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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야기

박영효(朴泳孝, 1861년~1939년)

작성자管韻|작성시간19.04.15|조회수378 목록 댓글 0


박영효(朴泳孝, 1861~1939)

 

 

 

 

 

 

 

 

조선의 정치가이자 갑신정변의 주역 그리고 개화파 인물. 조선의 마지막 부마. 1884년 김옥균, 홍영식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망명하였고 그 이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하게 되었다. 경기도 수원시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춘고 또는 현현거사이다.

 

처음으로 태극기를 정식으로 사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할 때, 김홍집의 명에 의해 역관 이응준이 사괘를 바탕으로 약식으로 만들었고, 1년 후 바로 이 박영효가 3차 수신사로 파견되면서 정식 사용했다.

 

 

 

2. 생애

 

 

1861년 수원에서 진사 출신의 가문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초명은 무량이었다가 후에 영효로 개명하였다.

 

12세 때 조선 25대 왕 철종과 후궁 숙의 범씨 사이에서 태어난 왕녀인 영혜옹주와 어린 나이에 결혼해 금릉위에 봉해졌으나, 3달 만에 영혜옹주가 사망하면서 혼자 몸이 되었다. 부마는 재혼을 못 하는 것이 법도였으므로 평생 홀아비 인생을 12살 나이에 예약한 셈. 이를 딱하게 여긴 고종(조선)이 궁녀를 하사해 첩으로 삼도록 하였다고도 한다. 그 뒤 여러 번 첩을 들였지만 불화설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어쨌든 이 때문에 자식들을 여럿 두었고, 박영효의 2남의 딸이 이우의 부인 박찬주다.

 

하지만 박영효의 아들은 전부 그보다 먼저 사망했다. 그래서 박영효가 친일 부역을 해서 받은 후작 작위를 계승한 것도 그의 손자(, 차남의 아들) 박찬범이다.

 

1881년 의금부 판의금부사로 임명되었고 1882년 한성 판윤에 임명되었는데 이 당시 개화 사상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처음으로 김옥균과 관계를 맺었고 일본 세력을 이용하여 청나라의 내정 간섭을 방지하는데 주력했다. 임오군란 이후 1882883차 수신사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선진 문명이 발달해 있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급진 개화파에 참여했으나 온건 개화파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고 1884년 갑신정변을 통해서 우정국 연회에 참석한 민씨 일가 사람인 민영익에게 중상을 입히는 정권 탈취를 시도하였다. 그 후 갑신정변 주동자로 지목되어 김옥균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주동자 중 한 명이었던 형 박영교는 청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전제 정치 하에서 이들의 행위는 명백히 반역으로 인식되었고, 집안에서 역적이 나올 시 심한 경우에는 그런 사람의 이름을 아예 족보에서 빼버리거나 항렬자를 바꾸기도 했는데 갑신정변 주동자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김옥균(안동 김씨)'()'자 항렬은 '()', 홍영식(남양 홍씨)'()'자 항렬은 '()', 그리고 서광범(대구 서씨)'()'자 항렬은 '()'으로, 서재필(대구 서씨)'()'자 항렬은 '()'으로 각각 바뀌게 된다.

 

그래서 한동안 박영효의 집안 반남 박씨에서도 '()''()'으로 바꾸었다는 근거없는 풍문이 돌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박영효는 반남 박씨 중 오창공파로 다른 반남 박씨 파와 다르게 오창공파는 원래 항렬자가 ''이 아니라 ''을 썼으며, 갑신정변 이후에도 '' 자 항렬을 썼다. 무엇보다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60년 전에 출간 된 반남 박씨 족보 을유보(乙酉譜, 1825년 발행)에 이미 '()'자 항렬이 정해져 적혀 있었다.

 

3. 1차 망명

 

 

일본에서 망명하면서 수차례 자객에게 살해당할 위협에 시달린다. 그 와중에 같은 망명자 김옥균과는 사이가 나빠져서 "옥균이 쟤가 갑신정변에 뭐 한거 있나? 나랑 홍영식이 다 했지..."라고 디스를 날리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부터 일본에 자리를 잡아서 나름 인기를 누리며 잘 살던 김옥균과는 달리 서재필, 서광범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가, 김옥균처럼 그들보다 미국 환경에 적응을 못하였고 다시 일본으로 귀국하였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본인 주장에 따르면 꽤 금욕적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초기 개화파에게 영향을 준 인물인 오쿠무라 엔신의 여동생 오쿠무라 이오코와 얽히는 관계로 어떤 소설에서는 옳다꾸나 하고 야설을 써놨지만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근거는 없다. 이 때 이름을 야마자키 에이하루(山岐永春)로 창씨개명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4. 조선 귀국, 그리고 2차 망명

 

 

1894년 갑오개혁으로 사면되어 일본의 의도에 따라서 조선으로 귀국한다. 이후 대표적인 친일 인사로 분류되면서 2차 김홍집 - 박영효 연립 내각을 구성하였으며, 같은 급진 개화파 동지인 서광범과 협력해서 김홍집을 바지 사장 수준으로 내려버리는 등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 하지만 삼국간섭 이후 정국 주도권을 상실하였고, 당시 친러 정책으로 가던 내각의 흐름을 친일 내각으로 되돌리고자 왕비 암살을 모의하다가 걸린다(...)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이 사건이 유길준이 밀고했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아무튼 이에 일본으로 2차 망명을 간다. 심지어 그런 후에 을미사변의 배후 조종 혐의까지 받았다. 뭐 일본 사람들에게 우범선을 쓸만하다고 추천했다거나 하는 정황이 포착되지만 정말 '명성황후를 죽이자고' 가담했는지는 알 수 없고...아무튼 이 일로 고종황제의 원한을 단단히 산다. 심지어 이후 조직된 독립협회의 중추원에서 박영효를 의원이나 심지어 대통령으로 추대한다는 얘기까지 나왔을 정도. 1900년에는 윤치호 등과 연통해서 쿠데타를 일으켜서 고종을 몰아내고 의화군을 추대하려는 시도를 벌이기도 하였으나 밀정을 조선으로 보냈던 것이 들통나면서 궐석 재판에서 교수형이 선고되는 등, 황실과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는 듯 했으나.....

 

그 이후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 때문에 일본 정부에게서 고종황제가 퇴위당한 뒤, 순종황제의 즉위 시기에 몰래 밀입국하였고, 그 상황에서 먼 친척뻘인 박제순이나 일본 고문 가토 등과 연통해서 자신에 대한 사면 여론을 조성해서 사면령을 받아내고는 정식으로 귀국한 것처럼 행세했다.

 

5. 유배, 경술국치

 

 

이후로 을사조약의 주범인 이완용 내각의 궁내부 대신으로 들어갔으나 고종황제의 양위에 개입한 대신들을 암살 미수한 혐의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이후 유배가 해제되었으나 서울 상경은 금지되어 있었는데, 이때도 다시 자신의 특기를 살려서 몰래 상륙을 하려다가 실패하였고, 결국 경술국치를 경남 마산에서 맞이한다.

 

 

6. 일제 강점기 행보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으며 1918년 조선 식산은행 이사에 취임하였다.

 

19193월 대한 국민 의회의 부통령으로 부임하였다.

 

19204월 동아일보 창간과 함께 초대 사장이 되었으나 그 해 평양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소요 사건을 동아일보가 게재했다는 이유로 조선총독부로부터 정간 조치를 당하자 사임하였고 1926년에 총독부의 자문격인 중추원 의장이 되었다.

 

1922년에는 경희궁 내 전각인 황학정을 철거해 등과정 터로 옮기는 데 앞장섰다.

 

1932년 일본 귀족원으로부터 의원직을 맡아 귀족원 의원이 되었고(최초이나 의미는 없다.) 같은 해 조선방송협회 초대 부총재도 맡았다. 1939년 중추원 부의장이 되었다가 그 해 임기 중에 노환으로 죽었다. 향년 78. 작위는 손자 박찬범이 계승했다. 죽은 뒤 고작 3개월 동안 부부였으나 평생 정실 부인이었던 영혜옹주의 곁에 묻혔는데, 후에 후손들이 화장하였다고 한다.

 

 

7. 이야깃거리

 

 

1962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독립 유공자 서훈 및 훈장 포상자 대상으로 지정되기도 하였으나 애국 단체 등에서 후반에 친일 행적 등을 문제삼았고 역사 고증에서도 친일 행위가 드러나면서 서훈 및 훈장 포상자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친일인명사전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중 이름이 올려지기도 하였고 친일 반민족 행위자 704인 명단에도 당연히 포함되었다.

 

 

 

서울 남산골한옥마을에 박영효의 가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각에서는 박영효의 친일 행각 등을 거론하며 친일파 가옥 철거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설민석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박영효는 친일파인가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는데 그 학생이 박영효의 고손녀였다고 한다(...) 학생이 상처받을까봐 별말 없이 학습 상담을 해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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