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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雜事) /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진현종)

작성자김인선|작성시간13.10.20|조회수151 목록 댓글 0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雜事)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는 모두 40권으로 되어 있으며, 당나라의 학승 의정(義淨)이 한역했다. 의정은 어려서 출가하여 법현과 현장 스님처럼 직접 인도에 가서 불법을 구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27세에 해로로 인도에 가서 30여국을 돌아다녔고, 나란타사에서 대·소승을 연구하다 20여 년 만에 귀국했다. 그 후 줄곧 역경사업에 종사해 「화엄경」 등 56부, 230권을 번역했는데, 주로 율부에 속하는 것이 많았다고 한다. 의정의 주요저서로는 「남해기귀내법전」과 「대당서역구법고승전」이 있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는 다른 율전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극히 말단적인 계율조목들을 열거하고, 그 제정 동기와 그것을 잘 지킨 불제자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특히 이 율의 제35권 후반부터 제40권까지는 부처님의 내력과 불멸 후 비구들이 모여 경·율·론 삼장을 정리한 두 차례의 결집과 정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는 아주 지말적인 몇몇 계율의 제정 동기와 삼장의 결집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이 율의 제15권에는 뱀을 끈으로 묶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이 나온다. 한 번은 뱀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정사 안으로 들어온 일이 있었는데, 이를 발견한 비구들이 뱀을 끈으로 묶어 내다버렸다. 이에 부처님은 뱀을 만나면 손가락을 저으면서 "어진이여,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거라" 하고 말하되, 그래도 가지 않으면 바람이 잘 통하는 단지에 담아서 밖으로 가지고 나가 평평한 땅에 놓아주고 다른 짐승들에게 잡아먹히지 않는가를 살펴주고, 뱀이 제 굴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아야 한다고 했다.

 

제18권에서는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현대의 불교도들도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이 들어 있으므로 여기에서 언급해보자. 누구나 알고 있듯이 비구들의 기본적인 장례법은 화장이다. 그러나 이 율을 보면 나무가 없어서 화장하기 어려우면 강에다 던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수장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매장을 해도 된다고 말한다. 단 여름철에는 땅을 잘못 파다가 그 속에 있는 벌레들을 죽일 수도 있으므로 깊은 산 속에 시신을 안치하고 풀잎으로 가리워도 된다고 한다. 이것은 도교식의 풍장(風葬)과 비슷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시신을 처리할 때는 반드시 부처님이 모든 것이 덧없다고 설법한 내용이 들어 있는 「삼계무상경」을 외워야 한다는 말이 덧붙여져 있다.

 

제34권에서는 비구들이 석장이라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게 된 유래와 신도들의 초대를 받았을 때의 예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비구들이 석장을 가지고 다니게 된 연유는 이러하다고 한다.

 

어떤 비구가 인기척도 내지 않고 한 장자의 집에 들어가다가 여주인과 마주쳐 망신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 후 그 비구는 헛기침 소리를 내면서 들어갔는데, 장자는 그 소리를 달가와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을 두들겼더니 문 부셔진다고 소리쳤다. 그래서 손잡이 쪽에 고리가 달린 지팡이, 즉 석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고 한다. 그리고 비구들이 신도의 초청을 받고 갈 때는 반드시 모여서 한꺼번에 들어갈 것이며, 음식을 먹을 때 소리를 내지 말 것이며, 음식 대접을 받은 다음에는 반드시 설법을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제39권에는 제1결집에 관한 이야기가 보인다. 제1결집에는 500명의 비구들이 참석했다고 해서 흔히 오백결집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제1결집에 모인 불제자들 중에서 아난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아라한의 경지에 든 비구들이었다. 이에 제1결집을 주관했던 가섭은 아난이 아직 아라한이 아닌 점과 부처님 재세시 시중을 들며 몇 가지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불허했다. 가섭이 지적한 아난의 잘못이란 부처님에게 졸라서 여자들이 교단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도록 해서 불법이 오래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과, 부처님이 열반 예언을 하기 전에 1겁의 세월 동안 세상에 머무시라고 부탁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었다. 아난은 할 수 없이 더 수도해서 아라한의 경지에 든 다음에야 제1결집에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집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먼저 항상 부처님의 곁에서 시중을 들어왔던 아난이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들을 상대로 부처님이 설법하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나서, 그때 들은 부처님 말을 암송했다. 그러면 나머지 비구들이 그 내용이 부처님이 말한 것과 맞는지 안 맞는지 일일이 따져보고 나서 경으로 확정했다. 이렇게 해서 정리된 것이 바로 경장이다.

 

다음으로 부처님 재세시 계율을 가장 잘 지키기로 유명했던 우파리 존자가 부처님이 그때그때 제정한 계율을 암송했고, 경을 취급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율을 확정지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율장이다.

 

끝으로 가섭은 후세로 갈수록 사람들이 경과 율의 글귀에만 매달려 그 깊은 이치를 모를 수도 있다고 하면서 직접 경과 율을 설명한 논의 내용을 암송하고 정확성 여부를 결정했는데, 이것은 논장이다. 이렇게 해서 경·율·론 삼장이 집성된 것이다.

 

제40권에서는 제2차결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제2차결집이 있기 전까지 교단이 유지되어온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섭은 아난에게 교단을 넘겨주었고, 그후 사약가, 우파굽다 등의 여러 대를 걸쳐서 불멸 후 110년이 되던 해 제2결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모임에는 700명의 비구가 참석했기 때문에 일명 칠백결집이라고도 한다.

 

제2결집의 계기는 일단의 비구들이 종래의 계율과는 맞지 않는 열 가지 조항(十事)을 들고 와서 그것이 부처님이 정해놓은 계율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일이다. 그들의 주장은 몇몇 비구들이 따로 모여 신입 비구를 받아들이거나 포살법회를 한 후에 대중 앞에서 참회를 하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 개별적으로 소금을 갖고 있다가 약으로 써도 된다는 것, 병의 치료를 위해서라면 약간의 술을 물에 타 마셔도 괜찮다는 것, 정오가 지나도 우유를 마시는 것은 허용된다는 것 등이었다.

 

이 율에 따르면 명칭이라는 비구가 모임을 열고 그 주장들을 조목조목 따져 가면서 불교 계율에 어긋난다는 판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이 판정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 두 파로 나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근본분열이라고 일컫는 것으로 보수적인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중부로의 분열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雜事]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2007.6.10,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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