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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 이야기

노동법(勞動法)의 역사

작성자管韻|작성시간20.06.27|조회수150 목록 댓글 0


노동법(勞動法)의 역사

 





 

노동법은 근로계약, 노사관계, 노동시장 등 노동관계를 규율하는 법들을 통틀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노동법이라는 명칭의 단일법은 없다. 노동법으로 분류되는 법들은 꽤나 많다. 법률만 해도 30여 개가 있고 각 법률마다 시행령과 시행규칙까지 딸려 있으니 모두 100개 가까이 된다. 보통 임금산재해고 등 근로조건에 관한 법들을 개별적 노동관계법, 노동조합 등 노사관계에 관한 법들을 집단적 노사관계법으로 크게 구분한다.

 

우리나라 최고법은 헌법이다. 그리고 노동법은 헌법의 하위법률이다. 따라서 노동법은 헌법을 위반해서는 안 되며 노동법을 적용해석함에 있어서도 헌법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노동법은 노동법의 원리에 따르면 될 일이라는 식으로 헌법을 남의 일처럼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항상 헌법을 고려해야 한다.

 

헌법의 정신은 인권보장이다. 특히 우리 헌법에는 노동인권이 기본권으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노동법의 입법과 적용, 해석에 있어서 노동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더욱 보장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법의 입법은 물론 적용과 해석에 있어서도 노동인권을 저해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노동의 기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수렵채집 등 원시노동까지도 갈 수 있겠지만 이는 노동법의 대상인 노동이 아니다. 고대와 근대의 노예제 노동이나 중세의 농노제 노동도 있었지만 이 역시 노동법의 대상이 아니다. 가사노동, 자원봉사 등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그림자노동또한 노동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노동법의 대상이 되는 노동은 근대사회의 시작과 함께 나타난 임금노동을 말한다.

 

임금노동은 산업혁명 때부터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다. 영국은 명예혁명 등을 통해 확립된 입헌군주제 하에서 상인 및 신흥 부르주아지의 재산권과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함으로써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또한 석탄과 철 등의 풍부한 자원, 방대한 해외 식민지, 기계기술교통통신망의 발달 등으로 다른 나라들보다 일찍 산업혁명이 시작될 수 있었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공장제 기계공업이 번성하였는데, 영국은 18세기부터 시작된 제2차 인클로저 운동으로 토지를 잃고 몰락한 중소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흡수되면서 공장제 노동에 필요한 노동력이 값싸고 풍부하게 제공되었다. 인클로저(Enclosure; 울타리치기)는 공유지황무지 등에 울타리나 담을 쳐서 자기 땅으로 만드는 일을 말한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루 24시간 중 15시간씩 일해야 했고 임금은 의식주를 해결하기에도 모자랐으며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어도 보상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가난은 개인의 게으름 탓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구빈법으로 노동하지 않고 구걸이나 부랑하는 행위를 가혹하게 단속하였기 때문에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은 강제적으로 노동을 해야만 했다. 어린아이들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고된 일을 해야 했다.

 

비참한 현실을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은 저항했다. 프랑스에서는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며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법이 출현하게 되었다. 세계 최초의 노동법은 1802년의 도제(徒弟)의 건강 및 풍기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과 함께 19세기 초 영국에서 제정된 공장의 아동노동자들을 보호대상으로 한 일련의 법들을 공장법이라고 한다.

 

공장법보다 몇 년 앞서 1791년 프랑스의 샤플레법1799년 영국의 단결금지법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 법들은 노동자단체를 경제활동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노동조합의 결성 및 활동에 대하여 형벌을 과하였다. 당시는 부르주아지가 주도하고 사유재산을 강조한 시민혁명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즉 시민법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에 최초의 노동법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후 영국에 이어 다른 나라에서도 노동보호법이 제정되었으며 그 내용도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휴일, 휴가, 산업재해, 최저임금 등 근로조건 전반을 규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처음에는 연소자나 여자에 한정하였으나 성인남자에까지 확대 적용하게 되었다. 노동시간은 무제한에서 183312시간, 184710시간 그리고 1890년대 넘어 8시간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편 영국에서는 1810년대 들어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조건에 항의하며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벌였다. 이를 견디지 못한 공장주들은 1824단결금지법을 폐지하였다. 노동조합 결성을 노동자들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 방임하게 된 것이다. 1834년 영국에서는 전국노동조합대연합이 결성되어 이후 전국적인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영국은 1871년 세계 최초로 노동조합법을 제정하였다. 노동조합 활동이 비로소 합법화되고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1900년 무렵까지 영국,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노동조합이 자리를 잡았다.

 

20세기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권이 더욱 강조되었고,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국가가 수립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를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게 된 자본주의 국가들은 1918년 독일 바이마르 헌법을 선두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헌법에 반영하여 보호하게 되었다.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국제연맹은 강대국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무력했지만 같이 만들어진 국제노동기구(ILO)는 경제적사회적 권리가 발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국제노동기구는 노동시간의 최장한도를 확립하고 적정수준의 임금 보장, 질병 및 산업재해로부터의 보호, 어린이청소년여성노동자의 보호, 결사의 자유 등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경제적사회적 권리에 관한 조항들이 세계인권선언에도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우리나라 노동법은 1948년 헌법 제정 당시 노동3권과 노동자의 이익균점권(利益均霑權)을 규정하고 법률로는 1953년에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근로기준법이 처음 만들어졌다. 이때의 법률은 맥아더 군정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의 노동법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지켜진 것은 아니다. 독재정권과 특혜재벌이 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전무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노동법이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희생과 노동운동가들의 피가 요구되었다. 경제성장과 안보 논리에 밀려 노동자들의 인권은 늘 뒷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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