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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 이야기

02. F4U 콜세어 전투기

작성자管韻|작성시간20.10.23|조회수516 목록 댓글 0

02. F4U 콜세어 전투기

 

 

 

 

 

 

 

부갱빌 공폭작전 - 콜세어 출격 (상편) ; 제로를 잡아라 22부

충격의 발렌타인 데이 - 콜세어 출격 (하편) ; 제로를 잡아라 23부

 

 

 

F4U-1D부터 사라졌던 익내연료탱크가 다시 설치되고 수직미익이 확대, 기수가 길어졌으며 캐노피는 버블형으로 변경되어 전체적인 시야가 좋아졌다.

 

저고도 고속전투를 위한 기체로 설계되어 저고도에서의 비행성능은 F4U-5에 필적했으나 중고도 이상에서의 성능은 F4U-4보다도 떨어졌다.

 

지상작전용의 F2G-1과 함재기형의 F2G-2가 있는데 지상용 기체는 고정무장이 M2 중기관총 4정이지만 함재기형은 6정이다.

 

대량양산을 앞두고 있었으나 전쟁이 끝나면서 생산은 취소되어 총 생산량은 10기 정도이다.

 

함재기형인 F2G-2의 경우 최대 3000마력의 밀리터리 파워 해수면에서 655km/h, 17000피트에서 708km/h의 속도와 4400ft/min의 최대상승력 5.7분에 20,000피트까지 상승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고정 무장의 경우 F4U-1, F4U-1A, F4U-1D, F4U-4는 날개에 장착된 6문의 AN/M2 12.7㎜ 기관총이었고 F4U-1C는 M2 20㎜ 기관포 4문이었으며 F4U-4B와 F4U-5는 신뢰성이 향상되고 발사속도가 증가한 M3 20mm 기관포 4문이 무장이었다.

 

F4U-1 초기형은 양 날개에 100lbs 폭탄 2발 밖에 장착할 수 없었으나 이후 센터라인과 양 주익 내측에 폭탄/드롭탱크용 파일런을 장착할 수 있게 되면서 F4U-1A는 센터라인과 동체양옆에 폭탄이나 드롭탱크를 최대 3개까지 장착할 수 있었다. F4U-1C와 F4U-1D형은 양 날개에 HVAR 로켓을 위한 랙 8쌍을 갖추고 있어서 추가로 8개의 로켓을 탑재할 수 있었다.

 

이후 F4U-4형은 100lbs나 250lbs같은 소형 폭탄도 장착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로켓 랙을 장비했으며 이후 F4U-4B와 F4U-5에서는 무게와 부피가 줄어든 새로운 형태의 랙이 적용되었다.

 

폭장량의 경우 초기형부터 2,000lb(약 900kg)에 달했는데 이는 일본군 항공부대의 쌍발 폭격기 G4M의 800kg보다 100kg 많은 양이다. 그러나 폭장량은 이후에도 계속 늘어나 F4U-1D 시점에는 4,000파운드가 넘는 최대폭장량을 가지고 있었다. 본격 괴수인증

똑같이 항모에서 이함하는 주제에 전투기도 아닌 순수 폭격기인 D4Y 스이세이는 500Kg이었다.

 

장착할 수 있는 무장은 5인치 FFAR/HVAR 로켓, Tiny Tim 로켓, 100lbs/250lbs/500ls/1,000lbs/2,000lbs 폭탄, Bat 레이더 유도 폭탄등이었다.

 

하드포인트 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동체 센터라인 파일런 = 1발의 250~2000lbs 폭탄, 1발의 Tiny Tim 로켓, 1개의 150~175갤런 드롭탱크, 1발의 Bat 레이더 유도 폭탄

양주익 내측 파일런 = 6발의 100lbs 폭탄, 2발의 250~1600lbs 폭탄, 2발의 Tiny Tim 로켓, 2개의 150갤런 드롭탱크

양주익 외측 파일런 = 8발의 FFAR/HVAR 로켓, 8발의 100~250lbs 폭탄

 

이러한 폭장능력으로 인하여 콜세어가 대량으로 배치된 대전 말에는 대함공격 임무까지 도맡아 처리했고, 어벤져나 헬다이버 같은 뇌격기나 급강하폭격기들은 피격된 파일럿 구조용 구명보트나 탑재하고 출격하는 경우가 잦았다.

 

결국 태평양 전쟁 말기, 사실상 일본군의 대형 함선이 소멸하고 콜세어가 폭격기로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게되자 미해군은 콜세어가 항공모함 함재기 구성의 대부분을 이루게 되는 "전투기 항모"가 등장하면서 사실상 대함/대공/육상지원 세가지 역할을 모두 해낼수 있는 멀티롤 전폭기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런 폭장량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해병대였다. 콜세어의 폭장량이 뛰어나기는 하나 항모에서 작전해야 하는 한계가 있는 이상 너무 무거운 폭장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해병대는 배치 초기부터 주익이나 센터라인에 간이 파일런을 설치하는 등의 각종 야전개조로 콜세어의 폭장량을 늘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는데 44년 찰스 린드버그가 기술고문으로 마샬 제도에 방문함으로서 극적인 진전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F4U-1D가 등장하여 주익 외측에 항공로켓 8발이 장착가능해지고 1600파운드의 탑재량을 지원하는 윙파일런이 정식으로 채용됨에 따라 이론상으론 2000파운드 폭탄 1발 + 1600파운드 폭탄 2발 + 8발의 항공로켓이라는 무시무시한 폭장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폭장량과 해병조종사들의 저돌적인 전투성향이 어우러진 해병대항공대의 근접항공지원은 지상의 일본군에겐 지옥을, 미군에겐 깊은 만족을 선사하며 콜세어가 지상의 병사들에게 천사나 연인등으로 불리며 사랑받는 기종이 되게 해주었다.

 

 

함재기인 이상 콜세어도 긴 항속거리를 요구받아 237갤런의 내부 연료탱크를 갖추고 초기형들의 경우 양 주익에 각각 62갤런 총 124갤런의 익내연료탱크를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내부연료 361갤런을 만재할 경우 보조연료탱크 없이도 2438km의 항속거리를 확보했고 여기에 하나의 175갤런 보조연료탱크를 추가할 경우 그 항속거리는 3444km에 달했다.

 

F4U-1D 부터는 날개 내 연료탱크가 사라져 내부연료로는 237갤런 만재시 항속거리 약 1600km가 최대 항속거리가 되었다. 대신 양주익에도 150갤런 보조연료탱크를 하나씩 장착할 수 있게되어 최종적으로 3개의 보조탱크로 최대 712갤런의 연료를 탑재해 더욱 장대한 항속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군은 일본군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통 1~2개의 보조 연료탱크를 사용했다.

 

전쟁말이 되면서 헬켓은 여전히 센터라인에 1개의 보조 연료탱크를 사용한 반면 콜세어는 2~3개까지 사용이 가능했으며 갤런당 항속거리도 콜세어가 더 길었기 때문에 헬켓은 주로 함대방공이나 중단거리 임무를 담당한 반면 콜세어는 빠른 속도를 이용한 요격임무는 물론 본토를 대상으로한 제공권 장악이나 공격대 호위 등의 장거리 임무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대체적으로 후기형 콜세어의 항속거리는 전비중량 기준으로 P-51B/C 머스탱과 비슷한 수준으로서 일본기와 비교하면 떨어지는 편이지만 유럽전선의 기준으로 긴편이다. 이는 유럽전선의 기종들과 비교시 상당한 이점이 되는데 전비중량을 기준으로 하는 카탈로그 성능이 아닌 동일 임무형상을 기준으로한 비교에서 콜세어는 카탈로그 이상의 성능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F4U-1D를 예로들면 전비중량 12028lbs는 2400발의 50구경 중기관총탄과 237갤런의 연료를 만재한 상태인데 이 상태에서 F4U-1D는 항속거리가 1600km를 넘기고 6정의 기관총을 동시에 사격해도 30초 동안이나 사격할 수 있다.

 

이를 유럽 전선의 La-7 같은 소형 기종과 비교해보면 전비중량 기준으로 항속거리가 약2.4배(1600 vs 665 km)에 이르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동일 임무형상에서 비교시 La-7 이 만재상태로 수행해야할 임무를 콜세어는 연료를 반 이상 덜고 수행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탄약을 덜어내도 임무수행에 지장이 없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렇게 되면 콜세어의 기동성과 상승력은 크게 증가할 것이므로 긴 항속거리는 동일 임무형상 기준에서 성능상의 이점을 어느정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기 상대론 오히려 반대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대체적으로 일본기들의 항속거리가 더 긴데다 콜세어는 주로 본토공격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요격을 위해 가벼운 셋팅으로 출격한 일본기들을 상대로 장거리 및 지상공격 임무를 위해 증조탱크와 추가파일런, 폭탄 및 로켓등을 장착한 상태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콜세어는 속도, 화력, 기동성을 겸비하여 성능면에서 사각이 없는 기종으로서 동시기 그 어떤 기종과도 호각이상으로 싸울 수 있는 올라운더였다. F4U-1 계열은 상승력과 가속력이 대전말의 일선급 기체로서는 평범하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F4U-4부터는 해당 분야에서도 최고수준에 도달함으로서 대전 최강 레시프로기의 반열에 들어간다. 더군다나 육상기도 아니고, 설계면에서 제약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함재기 이면서 대전중 만들어진 대부분의 전투기들을 압도한다는 것은 콜세어의 설계가 그만큼 우수했다는 반증도 된다.

 

최대한 항력을 억제한 설계와 고출력 엔진의 결합이 가져오는 속도는 F4U-1계열만 해도 대전기의 함재기로서는 최고이며 공냉기로 한정하면 저공의 La-7, 고공의 P-47 정도만이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대전말에 등장한 F4U-4계열은 아예 전반적인 고도에서 최고급의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가벼운 스틱포스와 효과적인 조종면으로 대형기임을 무색하게 하는 반응성과 순간기동성을 가진 콜세어는 특히 보조익과 승강타의 부스트탭이 효과를 발휘하는 고속영역에서 독보적인 기동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 44년 말부터는 Z-2 여압복이 보급되어 그 뛰어난 고속 기동성에 방점을 찍었다.

 

빠르고 중량급에 강력한 엔진을 가진만큼 에너지 파이팅에도 톱클래스 기체중 하나였는데 여기에 상기한 고속기동성이 더해진 결과, 콜세어는 고속에서의 붐앤줌 전투시 무적에 가까운 위용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고속비행을 중시한 대형기로선 체급에 비해 익면하중이 낮고 양력계수가 높은편이라 유럽전선 기준으론 선회반경이 꽤 좁은 편에 속했고 여기에 우수한 저속추력과 뛰어난 조종성이 어우러져 저속 기동성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특히 자동화 기능이 탑재되고 효율이 뛰어난 NACA 슬롯티드 플랩은 제로센과도 제한적인 저속선회전이 가능할 정도의 잠재력을 제공하여 콜세어를 저속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상대로 만들었다.

 

기골강도와 G내성도 막강했다. 태생부터 고속설계를 적용한 체급이 있는 함재기로서 튼튼하게 설계된 콜세어는 다른 해군전투기에 비해서도 더 견고한 기골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넓은 날개, 5톤급의 체급, R-2800 엔진의 우수한 내탄성 및 신뢰성이 어우러져 맷집도 좋은 기체가 되었다.

 

즉, 처음에도 말했듯이 성능에 사각이 없다. 빠르고 속도에 관계없이 우수한 기동성을 가지며 에너지 파이팅도 잘하는 만능기체인데 거기다 맷집도 좋고 폭장량도 우수하며 항속거리까지 쓸만하다. 이러니 해군과 해병대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다만 F4U-1 계열은 25000피트 이상부터는 슬슬 힘이 빠진다. 44년 말부터 전달된 F4U-4나 전후에 등장한 F4U-5 계열은 고공성능에도 문제가 없지만, 배치가 지지부진하여 거의 활약하지 못했으므로 전쟁중에 주로 쓰인 F4U-1계열 기준으론 유럽의 고공전투형 기종들과 비교시 고공성능이 좀 부족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래의 성능란 세부 항목들은 위의 내용을 좀 더 길게, 그리고 자료와 함께 설명한 것에 불과하므로 결론만 읽고 싶었던 사람들은 읽지 않아도 된다.

 

 

사실 대전기 내내 가장 많이 사용된 대표적인 콜세어인 F4U-1 계열은 700 km/h를 넘는 최고속도를 가진 후기형 기종들에 비하면 좀 미묘한 최고속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고속도란 기체가 최고의 효율을 보여주는 고도에서만 달성이 가능한 것이므로 실제 전장에서 공중전시 체감하게 되는 상대속도는 고도마다 달라지게 된다. 그런면에서 콜세어는 당시 R-2800계열 기체로서는 예외적으로 해수면부터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전반적인 속도면에서 유리한 기종이었다.

 

실제로 최고속도로만 따지면 대전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썬더볼트 계열은 막상 실제 전장에선 독일기들에 비해 수평속도면에서 대체적으로 열세를 보였는데, 이는 공기가 희박해 항력이 매우 낮은 고고도에서의 최고속도는 터보슈퍼챠저의 가호를 받아 빠르지만 고고도를 벗어난 전반적인 고도에선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의 P-47D와 F4U-1A를 비교해보면 신형프로펠러를 장비한 성능향상형 P-47D를 상대로 콜세어의 우위는 25000ft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해수면에서 44km/h의 속도우세를 확보하고 있던 것이 20000ft에서도 34km/h의 우세를 유지하는등 25000피트 이상의 고고도를 제외한 전반적인 고도에서 압도하고 있었다.

 

후기형끼리도 비교를 해보자면 대전기의 단발 기체중 최고속도에 있어서는 사실상 최고이자 썬더볼트 계열 중에서도 실험기를 제외하면 가장 빠르다는 P-47M을 상대로 비슷한 시기의 F4U-4는 26,000피트까지 우위를 유지하며 해수면에서 30km/h의 우세를 확보하고 있던 것이 20,000피트에서는 40km/h에 이르는등 여전히 전반적인 고도에서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F4U-5에 와서는 29,000피트까지 우세를 보이게 되어 사실상 썬더볼트가 우세를 보일 수 있는 구간은 사라지게 된다.

 

또한 고도에 관계없이 수평속도면에선 고공에서의 썬더볼트를 제외하면 사실상 동시기 최고라고 말해지는 멀린엔진형 머스탱계열을 상대로도 F4U-1 후기형이 P-51B를 상대로도 24,000피트 이하에선 호각세를 보이며 F4U-4의 경우는 전쟁중 등장한 모든 머스탱계열을 상대로 우세를 보이게 된다.

 

"가볍고 경쾌한 스틱포스, 뛰어난 성능, 충분한 스톨 경보와 부드러운 스톨특성은 이 기종을 테스트 최고의 무기로 선택케 했다."

 

테스트에서 콜세어는 거대한 날개와 고양력 에어포일에서 나오는 선회력으로 제로와도 선회전을 벌일 수 있었다던 헬켓을 순간적인 방향전환에서 확실하게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스틱포스가 원인으로서 같은 이유로 썬더볼트도 헬켓을 능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테스트기종인 FG-1D와 달리 전후의 후기형 콜세어들은 전금속날개가 적용되고 승강타의 부스트탭도 일반적인 밸런스탭에서 스프링타입 밸런스탭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더욱 뛰어난 조종성과 고속기동성을 갖추게 되었다.

 

저속기동도 상당한 편이었다. 고속비행을 중시한 대형기임에도 체급에 걸맞지 않은 낮은 익면하중과 높은 양력계수를 가지고 있어 태평양이면 모를까 유럽전선 기준으론 선회반경이 좁은 편에 속하는 기종이었으며 여기에 우수한 저속추력과 뛰어난 조종성이 어우러져 우수한 저속격투전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거기다 굉장히 뛰어난 효율의 플랩을 가지고 있어서 전투 플랩 전개시 제로기에도 어느정도 따라붙을 수 있는 선회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래는 제로센 52형과 대전말 미군기들의 비교 보고서에서 선회력 부문만 뽑아 번역해본 것이다.

 

우선 TAIC 17번 보고서의 헬켓과 콜세어, 비교기종들은 모두 추가적인 외부무장이나 장비를 배제한 순수 전비중량을 기준으로 했다.

 

A. 제로센 52형 vs F4U-1D 콜세어

 

선회 : 저속에선 제로센 52형이 훨씬 우세하나 이는 고도의 증가에 따라 감소하여 30000피트 시점에선 아주 약간의 차이만이 존재함. 제로센 52형은 10000 피트에서 3.5턴만에 우세를 점할 수 있으나 F4U-1D는 175노트에서 플랩을 사용하여 반바퀴 혹은 150노트까지 따라붙을 수 있음.

 

기동성 : 제로센 52형은 175노트 이하에서 놀라운 기동성을 가지고 있어 F4U-1D보다 훨씬 우세하나 속도에 따른 스틱포스의 증가에 의하여 200노트 이상에서는 F4U-1D가 우세함.

 

B. 제로센 52형 vs F6F-5 헬캣

 

선회 : 저속에선 제로센 52형이 훨씬 우세하나 이는 고도의 증가에 따라 감소하여 30000피트 시점에선 동등함. 제로센 52형은 10000 피트에서 3.5턴만에 우세를 점할 수 있음.

 

기동성 : 제로센 52형은 175노트 이하에서 놀라운 기동성을 가지고 있어 F4U-1D보다 훨씬 우세하나 속도에 따른 스틱포스의 증가에 의하여 200노트 이상에서는 F6F-5가 우세함.

 

보고서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F4U-1D는 F6F-5보다 선회력이 살짝 떨어지지만 제로센의 입장에선 동일하게 3.5턴으로 제압 가능한 수준의 차이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기동성 비교도 동일한 결과를 보여주므로 양 기종의 기동성은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콜세어는 플랩을 전개하여 좀 더 낮은 속도까지 우세를 보이므로 초저속 영역에선 되려 헬켓을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수평비교가 가능한 것은 F6F-5와 F4U-1D의 엔진과 프로펠러가 동일하기 때문으로서 콜세어와 헬켓은 서로 다른 형번의 엔진을 가지고 있으나 R-2800-8과 R-2800-10의 차이는 카뷰레이터 위치일 뿐 나머지는 완전히 동일한 엔진이다.

 

제로센 52형과 미육군항공대의 기체들을 비교한 TAIC 38번을 참고하면 콜세어나 헬켓이 가진 기동성의 위치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다음은 유럽전선의 일선급 미군기 트리오인 머스탱, 썬더볼트, 라이트닝과 상기한 보고서에 등장했던 제로센 52형의 선회력 비교부분을 번역한 내용이다.

 

즉 튼튼하다는 일선급 미군기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G내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지속기동의 상한선은 G-Applied Load Factor라고 하고 순간적으로 버틸 수 있는 기동제한은 이의 1.5배나 그 이상으로 보통 Ultimate Load Factor라 하는데, 전비중량에서 7.5G의 지속기동이 보장된다는 소리는 순간기동으로는 그 1.5배인 11.25G를 버틸 수 있다는 의미로서 콜세어의 우수한 고속기동능력은 이러한 높은 G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우리의 낮은 손실률은 콜세어의 그 속도와 튼튼함에 기인한다."

- 케네스 A 월쉬

 

 

뿐만 아니라 R-2800 엔진과 거대한 체급으로 인하여 내탄성도 뛰어난 편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공중전은 적군 항공기를 산산조각낼 수 있는 대구경 기관포가 아니고서야 기체표면을 손상시켜 양력을 잃거나 공기역학적인 균형을 망가뜨림으로서 적군 항공기를 제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체급이 큰 기체는 제압을 위해 손상시켜야할 범위도 넓어지므로 같은 면적의 표면이 손상되어도 체급이 작은 기체에 비하여 유리했다.

 

40mm 대공포에 피격되고 귀환한 BuNo.82290기의 주익, 날개 중앙부분이 거의 찢겨나갔음에도 먼 거리를 귀환하여 착함에 성공했다. BuNo.82290기는 샹그릴라에서 활동하던 VF-85 소속의 F4U-1D로 45년 6월 2일의 사진이다.

 

태평양 전선 후반, 일본군 에이스 파일럿이자 교관인 이와모토 테츠조는 제자가 콜세어를 격추했다고 하자 "확실히 잡았나? 불 붙은 정도만으로는 안돼. 구라망은 그 정도로도 살아돌아갈 수 있으니까."라고 평가했다. 미군 군용기들의 우수한 내구성에서 콜세어라고 예외는 아니었던 셈이다. 타니미즈 타케오 비조장에 의하면 특정한 각도에서 사격하지 않으면 아예 총알이 튕겨져나왔다고 한다.

 

단, 이러한 사례들만 가지고 콜세어가 기관총 공격엔 끄떡없다거나 대구경 기관포의 피탄에도 무난히 귀환이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상술했듯이) 항공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소프트 타겟이므로 피탄당한 장소가 나쁘면 제 아무리 크고 튼튼한 항공기라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에하라 료지같이 콜세어를 다수 격추한 일본군 에이스의 '기관총 맞췄는데 튕겨나갔다는건 오인이고 20mm 맞추면 박살난다.' 같은 증언도 있으므로 비행하는 장갑차나 전차 같은 맷집을 상상해서는 안된다.

 

또 구조상의 취약점도 있었는데 익근의 인테이크 가장자리에 위치한 오일쿨러가 그것이다. 헬켓이나 썬더볼트는 엔진바로 뒤쪽에 오일쿨러가 위치하고 있어 전방에서의 공격을 엔진이 방어해주지만 콜세어는 그렇지 못하므로 정면에서의 공격을 자주 받게되는 지상공격시 생존률은 상기한 두 기종에 비하면 떨어지는 편이다. 이는 한국전쟁에 사용되는 후기형 기종들에서야 해결되게 된다.

 

1943년 미육군 항공대에서 초기형의 콜세어를 입수하여 테스트한 결과 선회력을 포함한 전반적인 격투전 성능에 있어서 일선급 육군기들인 머스탱, 썬더볼트, 라이트닝 트리오보다 뛰어나며 주밍 능력에 있어서도 썬더볼트와 동급으로 평가했다.

 

1944년 미해군 항공대 또한 육군항공대의 P-51B를 입수해 후기형 F4U-1과 비교한 결과 콜세어가 머스탱보다 전반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일본 제국 측의 평가는 의외로 헬캣보다 무섭지 않았다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F6F가 격투전으로도 제로기에 대항할 수 있는 기체였고 F6F를 탄 파일럿들이 F4F 시절부터 제로기와 싸워오던 백전연마된 베테랑들이었던 것에 반해 콜세어의 파일럿들은 초기부터 콜세어를 수령한 일부 부대를 제외하면 평균적인 실력면에서 밀렸던 점등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다른 전투기와는 다르게 어떤 고도에서 만나도 상대하기 어려웠다는 소리나 늑대가 나타났다며 절망감을 나타낸 수기등도 있으므로 기본적으로는 무서운 상대였던 것 같다. 이상하게 콜세어와 헬켓은 일본과 미국에서 상대적인 평가가 다른데, 미국에선 스펙도 뛰어나고 다목적임무도 더 잘 수행하고 한국전쟁에까지 활약한 콜세어를 더 쳐주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일본 측에서는 헬캣의 평가가 압도적으로 높다. 콜세어는 제로센으로 어떻게 해서든 격투전으로 끌고 들어가기만 하면 이길 수 있었지만 헬캣은 상기한 것처럼 격투전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힘든 기체였다. 그러나 상기한 자료들이 보여주듯이 기본적으로 콜세어와 헬켓의 선회력 차이는 미미한데다 콜세어는 우수한 플랩으로 오히려 더 날카로운 선회가 가능했으므로 주로 일본 파일럿들의 코멘트에 기반한 이런 평가는 어느정도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헬켓 파일럿의 코멘트에 의하면 헬켓이 제로센을 상대로 급선회시 70~80도 가량을 따라갈 수 있었으며 이것이 격추를 위해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여 제로센을 사냥할 수 있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콜세어도 마찬가지로 보유한 능력이었으며 되려 우수한 플랩으로 180도까지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콜세어는 상기한 숙련도 문제에 더해 성능의 우위를 확실히 살릴 수 있는 일격이탈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공중전=선회전이라는 성향을 가진 파일럿이 많은 일본 파일럿들의 관점에서는 콜세어가 격투전을 기피하는 모습이 '약해서'로 느껴졌을 수 있다. 그러나 위쪽에서 인용한 라바울 항공대 지휘관들의 심문내용과 같이 기체 자체에 대하여 엄밀한 평가를 한 경우 콜세어는 일본측의 입장에도 가장 강력한 적전투기로 꼽히기도 하였다.

 

 

콜세어는 1944년 말이 되어서야 항모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주로 지상기지에서 해병대 소속의 전폭기로 운용되었고 항모와 함께 적을 찾아다니며 박살내고 다녔던 와일드캣이나 헬켓등의 함재기들에 비하여 능동적인 전투기회가 적어 전과를 올리기 힘들었다. 거기에 본격적으로 항모에 탑재되던 시기에는 이미 일본 제국 항공력은 소멸한 지 오래였기 때문에 전투기보다는 전폭기로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어 많은 기체가 VBF 같은 전투폭격비행단의 주 공격기로 활동하게 되면서 순수한 전투기로서 활약할 기회가 적어 일본 항공기와의 격추 교환비는 헬캣의 19:1에 밀리는 2위인 11.3:1에 머물렀다. 든든한 폭장능력을 활용한 전투폭격기로서의 활약은 투입 초기부터 두드러져 콜세어는 태평양 전선 기간동안 총 14,171톤의 폭장을 투하했다. 전쟁기간 동안 미군 전투기에서 투하된 폭탄의 70%가 바로 콜세어로 부터 투하된 것이다.

 

대전 후반부터는 문제가 해결되어 운용기간 전체로 따져보면 대전 후반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대부분의 기간동안 함재기로서 잘 운용되었다. 그래도 가장 필요할 때 항공모함 위에 없었다. 이를 증명하는 수치로 콜세어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64051번의 출격을 했는데 그 중 9581번만이 항공모함에서의 출격이었다. 전쟁 중 콜세어 손실은 적 항공기으로 인한 격추로 손실입은게 189대, 대공 사격과 비전투 손실 및 지상 파괴같은 기타 사유 손실로는 1435대였다. 공중전에서 189대가 격추 되고 2,140대의 적 항공기를 파괴하여 최종적인 공중전 교환비는 11.3:1 이었다.

 

 

강력한 엔진출력에다 불안정한 항모 착함 성능 때문에 초기에는 멋모르고 소위를 태웠다 착함사고가 많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기체의 강도가 매우 튼튼해서 거의 다 목숨은 건졌다. 그것 때문에 미 해병 항공대에서는 대위 이상이 되어야 콜세어를 탑승시켰다고 한다.

 

오키나와의 천사

 

오키나와 전투 당시 교범대로의 고도에서 안전한 폭격을 하던 미 해군 항공대와는 다르게 미 해병 항공대의 콜세어들은 육군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지원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초저공에서 로켓과 폭탄을 쏟아붓는 저돌적인 공격을 감행 지상의 병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그들에게 "오키나와의 천사(The Angel of Okinawa)" 혹은 "오키나와의 연인(The Sweetheart of Okinawa)" 별명을 부여받았다. 이 때 해병 항공대는 근접지원을 위해 약 14,000회 출격했다.

 

마리아나의 연인

 

아직 콜세어가 항모에 올라가기 전 지상에서 활동할때 붙은 별명으로 이때부터 이미 열심히 폭탄을 퍼다나르고 있었기 때문에 지상의 병사들이 붙였다는 설과 기존 해군기와 일선을 긋는 세련된 형상과 유려한 역갈매기형의 주익이 아름다운 미인을 연상시킨다 하여 조종사들이 붙였다는 설 등이 있다.

 

미 해병대

 

미 해병대 최고의 에이스 파일럿(28대 격추)이자 메달 오브 아너 수훈자인 그레고리 페피 보잉턴 대령도 이 기체를 사용했다.

 

MiG-15 격추

 

미 해군 최초로 MiG-15를 격추한 적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제시 G. 팔머(Jesse G. Folmar)는 윙맨인 다니엘스와 함께 대동강 남쪽의 공산군 집결지 공격을 위해 F4U-4B를 몰고 가고 있었다. 그들은 상공에서 두대의 MiG-15가 공격을 준비중인 것을 발견하고 기수를 돌린 후 전투 태세에 돌입했으나 몇 초 후 또 다른 두대의 MiG-15 들에게 8시 방향에서 공격을 받게 되었다. 팔머는 적기가 사거리에 접근하기 전에 왼쪽으로 급선회하여 사격각을 확보하려고 하였으나 MiG-15의 엄청난 접근 속도로 인하여 실패하고 미그기들의 공격에 노출되었다. 그러자 팔머는 기체를 반전시켜 브레이킹 턴으로 오버슛 상황을 만들고 MiG-15가 그들을 지나쳐 오른쪽으로 상승 선회를 하는 타이밍을 노려 MiG-15를 격추했다. 그러나 이후 추가로 4대의 MiG-15가 교전에 가세하여 팔머와 다니엘스는 제트 전투기 7대와 프로펠러 전투기 2대 간의 절망적인 공중전에 돌입하게 된다. 결국 압도적인 열세에 몰린 팔머와 다니엘스는 디펜시브 위브를 펼치며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공격이 집중된 팔머의 콜세어가 격추당하고 만다. 윙맨이었던 다니엘스는 팔머를 노리던 MiG-15중 한대를 물고 꼬리에서 떼어내는데 성공하였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다른 MiG-15들의 공격에 팔머의 콜세어가 격추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전장에 남은 7대의 MiG-15들은 탈출한 팔머의 콜세어에게 사격을 퍼붓고는 기체가 해면에 충돌하는 것을 보곤 이탈하였다. 탈출한 팔머는 경상을 입고 구출되었으며 윙맨이었던 다니엘스는 무사히 귀환하였다.

 

참고로 이 '프롭기가 제트기를 격추'한 기록은 몇달 후 호커 시퓨리가 MiG-15를 격추시키고 더 이후에 A-1 스카이레이더가 MiG-17를 격추한 후에 갱신되었다.

 

 

체급과 무게로 인한 선입견과는 달리 넓은 익면적과 고양력 에어포일을 가진 콜세어는 기동성이 좋은 기종이다. 저속에서의 지속선회가 특기인 제로기나 와일드캣, 헬켓과 비교되었기 때문에 저속선회만을 가지고 기동성이 나쁜 기종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잦은데 이런 저속기동도 유럽전선 기준으로서는 좋은 편에 들어가는 기종으로서 특히 가벼운 스틱포스로 인한 민첩성과 고속기동성의 영역에선 전역에 관계 없이 독보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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