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포도청 관직
조선시대의 포도청은 좌.우로 갈라진 양 쪽에 각각 포도대장(종2품) 1명씩 두었고 바로 그 아래에 종사관 3명을 비롯, 무료부장(無料部長) 27명, 가설부장(加設部長) 6명, 겸록부장(兼祿部長) 32명 그 아래 군관 70여명, 포도부장 4명, 포도군사 60여명, 서원(書員) 4명, 사령(使令) 3명 등을 두었으며 이러한 좌.우 포도청에서는 각기 여덟패로 나누어 각기 패장(牌將) 1명씩과 군사 60여명씩동원해서 담당구역을 순찰하였습니다.
포도대장(捕盜大將) - 포도대장은 한성부 및 경기도 등 수도권의 치안을 담당하여 범죄를 예방함과 동시에 이미 일어난 사건들의 범죄자를 추포하였던 포도청의 책임자로서 종2품의 무관직으로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에 각각 1명씩 있었으며 다른 무관직들과 달리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임 할 수 없는 직책이었습니다.
종사관(從事官) - 군사를 훈련시키는 "훈련도감" 에서 호위 임무를 담당한 금위영으로서, 도둑이나 범죄자들를 잡기 위한 좌 ,우 포도청 등에 배치한 종5 ~6 품의 무관입니다. 종사관은 각 기구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 및 전달하였으며 포도청 종사관의 경우 죄인이 진술 내용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현장 에 내려갔으며 이에 따르는 업무에 필요한 말이 지급되었습니다.
포도부장(捕盜部將) - 포도청에 각 1명을 두고 그 아래 무료부장 26명, 가설부장 12명을 두어 다스립니다.
무료부장 (無料部將) - 무료부장은 급료가 없는 부장(部將)으로서, 도적들을 비롯하여, 간악한 소인들을 체포함과 동시에 야간에는 여러편으로 나누어서 인적이 잣은 곳들을 수시로 순찰하는 임무를 맡아보던 관직입니다.
겸록부장 (兼祿部將) - 좌, 우 포도첟에 있는 군관직으로 숙종29년(1703), 한양의 근교에서 도적들이 자주 일어나 대낮에노략질을 하므로 내금위, 겸사복, 우림위 등에 소속된 12명을 특별히 좌우 포도청에 배치함으로써 강도들를 색출하여 체포하게 하였습니다
가설부장(加設部將). 겸포도(兼捕盜) - 일명 포도군관(捕盜軍官)으로서 포도부장을 수행 보좌하고 군사들를 감독하는 포도청의 중추적인 존재였는데요. 임기는 대개 1년이었고 근무기간 중에 근무평점(評點)인 "사도(仕到)"를 받고 다른 관직으로 진출하는 발판으로 삼던 직이기도 하였습니다
서원(書員) - 주로 문서작성·열자(列字)·회계·공사전달 등의 행정사무를 담당하였습니댜.
사령(使令) - 군관(軍官)과, 포교(捕校)의 밑에 있으면서 죄인에게 곤장을 치는 등, 하는 일이 여러 가지였으며 그 하는 일에 따라서 조례, 문졸, 일수, 나장, 군노등으로 달리 불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