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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 이야기

18세기의 프랑스

작성자管韻|작성시간19.07.16|조회수53 목록 댓글 0


18세기의 프랑스

 

 

 

 

 

 

 

 

유물론은 원래 배부른 지역에서 잘 발생함...배고픈 지역은 관념론으로... 1218세기의 프랑스프랑스에서의 18세기는 흔히 프랑스 계몽주의 시기라 불림.칸트는 계몽주의란 말을, 인간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굴종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자기 자신의 독립적 이성을 행사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그러나 18세기의 많은 프랑스 사상가들간에는 사상의 통일이 없다.피에르 베일(1647~1706), 몽테스키외(1679~1755), 볼테르(1694~1778),콩디약(1715~1708), 드니 디드로(1713~1784), 바룽 돌바크(1723~1789)장 자크 루소(1712~1778)프랑스 계몽주의다섯 가지 조류로 말할 수 있고 그것들의 대부분은 17세기에 발전한 사상들의 연장이다.1.재래의 풍습을 맹랑한 것으로 보고 이에 반항하는 기세가 있었고, 이 결과로 이성에 대한 호소가 있었다. 이 이성중시는 일부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에 연유한다. 그러나 그것은 두 사람의 영국 사상가 뉴턴과 로크에게서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이성에 대한 이 호소는 본래 맹랑한 권위층에 대항하여 사색인의 권리를 확보하려는 욕망에 기인하는 것이었다.2.감각주의로의 경향이 널리 퍼져있었다.데카르트는 금수는 무감정한 자동기계라고 가르쳤다. 볼테르는 금수와 인간을 갈라 본 데카르트의 구별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다.콩티약은 맨 처음의 단순 관념들은 사실을 따로따로 된 감각들이라고 하는 로크의 학설을 취하였고 또 다른 모든 심적 사실들이란 이 단순관념들과 이 관념들이 끌어내는 여러 가지 고통과 쾌락이 기계적으로 얽혀 결정짓는 복합관념들이라는 설을 발전시킴.3.프랑스 계몽주의의 감각주의적 및 관념 연합설적 이론들은 유물론, 심지어는 무신론적인 세계관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볼테르-이신론자(理神論者)로 만족, 무신론자는 싫어함, 세계의 제1원인 필요하다고 뉴턴과같은 생각디드로-무신론 열혈히 지지돌바크-유물론과 무신론을 극단적 형식으로 표현. 철학에 있어서 양자택일 한다면 철학은 미신과 유물론의 양자택일4.모든 조류의 배후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갈망이 있다. 이 시기는 기존제도를 비난하고 장래에 대한 소망이 부풀어 오른 낙관주의 시기였다.5.루소의 낭만주의는 가장 독창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 계몽주의의 가장 특기할만한 철학적 공헌이다.그는 온 인류에 대한 감상적 사랑을 품고 있었다.그는 유물론이 냉랭하다고 하여 싫어했고 또 무신론은 인격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하여 싫어했다.<사회계약론에서> 그가 한탄한 악을 없애는 개선책을 서술하였다.우리는 누구나 사회에 들어갈 때에는 엉뚱한 권위의 지배 밑이 아니라, 일반의지의 지배 밑에 자발적으로 들어간다.일반의지란 다수를 구성하는 투표자들의 수효가 아니라 그 투표자들에 의한 그 사회적 집단 전체의 공통 이익의 인정이다.일반 의지와 감정에 흐르기 쉬운 다수의 결정과의 관계는 마치 개인에 있어서의 도덕적 행위와 당돌한 충동과의 관계와 같다.루소는 하나님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고 믿었으며, 자연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이 하나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1775년에 리스본에서 지진이 났을 때 볼테르는 그 마음이 동요되었으나 루소는 그렇지 않았다.그가 일반 이신론자들과 달랐던 점은 종교적 신앙에 있어서 이성보다 감정을 더 신뢰하려고 한데에 있다.루소는 역사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철학에 있어서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그는 이성을 불신했던 까닭에 한 번도 진실 되고 신뢰할 만한 감정과 헛되고 공상적이고 혹은 악의에 찬 감정과를 구별하는 기준을 시사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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