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이집트 신화(Egyptian Myth)
고대 이집트는 모든 인류가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신비로운 문명 중 하나 남아있다. 그것은 여전히 “나일강의 선물(Gifts of the Nile)”이라고 하며 피라미드(pyramid)와 스핑크스(sphinx)의 발상지로 간주됩니다, 이집트 하면 누구나가 피라미드를 떠올릴 것이다. 그와 함께 연상되는 피라미드 속 미라와 각종 부장품들. 그러한 유물을 통해서 우리는 내세를 중요시 여겼던 고대 이집트인의 사상을 엿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내세적 신앙의 발로는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또한 우리는 그 유물들을 매개로 고대 이집트인의 정교한 기술과 섬세한 예술적 솜씨마저 느낄 수가 있다.
이집트의 각 지역에서 숭배되었던 고대의 창조 신화로부터 그들이 신성하게 여겨 숭배했던 신들과 파라오와 성스러운 동물들, 본격적인 내세 신앙이 시작되었던 오시리스의 숭배에 대한 내용이 《이집트 신화》의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일련의 연관성을 갖는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있어 신화는 그들의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고, 역사 속에서 면면히 흘러내려왔다.
태양신 라는 헤르모폴리스(Hermopolis)를 중심으로 고대 이집트 전 기간에 걸쳐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집트 신화에서 등장하는 태양신 라(La)나 매의 신 호루스(Horus) 등에 대한 숭배는 왕권의 확립 및 계승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당시의 정치제도 및 사상, 사회상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사료가 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신화를 통해서 우리는 단순히 그 시대의 신앙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가 속한 사회적, 시대적 문화 또한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집트 신화와 우리가 직접적 연관성은 없다. 하지만 새롭고 급격히 변해 가는 현대에서 타문화에 대한 상대적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문화를 세계에 널이 알리는데 일조하는 동시에 진정한 현대 문명인으로서의 하나의 자세일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신앙은 결국 내세의 지배자 오시리스로 귀결되지만, 그리스⋅로마 신화와 같이 고대 이집트도 여러 신을 신봉하는 다신교(多神敎)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신만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이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자연이나 동물, 여러 가지 관념까지도 신성시 여겼기 때문인데, 어쩌면 이러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고방식은 그들의 자연환경과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신들은 각각의 탄생 신화와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간혹은 비슷한 의미를 지닌 신들과 결합되기도 한다.
이집트 신화에서도 많은 신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집트의 여러 지역에는 고유의 창조 신화가 있었다. 눈(Nun)이나 아툼, 라 등과 같은 태초의 신, 네케베트와 아몬, 아텐 등의 파라오와 왕국의 수호신, 프타와 세크메트 등의 창조와 다산, 출생을 담당하는 신, 세케르와 셀케트 등의 죽음의 신과 같은 여러 신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이집트의 신들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처럼 서로 결혼을 하기도 하고, 자식을 낳기도 하며, 자신의 권력을 분산시키기도 한다. 인격신(人格神)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종종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몇몇 신들과 동일시되기도 하는데, 이는 이 양대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 신앙에서 내세 숭배에 관한 것은 대부분 오시리스와 연관이 되어 있다. 이 부분은 그리스의 저작가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서기 46년∼120년)에 의해 상세하게 전해지고 있는데, 오시리스는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자의 신으로 숭배되었던 신으로, 후에 형제인 세트에게 살해된다. 오시리스는 죽은 후 부활하여 죽은 자들이 사는 나라의 왕이 되었으며, 부인인 이시스가 낳은 호루스가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다. 따라서 오시리스는 죽은 자의 왕이면서, 한편으로는 부활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이러한 오시리스 숭배는 이집트의 농경사회와도 연관되어 신앙은 농경의례(農耕儀禮, 농작물의 풍작을 빌거나 수확물의 영혼 또는 정령을 위로함으로써 농경신에 감사하는 의례나 주술)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더욱이 현재까지 거대하고 정교한 유적으로 남아 있는 피라미드와 미라의 경우는 이러한 오시리스 숭배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과 사후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영생에 대하여 매우 정교한 사고 체계를 만들어 냈다. 이집트인들은 인간은 ‘렌(Ren)’과 ‘바(Ba)’, ‘카(Ka)’, ‘셰우트(Sheut)’, ‘입(Ib, 또는 이브)’의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이 다섯 가지 요소 외에도 인간의 육신인 하(Ha)가 있으며, 다른 영혼인 아크후(Aakhu)와 카이부트(Khaibut), 카트(Khat)가 있다고 여겼다. ‘렌(Ren)’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붙여지는 이름을 의미하며 이집트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오래 불리면 불릴수록 오래 산다고 믿었다. ‘바(Ba)’는 현대 서구에서의 영혼(Soul)와 매우 유사한 관계가 있다. ‘바’는 타인과 자신을 구별해주는 인격이나 개성을 의미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바’는 여전히 죽은 몸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는데, 심장 무게 달기 의식을 통과한 카와 다시 만나 아크가 되어 부활한다고 믿었다.
카(Ka)는 죽은 자와 산 자를 구분 짓는 영적인 요소의 개념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카가 몸을 떠나면 죽는다고 믿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의 신 크눔이 아이의 형상을 한 육체를 도자기를 굽듯이 구워 어머니의 뱃속에 넣는다고 여겼다. 그러면 헤케트와 메스케넷이 카를 만들어 아이가 태어날 때 생명을 불어 준다고 믿었다. 이는 다른 종교의 영혼(Spirit)과 유사하다. 카는 육체가 죽어서도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는 믿음에 따라, 죽은 자의 무덤에 음식들을 제물로 바쳤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의 신 크눔(God Khnum)이 아이의 형상을 한 육체를 도자기를 굽듯이 구워 어머니의 뱃속에 넣는다고 여겼다. 그러면 헤케트(Heket)와 메스케넷(Meskhenet)이 카를 만들어 아이가 태어날 때 생명을 불어 준다고 믿었다. 이는 다른 종교의 영혼(Spirit)과 유사하다. 카는 육체가 죽어서도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는 믿음에 따라, 죽은 자의 무덤에 음식들을 제물로 바쳤다.
‘셰우트(Sheut)’는 언제나 사람을 따라다니는 그림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그림자가 그 사람의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추측하였는데 이는 사람의 형상이나 신들이 때때로 그들의 그림자과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입(ib)은 고대 이집트 영혼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심장을 의미하는 이브이다. 형이상학적 심장은 어머니에게서 아이에게 전해지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것은 마트여신의 심장 무게 달기 의식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심장이나 두뇌를 마음과 생각으로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심장은 사후세계를 가는 중요한 열쇠로서 미라를 만들 때에도 시신 밖으로 꺼내지 않았는데, 심장은 고대 이집트인에게 양심과 같은 개념이다. 아크후(Aakhu)는 고대 이집트 종교 역사에서의 죽음에 대한 개념으로 아크는 카(Ka)와 바바(Ba)가 다시 합쳐져서 만들어진 존재이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이 죽는 다는 것은 ‘카가 육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겼다. 장례식에서도 사제들은 입을 여는 의식을 통하여 죽음에서 부활할 가능성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바를 육체에 구속시키는 주술을 하였다. 이 의식으로 인하여 사후세계에서 바와 카가 다시 만나 아크를 이룰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부활의 개념은 매년 반복되는 일어나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하여 홍수에 떠밀려온 토사(土砂)가 사막을 새로운 생명의 땅으로 만드는 지역적 특성에서 나온 개념이라 추정한다. 고대 이집트인의 죽음에 대한 사고는 자신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기지고 있는 자연환경(自然環境)과 많은 상관성(相關性)을 가진다. 척박한 사막과 광야에서 나일강의 범람과 그 범람 후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나오는 생명의 원동력을 고대 이집트인은 태양의 위력에서 찾았다. 생명력의 근원이 되는 태양은 매일 똑같은 모습으로 뜨고 지고를 반복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이들은 날이 저물면 해는 어디로 가고 또 어떻게 다시 떠오르는지에 대해 사유했다. 태양의 지속적, 반복적인 운행은 영원과 불멸을 상징했다. 그리고 일출과 일몰의 과정은 부활과 영생의 개념을 탄생시켰다. 따라서 태양의 운행은 고대 이집트인이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육신의 죽음을 다시 부활한다는 종교적 영성을 사유하게 만들었다. 매일 밤마다 바가 새로운 생명을 찾아 떠나 아침이 되기 전에 아크로(Acro, 높은 곳)서 다시 부활하게 된다고 믿었다. 죽음은 또 하나의 신비로운 재탄생의 과정, 곧 부활과 영생의 과정이 된 것이다. 이들은 하루해가 뜨는 것을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것으로 또 해가 저무는 것을 하나의 죽음으로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해가 뜨는 동쪽을 생명과 부활의 세계로, 해가 지는 서쪽을 죽음의 세계라 여겼다.
태양은 고대 이집트인에게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근원이다. 이집트가 나일강이 가져다준 선물이라면 죽음은 삶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이들에게 죽음은 궁극적으로 삶이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후세계를 말하는, 두앗트(Duat)에 대한 믿음은 왕조시대에 이르러서는 파라오만이 바가 있으며 오직 파라오만이 사후에 신과 함께 할 수 있다 믿었으며 또한 귀족들은 파라오로 부터 무덤을 하사받아 그곳에 안치되면 그들도 파라오와 함께 사후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며 파라오가 죽으면 밤하늘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북극성의 주변에 살게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은 고왕국을 지나며 오시리스 신의 중요성 부각과 태양신 라의 부활과 연계된다. 고왕국의 후기와 제1중간기 동안에는 ‘바(Ba)’를 소유할 수 있는 자격과 사후세계로 갈 가능성이 모든 사람들에게로 점차 확대된다.
∎ 오시리스(Osiris)
오시리스와 별자리 오리온, 고대 이집트 천문학자들은 오시리스가 오리온 별자리의 화신(incarnation)라 믿었다. 그리고 오리시스의 배우자 이시스(Isis) 여신이 왼쪽 아래 빛나는 시리우스(Sirius) 별의 화신라 믿었는데, 이 별이 보이면 나일강의 홍수가 시작된다.
구 왕국 초기 죽은 자들의 세계 두앗트(Duat)를 다스린다고 믿었던 태양신 라의 아들이자 태양신인, 오시리스(Orisis)는 이집트 신화에서 이집트를 다스리는 최초의 왕, 파라오로 등장하는데, 오시리스 신화에서 태양신 라로 부터 권위를 부여받고 오리시스는 이집트를 다스린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배는 죽은 자의 영혼을 지하세계인 저승세계로 이동해주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통상 모형 장례용 배는 종종 쌍을 이루는데, 하나는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나라로 나르고 다른 하나는 지하 세계로 실어 나른다고 여겼다. 죽은 자는 오시리스가 다스리는 죽은 자들의 세상 두앗트에 도달하기 위해서 태양신 라가 거주하는 태양선(Solar Boat)을 타고 라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영혼을 해하려는 적을 물리치게 된다. 사자의 서는 이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사자의 서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장례 준비물 중 하나로 원래는 기도와 신에 대한 찬가, 마술 주문,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자신을 변론하는 방법 등을 다루고 있으며, 죽은 자를 위한 사후세계 안내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책은 시신을 매장할 때 같이 넣어두는데 이는 죽은 자의 영혼이 이 책의 안내를 받아 지하 세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자의 서(死者-書, Book of the Dead)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이 도달해야 하는 최후 심판의 장소까지 도달하기 위하여 죽은 자가 자신의 영혼이 파괴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며 통과하는 여러 관문에서 신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과정들이 소개된다. 죽은 자는 두아트를 지나게 될 때 여러 관문을 통과하게 되는데, 이 과정은 무서운 과정들로 이때 태양신 라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지하세계 입구에는 라의 태양선에 올라 이 과정을 이겨내고자 하는 영혼들이 많이 있다. 라의 도움으로 이 과정을 통과하게 되면 심장의 무게 달기 의식(Weighs the heart of the dead)이라는 최후의 법정에 이르게 된다.
∎ 아누비스(Anubis)
생전의 행위에 대한 최후 재판인 심장 무게 달기 의식은 구왕조 초기에는 오시리스가 “사후세계의 신”으로써 이 의식을 주관했다. 그리고 아누비스(Anubis)는 오시리스에게 “죽은 자들의 신”의 자리를 내주고 죽은 자를 보호하거나 장례 의식을 주관하는 신으로 지위가 격하되었다. 이후 “영혼의 안내자”라 불리우며 저승사자로서 사후세계를 지배하는 신이 된 아누비스가 심장 무게달기 의식을 주관하는 신이 되었다. 아누비스는 태양의 신 ‘르(Re)’와 죽은 자의 여신 넵프티스(Nephthys)의 아들, 또는 ‘라(Ra)’와 이지스 여신의 아들로 그리스인들은 나중에 오시리스를 헤르메스(Hermes)와 동일시하여 헤르마누비스(Hermanubis)라는 복합적 신을 탄생시켰으며 아누비스는 서쪽 방향의 군주란 의미로, 켄티-이멘티우(Khenty-Imentiu)라 불리게 되는데 이는 사후세계를 의미하는 서쪽을 관장하는 신이란 의미이다.
죽은 자의 심장의 무게를 저울에 다는 장면은 사자의 서에서 절정을 이룬다. 심장의 무게를 달기 전 죽은 자는 생전 자신의 생활이 결백하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강도질, 거짓말, 살해, 신에 대한 저주, 간음, 사악한 말, 인신공격, 남을 속임, 남의 이야기 엿듣기, 이유 없이 화내기, 법을 어기는 행위, 폭력, 경솔함, 부덕한 행위 등은 사자의 서에 언급된 고대 이집트인이 지상에서 하지 말아야 할 항목들이다. 심장, 즉 입(Ib, 또는 이브)은 저울대에 진리와 정의의 여신마트(Ma’at)의 깃털과 균형을 이뤄지도록 놓이게 된다. 마트 여신은 이집트 사회의 안정 유지에 기초가 되는 철학, 종교 개념, 조화의 원리, 행동 규범을 말하는데, 마트는 정의와 올바른 삶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우주의 질서를 상징하는데 즉 이는 죽은 자의 삶을 도덕적으로 올곧게 평가하는 잣대의 기준이었다.
만약 살아있을 적에 많은 악한 행동을 하였다면, 심장은 마트의 깃털보다 무거워 저울이 심장 쪽으로 기울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머리는 악어에 앞발과 가슴은 사자, 뒷발과 배 아래는 하마의 모양인 암무트(Ammut)라 불리는 괴물에 의해 잡아먹힌다. 그러면 죽은 자는 영원히 사후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존재가 소멸되어 버리고 만다. 심장(Ib)은 고대 이집트인에게 중요한 신체 기관으로 인식되었다. 미라를 제작할 때 신체 장기 중 심장은 몸 안에 남겨두었다. 심장의 보존은 중요했으며, 도굴 당하지 않도록 지켜내야 하는 중요한 신체 기관이었다. 왜냐하면 심장은 영생을 위한 오시리스의 심판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청되었기 때문이다. 즉, 부활과 영생을 결정짓는 척도가 되었다. 심장은 고대 이집트인에게 양심과 같은 개념으로 여겨져 고대 이집트인에게 심장을 잃게 되는 것은 더 이상 영생할 수 없는 근거가 되며, 영혼을 잃는 것으로 완전한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에게 암무트(Ammut)는 영원한 죽음을 가져다주는 존재이다. 하지만, 만약 살아서 선한 행동을 많이 하고 악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저울은 평형을 이루고 죽은 자의 카(Ka)와 바(Ba)는 다시 합쳐져 아크(Akh)가 되었다고 믿어졌다. 아크의 목적지에 대한 믿음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는데, 주로 정당함이 입증된 죽은 자는 오시리스의 왕국이라 불리는 하늘과 땅이 만나 태양신 라(La)가 지나가는 두아트(Duat)라 불리는 서쪽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 있는 사후세계에서 살게 된다고 믿어졌다. 그런 이유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은 자 이름 앞에 오시리스라는 신의 이름을 붙여서 불렀는데 이는 죽은 뒤에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오시리스와 함께 지내기를 기원하는 의미였다. 이후 중왕국과 신왕국을 거치면서 아크는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도 여행한다고 여겨졌다.
∎ 라(Ra, Rah, Ré)
라(Ra, Rah, Ré)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이다. 고대 이집트 제5왕조 때부터 주신으로 숭배 받았다. 그는 이집트 낮, 정오의 태양신으로서, 아침에는 케프리(Khepri), 저녁에는 아툼(Atum)이라고 불리었다. 벽화(壁畫)에서 라는 매의 머리로 코브라가 태양을 둘러싼 모양의 왕관을 쓰고 있다. 주요 숭배 도시는 태양의 도시라 불린 헬리오폴리스(Heliopolis)다. 고대 이집트 후기 왕조에 이르러서는, 호루스와 합쳐져, 라-호라크티(Ra-Harakhte)라고 불리었다. 태양신은 파라오를 보호하고 왕권을 상징하였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라에 대한 숭배의식은 더 강력해졌다.
그는 4명의 딸을 낳았는데, 마트(Ma'at)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법과 정의, 조화, 진리, 지혜의 여신이다. 그녀의 머리 위에 꽂힌 깃털이 마트의 상징이다. 태양신 라의 딸로 나오며, 지식과 달의 신인 토트의 아내이다. 머리에 깃털장식을 한 모습이나 새의 날개를 양손에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집트 창조 신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신으로 법과 정의, 조화의 법칙 그 자체를 인격화한 존재로서, 이집트의 지상 신 파라오조차 그녀를 거스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고대 이집트 전 지역에서 숭배되었다. 바스테트(Bastet)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다산과 풍요의 여신이다.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토르(Hathor)는 사랑과 미의 여신이며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인 호루스의 부인이다. 태양신 라의 딸이며, 하토르가 태양신 라의 벌을 행할 때에는 파괴의 여신 세크메트로 변한다고도 알려져 있다. 세크메트(Sekhmet)는 암사자의 머리를 한 파괴의 여신이다. 평상시에는 소의 머리를 한 사랑과 미의 여신인 하토르(Hathor)이나, 라의 벌을 인류에게 가할 때는 세크메트로 변하였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 후기에 이르러서는 소의 눈이 인류에 대한 동정의 의미를 담은 “라의 눈”이라고 불리었는데, 그래서 소 또한 라의 가축이라 숭배되었다.
∎ 오리시스(Osiris)
일단 이집트 신화에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이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모두 자연의 섭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동물, 식물, 그리고 자연의 모든 것들 중에서 경외 대상으로 삼았던 것들이 신들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고대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이 일단 다신교의 신화이다. 그리고 자연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기에, 이집트인들은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 여기지 않는다. 즉, 사람은 죽어도 영혼은 계속 존재하며, 자연이 계속되듯이 영혼 역시 언젠가 본래의 육체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내세 신앙을 바탕으로 현실을 느끼고 살아간다.
따라서 그들은 죽은 자의 시체는 미라(The Mummy)로 만들었으며, 피라미드를 만들고 금단의 계곡(왕가의 계곡, Vally of the king)을 만들어 영혼을 보존하는 일에 힘썼다. 이러한 영혼을 보존하는 일에는 사후 세계를 위한 준비가 필요한 법인데, 이 사후세계를 위한 준비를 같이 적어 묻어놓은 것이 바로 《사자의 서》이다. 그리고 이집트 신화는 고대 문명의 신화가 되어 북쪽으로 건너가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원형을 이루게 된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고, 모든 것이 처음 시작될 때 모든 것은 물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바다의 신이 있었으며 그 바다의 신의 이름은 나일강이었는데, 그들은 나일강을 눈(Num,또는 누 nus)이라 불렀다. 처음에 나일강은 암흑이었으나, 이 암흑속에서 스스로 빛의 신이 탄생하였는데 그 신의 이름은 아톰이며 태어나면서부터 왕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아톰은 반려자가 없이 스스로 혼자 2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를 낳았는데, 그 아들, 딸은 대지의 신 게브(Geb), 하늘의 신 누트(Nut), 공기의 신 슈(Shu), 습기의 신 테프누트(Tefnut)였다. 이들은 2명씩 짝을 이루어 서로 결혼하였는데, 그 중 게브와 누트는 정말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다.
원래 이집트의 태양력에서 1년은 360일 이었으나 게브와 누트가 너무 사랑해서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더 필요했고, 따라서 사람들은 5일이라는 시간을 더 만들어 이들을 축복해 주기로 하여 후세 사람들은 5일을 축제일로 정하여 즐겁게 놀 곤 했는데, 바로 이 5일이라는 시간에 여러 신들이 탄생하게 된다.
첫째 날, 오시리스(Osiris)가 태어났다. 그는 깃털 장식 모지를 쓰고 갈고리와 도리깨를 들고 있는 남자신이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디오네소스와 동격이다.
둘째 날, 하로에리스(Haroeris)가 태어났다. 그는 대호루스라고도 부른다.
셋째 날, 세트(Set)가 태어났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최강의 괴물인 티본이라 불린다.
넷째 날, 여신 이시스(Isis)가 태어났다. 그녀가 나중에 오시리스의 부인이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라여신과 동격이다.
마지막 날, 네프티스(Nephthys) 여신이 태어났다. 그는 세트의 아내가 된다.
오시리스 신화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 다섯 신들의 이야기이며, 세트는 악의 신으로서 오시리스를 질투하여 그를 찢어죽이며, 이시스는 사랑의 여신으로서 죽은 오시리스를 다시 살려 다시 부활시키고 나중에 세트를 용서한다. 네프티스는 오시리스를 유혹하여 사생아 아누비스(죽음의 신)을 낳는다. 이 신화의 특징은,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내세 신앙, 이집트 사회의 특징인 근친상간(近親相姦)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첫째 날 태어난 오시리스는 이집트의 왕이 되었으며, 그는 여동생인 이시스와 결혼하여 호루스라는 아들을 낳는다.(오시리스 동생과 이름이 같기에, 오시리스 동생을 대호루스라고 따로 부릅니다.) 그런데, 동생 세트는 형이라는 이유로 이집트의 지도자가 된 오시리스를 미워한다. 어느 날 세트는 아주 좋은 관을 가져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관(棺)이 몸에 꼭 맞는 사람에게 관을 주겠다.
다른 사람은 모두 관 크기와 몸이 맞지 않았는데, 오시리스가 그 관에 들어가자 크기가 딱 맞았다. 세트는 관에 들어간 오시리스를 관에 뚜껑을 덮어 가둔 채 나일강에 관을 던져 버렸다. 그 관은 강물에 떠내려가 지중해 북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백성들은 오시리스의 죽음에 슬퍼했고, 세트의 잔인함을 원망했고,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상복을 지어 입고서, 남편의 유체를 찾기 위해 정령들에게 묻고 물어 북쪽 이집트 전역을 헤매고 다녔다. 나일 강에 버려진 오시리스의 사체는 바다 건너 멀리 페니키아의 뷔블로스(레바논)까지 흘러갔다. 그러다가 불가사의한 일이 있어 났는데 관이 버드나무가지에 걸려 관을 둘러싸고 있던 버드나무가 계속 성장하여 큰 나무가 되었던 것이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뷔블로스 왕은 마침 궁전을 짓기 위해 그 버드나무를 잘라 궁전의 기둥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시스는 그 무렵 페니키아에 당도하여 정체를 숨긴 채 왕궁을 찾아갔다. 그리고 기둥이 된 오시리스를 살리기 위해 뷔블로스의 왕비 아스타르티가 낳은 아들, 즉 왕자의 유모를 자청했다. 이스시는 낮에는 어린 뷔블로스의 왕자를 가르치고, 밤에는 왕자를 영원한 불사의 몸으로 만들기 위해 불에 굽는 일을 했다.
어느 날, 뷔블로스의 왕비가 왕자를 불에 굽는 것을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마침,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소리를 지른 것 때문에 왕자는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이시스는 이제, 자신이 이집트 여신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오시리스의 관이 있는 궁전 기둥을 달라고 말한다. 이시스는 관만 꺼내고 다시 기둥은 돌려주었다.
이시스는 이집트로 돌아와 남편의 관을 아들 호루스가 있는 영지에 숨겨놓았다. 그런데, 세트는 이것을 알고 그 관을 열어서 오시리스의 몸을 14조각으로 나눠 잘게 썰어 버렸다. 그리고는 다시는 찾지 못하게 온 나라에 시체를 흩어놓았다. 여신 이시스는 다시 남편의 시체를 찾으러 다녔다. 결국 그녀는 턱부위만 빼고 모든 시체를 찾았다. 턱부위의 시체는 물고기가 먹어버렸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이후 나일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또 그녀는 토막난 시체를 찾을 때마다 장례를 치르곤 하였고, 그래서 이집트 곳곳에는 오시리스 무덤이 많았다고 한다.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시체를 다 모을 무렵에, 오리시스의 영혼이 나타가 아들 호루스에게 물었습니다.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냐?
호루스가 대답하길, 부모에게 사악한 짓을 한 자의 목을 베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다시 오시리스가 묻기를, 전쟁에서 사자와 말은 어느 쪽이 쓸모있느냐? 하였다.
호루스는,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적이 도망치는 길을 막을 수 있는 말이 더 소중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오시리스는 기뻐하며 호루스가 이기기를 기원해 주었다. 호루스에게는 많은 동료들이 모여들었고, 세트의 아내 네프티스 여신마저도 호루스를 돕겠다고 하였다. 세트는 배신한 아내를 쫓기 위해 뱀을 보냈으나, 호루스의 용감한 부하들은 그 뱀을 잡아 토막 내어 죽여 버렸다.
호루스는 아버지의 영혼이 말하는 대로 세트를 괴롭히면서 전쟁을 하여 결국 세트에게서 항복을 받아낸다. 그러나 사랑의 여신 이시스는 세트에게 보복을 하지 않고, 세트를 용서하면서 놓아주었다. 전쟁의 신으로 묘사되는 호루스는 원수를 놓아주는 어머니의 머리에 있던 신의 표식을 지워 버렸다고 한다. 훗날, 태양신 라의 아들인 토드(지식의 신, 그리스의 헤르메스)가 다시 그녀에게 신의 표식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호루스는 이후에도 계속 세트와 전쟁을 하였고, 세트는 결국 호루스에게 지고 말았다. 세트는 암살이라던가, 또는 모함으로 호루스를 몰아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호루스는 오시리스의 후계자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시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오시리스는 저승에서 부활하였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시체를 모아 신비로운 마법을 걸어 남편을 원래의 모습으로 부활시켰지만, 오시리스는 죽음과 부활의 신이 되어 죽음의 나라의 왕이 되어 버렸다. 이시스는 상심하면서도 남편을 잊을 수 없어 남편의 시체와 사랑을 나눠 하르포클라테스(Harpocrates)를 낳게 되는데, 이 아이는 너무 몸이 약해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한편 호루스는 여동생인 하토르(여인의 신)와 결혼하였다. 또한 남편인 세트가 죽은 뒤 네프티스는 죽음의 신이 된 오시리스를 유혹하여, 오시리스가 술에 취했을 때 그와 사랑을 하여 사생아인 아누비스를 낳게 되는데, 그가 바로 죽은 자를 인도하는 신으로서 사자의 서와 벽화에 나오는 신이다. 그는 자칼의 머리를 하고, 죽은 자의 영혼의 무게를 재는 곳에서 감독을 하고 있다.
이상의 이집트 신화의 특징은 오시리스로 대표되는 내세사상(來世思想)을 보여준다. 결국 불멸이 아닌 듯 죽었던 오시리스가 다시 재생하여 내세를 주관하는 죽음의 신이 되었고, 이집트인들은 이 오시리스를 가장 위대한 신중의 한명으로 추앙하였다. 태양신 라의 위대함의 근거도 바로 이 오시리스에서 비롯되기에, 태양신인 파라오의 권력과도 오시리스는 연관성이 있다. 이집트의 내세관을 상징하는 미라, 피라미드, 사자의 서도 그 근원을 탐구해 보면 바로 이 신화 속에서 보여 지는 사상을 가지고 있던 이집트인의 문화유산이다.
∎ 신이 지배하는 나라 이집트
고대 이집트는 왕과 종교적 절대자를 동일시하는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사회였다. 파라오(Pharaoh)라는 용어는 ‘두 땅의 주인 이라는 뜻과 ‘모든 사원의 수장(우두머리)’이라는 뜻이 합쳐져 있다.
여기서 두 땅은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를 말한다. 모든 사원의 수장은 파라오가 지상에서 신을 대신한다는 의미로, 곧 신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파라오는 이집트를 통틀어 지배하고 통치하는 사람이고 그 능력은 신에게 부여받은 것이다.
이처럼 이집트 신화는 단순히 신화에서 그치는 게 아니고 왕의 절대권력과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수단이 된다. 이렇게 하여 무려 3천 년간 신과 왕이 일치되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펼쳐 세계에서 가장 굳건한 신화의 나라가 되었다.
일찍이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나일 강은 정기적인 범람으로 비옥한 토양을 선물한 것 외에 이집트인들에게 자연 현상에 대한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하게 했다. 그리하여 이집트인들은 태양과 달, 별의 모양과 주기를 연구하고 사막과 강에 관해 깊은 생각을 한 끝에 그 자연현상의 정점에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신들의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게 하였다. 이집트 신화는 바로 나일 강을 비롯한 자연조건이 준 또 다른 선물인 셈이다.
나일 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으로 하류에서 여러 지류로 갈라져 지중해로 흘러 들어간다. 알파벳 D를 닮았다고 해서 이 지역을 ‘나일 델타라고 부른다. 세계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나일 강은 정기적인 범람으로 비옥한 토양을 선물로 주었다. 덕분에 이집트인들은 매우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을 지키는 신을 ‘하피(Hapi)’라고 부르며 축제를 벌이곤 했다.
이집트인들의 사후 세계관은 한마디로 ‘영속(永續, perpetuate)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도 현세와 똑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고 무덤에 함께 묻힌 부장품들이 그 삶을 유지시켜 준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오시리스(저승의 왕)가 지배하는 죽음 이후의 세상에서 현세에 자신이 누렸던 것과 똑같은 지위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가끔 영혼이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기도 하고, 만약 자신의 무덤을 훼손하거나 잘 모시지 않으면 살아있는 자들에게 보복당한다고 생각했다. 미라와 피라미드의 기적은 바로 이런 내세관에서 비롯된다.
이집트는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로 기원전 5천 년경부터 문명의 꽃을 피웠다. 상형문자를 만들어 세계 최초로 뭔가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도 이집트인들이었다.
문명의 발생과 함께 신화도 화려한 꽃을 피웠고 다른 나라 종교나 신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러 신들은 이집트 신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실제로 이집트의 사랑의 여신 하토르는 그리스 신화로 건너가 아프로디테로, 아누비스는 헤르메스로, 악의 신 세트는 악마 티폰으로 변형되었다. 그 기원은 기원전 330년 경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마케도니아 군을 이끌고 이집트로 쳐들어가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게 된 이후로 추측된다.
이집트 신화는 성경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고, 이승의 삶에 따라 천국행이 결정된다는 등의 내용은 이집트 신화가 유대교에 전파된 결과로 보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죽어서 오시리스 신이 다스리는 세계에서 영생할 것으로 믿었다. 특히 파라오는 스스로를 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도 신으로서의 삶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를 했다.
수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미라는 바로 신화의 증인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유물은 그 자체가 신화이다.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거대하고 확실한 신화의 증거물을 가진 나라가 바로 이집트다.
상하 이집트가 최초로 통일된 기원전 3100년을 기점으로 약 3천 년간 뛰어난 문명을 자랑하던 이집트는 기원전 670년 이민족의 침략을 시작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기원전 30년 클레오파트라의 자살을 끝으로 로마 제국의 속국이 된다.
로마의 속국이 된 후에도 처음 얼마간은 이집트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 이슬람교 등 새로운 종교가 유입되면서 이집트 고대 문명과 신화의 흔적들이 많이 훼손되고 사라졌다. 1960년대에 완전 독립하여 순수 이집트인들의 나라로 되돌아온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집트인들이 어떻게 그들만의 역사를 복원하여 단절된 신화의 맥을 이어 나갈지 궁금해진다.
| 시 대 | 내 용 | 특 징 |
| 원시시대(기원전 5000∼) | 나일 강에 정착, 농사시작 | 상형문자 사용하기 시작 |
| 초기 왕조(기원전 3100∼) | 메네스 왕 상하 이집트 통일 | 최초의 계단식 피라미드 |
| 고왕국(기원전 2700∼) | 피라미드 시대, 쿠푸 왕 | 기자의 피라미드 스핑크스 |
| 중왕국(기원전 2000∼) | 테베의 왕 통치, 아문이 최고신 | 《사자의 서》 |
| 신왕국(기원전 1570∼) | 하트셉수트여왕 소년 왕 투탕카멘 왕가의 계곡(왕들의 무덤) 람세스 2세 등 통치 | 아부심벨 신전 |
| 후기왕조(기원전 1085∼) |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통치를 받음 | 이집트 고유 신앙 퇴색 그리스 로마 신화에 영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