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리선(Galley)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지중해의 지배자였던 범선의 한 종류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주로 사용했지만, 이집트나 페르시아에서도 유사한 배들을 사용했고 그 배들도 갤리라고 부른다.
노를 주로 쓰고 돛을 보조로 쓴다라고 국내 사전에는 나와있지만 실은 그 반대이다. 기본적으로 노를 젓는다는 건 상상 이상의 중노동으로서 일단 공원에서 요트 같은 걸 노로 저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생각보다 힘들다. 하물며 잔잔한 호수가 아닌 험한 파도와 조류가 지배하는 바다라면 더욱 더 말할 것이 없다. 기록상으로도 바람이 좋을 때는 돛을 이용하고 노는 보조로서 제아무리 몇 년씩 훈련받고 항해한 숙련된 노잡이라고 할지라도 노만으로 배를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실제 주력은 돛이라고 봐야한다. 더욱이 당시의 노 젓기법은 노잡이 개인이 각자 작은 노를 잡고 젓는 센실레(alla sensile) 방식이라 비숙련자는 노가 엉켜 대참사를 일으키기 쉬웠다.
때문에 당시 갤리선의 노잡이는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철저하게 자유민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드물게 노예들을 사용할 때도 자유민으로 신분을 상승시켜 주거나 약속 후 사용하였다. 물론 이는 노예들이 이뻐서 그런 게 아니라, 당시 갤리선의 노를 젓는 방식이 센실레 방식이라 노 젓다가 조금만 방심하면 노가 다 엉켜 난리법석이 일어나기에 사기를 올려 집중하고 노를 젓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이처럼 노잡이들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재산이나 병역이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던 고대 지중해의 아테네에서는 빈민층도 부유층과 대등한 정치적 권리를 가지는 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있었다. 본래는 최소한 중장보병 정도는 되어야 병역에 기여했음을 인정받아 어느 정도의 정치적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즉, 값비싼 중장보병의 무기와 갑옷을 마련하고 유지할 수 있는 재산이 있어야만 참정권을 가질수 있다. 그런데 아테네는 해군도 중시되었고, 그만한 활약과 공적을 보였다. 그래서 무기와 갑옷을 마련할 돈이 없어 해군의 노잡이로 병역에 참가하던 빈민층들도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약 1500년경을 기점으로 갤리선은 서서히 쇠퇴하게 된다.
콘스탄티노플과 로도스 섬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되면서 동지중해가 오스만 제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오스만 제국이 동방의 물산을 전부 통제하자 유럽 세력 입장에서는 지중해 무역의 가치가 떨어졌으며, 게다가 이슬람 해적의 존재 때문에 상선이 위협받기까지 했다. 때문에 유럽 세력은 대항하기 힘든 이슬람 세력보다는 새로운 미지의 땅을 향해 나가는 길을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스페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같은 신흥 해상 강대국의 등장으로 이제 바다의 패권을 다투는 무대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쪽으로 옮겨갔다.
문제는 갤리선이 대서양 같은 대양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갤리선은 특성상 범선에 비해 선체가 길쭉하고 직선형인데, 이렇게 되면 구조적으로 먼 바다의 강한 파도에 취약해진다. 대서양의 풍향은 지중해보다는 훨씬 예측가능했으며, 따라서 항해 계획을 잘 짜면 노 없이 돛만으로도 얼마든지 항해가 가능했다. 게다가 갤리선은 다수의 노잡이가 필요하기 때문에 필요인원이 많고, 인원이 많으니까 상대적으로 배의 체급에 비해 적재량이 떨어지는데, 범선은 노잡이가 필요없으니 필요인원이 갤리선보다 적을 뿐만 아니라 갤리선에 비해 대형화가 쉬운 구조라 적재량도 많고 경제성도 좋았다. 노가 해수면에 닿아야하기 때문에 선체를 높이는 것도 한계가 있었으며, 흘수가 낮아 파도가 높은 먼 바다의 경우 파도가 칠 때마다 흔들림이 심하고 갤리선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침수할 위험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복합돛이 등장하면서 범선도 불규칙한 바람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게 되며 갤리선의 역풍에 대응에 쉽다는 장점이 무색해졌다.
대포의 발달도 갤리선의 몰락을 앞당겼다. 범선은 양 선측에 다량의 대포를 적재할 수 있다. 자그마한 브릭 같은 범선도 20문 가까이 탑재할 수 있고, 전열함 같은 본격적인 주력전함은 보통 80문, 많게는 100문이 넘게 대포를 탑재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갤리선은 선측에 이미 노가 들어서 있기 때문에 대포를 적재하기 곤란했다. 판옥선이나 다른 범선처럼 여러 층의 갑판을 쌓고 대포 층과 노잡이 층을 분리하는 방법, 또는 베네치안 갤리어스처럼 갑판에 포탑을 증설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렇게 하자니 노 때문에 대포를 무조건 높은 층에만 배치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대포의 위치가 높으면 그 자체의 중량 때문에 무게중심 위치가 높아지고, 때문에 풍랑을 만나면 전복되기 쉬워진다. 게다가 대포를 좀 강한 걸 쓰다가는 대포 사격 반동과 파도가 합쳐져 배가 전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강한 대포일수록 대체적으로 무겁단 건 덤이다. 덕분에 갤리선은 대포를 별로 탑재하지 못하는데, 가장 커다란 베네치안 갤리어스조차 14문 정도밖에 탑재하지 못했을 정도다. 게다가 포격을 받고 노가 부서지면 갤리선의 기동성이 심각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불규칙한 바람의 도움을 받더라도 갤리선이 범선을 압도하기는 힘들어졌다.
무풍지대에서는 갤리선이 좋을 것 같지만, 무풍지대는 유럽 인근 해역과 지중해에선 발생하지 않는다. 무풍지대는 적도 주변과 북위/남위 30도 인근에서 발생하는데 남유럽인 스페인조차 북위 40도(마드리드 기준)에 있고, 북위 30도는 모로코 남부까지 내려가야 한다. 그나마도 서아프리카에서는 무풍지대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멕시코 인근 해안인 사르가소 해의 무풍지대가 유명하지만, 무풍'지대'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현상은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했기 때문에 그곳을 피해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따라서 애초에 그 지대로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으며, 무풍지대를 돌파하겠답시고 갤리선으로 사람이 노저어서 대서양을 건너는 무모한 생각은 그 당시에도 하지 않았다.
흔한 오해가 범선은 바람이 적당한 방향에서 불어주지 않으면 선회조차 못한다는 것인데 범선 운용에 기초 지식만 있으면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다. 무풍지대만 아니라면 어느방향에서 바람이 불든 간단히 선회가능하다. 속도로는 산들바람만 불어도 브릭같은 중형범선은 갤리선보다 훨씬 빠른 8노트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으며강한 바람이 불면 갤리선으로는 꿈도 못꾸는 20노트이상을 낼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속도를 내기 위해선 톱 세일이나 갤런트 세일은 물론 로얄 세일, 스카이 세일 등 여러종류의 돛을 장비해야 하므로 18세기 이후의 일이다. 때문에 1600년대까지는 지중해에서 갤리선이 혼용되기도 했다. 특히 영국 등 대서양 연안 국가들보다 항해기술이 부족한 바르바리 해적들은 17세기까지 갤리선을 널리 사용했지만, 이들도 18세기 이후에는 대부분 범선으로 바꾸게 된다.
스페인은 연안 방어용도로 갤리를 운영했고 다른 나라도 해안방어용도로 노를 쓰는 건보트를 운영한 적이 있지만, 연안방어에만 한정된 용도를 쓰느니 불편함을 감소하더라도 범선을 쓰는 게 나았고 애초에 연안방어의 주력은 해안포대였던 데다가 시대가 흐르면서 점점 원양에서 해전이 벌어졌기 때문에 그야말로 없는 것보단 나은 신세였다.
결과적으로 18세기에 이르면 전 지중해에서 현역으로 남아있던 갤리는 50척 정도에 불과했고, 그 절반은 지중해에서만 활동하던 베네치아 소속이었다. 심지어 18세기부터는 북아프리카의 바르바리 해적들조차 갤리선을 버리고 지벡을 사용했을 정도. 반면, 지형이 좁고 복잡하던 발트 해에서는 19세기까지도 사용되었는데 그나마도 본격적인 해전에 투입되기보다는 일종의 상륙함에 가까웠다.
현대에는 당연히 사라졌고, 아주 가끔 리인액터들이 직접 제작해서 갤리선으로 항해를 재현하는 정도로만 남아 있다. 레저, 스포츠 용으로 흔히 사용하는 카누나 카약 등은 갤리가 아닌 보트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