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F-4 팬텀 II(McDonnell Douglas F-4 Phantom II)
현재 운용중인 F-4E 팬텀 30여 대는 1976년과 1978에 도입된 기종이며 이후 1989년 10월 MIMEX(주요 잉여물자) 사업으로 미군이 운용한 기종을 일부 RF-4C와 함께 도입하였다. 이후 제17전투비행단 산하 3개 대대에서 한동안 잘 운용하다가 노후화가 되면서 2013년 8월 1일에 미군이 운용하다가 도입된 F-4E 기체들을 우선으로 순차적 퇴역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2018년부터 F-35A 도입이 되면서 순차적 퇴역 및 비행대대 통폐합을 거쳐 제10전투비행단에 재배치되어 운용 중이고 2024년에 전량 퇴역할 예정이다.
2013년부터 순차적으로 퇴역한 F-4E 1대는 2013년 10월 4일 10시 퇴역절차를 마치고 공군사관학교로 운반되었다. 블랙이글스과 유사하게 스페셜 마킹되었다. 다만 이 기체의 스페셜 마킹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많다. 팬텀이 블랙이글스 기종으로 활약한 적도 전혀 없을뿐더러 우리나라 공군 전통의 기체도장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데 굳이 블랙이글스 도장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겠냐는 의견이다. 이 외에도, 간지나는 외형과 상징성 탓인지 전국 곳곳에 전시물로 전환된 팬텀들이 꽤 된다. 거의 해군의 S-2 대잠초계기 수준으로 뿌려져 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공군이 분석하기로는 아직 F-4E 계열을 향후 10년 이상 운용이 가능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단종되어 부품을 더 생산하지 않아 조달이 어렵다. 그래서 스페인, 터키, 독일, 노르웨이 등 F-4를 운용하는 국가가 보유하는 잉여 부품을 구매했으며, 민간 군수업체까지 동원하였다. 그러나 운용 국가가 점차 줄어들어감에 따라 단종 부품은 늘어갔다. 공군에서는 부품 돌려막기를 사용하다가 이후 공군 군수사령부는 일부 F-4의 부품 국산화를 시작으로 점차 국내 항공산업의 발전 등의 영향으로 국산화된 부품이 늘어났고 그 결과 이러한 기사도 등장했다.(원 기사가 삭제되어 비슷한 기사 링크 첨부) 심지어는 노후된 부품을 금속 3D 프린터로 찍어내어 유지보수 해보니, 미국에서 조달받는 부품가격보다 훨씬 저렴했다고 한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2010년대 초반에 퇴역한 F-4D와 2024년에 퇴역할 F-4E의 경우 2000년대 중반에 F-15K이 도입되면서 노후화된 일부 기종이 어느 정도 대체가 되었으며 그나마 운용 중인 남은 F-4E도 F-35A로 순차적으로 대체하면서 2024년에 전량 퇴역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F-5E/F의 경우 KF-X가 120대 정도가 실전배치되는 2030년까지 운용할 예정. 즉 이런 노력이 있어 F-4의 가동률은 F-5, KF-16의 가동률을 상회하는 90%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갈수록 가동률이 떨어져서 15년에는 81%로 같은 해 85%와 84%를 기록한 F-15K, KF-16에게 밀렸고 17년에는 76%로 감소하고 2020년에는 목표치인 75% 아래인 71%로 떨어졌다. 아무래도 노후화가 심해지다보니 정비소요가 늘어나는 듯.
대한민국 공군은 RF-4C를 도입했었다. RF-4C는 미군에서 1969년 이후로 취역하여 운용한 기종으로 1989년 10월 MIMEX(주요 잉여물자) 사업으로 미군이 운용한 기종을 일부 F-4E와 함께 도입하였다. 이후 2010년대 초반까지 운영하여 RF-4C의 실 운용기간이 40년 이상을 운용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2010년 추락한 RF-4C은 44년 운용했다. 이후 ADD가 개발한 국산 전자전기장비를 장착한 RF-16이 등장하면서 2014년 2월에 RF-4C는 완전히 퇴역하면서 지난 1989년, 18대가 처음 도입되었던 팬텀기의 세 번째 개량형인 F-4C가 전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서 퇴역했다. RF-16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F-16 문서를 참조.
일본은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E형을 EJ로 명명하여 138대를 면허생산했다(최종 도입수량은 140대). 도입과정에서 일본국 헌법 제9조로 인하여 공중급유, 지상 공격 능력이 제거되었고, 대신 국산화비율을 높이며 일본 자국산 장비가 들어갔다. 기수는 재설계된 후기형이지만 주익은 연장 슬랫(slat)이 없는 초기형이다. 또한 정찰용으로 따로 RF-4E형도 13기 도입했다.
후에 F-15를 도입하면서 기존의 F-4EJ도 개수에 들어갔는데 이것이 F-4EJ KAI(改)이다. 개수형은 기존에 삭제되었던 공중급유능력과 지상공격능력이 추가되었고 일본산 ASM-1/2 공대함 미사일 AAM-3 공대공 미사일 운용능력도 추가 되었으며 레이더 및 각종전자장비들도 개수하여 기존의 F-4EJ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갖추게 되었다. 일부 기체는 도색도 대함 임무등 해상작전을 위해 기존 회색 대신 F-2와 같은 청색 해양위장무늬로 변경되었다.
또 일부 기체는 정찰용으로 개조하였는데, 정찰용 RF-4EJ도 기존의 화력제어시스템 및 무장 하드포인트는 그대로 남겨두어 정찰 임무 및 전투 임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2017년 10월 18일 오전 11시 45분 한 대의 F-4EJ 1기가 전소되었는데, 이상한 점은 이륙을 위해 지정된 활주로로 이동하던 도중에 왼쪽 뒷바퀴에 불이 붙었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여러 밀리터리 커뮤니티에서 도대체 어떤 상황이 갖춰져야지 활주로로 이동하는 도중 바퀴에 화재가 일어나 전투기 한 대가 전소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화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사 결과 F-4 팬텀이라는 기종 자체가 전체적으로 노후화되어 금속피로 같은 원인으로 바퀴 부근에서 균열이 생긴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으며 전소된 F-4EJ 역시 도입된지 이미 30년이 넘은 최고로 노후화된 기종이 었다. 이때문에 이미 2019년부터 순차 퇴역하고 있었으며, 2020년까지 모든 F-4EJ가 퇴역한다. 대체기종은 F-35A다.
2020년 고노 다로 방위상이 점점 증액되고 있는 방위비(국방비)에 보탬이 되고자 퇴역하는 F-4를 폐기하는 대신 부품별로 분해해 다른 퇴역물자들과 함께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7월 26일에 실제로 경매가 이루어졌고 무려 581만 8000엔의 수익을 올렸다.
2020년 11월 21일, 세계에서 가장 최후로 제조된 기체를 포함, 모든 F-4가 항공자위대의 전투비행대에서 퇴역했다.링크 링크 2 2021년에 비행개발실험단에서 운용하는 기체들도 3월 17일에 마지막 비행을 끝내고 퇴역하였다.
해군용인 팬텀 FG.1(F-4K)은 총 48대가 생산되어 1968년부터 배치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CVA-01급 2척과 오데이셔스급 2척에서 총 140대를 운용할 계획이었으나 CVA-01이 취소되면서 생산량이 1/3로 줄었다. 하지만, HMS 이글의 개장이 비용문제로 취소됨에 따라 HMS 아크 로열에서 운용할 28대만 영국 해군에 남고 나머지 20대는 영국 공군으로 돌려졌다. 영국 해군에 배치된 28대의 팬텀들은 700 비행대대에서 작전 능력을 평가받은 다음 767, 892비행대대에 배치되었다. 767비행대대는 지상기지에서 훈련임무에만 종사하였기 때문에 항공모함에서 운용되는 팬텀은 전부 892비행대대에 배치되었으며 종종 미 해군 항공모함에서 작전을 뛰기도 했다. 767비행대대는 1975년에 해체되었고 1978년에 HMS아크로열이 퇴역하면서 892비행대대도해체되었으며 해군에서 운용하던 FG.1은 전부 공군으로 이관되었다. 이들 FG.1은 111비행대대에 배치되었다가 1990년에 파나비아 토네이도로 대체되고 전량 퇴역하였다. 한편 처음부터 공군에 배치된 팬텀 FG.1은 43비행대대와 64비행대대에 배치되었다. 43비행대대는 1989년에 파나비어 토네이도로 기종전환을 하였고 64비행대대는 1991년에 해체되면서 FG.1은 영국군에서 완전히 퇴역하게 된다.
영국 공군에서 사용된 F-4M Phantom FGR.2
공군형 중 하나인 팬텀 FGR.2(F-4M)는 1969년부터 총 118대가 배치되었으며, 해군에서 받은 FG.1과 함께 호커 헌터를 대체하였다. 영국 공군은 이들 기체를 방공, 근접항공지원, 정찰 임무에 투입하였으며 이후 SEPECAT 재규어와 블랙번 버캐니어가 배치되면서 방공임무에 더 집중했다. 포클랜드 전쟁 이후 영국은 1개 비행대대(23 비행대대)를 포클랜드 제도에 배치하였고 1988년에 역시 FGR.2를 보유한1435편대에게 임무를 넘겨주고 본토로 돌아왔으며 1435편대는 1992년 7월까지 FGR.2를 운용하였다. 1987년부터 방공형 파나비아 토네이도인 토네이도 ADV가 배치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하여 1992년에 최종 전량 퇴역했다.
또 다른 공군형인 팬텀 F.3(F-4J)은 포클랜드 전쟁 이후 증가한 방공용 요격기 수요를 채우기 위해 급히 도입하였다. 포클랜드 전쟁이 끝난 뒤, 영국 공군은 1개 전투비행대대의 팬텀 FGR.2를 포클랜드 제도 방공임무에 투입하였다. 이로 인해 생긴 본토 방공의 공백은 방공형 파나비어 토네이도로 메우려 했으나 방공형 토네이도인 토네이도 ADV의 개발과 배치가 지연되자, 1984년에 미 해군의 중고 F-4J를 15대 도입하여 1개 비행대대를 편성하였다. 이들 기체들은 토네이도 배치까지의 공백을 메우고 1991년에 퇴역했다.
이란
지금이야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지만 한때 팔라비 왕조가 다스리던 이란과 미국은 사이가 아주아주 좋은 나라였다. 이 때의 이란은 C-130이나 F-4 뿐만이 아니라 F-14까지 구입해 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집권하면서 반미/반서방 노선을 걸었고, 당연히 미국은 모든 미제 무기에 대한 부품 공급을 끊어버렸다. 이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이란은 제3국을 통한 부품 조달을 시도했는데 중동 석유에 국가경제가 걸려있는 한국이 여기에 응답해서, 전쟁 기간 내내 이란에 F-4 팬텀을 포함한 주요 미제 무기들의 부품을 공급하였다. 미국은 이를 알고도 모른척 그냥 넘어갔는데 이란-콘트라 사건이 아직 밝혀지기 이전이라 이런저런 이란과 유착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란 공군 소속의 F-4E 편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F-15 편대와 교전을 벌이다가 모두 격추당한 사건도 있다. 맥도널 더글러스 사의 전투기끼리 교전을 벌인 것은 저 때가 유일하다고 한다. 맥도넬 더글라스 사는 이후 보잉에 인수합병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맥도넬 더글라스 사의 전투기끼리 교전을 벌이게 되는 경우는 보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1980-1983년 사이 F-4F를 개량, 기존에 제외되었던 F-4E 수준의 능력을 회복했다가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전력화까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ICE(Improved Combat Efficiency) 업그레이드를 실시, 결국 AIM-120A AMRAAM까지 운용할 수 있는 최강의 F-4를 만들어냈다. 다만 60년대 기체인 팬텀의 한계로 IFF 질문기가 없었기 때문에 암람을 비롯한 BVR 무장은 GCI의 통제에 따라서 운용해야 했다고. 참고로 F-4를 운용하던 제72전투비행단(JG 72)에서는 MiG-29G/GT도 함께 운용했다. 그런데 정비보수가 번거롭고 기종 자체가 노후된 이유로 유로파이터가 도입되자 2009년 MiG-29G/GT는 전량 퇴역하여 폴란드로 수출되었고, F-4F 역시 수명연장 계획을 거치다가 2013년 JG 71에서 마지막으로 운용하다. 6월까지 운용하다가 퇴역했다고 하지만, 2020년에도 운용 중인 기체가 확인되었다.
호주는 정식으로 도입한게 아니라 노후된 캔버라 폭격기의 후계기로 주문해놨던 F-111의 인도가 기술적 문제로 기약없이 늦어지자 1970년 미 공군에서 사용하던 F-4E 24대를 임대, 1973년까지 사용했다. 어느 정도 운용해본 호주 공군은 F-4의 성능에 상당히 만족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김에 F-111의 계약을 모조리 취소하고 F-4를 정식으로 도입하자는 주장까지 나왔으나, 기껏 한 국가가 아닌 크고 아름다운 오세아니아 대륙을 방공영역으로 삼아야 하는 호주 입장에서는 F-111의 사기적인 항속거리가 무척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에 반납 후 F-111을 수령해서 2010년까지 마르고 닳도록 운용했다.
1971년 훈련중 1대를 상실했고 최종적으로는 23대를 반납했는데, 추후 이 기체들은 대부분 F-4G 와일드 위즐로 개조되어 걸프 전쟁에서 신나게 이라크 방공망을 제거하는 활약을 펼친다.
1964년 월남전에 참전하여 엄호, CAS, 후방차단작전 및 정찰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미 해군이 40대의 MiG기를, 공군이 107대를 격추시켜 전체 MiG기 손실량의 70%(140여 대)를 격추시켰킨 반면에 F-4의 공중전 손실은 해군이 7대 공군이 33대로 합쳐서 40대에 그쳤다. 공중전 손실비만 따진다면 1:3.67로 F-4가 확실하게 우세한 성과를 올린 셈. 그러나 미사일 만능주의 때문에 초기형에는 기관포가 없어서 공중전에서 불리했으며, 대공포와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된 F-4 숫자가 훨씬 많다. 전체 손실은(비전투 손실 제외) 해군이 73대 공군이 370대로 443대이며 이중 공중전 손실은 40대에 불과하니 대공포와 SAM에 의한 손실이 공중전 손실의 10배까지 나오는 셈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초기 북폭 작전인 롤링썬더 작전에 호위용으로 참가한 F-100이 초음속기도 아닌 MiG-17에 공중전에서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F-105가 MiG-17의 기관포에 격추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미군은 큰 충격을 받았다. F-100과 F-105는 초음속 핵 폭격을 목적으로 설계한 기종이었다. 당연히 핵을 사용하지 못하고 도그파이트를 벌여야 하는 베트남의 상공에서는 당할 수밖에 없기는 했지만.
더군다나 당시 미군은 미사일 만능주의로 인해 공중에서 근접전이 사라질 것으로 짐작하고 도그파이트를 상정한 기종을 전혀 개발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대규모 실전에서 미사일의 명중률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거기다 미군 파일럿들은 높으신 분들이 오인 교전을 막는다면서 '적기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쏴라'라는 지침(ROE, Rules Of Engagement라 한다.)을 내려놓아서 사거리가 길고 적기 전방에서도 조준이 되는 스패로우 미사일의 진가를 살릴 수가 없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초기형 스패로우의 경우 부실한 관리와 유도장치의 저성능으로 인해 가시거리에 가까스로 들어와서야 명중률을 기대할 수 있는 정도로 신뢰도도 낮았다.
결국 적기의 꽁무니를 잡고 보어사이트 방식으로 스패로우를 쏘거나 사이드와인더를 쏘아야 했으며, 꽁무니를 잡기 위해 싫든 좋든 도그파이트를 벌여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F-4는 여타 미군 기종들보다 낮은 익면하중 등 F-100 같은 기종에 비하면 수직 기동을 활용하여 도그파이트 성능에서 우월한 점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F-4가 대MiG용으로 적극 투입되었다.
이 당시에는 파일럿들이 전문적인 도그파이트 훈련을 받지도 못했던 데다 여타 미군 기종들보다는 좋다 해도 F-4는 고전적인 선회전 성능에선 MiG기에게 밀렸기에 베트남전 초기의 북폭 작전인 롤링 썬더 작전 동안에는 고전했다. 제아무리 도그파이트를 수직 기동으로 몰고 가면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전술적인 상황 때문에 한두번의 패스로 승부가 결정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보통 미군은 공격, 즉, 종심 타격을 가하는 입장이었고, 북베트남군은 방어를 하는 입장이었다. 이 말인즉슨, 미군 전투기는 도그파이트를 벌이는 상황이 되면 연료가 부족하여 수직 기동을 마음껏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나온다는 것이며, 적진 깊숙한 곳에서 벌이는 공중전이므로 당연히 심리적인 부담도 엄청났다. 반면 북베트남군 조종사들은 방어적인 입장이므로 격추당해도 탈출해서 살아남기만 한다면 다시 출격할 수 있었기에 항속 거리가 짧은 MiG기들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유리한 입장이었다.
거기다 F-4에는 기총이 없다는 점은 여러 방면에서 약점이 되었다. 적의 꽁무니를 잡고 미사일을 쏜다 해도 미사일에는 최소 사정거리가 있기 때문에 꽁무니를 잡고도 너무 가까워서 공격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났다. 그 뿐만 아니라 바로 전방에서 나타나는 적기를 공격할 수단이 마땅히 없다는 점 때문에 F-4 조종사들은 적기가 전방에서 나타날 때마다 매우 난처해했다. 일부 MiG기들은 이를 알아챘는지 미군기를 전방에서 기습하고는 사라지는 전술을 이용하기도 했다.
기관포 문제의 경우 미 공군에서는 "전투기에 기관포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 하면서 20mm 건포드를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D형에 장비해 운용했으며 이런 공군의 불만을 받아들여서 개량한 형식이 바로 F-4E이다.
F-4는 MiG기에 비해 불리한 부분이 많았으나, 반면에 MiG기들을 압도하는 추력과 롤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었다. 미군 파일럿들은 MiG기의 선회전 성능에 대응해 F-4의 추력과 롤이라는 장점을 활용한 3차원 기동을 만들어내면서 MiG기에 대응해 나갔다. 특히 미 해군은 탑건 과정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도그파이트에 대비한 훈련을 했다. 라인배커 작전이 진행되던 1972년만 해도 2기가 배출될 정도로 열심이었으니... 그러나 미 공군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체계가 잘 잡혀있지 않아서 개념있는 지휘관(예를 들어 볼로 작전의 영웅 로빈 올즈 대령 등...)이 이끄는 부대들만이 제대로 된 기량을 선보였다. 특히, 로테이션 제도 때문에 막상 실전 경험이 조금 쌓이려고 하면 신참들로 교체되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크게 기량이 향상되지는 않았다. 물론, 베트남전 이후로는 달라지지만...
F-4의 장점을 활용하는 공중전투기동의 개발과 훈련은 베트남전 후반기의 북폭 작전인 라인배커 작전에서 진가가 드러났다. 롤링 썬더 작전 때와는 달리 F-4는 공중전에서 MiG기를 크게 웃도는 성과를 올렸으며, 특히 미 해군은 탑건 과정을 수료한 파일럿들이 대활약하는데 탑건 과정을 수료한 VF-96 소속의 랜디 커닝햄(조종사)과 윌리 드리스콜(RIO/레이더 요격 관제사) 콤비가 베트남전에서 미 해군 최초의 에이스가 되었다.
미 공군은 해군만큼의 도그파이트 훈련이 없고 조종사들간의 능력 편차가 크다 보니 해군보다는 덜 압도적이고 들쑥날쑥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스티브 리치(조종사)와 척 드벨뷰(WSO/화기 시스템 관제사) 콤비가 미 공군 최초의 에이스가 되는 등 롤링 썬더 작전 때보다는 크게 나아진 성과를 올렸다. F-4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전투기가 아닌 SAM(지대공 미사일)을 비롯한 방공망이었다. 롤링 썬더 작전 초기에는 RWR도 장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주변을 잘 살피다가 SA-2가 내뿜는 수직 비행운을 감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총이 없어 상대적으로 해군형 F-4가 공군형에 비해 공중전에서 밀렸지만, 베트남전 당시 공중전 격추 비율로는 해군이 공군보다 더 우수한 성과를 올렸다. 이는 탑건 훈련도 영향이 있었고, 미사일도 해군의 AIM-9이 더 추적 능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관리부실 때문에 불량품이 넘쳐난 것은 공통적인 사항이지만...
한편 미 공군,미 해군 모두 F-4를 운용해보니 공중전에서뿐만 아니라 지상 폭격 등 다방면으로 쓰기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때문에 F-4는 베트남전 내내 MiG기 사냥만이 아니라 여러 대지 공격 임무에도 다방면으로 쓰이며 멀티롤 파이터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미 해병항공대의 경우 주 임무가 지상공격이나 지상지원이다보니 이러한 멀티롤 능력이 더욱 각광받았다.
기관포
F-4 초기형에는 기관포가 장착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로는 미사일 만능주의도 있지만 1960년대의 기술로는 기수에 레이더를 집어넣으면서 발칸포까지 넣기 힘들었기 때문인 탓도 있다. 당시 레이더는 진공관을 사용했는데, 진공관은 진동에 매우 취약하다(백열전구를 여러 개 꽂은 기판에 큰 진동을 가하면 과연 어찌될까 생각해보자.). 기관포를 기수 근처에 배치하면 진동이 생길 테고, 그러면 레이더의 진공관 회로를 보호하기 힘들었다. 덤으로 초기 공대공 미사일들의 정확도가 엉망이었던 이유도 이 진공관 회로 때문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기술이 발전해서 개량형 레이더가 개발되는데, 당시 기관포 포드를 장착해 사용한 공군은 진동 때문에 명중률이 좋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결국 동체안으로 내장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때문에 진동을 이겨낼 수 있게 개량된 레이더와 발칸포를 기수에 넣은 E형을 원했다. 반면 해군은 아무래도 함대방공을 좀 더 중요시하고 작전교리상 룩다운 능력이 있는 더 큰 레이더가 필요했기 때문에 기수에 기총을 장착할 공간이 부족해서 기총이 장비되지 못했다. 이것이 J형이다.
다만 해군 역시 공군의 SUU-23A에 비견되는 Mk.4 20mm 건포드(이쪽은 개틀링이 아닌 리볼버 캐논)을 가지고 있었으나 널리 쓰이지는 않고 이러저러하다 도태되었다. 미 해군의 리볼버식 건포드는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었다. 거의 흑역사급.
미 해군에서는 기관포 문제로 F-8 조종사와 F-4 조종사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자존심 싸움이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베트남전 후반기에 활약한 F-4 운용 부대 중 366전술전투비행단은 북베트남 보병들이 자꾸 집적대자 빡친 나머지 보유한 F-4E에 SUU-23A 건포드를 추가로 2기 탑재, 거기에 Mk. 20 록아이 클러스터 폭탄까지 매달아 지상을 쓸어버리기까지 했다. 20mm 기관포 3문(고정탑재 1문+건포드 2문) 일제발사도 가능했는데, 위력은 조종사의 말에 의하면 "땅을 갈아엎는듯 했다." 라고 한다.
그리고 F-4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초음속 상태에서 기총으로 적기를 격추시킨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기록의 주인공은 필 핸들리(Phil Handely) 소령으로 1972년 6월 2일의 공중전 도중 북베트남의 MiG-19가 그 동료기를 추격하자 AIM-7 2발을 발사했으나 1발은 그냥 떨어지고 1발은 빗나갔다. 그래서 꼬리를 잡고 AIM-4를 발사했는데 또 2발 다 빗나가서 결국 M61 벌칸으로 격추시켰다. 이때 핸들리 소령의 F-4는 마하 1.2로 비행하고 있었다.
중동전쟁
1967년 제3차 중동전쟁과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 F-4는 이스라엘군 전폭기로써 우수한 성능을 발휘했다. 개전 초기에는 큰 희생을 치렀지만 다마스커스의 시리아군 참모본부 폭격 및 수에즈운하의 이집트군 부교폭격 작전에서 크게 활약했다. 조엘 아로노프라는 미 공군 출신 조종사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나중에 이스라엘로 이주해 이스라엘 공군에 입대했는데 4차중동전에서도 팬텀기를 조종해 베트남전과 중동전에 참전한 유일한 팬텀 조종사라는 이례적 기록을 세웠다.
러시아에는 팬텀(Фантом)이라는 노래가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팬텀 조종사가 비밀리에 파견된 소련 조종사들에게 격추당한다는 내용. 원조를 알 수 없는 노래라서 여러 버전의 가사가 있다. 노래 배경에 대한 설명과 또다른 버전의 노래.
Cat Shit One에 F-4G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F-4G 1기가 대공포에 격추되고, 페키와 레츠는 상관으로부터 조종사들을 구출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F-4G의 전자전에 관련된 기밀이 넘어가지 않도록 그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미 전방 조종사는 탈출하지 못하여 전사하였지만, 레츠와 퍼키는 부조종사를 월맹군으로부터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미 척추가 골절되는 등 중상을 당했던 부조종사는 레츠와 퍼키에게 가족사진을 보여준 후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