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임진왜란 시대적 배경
당시 조선은 정치와 경제면에서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계속된 당쟁으로 인해 정치기강은 해이해지고 전제와 세제의 문란 등 여러 폐단이 나타나고 있었다. 중앙에서의 당쟁은 지방으로까지 번져 국내 정치는 불안정했고 부당한 관리임명에 따른 시정의 문란으로 조정을 향한 백성들의 민심은 떠나 있었다. 이와 같은 조정의 무능과 부패로 군사적 방비 또한 매우 허술한 상태였다.
한편 일본은 전국시대의 혼란기를 지난 1590년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졌다. 풍신수길은 일본의 통일사업을 추진하면서 중앙의 권력 강화를 위해 봉건적 지배집단인 다이묘(大名)들의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였다. 그리하여 자국내 세력간의 불화와 소모적 충돌을 대외적 방향으로 전환, 응축시키기 위해 명나라를 정벌하려는 해외원정사업을 계획하고 “명에 쳐들어갈 길을 빌리겠다.”(假道立明)는 명목으로 조선을 침략하게 된다. 이에 앞서 일본으로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들은 일본의 조선 침략 가능성에 대해 엇갈린 견해를 내놓았고 당쟁으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어 있어 적절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1592년 4월 13일 일본은 조선 침공에 동원된 총병력 28만 중16만의 병력을 출동시켜 조선을 침략한다. 200여 년 동안 외침 없이 평화로움에 젖어 있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던 조선군은 치밀한 준비기간을 거쳐 조총이라는 신식무기로 무장한 수많은 병사를 앞세워 돌진하는 일본군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조선 관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왜군에게 번번이 패했으며 왜군은 별 어려움 없이 북진을 계속하였다. 4월 30일 새벽 선조와 세자 광해군은 평양으로 피난 가고, 일본은 부산에 상륙한지 18일 만인 5월 2일 수도 서울(한양)을 함락하였다. 계속되는 일본의 북진과 아군의 연이은 패배로 조정은 평양사수를 포기하고 다시 의주로 향하고 백성들은 조정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개하였다. 그리하여 일본군의 부산 상륙 후 채 두 달도 못 되어 전 국토가 일본군에 유린되는 위기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