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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레오파르트 2 독일전차

작성자管韻|작성시간21.06.18|조회수380 목록 댓글 0

01. 레오파르트 2 독일전차

 

 

 

 

 

 

 

 

 

Der Leopard 2(zwei)는 독일 연방군의 주력 전차이다. 서구권 최초로 실전배치된 3세대 전차이며 이후 3.5세대 전차로 개량되었다. 인도의 아준 전차, 90식 전차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처음 등장하면서 전차의 여러 덕목에 사실상 결점이 없는데다가 공격, 방어, 기동성에서의 탁월함으로 2A6버전부터는 한동안 세계 최강의 전차로 손꼽혔다. 그러나 독일의 열악한 국방 지원및 엄청난 군축으로 인해 적절한 투자와 개량이 미비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어, 이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엔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레오파르트2의 개발사는 독일연방공화국과 미국이 후일 MBT/KPz.70으로 불리게 되는 차세대 전차 공동개발협약에 조인한 196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MBT/KPz.70은 유기압 현수장치, 자동장전장치와 결합된 152mm XM150E5 건-런처, 시레일러 포발사 미사일, 레이저 거리측정장치와 적외선 관측장비를 적용한 신형 사격통제장치, 1500마력 수냉식 디젤 엔진 등을 탑재한 말 그대로 시대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개념의 전차였다. 그러나 혁신이란 게 원래 그렇듯이 MBT/KPz.70은 레오파르트1의 두 배에 달하는 살인적인 가격을 자랑하게 되었고, 결국 MBT/KPz.70 계획은 비용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고 1970년 파토나고 만다. MBT/KPz.70의 붕괴로 서독과 미국은 각각 제 갈길을 걷게 되는데, 미국은 MBT-70 계획을 계속 추진했고, 서독은 KPz.70의 구성품을 유용한 신형 주력전차 개발사업을 시작한다.

 

1968년 연구 단계에 머물렀던 레오파르트1의 성능개량사업인 '페어골데터 레오파르트'가 'Keiler'라는 명칭으로 재개되었다. 두 대의 시제품이 이듬해 제작되어 1971년까지 테스트되었고, 이때 적용된 기술들이 레오파르트2의 개발에 응용되었다. 동시기 MBT/KPz 70을 기반으로 한 'Eber' 사업도 진행되었지만 MBT/KPz 70 사업이 엎어지면서 폐기되었다. 이무렵 다급해진 독일군은 신형 주력전차를 1975년 양산을 목표로 개발하려 하였고, 두 가지 컨셉이 동시에 연구되었는데 MBT-70처럼 건-런처를 주무장으로 선택한 레오파르트2FK와 통상적인 전차포를 선택한 레오파르트2K가 그것들이다. 1971년 레오파르트2K가 선정됨에 따라 레오파르트2FK는 취소되었다.

 

1972년부터 1974년까지 1세대 시제품용 차체 16량, 포탑 17기가 양산되었다. 17기의 포탑 중 10기는 라인메탈제 105mm 활강포를, 나머지 7기는 120mm 활강포를 탑재하였다. 기술시험이 1972년에서 1974년까지 실시됐고, 야전시험은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실시되었다. 1975년 2월 14일부터 3월 15일까지 캐나다에서 저온환경시험을, 4월부터 5월까지는 미국의 유타, 아리조나 주에서 고온환경시험이 치뤄졌다.

 

그러나 사업은 아직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LRF와 광학장치를 결합한 신형 사격통제장치의 개발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과, 레오파르트2의 전체 중량을 MLC(Military Load Classification) 50 이하로 묶으라는 독일연방군의 요구가 사업의 발목을 잡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1973년 레오파르트2의 중량은 MLC 50을 1.5톤 초과하고 있었지만 마침내 보다 가벼운 신형 뾰족뒤쥐형 포탑(Spitzmous-Turm)이 개발되었고 T14 포탑이 T14 mod로 개량되면서 중량 문제는 해결된듯 보였다. 또한 이시기 EMES-13 사격통제장치의 개발 역시 완료되었다.

 

그러나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이후 독일연방군의 전훈 분석이 내려졌다. 그것은 여전히 장갑방호력이 전차전에서 결정적 요소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군은 레오파르트2 1세대 시제품들의 방호력에 의문을 제시했고, 방호력 증대를 위해 신형 복합장갑을 적용한다 해도 현재 설계로는 도저히 MLC 50을 맞출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게다가 또한 미 육군은 구매한 PT07로 자체적인 연구를 하였는데, 다양한 실험을 거친 결과 빈약한 방호력으로 인해 이후 시제품들의 인수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1974년 10월 중량요구조건이 MLC 60으로 완화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레오파르트2AV를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1973년 동안, 미국과 독일은 양국 차기 주력전차의 특정 구성품을 공통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1974년 12월 11일 이에 관한 양국의 양해각서가 체결되고 1976년 7월 수정안이 조인되었다. 프로토타입 PT07의 차체는 이미 1973년 미국에 판매되어 애버딘(Aberdeen) 미 육군 시험장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양해각서에는 레오파르트2와 XM1의 프로토타입간의 비교평가를 실시한다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레오파르트2가 어떻게 하면 미국의 성능요구와 가격조건을 맞출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을 허용했다. 크라우스 마파이(Krauss-Maffei)사는 탄도방호성능을 포함한 XM1의 성능요구조건을 받았다. 모든 성능요구는 미 육군이 레오파르트2 PT07로 실시한 시험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양해각서가 체결될 때 이미 17대 중 15대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어 있었으며, 남은 두 대도 완성 직전이었다. 독일과 미국의 변경된 작전성능 요구에 맞춰 포르쉐, 크라우스-마파이사와 베그만(Wegmann)사 은 레오파르트2 AV(Austere Version)을 설계하고 생산했다. 개량형은 차체에 신형 공간장갑을 갖추고 T14 Mod. 포탑의 경험에 기반한 신형 포탑을 탑재했다. 차체는 2대가 생산돼 PT19와 PT20으로 포탑은 3기가 생산돼 T19, T20, T21로 지정됐으며 1976년 준비가 끝났다. XM1의 주포가 L7A3 105mm 강선포였기 때문에 PT19/T19는 미국에서의 시험을 위해 L7과 휴즈(Hughes)제 사격통제장치를 탑재했으나, T20은 EMES-13을 비롯한 독일제 사격통제장치를 탑재하고 독일 내에서 시험받았다. 물론 두 포탑 모두 라인메탈제 120mm 활강포로 신속하게 교체 가능하도록 설계상의 배려가 되어 있었다. T21은 전체적으로 T20과 같지만, 처음부터 120mm 활강포를 탑재했다.

 

레오파르트2AV는 원래 XM1과 동시에 시험될 예정이었으나, 독일의 개조형 개발이 예상보다 늦어졌다. 그래서 미 육군은 크라이슬러 안과 GM 안을 비교평가해 결국 레오파르트2 AV의 개발 완료를 기다리지 않고 크라이슬러 XM1의 전면 개발에 돌입한다. 그러나 1976년 8월 말, PT19/T19와 PT20이 C-5A 갤럭시 수송기에 실려 미국으로 수송되었다.

 

개발시험과 운용시험으로 불린 비교평가는 애버딘 시험장에서 XM1이 이미 통과한 프로그램을 따라 실시돼 1976년 12월까지 지속됐다. 미 육군은 레오파르트2AV와 XM1이 화력과 기동성에서는 동등했으나 방호성능에서 XM1이 우세했기에 XM1을 선택한다고 발표했다. M1의 장갑재 충전 구역이 더 넓은 이상 동등한 장갑재를 쓴다고 가정했을경우 XM1이 방어력이 더 뛰어나다. 화력에서는 120mm 활강포를 달고 있었으나 XM1도 예산 문제 때문에 105mm 강선포를 달고 있었을 뿐 나중에 120mm 활강포로 교체하기로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넘어갔으며 레오파르트2의 장갑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미완성 상태였다.

 

비교평가 후에 PT19와 PT20은 독일로 돌아갔지만, T19는 남겨져 1977년 초까지 PT07에 얹혀 평가받았다. T19는 사격통제장치를 비롯한 전자장비에 약간만 손을 보면 순식간에 105mm 강선포에서 라인메탈 120mm 활강포로 교체가 가능했다. 독일은 양산형에서 120mm 활강포를 선택했고, 미 육군도 차후 XM1에 이 포를 탑재하는 것을 제안했다. 집중적인 실사격 시험 후에, T19는 독일로 반환돼 T21과 동등한 사양으로 개수됐고 양산 테스트를 위해 PT19 차체에 탑재됐다. 1977년 9월, 서독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5개 배치(Batch)로 나눠 생산될 1,800대의 레오파르트2 양산계획을 승인했다. 경쟁 입찰에 참여한 3개 회사 중 크라우스 마파이사가 주계약자로 MaK는 부계약자로 선정돼 크라우스 마파이사가 생산량의 55%의 MaK가 45%를 맡았다. 베그만사는 포탑체계통합을 맡았고 크루프 아틀라스 전자(Krupp Atlas Electronik)가 휴즈의 협력을 받아 개발하여 EMES-13(L)을 제치고 채택된 EMES-15 포수조준경의 통합작업을 수행했다. 120mm 전차포 공급은 라인메탈의 몫이었다.

 

시쿠에서 나온 다이캐스트 제품의 기본 전차 모델이 바로 이 전차임을 알 수 있다.

 

1977년 1월 20일, 선행양산형 차체 셋과 포탑 둘이 주문됐고, 1978년 10월 11일 인도되었다. 첫 번째 차체는 T21에 맞도록 생산되어 1979년 초까지 뮌스터(Münster)의 독일 기갑학교에서 야전시험을 받았다. 다른 두 차량은 1979년 초에 전투사용가 판정과 최종시험에 사용됐다. 레오파르트2의 선행양산형은 양산형에서는 삭제된 포신 끝 위에 달린 콜리미네이터(Colliminator)의 존재로 쉽게 식별할 수 있다. 4번째 차량은 공식적으로 1979년 10월 25일 독일 기갑학교에 인도됐다. 독일연방군이 처음으로 레오파르트2를 도입하는 순간이었다.

 

3.3.2. 배치 1 (1979년~1982년 3월)

 

380대 중 209대가 크라우스 마파이에서, 171대가 MaK에서 생산되었다. 1979년에 6대의 차량이 처음으로 뮌스터 기갑학교에 인도됐다. 1980년에 100대가, 1981년 220대가 인도돼 제1군단의 레오파르트1을 밀어냈다. 이 레오파르트1은 기갑척탄병사단의 전차대대로 넘겨져 M48A2G를 대체했다. 1982년에 이르러 생산은 연간 300대 정도로 증가해 마지막 레오파르트2 배치 1이 그 해 3월에 인도됐다.

 

배치(Batch) 1의 양산기간 내에 EMES-15 포수조준경용 열영상장비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배치 1 양산분 200대는 야간전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땜빵으로 PZB(Panzer-Ziel-Und-Beobachtungsgerat; 전차 조준관측장치)200 저광량 TV카메라 체계를 일시 탑재했다.

 

450대 중 248대가 크라우스 마파이에서, 202대가 MaK에서 생산됐다.

배치 2를 식별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측풍감지기의 제거와 각진 형상으로 변경된 전차장 잠망경 블록 장갑이다. 또한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exas Instruments)가 제공한 공통 모듈을 기반으로 칼 자이스가 생산한 열영상장비 WBG-X 가 EMES-15 포수조준경에 탑재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 외에도 연료주입구가 엔진 데크에서 차체 좌우측의 연료탱크로 재배치되어 연료보급 시간을 줄였으며, 승무원 차내통화기를 위한 외부 커넥터도 포탑 좌측면 후부에 설치됐다. 탄약저장대는 M1A1 에이브람스에 탑재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바뀌었다.

 

300대 중 165대가 크라우스 마파이에서, 135대가 MaK에서 생산됐다.

개량점은 디플렉터의 설치로 PERI R-17 전차장 조준경의 위치가 50mm 올라갔다는 점과 NBC 방호체계에 보다 큰 덮개가 설치됐다는 점이다. 이 개량은 배치 2 양산분에도 실시되었다.

 

EMES-15용 열영상장비가 가용해지자, 배치 1 차량에도 배치 2와 배치 3 차량과 동등한 수준으로 현대화를 실시한다는 결정이 내려진다. 현대화 개수는 배치 3, 4, 5 생산과 동시에 진행되어 1984년 시작해 1987년 마지막 차량이 부대에 인도됐다. PZB200의 제거와 열영상장비의 설치 외에도, 연료주입구가 전방 연료탱크로 이동했으며, PERI R-17 전차장 조준경의 위치가 올라가고 디플렉터가 설치되었다. 또한 NBC 방호체계에 대형 덮개가 설치되고, 측풍감지기가 제거되는 등 레오파르트2A1과 동등한 수준의 개량이 이루어졌다. 이 현대화 개수형을 외견으로 구분하려면 원래 측풍감지기가 있던 자리에 붙은 동그란 판과 개량되지 않은 고리형 잠망경 블록을 확인하면 된다.

 

300대 중 165대가 크라우스 마파이에서, 135대가 MaK에서 생산됐다.

배치 4는 더 짧은 안테나와 개량형 엔진 그릴, 그리고 신형 SEM80/90 디지털 VHF 무전기가 탑재됐다. 또한 포수가 기동중에 관측/조준할 때 기댈 수 있도록 조정 가능한 가슴 받침대를 포수석에 설치했다. 포탑 좌측면의 탄약보급해치는 NBC 방호 문제로 폐지되어 용접처리됐다.

 

370대 중 190대가 크라우스 마파이에서, 180대가 MaK에서 생산됐다.

배치 5 생산분은 신형 탄약 운용을 위해 사격통제장치에 디지털 코어를 적용하고, 자동소화장치가 탑재돼 승무원 생존성이 증대됐다. 후기 생산분은 2번 리턴롤러가 2, 3번 전륜 사이에서 3, 4번 전륜 사이로, 3번 리턴롤러가 4, 5번 전륜 사이에서 5, 6번 전륜 사이로 옮겨졌다.

 

3.7.2. 배치 6 (1987년 6월~1989년 5월)

 

150대 중 83대가 크라우스 마파이(1987년 6월~)에서, 67대가 MaK(1988년 1월~1989년 5월)에서 생산됐다. 원래 계획은 배치 5까지만 생산하는 것이었으나 추가생산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배치의 특징은 정비가 용이한 신형 배터리의 탑재와, 딜Diehl 570FT 궤도, 그리고 무크롬산아연 페인트의 적용이다. 또한 조종수가 해치를 개방하고 조종할 때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차체의 중앙경고등이 조종수석 앞의 작은 상자에 설치되었다.

이 버전부터 신형 장갑재인 C-타입 아머가 적용되었다.

 

75대 중 41대는 크라우스 마파이에서, 34대는 MaK에서 생산됐다.

연막탄 발사기의 베이스 마운트에 소소한 개량이 있으며, 사이드 스커트의 후방 부분에 새로운 설계와 재질이 적용되어 6개 부분으로 분리된다. 단, 일부 초기 생산분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포신 끝에 포구감지기가 장착돼 포수가 포신의 변형을 보정할 수 있게 됐다. 마지막 인도분인 11158호 차량이 1992년 3월 19일 뮌헨에서 제8산악전차대대에 공식행사와 함께 인도되면서 생산이 종료되었다.

 

기존의 레오파르트2A4를 개량하기 위해 라인메탈사가 제작한 업그레이드 킷. 기존의 레오파르트2A4에 비해 약 4톤 가량 무거우며, 나노세라믹, 티타늄, 강철을 복합한 AMAP장갑을 장착하였다.

싱가포르군은 96대의 레오파르트2A4를 레볼루션 킷을 통해 개조하였으며, 개조 전차는 레오파르트2SG로 명명되었다.

 

냉전이 끝나자 독일군은 레오파르트3의 개발 계획을 취소하고 기존의 레오파르트2를 개량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1991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방어력 강화와 화력 강화를 목적으로 2단계로 나누어 실시되었다. 1995년부터 배치되었다.

 

외형적으로 가장 크게 변한것으로 포탑 전면과 전측면 일부에 설치된 고경도 경사장갑인 쇼트아머로, 이 덕에 포탑 전면 방어력이 상당히 증가하였다. 또한 기존에 포탑 장갑을 파먹고 자리하고 있던 포수 조준경을 포탑 상부로 올려 포탑 전면 약점이 사라졌고, 포방패 형상도 변해 면적이 좁아졌으며 새로운 전차장용 독립 조준경(CITV)을 적용하였다. 신형 CITV는 Ophelios-P 2세대 열상을 장착하여 주야간 탐지 능력을 갖추었다. 또한 포탑/주포 구동계를 기존의 전기-유압식에서 전기식으로 교체되었고, 이외에도 통신장비 개수와 새로운 항법장치가 적용되는 업그레이드가 있었다.

 

2001년 5월 독일 연방군에 최초로 도입된 사양으로 120mm 44구경장 주포를 55구경장으로 교체하여 공격력을 강화하고 주포 안정기를 교체하였다.

 

사진 속의 전차는 레오파르트 2A6EX로, 차체 정면과 포탑 상부에 두꺼운 증가 장갑이 장착된 버전이다.

 

폭스바겐 투아렉의 1세대 모델을 이 탱크가 깔아뭉개려 했으나 하체가 멀쩡히 남아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물론 한번 더 밟았을때 완전히 부서지긴 했지만 이 사건은 한동안 투아렉의 내구성에 대한 마케팅 요소로 작용했다.

 

국제 평화 활동에 있어서의 시가전을 상정해 설계된 형태. PSO는 Peace Support Operations의 약어. 2006년 6월에 처음 공개 되었다. 주포는 시가지에서의 운용을 고려해서 44 구경장 120 mm 활강포를 탑재한 모델로 차체 전면과 측면 그리고 포탑 측면 및 후면에 증가장갑 및 방호구조물 부착하여 방호력을 강화하였고 차체전면에 RPG-7 대책용의 증가 장갑을 장착하여 차체전면하부와 차체 저판에는 대지뢰용의 장갑 플레이트를 장착하여 대지뢰 방호력을 향상시켰다.

 

탄약수용 해치 후방에 설치된 360도 선회 가능한 원격 조작식 총가에는 40mm 고속 유탄발사기, 또는 12.7mm 중기관총, 또는 7.62mm 기관총을 설치가 가능하다. 비살상 병기(연막탄,최루탄)를 따로 발사할 수 있다. 소형 카메라 설치로 근접 관측 능력을 확보하였으며 주포 동축에 탐조등을 설치하여 탐지 능력을 개선하고 차체 전면에 도저 블레이드를 장착하여 시가전에 대응하고 차량 전체에 시가전 대응 위장도색 등이 주된 개량점이다.

 

그러나 이 전차의 의의는 레오파르트2 시리즈중 최초로 BMS를 장착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물론 연대급은 아닌 대대급인 Fuinfosys-H이지만 기존의 IVIS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발전하였고, 이를 장착함으로써 기존의 레오파르트 시리즈보다는 향상된 전투능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Krauss-Maffei Wegmann(KMW)사는 2010년 6월 14일 Leopard 2A7+를 발표하였으며, 2012년부터 50여대의 레오파르트2 전차를 해당 모델로 개수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A7+은 열상장비가 3세대로 업그레이드되었고 신소재를 채용하여 쇼트장갑이 개선되었다. 전체적으로 시가전 전투를 염두하고 개발되었으며, 때문에 RPG-7 등에 대한 전방위 방어를 위해 측면 전체에 증가장갑을 적용시키고 승무원이 내부에서 원격으로 조작하는 무인 총좌(RWS)를 장비했다. FLW 200 무인 총좌에는 본래 7.62mm MG3 기관총이 장비되어 있었으나, 2010년 말부터 MG3가 정식으로 퇴역하기 시작하면서 40mm GMG 고속유탄발사기로 교체될 예정이다.

 

2011년 중순에 독일 정부가 사우디 아라비아에 해당 모델 200대를 판매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판매 계약 자체는 무사히 성립되었지만, 독일 의회에서 태클을 걸어버린 탓에 아직 협상이 이어지고 있다. 원래는 사우디가 800대를 살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2013년 7월에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협상이 결렬되고, 사우디는 레오파르트2A7+ 대신 GDLS의 M1 에이브람스를 추가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입장에서는 레오파르트2A7+의 최대 도입 예정국이 사우디였는데 이걸 파토내버렸으니, 다른 소규모 도입국들에 대한 단가의 상승은 피할 수 없을듯하다. *

 

2014년 초, 독일연방군이 보유한 레오파르트2A6를 전부 레오파르트2A7으로 개수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2014년 12월 10일 독일연방군이 드디어 첫 양산분을 인수하였다! 다만 FLW 200은 예산 부족으로 인해 장착되지 않았다.

 

레오파르트 2의 가장 큰 특징은 전투중량이 55t이나 되는 중(重)전차임에도 화력이나 기동력, 방호력을 균형 있게 갖추고 있어서 신뢰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미국의 M1A1/M1A2의 주포로도 채용된 라인메탈(Rheinmetall)사의 120㎜ 활강포, 이젠 M1 전차 업그레이형의 엔진으로 채택되다시피 한 MTU사의 출력 1500마력 액체냉각식 디젤 엔진, 세라믹으로 대표되는 여러 종류의 방탄재와 방탄 강판을 결합시킨 복합장갑 등을 채용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에 등장한 서유럽 주요국가의 제3세대 주력전차의 기술적인 특징을 확립한 차종으로 인정받고 있는 전차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부실한 업그레이드와 노후차종 우려먹기로 지금은 거품이 꼈던 평범한 전차 취급을 당하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몸체는 앞쪽의 주행장치 부분, 중앙의 화기 부분 및 뒤쪽의 엔진 부분 등 3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주행장치 부분인 조종석에는 3개의 관측용 잠망경이 장착되어 있으며, 조종석 왼쪽 공간에는 탄약 저장고가 있다. 전차의 뒤쪽에는 수직과 수평으로 65°의 범위까지 관측할 수 있는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으며, 이 카메라와 연결된 텔레비전 모니터는 조종수의 후진을 원활하게 도와준다. 탄약수는 왼쪽편에, 전차장과 사수는 오른쪽에 위치한다. 탄약수는 별도의 해치를 가지고 있다. 엔진실과는 분리되어있는 승무원들의 공간에는 화기(火氣) 검출 및 소화 시스템이 장치되어 있다.

 

초기형 등장 당시 NERA가 적용된 복합장갑이 장착되어 포탑 전면 ±30도 기준 KE 350mm, CE 700mm 정도의 방호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1988년 1월부터 생산된 배치 6 생산형부터는 NERA 형태가 아닌 세라믹 복합장갑을 적용해 위와 같은 기준으로 KE 410~420mm, CE 750~800mm 정도의 방호력을 가지게 되었고 파편 방지를 위해 50mm 두께의 스폴 라이너를 추가했다.

 

포탑 전면에 조준경이 노출되어 있어, 전면의 다른 부위보다 관통될 가능성이 큰 취약 부분이라 독일 정부가 레오파르트2의 장갑을 개선할 것을 주문할 때 A5 이후부터는 포수 조준경이 위쪽으로 올려 배치되는 개수를 받았으며 추가적인 방호구조물이 설치되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쇼트 장갑이다.

 

레오파르트2A5부터 포탑 전면과 측면에 고경도 강판으로 구성된 경사장갑 구조물, 통칭 TVM 장갑 혹은 쇼트 아머가 탑재되고, 포수조준경의 위치도 포탑 우측에 파묻힌 형태에서 포탑 상부로 들어올려졌으며 해당 공단에는 철판과 후면재로 복합재를 장착해 방어력을 높였다. 이 쇼트 장갑은 경사형태를 띄고 있었고 NERA와 공간장갑의 효과를 내어 KE 탄에 대한 방호력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알려젔다. 비용과 중량을 감안해 스웨덴에 제시됐던 Strv 122와 달리 차체와 상부에 대한 증가장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에볼루션 키트는 기존 쇼트아머가 없는 A4이하 버전을 위한 방어력 강화 킷으로, 전면에 복합장갑을 추가로 달았고, 공간장갑이던 쇼트아머와 달리 사이에 젤 형태의 충전체를 넣어서 대탄에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개량되었다.

시가전을 대비해 슬랫아머를 사이드 스커드에 장착할 수 있다. 또한 레오파르트2A7에는 나노 기술을 응용한 소재와 티타늄을 추가하면서 방어력이 강화된 장갑재을 사용한다.

 

독일에서 주독미군, 주독영국군(라인 사단)과 붙은 레오르파트2A6는 적외선(열영상)/레이더(MW) 대응 효과를 지닌 바라쿠다 MCS 위장망을 이용해 대대 모의 대항전에서 가상적인 M1A1과 챌린저2를 완전히 압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M1A1을 탔던 전차병의 증언에 따르면 야간전에서 레오파르트2A6의 포탑 윗부분만 어렴풋이 보이는 상태에서 털렸다고 한다. 참고로 주독미군은 AH-64 아파치 헬기까지 동원한 상태였지만 아파치도 조준에 실패했다고 한다.

 

추가적으로 능동방어장치를 탑재할 수 있다. 어비스(AWISS) 능동방어장치는 소프트킬과 하드킬 장비가 조합된 능동방호체계로 레이더 조사 경보 장치가 탑재되어 승무원에게 경고할 수 있다. 또한 하드킬 장비도 있어 쇠구슬이 내장된 요격탄두을 발사해 25m 밖에서 요격할 수 있다. 현재 K-2 흑표 역시 이와 유사한 능동방어장치를 장비할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에 레오파르트2A4로 수행한 LAHAT 포발사 미사일 실험 영상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개량을 통해 포발사 미사일도 운용가능하다.

 

또한 레오파르트2에 사용되는 날탄은 1979년에 개발이 완료되고 실전배치된 DM-13탄을 사용시 2km에서 340mm의 관통력이 나왔으며 1983년에는 DM-13보다 더 관통력이 향상된 420mm급의 DM-23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이후 1987년에는 DM-33의 경우 이론상으로는 480mm 정도의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었다.

 

1996년에는 DM-33에서 관통력이 개선된 550mm급으로 추정되는 DM-43이 배치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1999년에 개발된 DM-53은 관통력 44구경장 기준 630mm급의 관통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후 2005년 DM-63 또한 배치되었다. DM63의 관통자와 장약의 화력은 DM-53과 차이가 없다. 달라진 점은 SCDB 둔감장약을 사용하여 기후또는 온도에 따라 변화가 있었던 DM-53탄의 포구압력(=관통력)을 안정시킨 것 정도이다.

 

다만 날탄 관통력 수치는 추정치이기 때문에 출처마다 수치가 다르지만 보통은 일반 철판에다가 실험을 하면 대강 이정도 나온다. 한편 대전차고폭탄의 경우 관통력 600mm급인 DM-12를 1979년부터 운용했지만 2010년 미군의 M830A1 MPAT와 유사한 DM-11 다목적고폭탄이 배치되었다.

 

그런데 1980~81년 미국의 105mm 열화우라늄탄인 M774는 DM-13과 비교해서 340mm로 관통력은 약간 떨어지는데다 장전의 용이함과 탑재량의 우위로 DM13이 더 불리하다. 대략 4년 후에 도입된 M833 DU탄과 DM-23을 비교해봐도 마찬가지다. 물론 DU로 갈아탔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수치인 것.

 

다만 동네북 T-72를 베이스로 폴란드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PT-91도 100% 관통을 보장하지 못하는 등 텅스텐으로서는 최대치급의 능력을 가졌지만 이걸로 원샷 원킬 하기는 힘들었다. 소련의 T-80U는 1985년부터 콘탁트-5를 부착하고 다녀 당대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M829A1을 정면에서 막아낼 수 있었고, 1988년에 등장한 M1A1HA의 차체 전면 방호력은 KE 600mm 이상으로 추정된다. 미국이 M829A2를, 러시아가 3BM46이라는 DU 탄을 찍어낼때 확실히 보낸다라는 보증이 없는 텅스텐 탄으로 DM-53이 등장하던 1999년까지 버텨야했던 독일군 지못미

 

사실 이는 열화우라늄을 가공하기 어려웠던 독일 탓이 크다. 미국이랑 러시아는 우라늄 광산에 원자력 발전소, 핵 재처리 시설이 넘처흐르던 곳이라, 열화우라늄같은 뛰어난 소재가 텅스텐보다 싸기에 이런 탄을 만들 수 있던것이다.

 

이때문에 레오파르트2A6부터는 주포 길이가 기존의 44구경장에서 55구경장으로 길어져 주포의 관통력이 증대되었다. 상당히 길어진 장포신 주포덕분에, 그 무거운 탄임에도 탄속이 동구권 전차만큼 빨라젔고, 덕분에 위력이 크게 향상 되었다.

현재 55구경장 120mm 활강포를 장착한 전차는 레오파르트 2A6과 대한민국의 K-2 흑표, 그리고 터키의 알타이뿐이다. 그밖에 프랑스의 르끌레르 전차가 52구경 활강포를 탑재하고 있다.

 

엔진은 처음부터 1,680마력이었으나 연비를 생각해 1,500마력으로 낮춰 썼으며 이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등장할때는 톤당 마력 27.27로 당대 최고의 기동성을 자랑해 정지상태에서 6초만에 32 km/h까지 가속이 가능했다. M1도 비슷한 수준의 가속성능을 지녔는데, 출력 자체로 보면 M1A2 SEP도 가스터빈 엔진의 리미터를 해제하면 2,000마력까지도 올라간다. 단순 출력상으로는 서로 비슷비슷한 수준.

그렇다고 에이브람스가 2,000마력이라고 생각하는건 곤란하다. 이런식으로 뭐붙이고 무슨상황이고 자시고를 따지면 아래 서술되어 있듯 레오파르트2도 2,700마력까지 올라간다.

 

 

후에 장갑이나 주포가 교체되면서 전투중량이 늘어나 기동력과 항속거리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450 km정도로 390 km정도인 M1A2 SEP보다 노상 및 야지 항속거리가 길고 디젤 엔진의 외계놀러지 선두기업인 MTU에서 MTU 883 Ka-524 엔진을 개발하면서 군용전투차량용 파워팩으로는 최초로 2천마력의 벽을 넘어섰다. 2,050~2,090마력. 보조장치를 덧붙이면 2,150~2,300마력. 해수를 이용한 강제수냉을 해주면 2,700마력까지 올라간다. 근데 이거, EFV에 채택된건데 오직 해상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며 지상에서는 850마력이다.

 

또한 미국이 아직도 1,500마력 디젤을 제대로 못 만들고 한국도 거의 30년 후에 1,500마력을 맞추려 낑낑댄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과장섞인 표현이다. 미국도 60년대 MBT-70 개발시 MTU-873과 동급 출력을 가지는 공랭식 4행정 디젤엔진 AVCR-1360의 개발을 완료하였다. 단 이 엔진은 가변압축비, 가변 지오메트리 터보라는(간단히 말해 가변적으로 통로조절을 통해 배기가스의 유입을 조절하고 엔진의 압축비를 조절한다는 것.) 2010년 대에 들어와야 ECU로 대표되는 전자제어 등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써먹을려고 하는 물건인 만큼 70년대에 이것으로 얼마나 잘 쓸 수 있을지 장담 할 수 없었다.

 

당장 연료 퍼먹는 거 외에는 간단하고 좋다고 가스터빈 들여왔다가 고장 잘나서 한때 생산 중단하라는 욕을 들을 정도였다. 레오파르트2의 1,500HP 엔진도 KA 500에서 토크 부족 및 전장적응성 문제로 후에 KA 501로 갱신하고 안정화 하는데 고생 꽤 했을 정도였다. 거기에 주행시험 당시 1360은 변속기에 상관없는 스펙을 보여주는 871계열 1,500HP 엔진과 달리 변속기에 따라 성능이 너무 크게 갈렸다.

 

굳이 AVCR-1360에 묶이지 않고도 K-1 전차에 장착될 뻔했던 AVDS-1790의 1,200HP 엔진에 개조를 가해 1500마력으로 끌어올린 물건이 존재하나 이것이 나왔을 즈음에는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았다.

 

한국이 1,500마력 파워팩에서 죽쑤는 것 또한 최저가입찰(최우선)제라는 쓰레기 같은 입찰방식과 그로 인하여 요구성능을 충족하는 디젤엔진을 개발할 수있는 능력이 전무한 두산이 선정된것이 문제다. 만약 엔진 개발경험이 풍부한 현대나, 혹은 1,200 마력급 MTU MB-871 Ka-501을 면허 생산해본 경험이 있는 STX를 선정하였다면 결과는 달라도 한참 달라졌을 것이다.

 

무한궤도의 경우 딜(Diehl)사의 제품을 사용하는데 궤도 자체가 타 국가에 비해 뛰어나 다른 나라처럼 잦은 정비가 필요없다고는 하지만 실전에서 전차의 오버홀은 해주면 좋다. 신뢰성이 좋다고 안해도 되는건 아닌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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