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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 이야기

증기 기관차(Steam Locomotive, 1725년)

작성자管韻|작성시간20.07.26|조회수1,051 목록 댓글 0


증기 기관차(Steam Locomotive, 1725)

 












 

증기 기관차(蒸氣機關車, steam locomotive)는 증기 기관에서 구동력을 얻어 움직이는 기관차를 말한다. 근원적인 열원이 무엇이든지 상관 없이, 열원을 활용하는 데 있어 증기가 개입하는 경우는 모두 증기 기관차로 분류한다.

 

증기 기관차는 증기기관을 직접적인 동력으로 삼은 기관차이다. 한때는 산업 혁명의 주동력 역할을 하던 운송수단으로써, 이전까지 육로를 통해 마차로 운송하던 것과 비교해 엄청난 양의 화물을 실어 나르던 역사가 있다.

 

17세기에서 18세기 즈음 산업 혁명 시기 당시의 영국은 연료로 쓰던 목재가 고갈되자 석탄으로 눈을 돌렸고, 석탄 광산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탄갱에 고인 물을 빼내야 하는 단점도 있었는데, 그 단점을 없애기 위해 토마스 세이버리(16501715)’1698년에 증기 양수 펌프를 개발했지만 효율성이 낮아서 쇠퇴했다.

 

그 이후 토마스 뉴커먼(16631729)’이 대기압의 힘으로 왕복운동을 하는 증기기관을 1712년에 만들었으나, 이 증기기관은 대기압으로 물을 빨아들이고 증기가 진공을 만드는 데만 써서, 연료 낭비가 심하고 왕복운동이 쉽게 지쳐버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 점을 보완하여 후에 제임스 와트가 증기의 힘으로 피스톤이 회전운동을 하는 증기기관을 1765년에 만들었다.


이후 1804년 리처드 트레비딕이 펜--다렌이라는 이름의 증기 기관차를 최초로 만든 것을 시초로, 증기 기관차와 함께 철도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당시 주철로 만든 선로가 기관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깨지는 문제가 발생하여 상용화는 좀 더 기다려야 했다. 이 선로의 문제 때문에 많은 시제품이 나왔지만 상용화에는 다들 실패했다. 이후 조지 스티븐슨이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선로를 연철로 만들어 기관차의 무게를 견디도록 만든 것이다. 이때는 강철의 경제적인 대량생산 방법이 없었다. 1855년 베세머에 의해 철로 제강법이 개발되면서 강철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

 

1812년에 톱니바퀴식 구동을 채용한 살라망카(Salamanca), 1813년에는 점착 운전에 성공한 퍼핑 빌리 호 등이 등장하였다. 이후 1814년 조지 스티븐슨이 현재의 여러 기관차들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블뤼허(Blücher) 호를 만들었으며, 이후 1825년에는 최초의 공공 철도인 스탁턴 앤드 달링턴 철도(Stockton and Darlington Railway)의 로코모션(Locomotion)호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1825년 이 연철 레일을 채택한 스톡턴-달링턴 철도에서 달린 로코모션 1호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증기 기관차가 되었다.

 

로코모션 호의 기본적인 설계는 1829년의 로켓(Rocket)호 등에 파급되었으며, 이후 최초의 양산형 기관차인 플래닛(Planet) 형 기관차에 이어지게 되며, 이 시점에서 앞쪽으로 돌출된 횡치식 보일러, 연돌, 크랭크 직접 구동 등과 같은 증기기관차의 기본적인 레이아웃이 자리잡게 되었다.

 

영국에서의 증기 기관차의 개발 이후, 여기에 영향을 받아 미국과 독일 등지에서도 고유한 기종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경우 초기에는 영국산 기관차의 직도입 내지는 넉다운 도입 정도에 머물렀으나, 1830년에 이르러서는 찰스턴의 친구(Best friend of Charleston)를 스스로 생산해 내기 시작하였다. 이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미국의 기관차는 영국과 구별되는 고유의 설계 관념이 형성되어 갔다. 유럽의 각 국 역시, 초기에 영국제 기관차로 시작하여, 점차 자국 사정에 맞는 고유의 구조와 형상으로 발전해 가기에 이른다.

 

이후 1830년 조지 스티븐슨이 당시 기준으로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가진 로켓호를 만들었다. 물을 증기로 바꾸는 관을 25개 장비하여 열이 닿는 단면적을 늘리는 기술은 증기 기관차의 성능을 대폭 끌어올렸고, 로켓호를 채용한 리버풀-맨체스터간 철도가 성공하면서 영국에 철도 붐이 일게 된다.

 

그리고 이 철도 붐은 전세계를 휩쓸면서 근대적인 육상교통수단의 시발점이 되었다.

 

동력은 그 이름 그대로 증기기관으로써 외연기관이다. 일단 무언가를 태워서 그 태운 열로 보일러를 데우고 나면, 가열된 물이 증기로 기화되어서 수증기의 압력으로 피스톤을 움직여 그 피스톤에 연결된 로드가 바퀴를 돌리는 식. 쉽게 말하면 커다란 압력솥과 화덕에다 바퀴를 달아놓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론상 석탄이든 뭐든 100도 이상의 열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 즉 물을 끓일 수 있는 온도까지 도달할 수 있는 물질이라면 뭐든지 사용이 가능하다. 석유로 가는 증기 기관차도 있고, 원자로를 탑재하는 방안도 계획되었지만 이쪽은 안전 문제로 취소되었다. 심지어는 가선으로 전기를 끌어들여 전기로 물을 끓이는 방식도 있으며, 철도 상태가 막장인 북한에서는 목재를 태우다 지나친 벌목으로 민둥산이 너무 많아지면서 더 태울게 없어 폐타이어를 태우기도 하니 흔히 생각하는 것들 외에 다양한 재료들을 활용할 수 있다.

 

일장일단이 있는데 전자의 경우는 탄수차가 없다보니 길이가 짧아 편성을 짤때 편리하고, 그로 인해서 배차간격이 짧게 하는 것이 가능하고 열차입환, 분합 등의 업무에 활용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연료량이 적다보니 자주 보급을 받아야 하고, 남은 연료량에 따라 기관차 중량이 달라져 기관차의 접지압이 일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어 장거리 고속/중량 운전에는 불리하다. 후자의 경우는 전자의 경우와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고압증기를 외부에서 충전해 움직이는 단거리용 증기 기관차. 내압탱크와 피스톤만 배치되어 있고 가동 시간은 23시간 정도에 증기 충전에 긴 시간이 걸리는 등 한계가 많았지만 매연이 없으므로 공장이나 광산 등 화기엄금인 장소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증기조차 안 쓰는 압축공기 기관차도 있었다고 한다. 이건 일본에서 개발되었는데, 개발자 츠네마츠 타카히토(恒松孝仁)2016년에 사망하면서 압축공기로의 개조가 중단되었다.

 

이후 증기 기관차는 철도망의 신장과 함께 철도 운송의 중추를 이루게 된다. 증기기관차는 과열증기의 도입, 연소 및 배기의 고도화, 복식(다단 팽창식) 구조 및 피스톤 수의 증가 등 각종 기술적 발전을 통해 고속화, 대형화, 강력화 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25축의 동륜과 수 개의 종륜에 백 톤 내지 그 이상의 자중을 가지며, 수 백 마력의 힘으로 여객과 화물을 수송하기에 이른다. 1935년에 등장한 독일의 BR05형 증기기관차는 최고속도 200.4km/h를 달성한 바 있으며, 이후 영국의 A4형 증기기관차는 1937년에 5퍼밀 하구배 구간에서 최고 속도 201km/h를 유지하는 기록을 달성하여 증기 기관차로서는 최고속을 달성하였다. 한편 미국에서는 챌린저(Challenger)형이나 빅 보이(Big Boy), Y6b형 등 400톤이 넘는 거구에 수 천톤에 달하는 화차를 단독으로 견인하는 초대형 기관차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2차 대전은 이러한 증기 기관차의 발전 경쟁을 중단시켰으며, 1912년 경에 등장한 디젤 기관차는 점차 증기 기관차의 입    지를 침식해 가기에 이른다.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여러 노선에서 무겁고 손이 많이 가는 증기 기관차 대신 무연, 고속, 고성능을 가진 디젤 기관차를 이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따라서 점차 그 입지는 줄어들게 되었다. 증기기관차는 1950년대를 정점으로, 점차 일선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여 1970년 이후로 주요 산업국가에서 증기기관차를 찾아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한편, 간선망에서 증기 기관차의 역할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지만, 증기 기관차의 독특한 동작 소음과 매연, 그리고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는데, 그 결과 세계 각지에서는 지선 또는 보존 철도 등지에서 관광 용도의 증기 기관차의 복원 운행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대개의 나라에서 여객과 화물 일선에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증기기관차는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특별한 장치로서 그 위상을 새롭게 하고 있다.

 

연료에 구애받지 않는다. 증기 기관차만의 특장점이라기보다 증기 기관 그 자체의 특성이지만, 열을 발생할 수 있는 연료라면 어떤 것이든 된다. 구체적으로는 보일러에 태워서 가열할시 물을 끓일수 있는 온도까지 열을 낼 수 있는 물질이면 거진 다 연료로 취급한다. 일반적으로 석탄을 쓰기는 하지만, 화목 등의 다른 고체 연료도 된다. 화력 증강을 위해 중유를 보조 연료로 쓰는 기관차도 있다. 이집트에선 미라를 연료로 쓰기도 했고, 심지어 브라질에서는 세계 대공황때 연료 사올 돈이 없어서 팔지 못하고 썩고 있던 커피를 태워서 열차를 굴렸다고 하며 북한에서는 심각한 연료난 때문에 나무와 이제 나무도 부족한 지역은 폐타이어를 태워서 운용하고 있다.

 

빠르다 현재는 아니지만 증기 기관차가 주력으로 활약하던 19세기20세기 초반까지의 시대에서 증기 기관차만큼 중량 대비 빠른 속도를 내는 대중교통 수단은 사실상 전무했었다. 증기 기관차는 이미 19세기 후반에 130km/h가 넘는 주행속도를 기록한 굉장히 빠른 운송수단이다. 간혹 서부시대의 기차 추격전이나 원태우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돌멩이 저격 사건을 언급하며 증기 기관차는 느린 물건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증기 기관차의 성능 문제가 아닌 당시 철도 인프라의 한계 때문이었다.

 

강력하다 이 역시 증기 기관차가 주력으로 활약하던 시기에는 출력으로 마땅히 대적할만한 상용 운송수단이 없었다. 특히 증기 기관차에서 디젤 기관차로 넘어가던 20세기 중반을 보면, 디젤 기관차의 부족한 출력 덕분에 현대의 어지간한 기관차들보다 강력한 챌린저나 빅 보이 같은 괴물 증기 기관차들이 등장했고 상당기간 증기 & 디젤 기관차 혼용 시기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본격적인 간선용 디젤 기관차가 나오기 전까지 디젤 기관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플래그십 특급열차 견인에 증기 기관차를 괜히 굴린 게 아니다.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기관에서 들리는 가장 큰 소리가 칙칙폭폭이나 브러쉬 소리 정도인데, 이는 디젤 기관차는 물론이고 전기 기관차와 비교해도 출발 시 및 고속 주행 시 엔진 소음(전기 기관차의 경우 고압전기 특유의 잡음도 포함)이 작다.

 

보일러에서 발생하는 증기를 객차 난방에 활용할 수 있다. 그렇게 큰 장점은 아니지만, 화기나 전자장치 없이도 객차에 난방을 할 수 있어 나름 유용했다.

 

상당량의 매연을 뿜는다. 석탄을 태우기 때문에 매연이 엄청나다. 여객 열차는 창문이라도 잘못 열면 연기 냄새가 나기 마련이였으며, 터널에서는 일산화탄소 중독이 발생하기도 했다. 런던 지하철은 전동차가 없던 초기에 증기 기관차를 지하철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흐지부지 된 바가 있다. 이러한 매연은 당연하게도 대기오염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현대에도 오래된 철도 터널 내부에 들어가면 천장에 오래전 증기기관차의 매연이 남긴 그을음이 가득할 정도이다. 때문에 당시에는 열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 창문을 닫고 최대한 증기 연기가 객차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유지보수가 힘들다. 설계가 원시적이기 때문에 원리 자체는 간단하다. 하지만 주요 부품의 구조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보니, 정비성이 아주 떨어진다. 한번 정비하는데 3개월-6개월 정도가 소요될 정도이다. 운용에도 손이 많이 가는데, 가령 마모 방지를 위해 윤활유를 주기적으로 바꿔주어야 하며, 모든 장치가 수동으로 작동되므로 미숙하게 조금만 잘못 조작한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기관차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부품의 표준화마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제작시기마다 부품 차이가 심각하다. 특히나 전시에 생산된 기관차는 이 문제에서 더욱 심한 모습을 보이는데, 불량 자재 사용, 용접 포인트 미달, 부실한 마무리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 실제 일본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만들어진 증기 기관차는 이러한 불량품이 많았고, 결국 운전 도중에 보일러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때문에 전후에는 이러한 기관차들은 조기퇴역을 당하거나 새롭게 개조되기도 하였다.

 

연료 공급이 어렵다. 연료가 고체인 석탄이기 때문에, 보급 시간이 길고, 주행 중에는 연료 공급의 자동화가 되지 않아 화부가 필요하다. 이후 운행 속도가 향상되면서 화부가 일일이 삽으로 석탄을 퍼나르기 힘들어지자 자동 장치가 고안되었지만, 여전히 완전자동화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는 물도 마찬가지였는데, 호주나 미국처럼 국토 내에 사막이 있을 경우 물 보급이 곤란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시야가 좁다. 차량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전방 시야의 경우 매우 긴 화통이, 텐더형 기관차라면 거대한 탄수차가 후방 시야를 차단하기 때문에 전기 기관차나 디젤 기관차에 비해 넓은 시야를 갖추기가 어렵다. 미카와시마 사고의 원인 중 하나가 이것으로, 화통 때문에 신호를 자세히 볼 수 없었던 기관사가 엉뚱한 신호로 착오하여 사고가 발생했다.

 

열차 준비시간이 너무 길다. 증기 기관차에 시동을 걸때는 연료를 태워 물을 끓여서 적정 온도와 압력의 수증기를 만들어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이 12시간 이상 걸린다. 이것은 증기로 작동하는 외연기관의 본질적인 한계로 현대의 증기터빈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가열된 물을 보일러에 직접 공급하는 방식이 미국의 보존중인 증기 기관차에서 이용되고 있으나, 이 또한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많은 단점을 안고 있었던 데다가, 이를 대체할 운송수단들이 등장하면서 증기 기관차는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드물게 개발도상국 중에 석탄이 많은 나라들이 아직도 운용하기도 하나,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관광용으로나 볼 수 있는 수준이다.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당시엔 그 드넓은 황야에 버팔로들이 드글드글하게 많았다. 이러다 보니 선로를 깔아놔도 소떼가 그 위로 지나다녀서 증기 기관차가 달리다가 부딪쳐서 탈선하는 문제가 생겼는데, 이를 위해 기관차 앞에 배장기(排障器)”라는 것을 달았다. 제설차와 비슷한 원리로, 부딪치면 소를 선로 너머로 튕겨냈다. 물론 이 해결법은 아직 증기 기관차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을 때였고 속도 또한 말이 따라잡을 정도로 낮아 저런 무식한 방법이 먹혔던 것. 만약 미국의 철도차량이 덩치가 커진 이후까지도 버팔로가 바글 거렸다면 배장기로 밀어버리는 방법은 버팔로가 순순히 밀어서 잠금해제당하지 않고 높은 속도와 기관차의 무지막지한 질량으로 배장기를 박살내버리고 기차 아래에 깔려버린다거나 해서 탈선을 일으켜 오히려 엄청난 사고를 일으켰을 것이다. 버팔로 자체도 큰 동물이라 퉁 부딫힌다고 흠집 좀 나고 끝이 아니라는 문제도 함께. 높은 속도에서의 충돌이라면 버팔로는 일단 개박살나지만 증기 기관차라도 절대 멀쩡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버팔로가 한두 마리 깔짝대는 동물도 아니고 수십 수백마리나 우글거리며 몰려다니는데 고속주행중에 앞에서 버팔로 떼가 선로 위를 노닐고 있다면...

그래서 현실은 버팔로 떼가 지나갈 때까지 마냥 기다리거나, 배장기로 적당히 밀어낼 수 있는 속도로 슬금슬금 통과하는 것. 그렇게 허비한 시간은 중간에 열심히 석탄 넣고 나무 때서 속도 올려서 어느 정도 만회를 한다. 어차피 이 시절은 몇 시간, 심하면 며칠씩 기차 타는 건 예사였기 때문에 얼마 지체되었다고 성질 급하게 짜증내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어떤 인간들은 총 가지고 다니다가 버팔로 지나가면 몇 마리 맞추느냐로 내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분노한 원주민들이나 열차강도가 기차를 쫓아오며 화살이나 총을 쏴대기도 했고 열차가 털리기도 하며... 배장기는 현대에도 쓰이는데 혹시 선로위에 떨어진 이물질등을 미리 치워내기위한 목적으로 쓰인다. 보통 선두차량의 전면 아래쪽의 범퍼 같은 게 배장기. 바퀴 앞쪽에 막대기형태로 달기도 한다.

 

참고로 당시 증기관차뿐 아니라 이후나 현대의 기관차도 지역에 따라서 선로의 눈을 치우는 쐐기형의 배장기는 달고 다닌다. 눈 가래(Snow ploug또는 snow plow 라고 불리는 것으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나 닥터 지바고 같은 영화에서도 눈을 헤치고 질주하는 기관차를 볼 수 있다.

 

영국의 LNER A4형 맬러드(The Mallard)는 고속화에 성공해서 200km/h의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밀워키 로드가 운용했던, 클래스 A 증기 기관차가 견인하는 하이아워서(Hiawatha) 시리즈가 최대 192km/h까지 찍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이아워서 시리즈가 활약하던 1930년대에, 이미 미국에서는 최대속도 100mph(160km/h)짜리 전기 기관차 GG1이 있었다. 1920년대부터 산업 디자인 분야에선 유선형의 디자인이 유행하고 있었고 흔히 증기 기관차 하면 떠오르는 둔탁한 원통 형의 디자인이 아닌 풍동 실험을 거친 듯이 유선형의 매우 세련된 디자인의 증기 기관차들이 있었다. 이러한 고속주행용으로 설계된 기관차와 그 열차편을 스트림라이너(Streamliner)’라고 부른다. 위의 LNER A4형 맬러드 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뉴욕 센트럴 레일로드에서 뉴욕-시카고 간을 운행한 20세기 특급이라고 불렸던 허드슨이나 CNW Class E-4, 위의 PRR T1 증기 기관차도 당시 산업 디자인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독일도 DRG051930년대에 개발해 125km/h로 베를린-함부르크 구간을 달렸다. 심지어는 1936 베를린 올림픽 전에 197톤의 객차 3량을 달고 200km/h의 속도로 세계 기록을 갱신했다. 일본 역시 일부 C53형과 C55형 증기 기관차, 그리고 만주 철도 아시아 특급 견인용 파시 7형 기관차에 공기저항을 줄이는 커버를 씌우고 운행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주로 강대국에서 증기 기관차를 만들어서 다른 나라에 수출하기도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른 나라의 취향을 고려한 이런저런 시도(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한 기관실의 차양막이라든지)가 생겼다.

 

일본은 다른 주변 국가보다 빠르게 개항을 한 덕인지 옛날부터 증기 기관차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고, 또 현재 많은 열차가 정태, 동태 보존되어 있거나. 실제로 영업운전을 하고 있는 곳도 있다. 물론 야마구치선의 SL 야마구치나 히사츠선의 SL 히토요시처럼 관광용 등의 특정 용도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다. 또 운행을 마치고 아예 퇴역할 때 고별 운전을 하는 등 인기가 좋다.

 

미국에서도 유니언 퍼시픽같이 이벤트 여객열차 운행으로 챌린저나 빅 보이 같은 초대형 증기 기관차를 운행한다. 이와는 별도로 인도, 중국에서는 아직도 현역으로 화물수송 등에 사용되는 증기 기관차가 있고, 철도의 시초인 영국에서는 LNER A3 60103 플라잉 스코츠맨이라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증기 기관차인데 1968년에 퇴역한 차량을 민간한테 매각했다가 영국 국립철도박물관에서 2004년 구입후 2006년부터 2016년까지 10년에 걸친 복원작업 끝에 본선운행에 들어갔다.

 

한국 최초의 증기 기관차는 1899년에 경인철도주식회사에서 수입한 모가형 증기기관차다. 원 제작사는 미국의 브룩스 사로, 부품별로 분해되어 와서 국내에서 조립되었다. 이 모델은 추가로 도입되진 않았고, 이후에 푸러형 증기기관차가 대세를 이루었다. 1930년대에 운행이 종료되고 폐기되었다고 하지만, 서울공작창에 남아 있다가 한국전쟁 때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철도차량 사료집을 확인한 결과 광복 후 북한지역에 있어서 북한철도 소속이 되었다는 자료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1967년에 증기 기관차 운행이 종료했으나, 70년대까지는 입환기나 중단거리 화물열차를 견인한 기록과 사진이 있으며 예비차량으로 일부 차량이 1980년대까지 남아 있었고, 어린이날 기념열차 또는 어버이날 기념열차 그리고 시골오지 산업선에서 생산물자 운송에 이용되기도 했다.

 

1994년 철도청에서 관광용으로 중국 장춘에서 수입했고, 공휴일 한정으로 무궁화 객차를 달고 운행했다. 하지만 IMF이후로 기관차 유지, 보수가 어려워져 2000년을 끝으로 운행이 중단되어 현재는 풍기역에 보관되어 있다. 901호 증기 기관차는 석탄을 삽질할 필요 없이 연료 탱크에서 등유나 경유를 끌어와서 연소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래도 일반 디젤 기관차보다 연비가 나쁜 열차였기에 철도청 입장에선 빨리 처분하고 싶었을 것이다. 현재 차적에서는 삭제되었지만, 한국에서 증기 기관차를 운전하고 싶으면 디젤철도차량 운전면허를 소지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증기 기관차 운전면허가 따로 있다.

 

1896년 미국 텍사스에서는 폐차될 증기 기관차 2대를 가져다가 정면충돌하는 쇼를 기획했다! 입장료는 없었지만 대신 안전을 고려해 아무 것도 없는 평야에 철도를 임시 가설하고 거기까지 가는 기차표를 팔아서 돈을 벌었다. 영화나 마땅한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이라 무려 4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문제는 기관차끼리 충돌하면 그냥 좀 찌그러지고 말 것이라 생각해 150미터 거리에 관람석을 설치했는데 실제로는 증기압력으로 보일러가 터져 대폭발을 일으켰고 엄청난 파편이 관람객에게 날아들어 3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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