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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야기

보루각자격루(報漏閣自擊漏) 10-2

작성자김인선|작성시간13.11.04|조회수95 목록 댓글 1

 

보루각자격루(報漏閣自擊漏) 10-2

 

 

 

 

▷ 보루각자격루(報漏閣自擊漏) / 국보 제229호 ☞ 물시계는 물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서,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표준 시계로 사용하였다. 조선 세종 16년(1434) 장영실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종과 징ㆍ북이 저절로 울리도록 한 물시계가 처음 제작되었으나, 오래 사용되지는 못하였고, 중종 31년(1536)에 다시 제작한 자격루의 일부가 현재 남아 있다.

 

  

 

물시계의 원리를 보면, 맨 위에 있는 큰 물그릇에 넉넉히 물을 부어주면 그 물이 아래의 작은 그릇을 거쳐, 제일 아래쪽 길고 높은 물받이 통에 흘러든다.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떠 있는 잣대가 점점 올라가 미리 정해진 눈금에 닿으며, 그곳에 장치해 놓은 지렛대 장치를 건드려 그 끝의 쇠 구슬을 구멍 속에 굴려 넣어준다. 이 쇠구슬은 다른 쇠구슬을 굴려주고 그것들이 차례로 미리 꾸며놓은 여러 공이를 건드려 종과 징ㆍ북을 울리기도 하고, 또는 나무로 만든 인형이 나타나 시각을 알려주는 팻말을 들어 보이기도 한다. 지금 남아 있는 물시계는 쇠구슬이 굴러 조화를 이루던 부분이 없어진 채, 물통 부분들만 남아 있다.

 

 

청동으로 된 큰 물그릇은 지름 93.5㎝, 높이 70.0㎝이며, 작은 물그릇은 지름 46.0㎝, 높이 40.5㎝이다. 작은 물그릇이 놓였던 돌 받침대는 지금 창경궁 명정전 뒤에 2개가 남아 있다. 현재 중국 광동에 남아 있는 명나라의 물시계보다 조금 늦게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규모가 크고 만듦새가 훌륭하여 매우 귀중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자격루(복원)

 

 

 

 

 

조선시대 왕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각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주로 해시계와 물시계를 이용하였는데 특히 물시계는 물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기 때문에 24시간 작동이 가능하였다. 조선 세종 때 삼국시대부터 이용하던 물시계의 시각 알림 장치를 자동화하고 ‘스스로 치는 시계’라는 뜻인 자격루를 제작하였다. 세종 임금의 명으로 장영실이 완성하였으며, 1434년 경회루 남쪽 보루각報漏閣이라는 전각에 설치하여 국가의 표준시계로 삼았다. 이 시계는 도성의 성문을 열고 닫는 인정人定(통행금지 시각, 밤 10시경)과 파루罷漏(통금해제 시각, 새벽 4시경), 오정午正(낮 12시)을 알려주는 데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양 사람들에게 아침·점심·저녁 때를 알려 주어 생활의 리듬을 잡아 주는 등 조선시대 사람들의 표준 시계가 되었다.

 

자격루가 울리는 시각

 

자격루의 시간을 알리는 장치는 하루 동안 2시간에 한번씩 시각을 알리는 종과, 밤 동안 시각을 알리는 북과 징으로 구성됩니다. 조선시대에는 하루를 자시(子時: 밤 11시~새벽 1시)로 시작하여 해시(亥時: 밤 9시~11시)로 끝나는 시간 체계로 구분하였고 매시마다 자격루의 종을 울렸습니다. 야간에는 해지는 시각부터 해뜨는 시각(하지 때 19시 48분~03시 52분 경)까지를 하루 밤으로 설정한 후 하루 밤을 다섯 등분하여 이를 ‘경’ 이라 부르고 북으로 알렸으며 1경을 다시 다섯 등분하여 ‘점’ 이라 부르고 징으로 알렸습니다. 밤의 길이는 계절에 따라 변화하므로 경과 점의 시각 역시 달라졌습니다. 지금 자격루의 시각은 사시(巳時: 오전 9시~11시)부터 시작하여 유시(酉時: 오후 5시~7시)까지로 맞추어 놓았고, 밤에만 울렸던 북과 징을 관람객들이 들을 수 있게 하지를 기준으로 삼아 14시간을 앞당겨 놓았습니다. 약 600년 전에 제작된 물의 힘으로 움직이는 시계를 복원한 것이므로, 현대의 시계와 비교하여 1~3분 오차가 발생함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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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인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1.04 당시의 보루각은 경회루 남쪽에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의 경회루는 고종때 다시 지은 건물로 그 정확한 위치를 알기 어려우며 복원된 자격루의 크기로 보아 보루각은 복층규모의 상당히 큰 건물로 사료 되지만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므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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