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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 이야기

니콜라 말브랑슈(Nicolas Malebranche, 1638년∼1715년)

작성자管韻|작성시간20.06.13|조회수192 목록 댓글 0


니콜라 말브랑슈(Nicolas Malebranche, 16381715)

 









 

말브랑슈는 라 마르슈와 소르본느 대학에서 각각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나 이때 배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1664년 사제로 임명되어 평생을 사제로 살았는데, 말브랑슈가 데카르트주의자가 된 것은 사제로 임명되던 해에 데카르트의 유작 인간론을 접하고 나서이다.(데카르트는 1650년에 사망했다.) 이 저작을 익을 때 말브랑슈는 크나큰 감명과 발견의 기쁨으로 심장이 너무 뛰어 숨을 고르기 위해 사이사이 읽기를 멈추어야만 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깊이 감명받은 이후 말브랑슈는 일생동안 데카르트를 철학의 대가로 여겼고, 데카르트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수학을 공부하였다. 하지만 데카르트 못지않게 말브랑슈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말브랑슈가 기독교 철학자로서 기독교의 관점에서 세계와 인간의 경험을 해석하려 했기 때문이다.

 

흔히 말브랑슈를 데카르트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종합을 시도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사이의 과도기적 인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은 공정한 평가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말브랑슈는 독창적인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진리에 이르는 올바른 방법, 초자연적 질서에 대한 기회원인론의 적용 가능성 등 여러 분야에서 그가 전개한 철학은 그를 독창적인 철학자로서 서게끔 해준다.

 

말브랑슈에 따르면 진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감각을 버리고 관념을 택해야 한다. 말브랑슈는 데카르트주의자이므로 이러한 주장은 근본적으로 데카르트의 이론에 근거한다. 즉 감각과 상상은 인간을 오류에 빠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진리판단의 토대로 삼을 수 없고, 진리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애매하지 않고 완벽한 지식을 제공해주는 명석판명한 관념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말브랑슈의 이론에는 연장성을 띠지 않는 영혼(사유)과 연장으로 정의되는 물질을 대립시키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배후에 있다. 즉 연장되어 있는 물체와 연장되지 않은 마음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결합하거나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불가결한 간격이 있다. 따라서 물체와 정신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는 불가능하고, 정신에게 연장된 물체를 즉각적으로 표상해주는 매개적 존재자가 필요하다. 즉 관념은 인간의 정신에 표상되어 외부 물체와 교류를 할 수 있게 매개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앎과 감각에 직접적으로 필요하다. 즉 말브랑슈는 관념에 대한 데카르트의 이론을 받아들여 인간의 정신관념을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것으로 치부한다. 왜냐하면 관념의 일부가 무한하기 때문에, 유한한 인간의 정신에서는 산출될 수 없고 오직 신에게서만 기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인간의 앎과 지각은 외부 물체와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의 매개를 통해 외부의 물체를 정신에 직접적으로 표상함으로써 작용한다. 또한 이 관념은 신에게서 산출된 물질세계의 본질이다. 우리는 신 안에서 모든 것을 본다.”가 말브랑슈의 입장이다. 이 이론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보이는 신의 조명설과 약간 변형된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및 심신철학을 체계적으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성립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신에게서 산출된 관념을 통해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가? 말브랑슈에 따르면 우선 영원한 진리를 인식한다. 하지만 ‘2x2=4’와 같은 명제의 진리는 신과 동일시되기가 어렵다. 이런 점에서 말브랑슈는 진리에 해당하는 관념을 봄으로써 신을 본다고 말한다. 즉 영원한 진리를 볼 때 인간은 신을 보나, 이런 진리가 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진리의 관념이 신 안에 있기 때문이다. 말브랑슈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이 본질적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영원한 진리가 아닌 것, 즉 만약 신 안에서 만들어진 각각 대상에 대응하는 관념이 단일하고 변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어떻게 연장된 사물에서 변화와 운동을 자각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 말브랑슈에 따른다면 신안에는 연장의 순수한 관념이 존재하고, 그 원형적 관념에는 물질세계에서 구체적으로 사례화 가능한 모든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말브랑슈의 인식론이 인식자로서 인간이 신에게 의존하는 바를 설명하는 이론이라면, 말브랑슈의 인과론은 모든 사물이 전능한 신에게 존재론적으로 의존함을 보여준다. 말브랑슈 인과론, 즉 기회원인론의 요지는 신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의지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우주의 그 어떤 것도 일어나거나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이론이 중세 이슬람이나 기독교에 기원이 있긴 하지만(Louis Forge) 말브랑슈가 최초로 기회원인론을 체계적으로 철저하게 그리고 엄격하게 구상했다는 데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기회원인론은 자연적 원인과 기회적 원인 사이의 관계설정에서부터 시작한다. 말브랑슈에 따르면 인간은 경험을 통해 자연적 원인(자연적 인과관계)를 인식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원인이 아니라 기회적 원인이다. 말브랑슈에 따르면 진정한 원인이란 원인과 결과 사이에 정신이 필연적 연관성이 있어야 하며, 또 그것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결의와 실제 행동 사이에는 필연적 결속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말브랑슈에게 있어서는 인간이 팔을 올리려는 결의와 팔의 움직임 사이에는 엄밀히 말하자면 필연적 결속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분석하에 말브랑슈는 자신의 의지와 그것의 결과 사이에서 정신이 필연적 연관성을 발견하는 매우 완벽한 존재자는 신 하나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능동인은 신이 유일하다. 따라서 신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개입을 통해 모든 사물간의 인과관계를 성립시킨다. 이렇듯 신의 결의만이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면, 신은 의지와 의지의 결과 사이에 어떠한 간격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신이 의지했는데 의지한 그것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브랑슈에게 자연적 인과관계(因果關係) 같은 제2원인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말브랑슈의 기회원인론은 정신과 물질에 대한 데카르트적 개념분석에서 출발하여 인과성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과정과, 전지전능한 신과 신이 창조지탱하고 있는 세계 간의 본질적인 존재론적 관계에 대한 신학적 탐구 혹은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말브랑슈는 기회원인론을 통해 새롭게 발흥한 과학에 새로운 형이상학적 토대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즉 새로운 과학의 주요한 설명요소인 운동은 데카르트가 말한 수동적이고 비활동적이 연장이 아니라 어떤 능동적인 힘에 인과적 토대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체는 본질적으로 연장성만 가지기에 운동의 동인을 내포할 수 없다는 것이 말브랑슈의 고민이었다. 따라서 말브랑슈는 운동의 근거를 신의 의지에 놓고, 신이 설정한 법칙에 따라 물체가 움직인다고 보았다.

 

사실 말브랑슈의 기회원인론은 자기모순이 있다. 분명히 그는 발견가능성을 진정한 원인의 조건으로 상정했는데, 사실 그는 진정한 원인을 인간이 관찰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예컨대 하나의 공이 다른 공과 부딪힐 때, 이것은 말브랑슈에 따르면 신의 의지에서 기원한 진정한 원인에 의한 관계이다. 그러나 그 공의 몸체를 움직이게 하는 진정한 원인을 인간은 관찰할 수 없다. 단지 신의 의지로 인해 그것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말브랑슈 본인이 비판한 스콜라 철학의 운동설명과 매우 유사하다. 스콜라 철학은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초자연적인 성질을 도입했는데, 정작 말브랑슈 또한 초자연적 성질 대신 신을 도입함으로써 유사한 논리를 펼친 것이다. 이러한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말브랑슈는 신학적인 이유에서 기회원인론(機會原因論)을 주장한다.

 

말브랑슈에 따르면 고대철학은 유한한 사물이 인과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큰 신학적 오류를 낳았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사람들은 신이 아닌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여 행복이나 불행의 원인이라 생각하게 되었으며, 불행에 빠지고 말았다. 따라서 말브랑슈는 행과 불행이 유한한 사물에 달려 있지 않고 무한한 존재자인 신에게서 연유함을 보이고자 했으며, 신이 형체 없는 원인이 되어 일상적인 실재로부터 멀리 떨어지기를 원하지 않고, 언제나 모든 자연현상의 즉각적이고도 유일한 원인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말브랑슈는 인과의 문제에 있어서 흄에게 영향을 끼쳤다. 두 사람 모두 인과관계의 필연성을 강조했고, 또한 이성에 의하든 경험에 의하든 인과의 필연성은 자연의 어떠한 대상간에서도 발견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말브랑슈가 이러한 인과의 기원을 신의 의지로 둔 반면 흄은 그러한 주장을 부정하였다.

 

버클리는 직접적으로는 말브랑슈와 자신의 이론이 상반된다고 밝혔지만, 말브랑슈의 흔적이 그의 이론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서 버클리의 관념은 말브랑슈의 관념처럼 유한한 정신의 양태가 아니라 정신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모두 신 안에 있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자연현상의 규칙성이 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인과적 활동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하였다. 다만 말브랑슈가 신 이외의 어떤 존재자에게도 인과적 능동인을 부여하지 않은 반면, 버클리는 인간의 영혼에 인과적 힘을 부여하였다.

 

라이프니츠는 말브랑슈의 기회원인론에 비판적이었지만, 실체간의 상호작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일치된 의견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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