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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야기

03-26 태종(太宗)과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 헌릉(獻陵) 이야기 08-3

작성자김인선|작성시간13.11.04|조회수35 목록 댓글 0

 

03-26 헌릉(獻陵) 이야기

 

 

 

 

 

 

 

헌릉은 조선 제3대 태종(1400∼1418 재위)과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의 무덤이고, 인릉은 제23대 순조(1800∼1834 재위)와 순원왕후 김씨의 무덤이다.

 

헌릉에 모셔진 태종은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다섯 번째 아들로서 고려 공민왕(恭愍王) 16년(1367) 함흥부 후주(厚州)에서 탄생하였으며 휘(諱)가 방원(芳遠)이고 자(字)가 유덕(遺德)이며 어머니는 신의고황후 한씨(神懿高皇后 韓氏)이다. 조준(趙浚), 정도전(鄭道傳), 남은(南誾) 등과 함께 아버지인 이성계를 추대하여 1392년 7월 조선왕조를 개국하는데 공이 컸다.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1차·2차 왕자의 난을 주도적으로 평정하며 실권을 장악하고, 정종 2년 왕위를 넘겨받아 개성의 수창궁(壽昌宮)에서 등극하였다.

 

태종은 토지와 조세제도ㆍ군사제도를 비롯하여 숭유억불책 등을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제를 확립함으로써 건국 초기의 왕정과 민생의 안정을 이룩하였다. 태종 18년(1418)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세종 4년(1422) 5월 10일 연화방(蓮花坊) 신궁(新宮)에서 돌아가시니 춘추 56세였다. 이 해 9월 묘호(廟號)를 태종, 능의 이름을 헌릉이라 하고, 9월 광주부(廣州府) 대모산(大母山) 원경왕후 민씨의 헌릉 서쪽 언덕에 예장(禮葬)하였다.

 

태종의 비 원경왕후 민씨(1366∼1420)는 본관이 여흥(驪興)이고 여흥부원군 민제(閔霽)의 딸로서 공민왕 14년(1366) 개성 철동(鐵洞)에서 탄생하였으며 어머니는 삼한국대부인 송씨(三韓國大夫人 宋氏)이다. 고려 우왕(禑王) 8년(1383) 태종에게 출가한 후, 태종의 즉위에 내조가 컸다. 태종이 즉위함에 정비(靜妃)로, 세종 즉위년(1418) 후덕왕대비(厚德王大妃)라 올려 부르게 되었으며, 태종에 앞서 세종 2년(1420) 7월 10일 수강궁 별전(壽康宮 別殿)에서 승하하니 춘추 56세였고 소생은 4남 4녀가 있다. 이 해 8월 능의 이름을 헌릉이라 하고 9월 광주 고을의 대모산 아래 언덕에 예장(禮葬)하였다.

 

헌릉은 같은 언덕에 무덤을 달리한 쌍릉으로 두 무덤 모두 아래 부분을 병풍석(屛風石)을 둘러 세웠으며, 그 밖으로 각 무덤에 12간의 난간석으로 서로 연결하였다. 양석(羊石)과 호석(虎石) 각 4쌍, 상석(床石) 2좌, 망주석(望柱石) 1쌍을 3면의 곡장(曲墻)으로 감싸 안으며 무덤 위의 한 층이 이루어졌다. 그 아래로 한 단 낮추어 중간 층에는 문인석(文人石) 2쌍, 마석(馬石) 2쌍, 팔각형 명등석(明燈石) 2좌가 각 무덤에 설치되었고, 그 한 단 아래에 무인석(武人石), 마석 각 4좌가 아래 층을 이루고 있다. 헌릉의 석물은 고려시대 현릉·정릉(玄陵·正陵), 조선시대의 후릉(厚陵)과 같이 망주석 이외는 각각 하나씩을 더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무덤 언덕 아래에 정자각(丁字閣), 2기의 신도비가 있는 비각(碑閣), 그리고 입구에 홍살문(紅箭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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