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신화(蒙古神話, Mongol mythology)
∎ 몽골 신화의 특징
몽골인들은 전통적으로 대흥안령 산맥에서 알타이 산맥, 바이칼호에서 만리장성 사이의 지역을 자기들의 땅으로 생각해 왔다. 현재 몽골인들의 거주지는 4개의 국가 혹은 자치구와 공화국으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몽골국은 칭기즈칸의 고향이자 몽골족의 중심지이며 그 남쪽에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인 내몽골자치구가 있다. 몽골국 북쪽 바이칼호 주변에는 부랴트 공화국이 있고, 카스피해로 흘러드는 볼가 강 하류에도 몽골인들이 세운 칼묵공화국이 있다. 이들은 현재 러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되어 있다. 그밖에 아프가니스탄이나 중국 곳곳에도 몽골계 집단 혹은 몽골인이 분산⋅거주하고 있다.
몽골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광활한 초원의 유목민과 삼림의 사냥꾼으로 살아왔다. 그들은 대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자연현상을 두려워하며 하늘과 조상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또한 사람들은 감사와 두려움의 대상에게 제사를 드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생각과 행위는 자연 숭배, 조상 숭배, 천신 숭배 등 각종 민간신앙이나 샤머니즘으로 체계화되어 몽골인들의 정신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3세기에 쓰인 몽골의 역사서 《몽골비사》에는 그 무렵 몽골인들이 하늘과 대지의 힘을 믿고 샤먼을 특별한 존재로 신봉했고, 높은 산이나 잎이 무성한 나무를 숭배했으며, 오난 강과 켈룬렌 강 등 특정한 강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하여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불교가 몽골 전체에 퍼지기 시작한 16세기 이후로 샤머니즘은 조금씩 지식 사회에서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지난 400년 동안 특정 지역에서 불교와 함께 공존하고 있다. 부랴트 지역은 할하 등 여타 몽골족 거주지보다 불교가 뒤늦게 전파되어 상대적으로 덜 번창했다.
그 때문에 고대 샤머니즘의 흔적이 강고한 생명력을 갖고 보존되어 왔다. 또한 몽골의 북서쪽에 있는 후브스굴 호수 근처의 숲에서 사는 다르하드와 차탕족 사람들은 오랫동안 몽골 샤머니즘의 원형을 지켜오고 있다.
몽골의 가장 오랜 역사서, 《몽골비사(蒙古秘史)》를 보면 몽골의 여시조, 알란 고아가 빛의 교감으로 아들을 낳게 된다. 그의 이름은 보돈차르로 칭기즈칸의 12대 선조이다. 이 신화를 살펴보면 빛의 감응, 즉 일광감응(日光感應)이라는 측면에서는 유화부인 이야기와 비슷하고, 보돈차르가 정든 고향을 떠나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측면에서는 주몽 이야기와 흡사하다. 이는 오래전 몽골과 한국이 하나의 신화를 공유한 하나의 갈래였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화양계곡 입구에 있는 우리의 서낭당과 몽골 초원의 오보. 그 모습이 매우 닮았다. 우리나라의 전통 혼례 때 신부가 연지를 찍고 머리에 족두리를 쓰는 것이나 장례를 치르고 나서 49제를 지내는 것 등 한국과 몽골의 풍습에는 유사한 부분이 많다. 몽골의 명절 모습 또한 우리와 비슷하다.
한국의 설날에 해당하는 차강사르(하얀 달이라는 뜻)에는 아이들이 어른께 세배를 드리고 우리가 떡국을 먹듯이 만둣국을 먹는다. 몽골 최고의 축제로 여겨지는 나담 축제에는 말타기, 씨름, 활쏘기 등을 하는데 이는 우리의 단오와 비슷하다. 우리가 몽고반점이라 부르는 홋호멍게는 신생아 엉덩이에 나타나는 푸른색 반점으로 역시나 한국과 몽골 사이에 동질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알타이 어족에 속하는 몽골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똑같다. 그밖에도 언어적인 유사성을 살펴보자면 가장 먼저 갖바치, 장사치, 벼슬아치 등 사람을 가리키는 명사 어미에 치자를 붙이는 것이 몽골과 같다. 예를 들어 몽골에서는 양을 혼이라 부르며, 양치기를 혼치라고 한다. 특히 몰은 제주방언 몰과 정확히 일치하며, 제주도의 조랑말을 여기서는 조로몰이라 부른다. 몽골어의 칸은 우리가 몽골 지배를 받지 않았던 신라시대의 관직명 간(干)과도 상통한다.
태초에 이 세상은 시작도 끝도 없는 거대한 물바다였다. 여기에 대지를 만들고자 한 신이 있었으니 바로 오치르마니 보르한이다. 오치르마니는 몽골 신화에 등장하는 창조신으로서 물바다인 세상에 대지를 만들 궁리를 한다. 보르한이란 여기에서는 신(神)이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세상이 물로 뒤덮여 있으니 발 디딜 조그만 틈도 없구나. 누군가 물속으로 내려가 물 밑의 흙을 가져오면 좋겠는데.... 그렇지, 차간 숑고드에게 부탁해 보자!
차간 숑고드는 오치르마니를 도와 대지를 창조한 신으로 잠수하는 흰 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치르마니와 차간 숑고드가 바다 위를 살펴보다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큰 거북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오치르마니가 차간 숑고드에게 말했다.
네가 그놈을 물 위로 끌고 와 거꾸로 뒤집어 놓으면 내가 그 녀석의 배 위에 앉아 있겠다. 그 동안 너는 바다 밑으로 들어가 흙을 가져오너라. 너는 반드시 나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생각한 대로 될 것이다.
차간 숑고드는 그 말대로 한 뒤 바다밑바닥으로 내려가 진흙탕에서 흙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단단하고 이상한 물체에 부딪힐 뿐 흙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그는 오치르마니가 한 말을 기억해냈다.
내가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치르마니가 가져오라고 한 것이다.
그 순간 손에 가득 진흙이 쥐어졌다. 차간 숑고드가 물 위로 올라와 오치르마니에게 진흙을 주었다. 오치르마니가 진흙을 거북 위에 놓자 대지가 생겨났다. 오치르마니와 차간 숑고드는 함께 대지를 창조했지만 둘이 대등한 관계는 아니었다. 전자는 지시하고 후자는 그 일을 수행하는 관계였다. 자연히 전자는 후자를 지배하려고 하였다. 여기에서 둘의 갈등은 생겨난다.
대지가 만들어지자 둘은 그 위에 앉아 쉬다가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깊은 잠에 빠진다. 그때 추트구르가 땅 위로 내려왔다. 추트구르는 악령으로 창조신의 적이자 사악한 세력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추트구르는 잠이 든 두 창조신들을 물속에 처박아 넣으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인가. 그 순간 물이 없어진 것이다. 이는 대지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트구르는 둘을 움켜잡고 대지의 끝을 향해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건만 대지의 끝은 나타나지 않았다. 추트구르는 마침내 단념하고 둘을 벌판에 내버려 둔 채로 가버렸다. 대지가 자꾸만 늘어난 덕분에 오치르마니와 차간 숑고드는 물속에 빠지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다.
∎ 몽골의 창조신, 오치르마니 보르한
오치르마니라는 이름은 원래 티베트 불교의 천둥번개의 주재자, 바즈라파니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에 대해 몽골 신화학자들은 원래 몽골 창조신화의 주인공은 후흐데이 메르겐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몽골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불교 신화로서 채색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그 와중에 몽골 고유의 천둥 번개 신인 후흐데이 메르겐과 천둥 번개의 주재자인 바즈라파니를 동일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흐데이 메르겐 대신 바즈라파니에서 유래된 오치르마니를 창조신의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차간 숑고드는 오치르마니의 협력자이자 제2의 창조신이다. 오치르마니는 지시하고 차간 숑고드는 직접 만드는 일을 담당한다. 오치르마니의 명령으로 차간 숑고드가 바다로 들어가 거북을 뒤집어 놓음으로써 대지의 바탕이 마련된다. 차간 숑고드는 잠수하는 흰 새라는 뜻이지만 차간 슈쿠트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티베트 불교의 도가르라는 불신(佛神)을 뜻한다.
몽골 구전 자료에 자주 등장하는 창조신의 적대자로 유령 또는 악령으로 번역된다. 추트구르가 창조신을 반대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추트구르는 원래 창조신의 동생, 또는 아들로 창조 행위에 참여하지만 충분한 몫을 받지 못해 원한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늘 창조물을 파괴하려고 든다.
잠에서 깨어난 두 신은 대지가 늘어난 덕분에 자신들이 물속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그들도 무언가 대지를 위해서 해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주 특별한 생명체, 바로 사람이었다. 그들은 진흙으로 정성스럽게 사람을 빚었다. 사람의 모습이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빚어지자 생명을 불어넣어 줄 차례가 되었다.
우리가 생명을 가지러 떠난 사이에 추트구르가 와서 사람을 해칠지도 모르니 사람을 지킬 파수꾼을 만들어야겠다.
오치르마니가 이렇게 말하자 차간 숑고드가 개를 만들어서 사람을 지키게 하였다. 개는 털이 없는 벌거숭이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둘은 인간에게는 생명을, 개에게는 털을 주기 위해 잠시 대지를 떠났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자리를 뜨자 추트구르가 다시 나타났다. 개는 추트구르에게 짖어대며 사람에게 접근을 못하게 했다.
네가 짖지 않으면 털과 음식을 주마.
추트구르가 이렇게 말하자 개는 조용히 했다. 추트구르는 개에게 약속대로 털을 주고 사람에게 다가가 실을 태워 그 연기를 사람의 콧속으로 불어 넣었다. 그러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트구르는 개에게, 사람이 개의 주인이니 사람에게 먹이를 달라 라고 시키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오치르마니와 차간 숑고드가 돌아와 보니 사람은 이미 생명을 얻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치르마니가 사람에게 물었다.
우리가 너를 만들고 이제 생명을 불어넣어 주려고 했는데, 너는 이미 생명을 얻었구나. 도대체 누가 너에게 생명을 주었느냐?
그러자 사람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오치르마니는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치르마니는 이제 사람과 동물을 다스릴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간 숑고드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간 숑고드는 생각이 달랐다. 오치르마니야 말로 자신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에 말다툼이 시작되고 결국은 싸움으로까지 번졌으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오치르마니가 제안했다.
내기를 해서 결정하자. 그릇에 물을 붓고 누구의 그릇에서 꽃이 피어나는가를 보자. 꽃을 피우는 쪽이 세상을 지배하기로 하자.
둘은 나란히 앉아 눈을 감은 채 각자의 그릇에서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렸다. 차간 숑고드는 내기를 하기로 했지만 영 자신이 없었다. 혹시나해서 그는 한쪽 눈을 살짝 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치르마니의 그릇에서만 탐스러운 꽃이 피어오르지 않는가.
이 광경을 본 차간숑고드는 자기 그릇에 몰래 오치르마니의 꽃을 옮겨 놓고 다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난 후 둘이 함께 눈을 떠보니 차간 숑고드의 그릇에 꽃이 피어있지 않은가? 그것을 보고 오치르마니는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내 차간 숑고드가 속임수를 쓴 것을 알게 된다. 화가 난 오치르마니는 세상 사람들도 숑고드처럼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후 세상은 사람들로 넘쳐나게 되었고 세상 사람들의 숫자 만큼이나 거짓말도 넘쳐났다.
이들은 삶과 창조의 적 또는 사악한 세력의 표상이라는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들이다. 그들은 대지를 파괴하고 그것을 만든 창조자를 파멸시키고자 애쓴다.
물만 있던 혼돈의 세계에 대지가 생기고 인간이 창조되면서 해와 달도 자리를 찾아갔다. 또한 하늘을 비추는 별들도 그 모습을 갖추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던 몽골 사람들에게 별은 아주 친근한 존재였고 자연의 변화와 별들의 움직임에서 긴밀한 연관을 찾기도 했다. 그 중 좀생이별은 날씨가 추워진다는 징조였다. 그래서 몽골 사람들은 좀생이별이 나타나면 날씨가 추워진다고 믿고 좀생이별이 없어지면 날씨가 따뜻해지리라 믿었다.
그때 나타난 신이 바로 에르히 메르겐이다. 몽골 말로 에르히는 엄지손가락이라는 뜻이고, 메르겐은 명궁이라는 뜻으로, 에르히 메르겐은 엄지손가락의 힘이 센 명궁이라는 뜻이다. 에르히 메르겐의 활 쏘기 실력은 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눈에 보이는 것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든 모든 것을 쏘아 맞춘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몽골은 예로부터 활 잘 쏘는 이를 숭배했는데, 에르히 메르겐도 활 솜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찬탄을 받았고 그러다 보니 우쭐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는 좀생이별을 쏘아 없애 추위가 이 땅에서 물러가도록 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을 뿐만 아니라 하늘 신인 보르한에게 돌이키지 못할 약속을 하게 된다.
한 개의 화살로 일곱별을 산산조각 내리라.
무시무시한 추위를 멈추게 하리라.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나는 엄지손가락을 잘라 버리리라.
맹물을 마시지 않고, 마른 풀을 먹지 않고,
해와 바람이 있는 바깥상을 돌아다니지 않고,
컴컴한 굴에서 부끄러워하고
뿌리와 풀로 배고픔과 갈증을 달래며 사는
타르바가로 태어나리라.
남자들의 사냥감이 되어 살아가리라.
그의 활 솜씨를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응원했다. 맹세를 마치고 에르히 메르겐은 활을 들어 엄지손가락에 핏방울이 맺힐 만큼 있는 힘을 다해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활시위를 떠난 지 얼마가 지났을 때 드디어 화살은 밤하늘에 당도했다.
그러나 화살은 첫 번째 좀생이별 하나를 맞추고 나머지 여섯 개의 좀생이별들을 맞추지 못했다. 여섯 개의 좀생이별은 하늘에 남아 소름이 돋을 만큼 푸르디푸른 빛을 내뿜으며 그대로 하늘에 떠있었다.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천하제일의 명궁 에르히 메르겐님이 실패하다니....이제 에르히 메르겐님은 어떻게 되는거지? 맹세한 대로 타르바가가 되는 건가?
사람들은 큰 소란을 떨었고 에르히 메르겐 자신도 명중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활 솜씨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그로서는 수치심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지체 없이 자신이 맹세한 대로 엄지손가락을 자르고 흙 속으로 들어가 타르바가가 되어 컴컴한 굴속에 숨었다.
이에 대해 몽골인들은 하늘 신인 보르한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 에르히 메르겐을 벌주기 위해 일부러 화살을 빗나가게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에르히 메르겐이 실패한 탓에 몽골의 겨울 하늘에서는 여전히 좀생이별이 빛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묘성(昴星)이라고 하며 몽골말로는 미치드(michid)라고 한다. 겨울철 별자리 중 좀생이별이 가장 먼저 하늘에 떠올랐기 때문에 옛 몽골인들은 좀생이별이 겨울을 이끌고 온다고 생각했다.
몽골 신화에 등장하는 명궁, 에르히 메르겐과 후흐데이 메르겐각. 그들은 별과 천체 신화의 주인공으로서 지상과 하늘 어디서나 중요한 인물들이다. 에르히 메르겐이 순간의 자만심으로 타르바가가 되어 땅 밑의 존재가 되었다면 후흐데이 메르겐은 반대로 하늘의 별이 된다.
몽골 부랴트 신화에 따르면 후흐데이 메르겐은 영원한 푸른 하늘이라는 의미를 지닌 신으로, 후흐 뭉근 텡그리의 아들이다. 영원한 푸른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이니 천상을 주관하는 신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부랴트 신화에서 후흐데이 메르겐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후흐데이 메르겐
큰 권세를 가진 남자 무당
한 호르모스 텡그리의
검은 쇠의 활을 가진 분
삽만한 화살을 가진 분
붉은 구리 화살촉을 가진 분
후흐데이 메르겐은 솜처럼 흰 활을 메고 가죽 끈처럼 흰 말을 타고, 아사르와 바사르라는 두 마리 개를 데리고 다녔다. 그가 사냥을 나가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가축 똥처럼 무수히 많은 북쪽의 들짐승을 사냥했고, 땅의 흙처럼 무수히 많은 남쪽의 들짐승을 사냥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후흐데이 메르겐의 활 솜씨 때문에 짐승들의 씨가 마르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어느 날 그는 암사슴 세 마리와 새끼 세 마리를 발견했다.
암사슴이 세 마리나 있네. 새끼들까지 모두 여섯 마리군. 이 후흐데이 메르겐의 화살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 여섯 마리 모두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우마.
후흐데이 메르겐이 백발백중의 활 솜씨를 보여주려 하는 순간, 세 마리의 암사슴과 새끼들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사슴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후흐데이 메르겐 역시 포기하지 않고 사슴들을 쫓아 달려가다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로 올라간 암사슴들은 차례로 별이 되었고 새끼들도 따라 올라가 별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별자리가 오리온 신화인데, 선명하게 빛나는 세 개의 별은 암사슴이고 약간 흐릿하게 빛나는 별들은 암사슴의 새끼라고 한다. 그리고 후흐데이 메르겐 자신도 저녁 무렵에 반짝이는 샛별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 사이에는 자신의 활 솜씨를 과신한 후흐데이 메르겐을 벌주기 위해 하늘이 암사슴들을 보낸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세 개의 별이 나란히 있고 그 밑으로 작은 별들 역시 세 개가 나란히 있다. 상단에 보이는 붉은 빛이 도는 별은 후흐데이 메르겐의 화살인데 암사슴을 관통했기 때문에 붉게 핏물이 들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몽골에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일곱 명의 남자들이 의형제가 되고 적들을 물리쳐 하늘로 올라가 북두칠성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다양한 형태로 전해온다. 그 중 다르하드족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주인공의 이름이 알하이 메르겐이다.
알하이 메르겐이 3년간 잠이 든 사이, 누이인 체첸 체베르 엑치각주3) 는 동생을 위험에 빠지게 만든다. 체첸 체베르 엑치는 다른 씨족과 모의하여 동생인 알하이 메르겐과 고난 샤르를 죽이려고 한 것이다. 집을 포위당한 알하이 메르겐은 우선 동생을 도주시킨다.
고난 샤르, 일곱 마리 말을 가지고 먼저 도망쳐라!
동생이 도망친 후 다른 씨족의 군대가 집에 들이닥쳤다. 적들은 알하이 메르겐을 화살로 쏘고 칼로 난도질하여 처참하게 죽였다. 그것도 모자라 나무에 묶고 땔감을 쌓아 한참 동안 태웠다. 그러나 불이 꺼진 후에도 알하이 메르겐은 살아있었다.
알하이 메르겐은 절대 죽지 않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적들은 알하이 메르겐을 세 겹의 쇠사슬로 묶고 80발이나 되는 깊은 구덩이에 처넣었지만 그는 그 속에서도 1년을 산 채로 누워있다가 까치와 까마귀의 도움으로 나오게 된다.
그 후 알하이 메르겐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동생을 생각하고 위를 쳐다보며 망가스대왕의 부인이 된 체첸 체베르와 적에게 복수를 맹세하며 길을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숲속에서 일곱 마리의 말을 만났다. 그 중 한 마리를 타고 가던 알하이 메르겐은 동생을 찾아 두 번째 말에 태우고 다섯 마리의 말을 몰며 길을 떠났다. 한참 가는데 벌판에 앉아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에게 다가가 왜 앉아있는지 물었더니 그 사람이 대답했다.
나는 아래의 세계, 위의 세계를 엿듣고 있소.
실제로 그는 세상의 소리를 모두 엿들을 수 있었다. 형제는 그에게 말 한 마리를 주어 함께 길을 떠났다. 길을 가다 이번에는 영양처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 사람에게도 말 한 마리를 주어 함께 갔다. 그들 일행이 고개를 넘어 벌판에 이르렀을 무렵, 이번에는 날아가는 까치의 꼬리에서 깃털을 뽑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의 빠른 솜씨에 감탄한 일행은 그에게도 말을 주어 함께 길을 떠났다.
그 다음에 만난 사람은 엄청난 양의 바닷물을 마셨다가 다시 뿜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고,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산을 들었다 놓았다 할 만큼 힘이 센 사람이었다. 그들은 일곱 마리의 말을 타고 가다 큰 바위 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그때, 세상의 소리를 엿듣는 사람이 일곱 망가스가 일곱 마리 회색 말을 타고 오고 있다고 귀뜸해 주었다. 일행은 망가스를 위한 잔치를 벌여 술과 독주를 함께 내놓은 후 손놀림이 빠른 사람이 독주를 망가스 일당이 마시도록 바꿔치기 한다. 망가스 대왕의 부하들은 독주를 마시고 취해 쓰러졌지만 알하이 메르겐 일행은 멀쩡했다.
다음 날 망가스는 활쏘기 시합을 하자고 제안했다. 일곱 고개, 일곱 들판 저쪽에 황금 바늘을 놓고서 그 바늘귀를 맞추는 시합이었다. 그러나 대왕이 내보낸 망가스들은 전부 실패했다. 알하이 메르겐은 활시위를 아침 해 뜰 무렵부터 저녁까지 열 손가락 끝에서 피가 나고 활에서 푸른 불이 나도록 당겼다. 화살은 일곱 고개를 넘고 일곱 들판을 지나 황금바늘의 바늘귀를 지난 다음 산 하나를 태워 버렸다.
시합에 진 망가스 대왕은 이번엔 말달리기 시합을 제안했다. 이번엔 일곱 고개와 일곱 벌판을 지난 곳에 말을 풀어 놓고 그곳에서 달려오는 시합이었다. 알하이 메르겐의 일곱 마리 말은 달려왔지만 망가스 대왕의 말들은 일부는 죽고 일부는 오는 길목에서 엉뚱한 곳으로 달아나 버렸다.
망가스 대왕은 이번엔 씨름 시합을 제안했다. 알하이 메르겐, 고낭 샤르, 산을 옮기는 사람, 바닷물을 마시는 사람이 각각 망가스들과 겨뤘다. 이 시합 역시 알하이 메르겐 일행이 이겼다. 결국 모든 경기에서 지게 된 망가스 대왕은 일곱 사람에게 자신의 게르에 묵으라고 말했다. 그때, 세상을 엿듣는 사람이 망가스 대왕의 말을 들었다.
내일 망가스 대왕이 우리를 게르에 가두고 불을 지른다고 합니다.
그러자 알하이 메르겐이 바다를 마시는 사람에게 내일 반드시 바다를 머금고 있으라고 특별히 당부했다. 다음 날이 되자 그들은 알하이 메르겐 일행을 게르에 가두고 밖에서 불을 질렀다. 그러자 바다를 마시는 사람이 미리 삼켜 두었던 물을 뿜어 불을 껐다.
그 와중에 망가스 대왕과 누이인 체첸 체베르 엑치만 남고 모든 것이 바닷물에 떠내려 갔다. 그리고 산을 옮기는 사람이 산 하나를 들어 그 산으로 망가스 대왕을 눌러 버렸고, 체첸은 일곱 마리 말의 꼬리에 묶어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마지막으로 일곱 사람은 일곱마리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북두칠성이 되었다.
《몽골비사(蒙古秘史)》는 몽골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제 1절은 늑대와 사슴 이야기로 시작한다.
지고하신 하늘의 축복으로 태어난 부르트 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호아 마랄이었다.
그들이 텡기스를 건너와 오난 강의 발원인 보르한 할돈에
터를 잡으면서 태어난 것이 바타치 칸이다.
바타치 칸의 9대손 보르지기다이 메르겐은 몽골의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을 지닌 몽골진 고아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들의 손자들이 바로 도바 소호르와 도본 메르겐 형제이다. 도바 소호르는 외눈이었지만 사흘을 가야 볼 수 있는 거리까지도 볼 수 있는 천리안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는 그가 동생 도본 메르겐과 함께 보르한 할돈에 올랐다가 강을 건너는 한 무리의 이주민을 발견하게 된다.
동생아, 저 강을 건너는 무리가 보이느냐? 저들 중에 검은 수레 앞좌석에 앉아있는 아가씨가 매우 아름답구나.
도바 소호르는 이렇게 말하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도본 메르겐을 보냈다. 도본 메르겐은 무리 가까이 가서 그 아가씨를 보고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하고 만다.
아, 세상에 저토록 뛰어난 미인이 있다니! 그녀에게 청혼해 반드시 내 아내로 맞으리라.
도본 메르겐이 한눈에 반한 그 아가씨의 이름은 알란 고아. 자태가 곱고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미인 중의 미인이었다. 알란 고아는 도본 메르겐과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는데, 그들의 이름은 부구누테이, 벨구누테이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도본 메르겐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알란 고아는 홀몸으로 임신하여 세 명의 아들을 더 두었다. 남편이 죽은 후, 세 명의 아들이 더 태어났으니 그들의 아버지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도본 메르겐의 두 아들은 어머니 뒤에서 수근 댔다.
우리 어머니는 남편 없이 세 아들을 낳았다. 어머니는 형제도 친척도 없지 않은가? 집안의 남자라고는 머슴인 마알릭 바야오드뿐이니 세 아들은 그의 아들들이 아닌가?
두 아들이 말한 마알릭 바야오드는 도본 메르겐이 오래전에 데려와 집안일을 부린 사람이었다. 아들들의 이런 생각을 안 알란 고아는 어느 봄날, 겨울에 잡아 저장해 두었던 양을 삶고 다섯 아들들을 불러 모아 나란히 앉게 하였다. 그리고 말없이 화살 더미를 꺼내 화살 한 대씩을 꺾어 보라고 하였다. 뚝, 뚝, 화살 한 대는 쉽게 꺾였다.
이번에는 다섯 대의 화살 묶음을 꺾어 보아라.
다섯 모두가 다섯 대 묶음의 화살을 꺾으려고 돌아가며 시도해 보았으나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알란 고아가 조용히 말했다.
너희들의 아버지, 도본 메르겐이 돌아가신 후 나는 세 아들을 낳았다. 누구의 아들인지 궁금하느냐? 너희 다섯 모두 도본 메르겐의 아들들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밤마다 누렇게 빛나는 이가 게르의 천장을 통해 내려와 내 배를 문지르고 그의 빛은 내 배로 스며들었단다. 그 빛이 달이 지고 해가 뜰 새벽 무렵에 나가는데, 나갈 때는 놀란 개처럼 기어 나갔단다.
아들들은 어머니의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 아버지의 다섯 형제들이여! 너희 다섯은 이 화살과 같다. 따로 놀면 따로 꺾일 터이나 하나로 뭉치면 누구도 너희를 꺾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말을 명심하여라.
부구누테이와 벨구누테이, 어머니를 의심했던 두 아들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후 알란 고아의 막내아들 보돈차르는 자신의 부족을 만들고 몽골을 통일한다. 그리고 39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보돈차르의 후손 중 천하를 제패하는 자가 나오게 되는데, 그가 바로 칭기즈칸이다.
햇빛이 되어 돌아와 늑대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고대 투르크인들이 남긴 이야기 가운데는 알란 고아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내가 죽은 후 햇빛이 되어 돌아와 늑대의 모습을 하고 돌아갈 것이다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알란 고아는 다른 사람들이 이 말을 믿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게르의 문 앞에 사람을 세워 놓았는데, 정말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고, 다음에 늑대의 모습을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부르트 촌과 호아 마랄은 먼 옛날 몽골인들의 두 가지 주요 토템이었다. 몽골인들 사이에는 늑대를 직접 늑대라고 부르지 않고, 들개 또는 항가이 등으로 돌려서 말하는 습관이 있고 칭기즈칸은 늑대 사냥을 금했다고도 한다. 또한 몽골인들의 족모가 흰 암사슴이라는 사실도 여러 단서 등을 통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