전할 말을 하니
一別音容兩渺茫 (일별음용량묘망) "헤어진 뒤 옥음, 용안 듣고 뵙지 못하여
昭陽殿里恩愛絶 (소양전리은애절) 소양전에서 받던 은총도 끊어지고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중일월장) 봉래궁에서 보낸 세월이 오래건만
回頭下望人환處 (회두하망인환처) 머리 돌려 저 아래 인간세상 보아도
不見長安見塵霧 (부견장안견진무) 장안은 보이지 않고 짙은 안개와 먼지 뿐
唯將舊物表深情 (유장구물표심정) 오래 지닌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니
鈿合金釵寄將去 (전합금채기장거) 자개 상자와 금비녀를 가지고 가라하네
釵留一股合一扇 (채류일고합일선) 비녀는 반쪽씩 상자는 한 쪽씩
釵擘黃金合分鈿 (채벽황금합분전) 황금 비녀 토막 내고 자개 상자 나눴으니
但敎心似金鈿堅 (단교심사금전견) 두 마음 이처럼 굳고 변치 않는다면
天上人間會相見 (천상인간회상견) 천상에든 세상에든 다시 보게 되리라네
臨別殷勤重寄詞 (임별은근중기사)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이

詞中有誓兩心知 (사중유서양심지)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칠월 칠일 장생전에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백거이(白居易, 772~846) 중국 중당기(中唐期)의 시인으로서 자는 낙천(樂天)이며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이다. 본적은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이며 뤄양(洛陽) 부근의 신정(新鄭) 출생이다. 이백(李白)이 죽은 지 10, 두보(杜甫)가 죽은 지 2년 후에 태어났으며, 같은 시대의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병칭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 때부터 시짓는 법을 배웠으며 15세가 지나자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시재를 보였다. 대대로 가난한 관리 집안에 태어났으나, 80029세로 진사(進士)에 급제하였고 32세에 황제의 친시(親試)에 합격하였으며, 그 무렵에 지은 <장한가(長恨歌)>는 유명하다.

80736세로 한림학사가 되었고, 이듬해에 좌습유(左拾遺)가 되어 유교적 이상주의의 입장에서 정치 <사회의 결함을 비판하는 일군의 작품을 계속 써냈다. <신악부(新樂府) 50>(805)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81140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에 어린 딸마저 잃자 인생에 있어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불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814년 태자 좌찬선태부(左贊善太夫)에 임용되었으나, 이듬해에 일찍이 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시가의 대상이 되었던 고급관료들의 반감을 사서 주장(九江)의 사마(司馬)로 좌천되었다. 그 곳에서 인생에 대한 회의와 문학에 대한 반성을 거쳐 명시 <비파행(琵琶行)>(816)을 지었다. 818년 중저우자사(忠州刺史)가 되었으며, 임기를 마치고 장안(長安)에 돌아오자 820년 헌종(憲宗)이 죽고 목종(穆宗)이 즉위하자 백거이는 낭중(郎中)이 되어 중앙으로 복귀했고, 이어 중서사인(中書舍人)의 직책에 올라 조칙(詔勅) 제작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는 이같은 천자의 배려에 감격하여 국가의 이념을 천명하는 데 진력했다.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를 피하기 위하여 822년 자진해서 항저우자사(杭州刺史)가 되었다. 항저우의 아름다운 풍광(風光)에 촉발되어 시작(詩作)은 계속되었고, 문학적 지기(知己)로서 트고 지내던 원진(元拂)과 만나게 되어 그것을 계기로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50, 824)을 편집하였다. 825년 쑤저우자사(蘇州刺史)로 전임하였으나 827년에는 중앙으로 불리어 비서감(秘書監)에 임명되었다.

82958세가 되던 해 뤄양에 영주하기로 결심, 허난부(河南府)의 장관이 되었던 때도 있었으나 대개 태자보도관(太子補導官)이라는 명목만의 직책에 자족하면서 시와 술과 거문고를 삼우(三友)로 삼아 취음선생이란 호를 쓰며 유유자적하는 나날을 보냈다. 831년 원진 등 옛친구들이 세상을 떠나자 인생의 황혼을 의식하고 뤄양 교외의 룽먼(龍門)의 여러 절을 자주 찾았고 그 곳 향산사(香山寺)를 보수 복원하여 향산거사라는 호를 쓰며 불교로 기울어졌다. 이에, 문학에 대한 충동도 번뇌로 보여서 참회하는 입장에서 광언기어(狂言綺語)’의 문집인 <유백창화집(劉白唱和集)> 5, <백씨문집(白氏文集)> 60권을, 다시 65, 67권을 834839년에 걸쳐 마음의 증표로서 연고 있는 사찰에 봉납하였다. 84271세 때 형부상서(刑部尙書)의 대우로 퇴직하였는데, <백씨문집>70권에 이르렀다. 그 뒤로도 광영(狂詠)’은 계속되었고 정부의 불교탄압정책을 풍자하는 작품을 통해서 자기 시대의 종말을 예감하고 인생의 마무리로서 75권의 전집을 편정(編定), 그것이 완성된 이듬해 그 생애를 마쳤다. 이 밖에 시문(詩文)을 짓는 편의를 위해서 고사성어를 모은 <백씨육첩사류집(白氏六帖事類集)> 30권도 있다.

한편, 그가 지은 작품의 수는 대략 3,840편이라고 하는데, 문학 작가와 작품의 수가 크게 증가한 중당시대라 하더라도 이같이 많은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그의 작품은 형식이 다양하여 고체시(古體詩)금체시(今體詩율시)악부(樂府)가행(歌行)()의 시가에서부터, 지명(誌銘)제문(祭文)()()()()제고(制誥)조칙주장(奏狀)()()서간(書簡)의 산문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학형식을 망라했다. 그 긴 생애 동안에 그의 문학은 자주 변모하였다. , 젊은 날의 낭만주의적인 경향은 지적인 빛을 띠며 이상주의적 입장으로 옮겨갔고, 문학의 존재의의를 주장하며 정치와 사회를 비판하다가 이윽고 정치나 사회 가운데서 개인을 발견하여 자기의 내면을 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다시 개인에 비추어 널리 인간의 생활 자세를 추구하여 인생의 지혜를 표상하는 문학을 지향하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정형(定型)의 한계적 조건하에서 언어의 온갖 기능을 다 구사하는 창화(唱和)’라는 새로운 형태의 창조에 힘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항상 그 속에 일관하고 있던 것은, 문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며 생활의식이나 생활감정이 뒷밤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이었다. 따라서 제재는 경험적이고 언어는 일상성을 띠며, 발상은 심리의 자연에 따르고, 구성은 논리의 필연에 따르며, 주제는 보편적이어서 유려평이(流麗平易)’한 문학의 폭을 넓혀 당() 일대(一代)를 통하여 두드러진 개성을 형성하였다.

그의 생존시에 이미 그의 시는 민중 속에 파고들어, 소치는 아이나 말몰이꾼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리고, 배나 절의 기둥이나 벽에 써 붙여지기도 하였으며, 멀리 외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는 한국에도 일찍부터 전해져 널리 애송되었다. 현재 전하는 것은 <백씨장경집> 75권 가운데 71권이 있고, <백향산시집> 40권도 있다. 현존하는 작품수는 3,800여 수이고, 그 중에서 <비파행> <장한가> <유오진사시(遊悟眞寺詩)>는 불멸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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