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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 이야기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과 ‘노동력 착취’

작성자管韻|작성시간20.06.27|조회수302 목록 댓글 0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과 노동력 착취

 







 

미국 독립 혁명,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무렵,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산업혁명은 정치적인 시민 혁명과는 달리 조용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영향은 정치적인 변화 못지않게 컸다. 농업 분야에서도 새로운 기계와 기술의 발명으로 농업 혁명이 확산되어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공장 제도가 확립되고 대량 생산 체제가 이루어짐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물질적 풍요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 면직 공업에서 시작된 기술 혁신은 교통, 통신 분야의 혁명으로 이어져, 기차, 기선, 무선 전신, 전화 등의 발명이 잇따라 인류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산업혁명은 경제적인 변화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으로는 많은 신흥 공업 도시들이 생겨나게 되고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는 도시화가 진행되어, 공해 문제, 위생 문제, 주택 문제, 빈민가 문제 등 도시 문제가 발생하였다. 한편 산업혁명의 진행과 더불어 산업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어 노사문제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산업혁명 이후 자유방임주의 경제 정책이 점차 자리잡아갔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의 노동자들의 삶은 매우 비참하였다. 자본가들은 임금이 비싼 숙련된 성인 노동자 대신 임금이 싼 부녀자나 아동을 고용하였다. 이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으며 작업 환경도 열악하였다. 실직한 노동자들, 특히 직물업에 종사하던 전통적인 수공업자들은 산업화에 대하여 매우 강한 반감을 지녔다. 이들에 의해 기계 파괴 운동(러다이트 운동)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당시의 노동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 단합하여 노동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 결과 영국의 경우 공장법, 노동조합법 등이 제정되고 선거법이 개정되었으며 점차 노동자의 지위가 향상되었다.

 

대량생산이란 단위당 낮은 가격으로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대량생산된 상품은 정확하게 만들어진 상호 교환할 수 있는 부품들에 의해 규격화된다. 대량생산 과정 자체는 대량의 상품, 다양한 제조과정에 걸친 원료이동에 관한 세밀한 조직화, 엄격한 품질 검사, 세분화된 분업 등을 얻기 위한 기계화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대량생산을 위한 물질적 기초는 기계 제조산업(기계를 만드는 기계의 생산)의 발전에 의해 주어졌다. 정확한 기계장치 덕분에 낮은 원가와 적은 노동력으로 똑같은 부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조립라인이라는 새로운 조직화 수단이다. 조립라인의 원형은 고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지만 진정한 조립라인은 19세기 미국의 육류포장산업에서 찾아야 한다. 당시 육류포장 공장들에서는 한 노동자에서 다음 노동자에게로 고깃덩어리를 옮겨주기 위해 트롤리(trolley)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트롤리들이 체인에 연결되고 동력을 이용해 노동자들에게 고깃덩어리를 일정한 속도로 옮겨주기 시작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조립라인이 생겨났다. 노동자들이 고정된 위치에서 기계가 지시하는 속도에 맞추어 작업했기 때문에 불필요한 움직임이 최소화되었으며 놀라울 정도로 생산성이 높아졌다.

 

육류포장산업의 작업방식에 주의를 기울이던 미국의 자동차제조업자 헨리 포드는 1913년 조립라인을 도입했다. 포드가 도입한 방식에 의해 생산시간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1대당 가격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에 노동자들까지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포드가 이룩한 성과에 의해 그의 경쟁자나 자동차 부품업자 모두가 그의 기술을 이용하자 조립라인 방식은 미국 대부분의 산업에 파급되었다. 그 결과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고 저임금의 비숙련노동자들이 숙련노동자들을 대신하게 되었다.

 

대량생산의 발전은 3가지 주요방식으로 노동조직화의 성격을 변화시켰다. 첫째, 작업이 세분화되었으며 이미 기술이 기계 속에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비숙련 노동자, 적어도 반숙련 노동자가 작업을 수행하게 되었다. 둘째, 수많은 감독자와 관리자가 필요해질 만큼 기업이 성장하게 되었다. 셋째, 점증하는 작업의 복잡성으로 인해 대규모 배급망과 판매인력 뿐만이 아니라 엔지니어, 화학자, 더 나아가서는 산업심리학자까지 필요해졌다.

 

생산 과정이 기계화된 이후, 계속해서 대량의 상품생산에 대한 요구가 있을 때에만 기계가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기계의 존재는 기계의 소유자인 기업가와 고용인 사이에 분업을 초래했다. 기업가는 노동자들을 감시하면서 그들이 기계의 작업속도에 맞추어 일하도록 강제했다. 아직 완전히 기계화되지 않은 기업에서조차 산업혁명의 초기단계에서 공장의 작업규율의 이점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났다. 웨지우드(Wedgwood)가장 엄격하게 노동을 절약하기 위한도기공장을 영국 에트루리아에 세웠다. 그의 공장은 도기들이 빚어진 뒤 차례로 칠을 하는 방, 가마니가 있는 방 등을 지나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완성된 도기의 상태를 점검하는 방에서 생산물 목록이 작성되었다. 도기들은 마지막으로 보관창고에 옮겨졌다. 이전까지 도기공장의 노동자들은 여러 번 작업내용을 바꿔야 했다. 그러나 웨지우드의 도기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일정한 자리를 지정받은 뒤 오직 한 가지 일만을 했다. 성인 남녀와 어린이를 다 합쳐 278명이 고용되었는데 6명만이 지정된 자리가 없었으며 나머지는 전부 한 분야의 일을 전문적으로 했다.

 

당시 대부분의 공장들, 특히 직물공장들에서 노동자들의 작업조건이 형편없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대부분 숙련된 기술도 없는 가난한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싼 임금을 받으며 매일 1416시간씩 일을 했는데 시끄럽고 냄새나며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작업을 반복했다. 빈민가에 있는 이들의 집 역시 건강에 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사회문제가 대두된 것이 바로 이때이다. 어째서 엄청난 양의 상품을 생산해낼 능력이 있는 나라에 계속해서 빈곤이 존재하는가? 이러한 질문과, 그 뒤 노예제의 실시와 관련된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서구 사회와 정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 새로운 사회철학과 정치 운동의 발생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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