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2 소련 중전차
소련군의 중전차 또는 자주포로서 겨울전쟁 당시 핀란드의 만네르헤임선에서 고전한 경험으로 인해 요새를 단숨에 박살내며 돌파할수 있는 대구경포와 적의 화포를 막아낼 수 있는 튼튼한 중장갑을 가진 자주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이에 부응하여 개발된 괴물이다. 별명은 독일군이 대놓고 불러대던 독일어로 거인이라는 뜻의 기간트(Gigant).
크고 아름다운 포탑이 매우 인상적인 전차인데, 포탑 크기만 해도 웬만한 성인 남성 키를 넘기니 이미 여기서부터 일반적인 전차와는 안드로메다로 멀어지는 어이없는 방식으로 완성되었고, 그래서 KV-1의 파생형인 주제에 독자적인 전차로 취급된다. 사실 전차 차체에 대구경 포를 탑재해 자주포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공간이 부족해서 대두포탑을 얹게 되는 것은 KV-2 이후로도 있었던 일이다. 대표적으로 프랑스군의 현용 자주포인 AU-F1. 하지만 이 개념의 창시자답게 KV-2는 전차로서의 장갑도 충실했다.
그러나 괴이한 모습과는 달리 일단 53톤이라는 무식한 중량에서 나오는 흉악한 방어력과 단순히 구경만 비교해도 76mm(3인치)의 두배를 넘는 152mm(6인치) 주포의 자비심없는 화력으로 독소전쟁 초기 독일군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당연하게도 아직 37mm PaK 36 대전차포가 1선급 화기로 활약하던 시절이며, 티거나 판터가 나오려면 아직 멀고도 먼 1940년에 이런 게 나왔으니 이 괴물을 상대하던 독일군은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덤으로 일단 화력면에서는 동일한 구경의 주포를 탑재해 T-34와 같은 수준이었던 KV-1과 달리, 화력지원을 위해 152mm 포를 달아버렸기에 깡패같은 화력을 자랑했다. 152mm 포는 통상의 고폭탄을 사용하는 야포이지만 그 구경에서 비롯하는 무식한 작약량 덕분에 관통력을 따질 것도 없이 당시 독일의 주력전차인 3호 전차 따위는 명중 시 포탑이 차체와 분리되어 날아가고 고철로 승화하는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152mm의 무식한 구경의 고폭탄은 일단 명중시 왠만한 전차는 한방에 무력화시킬수 있었고 철갑탄 역시 정신나간 운동에너지로 152mm 탄두를 때려박기 때문에 중장갑으로 중무장한 티거나 티거 II도 생존을 장담하지 못하는 괴수였다.
참고로 PzH2000을 만들던 기술자들이 주력 전차에 155mm 고폭탄을 쏘는 실험을 했는데, 레오파르트1이나 M48(60)도 포탑이 분리돼서 폭발했다. T-55는 파편만으로도 불타고 완전 전투불능이었다. 물론 1,2세대 전차들이 장갑을 중시한 설계는 아니지만 철갑탄이 아닌 고폭탄도 대전차전투를 제한적이지만 수행할 수 었있다는 것이다.
당시의 독일군 최고 화력을 가진 전차는 4호 전차로, 회전포탑에 75mm 단포신 곡사포를 장착하는 게 고작이었던 독일군에겐 도로 위의 괴물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KV-1의 차체를 이용한 녀석답게 방어력도 월등하여 3호 전차의 50mm 포 따위는 이빨도 먹히지않았다. 그야말로 진정한 넘사벽.
KV-2는 독일의 1호 전차, 2호 전차, 3호 전차 단포신, 장포신, 4호 전차 단포신이 쏘는 포탄은 다 가볍게 막는다.
5. 도로 위의 괴물
이 전차의 악명을 드높인 사건이 독소전 초기의 라세이냐이(Raseiniai) 전투인데, 이 전투에서 도로를 막아선 KV-2 한 대 때문에 독일군 제 6기갑사단이 하루동안 꼼짝도 못했다. 한번에 한대씩, 그것도 두번이나. 아무리 중장갑과 대화력을 자랑한다지만 전차 1대, 그것도 손상되어서 기동력이 없는 물건을 상대로 해서 8,8cm FlaK, 10.5cm leFH, 심지어 폭탄을 든 공병 부대까지 동원했는데도 이빨도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 괴물은 다음 날 88mm포 2문과 전투 공병의 합동공격으로 격파되었다. 이 에피소드는 일본 전쟁 극화 만화가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동명의 단행본에도 이 항목의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월드 오브 탱크에 이 에피소드의 내용을 담은 훈장이 있다.(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는 총 7대)
강철의 왈츠에서는 이 내용을 각색해서 중전차인 KV-2 오로나 모로토브나의 대사에서 혼자서 수많은 전차야수의 진공을 막아 냈다고 한다.
다만 이 에피소드의 주역은 사실 KV-1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시 독일 기록에서는 KV 시리즈의 정식명을 몰라 43톤 전차, 52톤 전차로 표기하여 혼란을 가져왔고 게다가 독일어, 러시아어로 된 당시 기록이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오역을 거치며 와전되었던 것라고 하는데 자세한 설명과 참고 사이트는 영문 위키피디아 라세이냐이 전투(Battle of Raseiniai) 항목을 참조 바람.이 덤으로 인접 지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KV-2 한 대가 돈좌된 채 길을 막아서 도로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든 사례가 있었다. 단, 이 KV-2는 고장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채로 유기된 상태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위협은 아니었다. 단지 너무 무거운 놈이 길을 막는 바람에 그 길을 영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뿐. 이 전차를 찍은 사진이 워낙 유명해서, 앞서의 오인들과 연계되어 이 전차가 바로 그 전차라는 식으로 알려졌던 것이다.
이것이 인터넷이나 다른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던 문제의 사진. 위의 전차의 위치는 서쪽 리투아니아 지방으로 리투아니아의 도시 중 하나인 라세이냐이 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전투가 없었던 것도 아닌게,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1941년 6월 22-24일, 제6 기갑 사단의 앞을 가로막은 녀석이 위의 녀석이다. 정확히는 가로막은 것이 아닌, 기름이 없어서 멈춘 것을 독일군이 가다가 발견한 것. 일단 적을 발견했으니 공격을 시작한 독일군 이었으나 5cm 대전차포와 88포를 동원했지만 무력화시키지 못했고, 105mm 곡사포의 사격으로 궤도가 파괴되고 KV전차를 부분적으로나마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후 다른 88포를 설치해 2문의 88포와 약 50대 가량의 전차로 총공격을 감행, 드디어 KV전차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한다.
지휘관은 슈투카를 요청할 수 있었지만 단 한대의 전차 때문에 공군을 부를 수는 없다며 요청하지 않았던 것. KV전차의 승무원은 독일군의 총공격 전에 몇 번이고 쉽게 도망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국가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한다. 그 KV-2가 격파된 후에 독일군은 수적 열세에도 굴하고 이 영웅들의 애국심에 감동해 승무원을 매장해주었다고 한다.
라세이냐이 전투 당시 길목을 막아선 KV-2의 모습. 위의 사진이 제6 기갑 사단의 가뜩이나 부족한 탄약재고를 깡그리 날린 주범. 즉 제6 기갑 사단을 맞이한 두번째 KV-2이다.
하지만 이것도 최근 독일군이 매장했던 해당 전차 승무원들의 무덤을 발굴하면서 KV-2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KV-1에 비해 무거운 포탄 무게 문제로 KV-2는 탄약수가 한명 더 탑승하는데, 발굴된 무덤의 시체가 KV-1의 승무원보다 한명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이 괴물 두놈의 연속출현에 이어 레닌그라드 코앞에서 지노비 콜로바노프 소련군 중위가 몰던 KV-1까지 5대씩이나 나타나서는 그 중 콜로바노프 혼자서만 전차 22대, 하프트랙 세대, 대전차포 4문을 아작내고 다른 4대의 동료들도 학살을 벌여 독일 제 6기갑사단의 진격을 다시 하루 정지시켰다. 결과적으로 총 3일 간 독일군의 발을 묶어 놓은 셈.
포탑에 러시안 15cm 슈투카라고 적혀있다. Ju 87에게 폭격당한걸로 추정되고, 포탑이 전복 되어있다.
그러나 이 전차는 가장 많은 생산량을 기록한 문서상에서도 고작 334대가 생산되었을 뿐이고, 너무 큰 포탑으로 인해 원래도 무거운 KV-1 전차의 중량에 추가중량이 더해진 것도 모자라서 무게 중심의 불안정함이 추가되는 바람에 기동력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소련측 자료는 최고 34km/h으로 되어있지만 독일이 노획물로 시험한 결과는 도로상에서조차 최고 20km/h정도였으며 그것도 얼마안가 주행계통이 고장나는 판이라 실제로는 순항속도 15km/h 정도가 한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속도라면 당시의 수준을 감안해도 거의 기어가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뭐 마우스 전차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게다가 고장도 잦고, 포탄도 너무 커서 탄약적재량도 매우 적었으며, 개전 초기 소련군의 안습한 상황으로 채 결함이 발견되기도 전에 파괴, 유기되는 상황이었던 탓에 실질적인 문제는 되지 않았지만 사격시나 기동 중의 충격으로 인해 포탑과 지지부에 서서히 금이 간다는 문제점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독일측의 다른 기록에서는 KV-1보다 상대하기 쉬웠다는 기술도 있다. 높은 전고 덕분에 발견하기 쉽고 느릿한 기동성 때문에 쉽게 측면을 노출했던 것이다. 단포신 4호전차와 3호 돌격포에게 다굴맞아 격파된 사례도 있고 심지어 3호 전차가 무한궤도를 공격하여 기동불능이 되자 전차병이 전차를 놔두고 그대로 도주하였다는 사례도 있을 만큼 심각한 문제점이 많았다. 사실 이쪽은 전차의 성능상 결함이라기 보다는 전차병의 숙련도 및 전술 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주포 역시 워낙 대구경이다보니 엄청난 반동으로 명중률이 낮았으며 포탑 부품 마모 등 상당한 손상이 있기도 하였다.
실전상에서는 KV-2의 포탑이 선회포탑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회전속도가 느리거나 아예 회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이 전차가 독일군의 4호 전차 J형처럼 포탑을 동력의 도움 없이 수동으로 돌린다라는 루머가 생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단 KV-2의 포탑도 동력으로 돌아가는 포탑이라서 24볼트 발전기가 포탑 구동 모터, 무전기, 엔진 스타터에 전원 공급을 했다. 하지만 상식을 초월하는 포탑 무게 때문에 회전 속도가 매우 느렸고 무게 중심이 좋지 않아 차체가 조금만 기울어지면 포탑이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돌격포 같이 포탑을 고정한 상태로 많이 사용되었다.
연사력 역시 최악이다. 분당 고작 두발을 쏠 수 있었고, 포가 152mm이기 때문에 탄체 역시 40kg을 그냥 넘어버리고 탄약수는 두명이다보니 많이 지친다고 한다. 그래서 한발 한발 신중하게 쐈다고 한다. 그리고 포을 쏘면 무기중심을 잃어버리고, 포탄을 회전시키면 전복되는 사고도 있고, 탄약 유폭, 엔진 폭발등으로 많은 사고가 발생했다.
KV-2는 1939~1940년에 생산된 전차인데 문제는 방어력이 문제였다. 1939년형, 1940년형 두 탱크가 75mm밖에 되지 않아 4호 전차 장포신에 뚫려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T-34전차에도 뚫려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탱크 설계자들이 많은 의논을 했다. 그중에 KV-1E처럼 추가 장갑을 붙히자고 했지만 엔진 고장에 변속기도 버티지를 못해서 취소 되었다.
마지막으로 KV-2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건 1941~1942년의 모스크바 공방전이였으며 KV-2 한대가 차체가 격파된 상태에서도 포탑 안은 멀쩡히 살아남아 다시금 장갑열차 за Родину (조국을 위하여)호에 탑재됐고 42년 7월 19일까지 남부전역에서 활동하다 독일 항공기의 공격에 의해 장갑열차가 파괴 당하고 말았다.
몇몇 전설적인 일화를 남기긴 했지만 종합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성공한 전차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차체에 걸맞지 않은 대형 야포를 단 결과, 느리고 전차포 자체의 신뢰성도 낮아졌다. 화력지원이건 대전차임무건 간에 강력한 화기를 장착한 것에 비하면 성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비록 전차로서는 실패작이었으나 대구경 화기를 장착한 중장갑 자주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소련군 수뇌부에게 정확하게 인식시켰으며, 소련군은 이 KV-2를 운용해본 경험과 독일군의 각종 돌격포, 구축전차의 활용법을 통해 굳이 회전포탑이 없더라도 대구경포와 중장갑만으로도 다목적으로 사용 가능하다.라는 교훈을 배우기도 했다. 이에 따라 SU-152나 ISU-152같은 소련군 특유의 만능 중장갑 자주포가 등장하게 된 중요한 요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소련군 전차 매니아들에겐 특유의 기괴망측한 생김새와 152mm 주포의 압도적인 비주얼등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