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만년필(萬年筆, fountain pen)
펜 안에 잉크를 저장하는 잉크 통이 들어 있는 필기도구다. 옛날에는 유수필(流水筆), 자래필(自來筆)이라고도 했다. 만년필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에서도 발견되며 현대식 만년필은 1884년 미국의 루이스 워터맨이 모세관 현상을 이용한 만년필을 발명하며 등장했다. 이전에도 만년필 비스무리한 것이 있긴 했지만 거기까지, 잉크 흐름을 통제하지 못하고 저장만 하는 수준에 그친다.
닙(Nib/펜촉)을 통해 펜대에 잉크를 주입하며, 모세관 현상을 이용하여 잉크가 흘러나와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유럽과 중국 등의 경우 지금까지도 초등학생이 만년필을 사용할 정도로 여전히 만년필은 중요한 필기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 중학교에서는 흑색 또는 청색 만년필 아니면 볼펜만 기본적으로 사용하게 한다. 연필은 수학이나 미술 시간, 특별 활동 등에만 사용 가능하다. 이런 곳에서는 만년필이 저렴한 것부터 비싼 것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종류로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스쿨펜으로 대표되는 저렴한 학생용 만년필이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으며, 외국에 비해 카트리지 등 소모품 가격이 매우 비싼 편에 속해 사용자가 그리 많지 않다.
이는 볼펜이 대중화된 이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남은 소비자의 대다수는 그 필기감과 멋스러움 때문에 계속 찾는 사람들이다. 그 외에도 잉크 점성이 낮아 볼펜 똥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낮은 필압으로 필기가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볼펜이라는 물건이 잘 만들지 않으면 상당히 조악할 수밖에 없는 물건이라, 저가 볼펜을 쓰면 필기는 잘 되지 않고 손은 금방 피곤해진다.
그래서 예전에는 고가 필기구를 계속 사기 부담스럽고, 필기를 많이 하는 직종은 만년필을 선호하기도 했다. 이 부분은 같은 수성 잉크를 사용하는 수성펜, 수정 젤 잉크를 사용하는 중성펜, 최신 저점도 유성 잉크를 사용한 유성 볼펜 등 필기감은 좋고 가격은 저렴한 필기구들의 등장으로 옛말이 되어버렸다. 물론 완벽하게 만년필을 대체하진 못하지만 가격을 감안하면 굳이 만년필을 살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 것이다.
핫트랙스에서 제공하는 만년필의 기본상식 페이지를 보면 이해가 쉽다.
2. 역사
어떤 것을 최초의 만년필로 보느냐에 따라 견해가 여럿 갈린다.
알 카디 알 누만이 974년 집필한 <이슬람의 기둥의 책(Kitab da'a'im Al-Islam)>에 따르면, 당시에 주로 사용되었던 딥펜들과 달리, 잉크를 펜 안에 담아서 거꾸로 들어도 새지 않는 펜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집트의 칼리파였던 알 무이즈가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이 펜이 현재의 만년필과 어느 정도 비슷한진 알 수 없다. 이슬람 문화권이 세계에서 과학 분야를 주도하던 이슬람의 황금기와 겹치는 시기이긴 하다.
15세기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만년필을 발명했다는 카더라가 이탈리아에 많다. 하도 뭘 발명했네 루머가 많은 인물이니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영어나 한국어로 찾으면 안나오고 이탈리어로 찾으면 다 빈치의 "만년필 스케치"라는 그림들이 있는데 그게 만년필을 그린건지 불명확할 뿐더러, 다 빈치는 구상만 하고 실제로는 발명 못했거나, 애초 불가능한 스케치도 많이 그렸다.
그 후 17세기 프랑스의 발명가 니콜라 비온, 18세기 영국의 발명가 프레드릭 폴크, 19세기 루마니아의 발명가 페트라슈 포에나루 등이 최초 만년필 발명가를 논할 때 자주 입에 오르 내린다. 현대의 만년필 개념과 유사한건 포에나루 때에 등장하며, 사실 니콜라 비온이 태어나기도 전인 1636년에도 잡지 Deliciae Physico-Mathematicae에 만년필을 이미 언급하고 있다. 비슷한 개념이 그 이전부터 존재 했고, 나중에 발명가들이 각자의 베리에이션을 만든 것일 수도 있다. 니콜라 비온의 펜들은 실물이 아직 존재하며, 프레데릭은 영국에서, 페트라슈는 프랑스에서 특허를 내 물증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모습의 만년필은 1884년 워터맨의 창업자이자 당시 보험외판원이던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이 개발한 것이다. 당시 루이스 워터맨이 계약을 진행하던 도중, 잉크가 종이 위에 떨어져 계약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당시엔 꽤나 흔했으며, 빡친 워터맨은 결국 적정량의 잉크만을 자동으로 흘려보내주는 펜을 개발하게 되었고, 그게 바로 만년필이라는 것이다. 이 발명은 크게 두가지 상황에서의 문제를 해결했는데, 하나는 잉크가 적정량이 흘러나오지 않아 튀는 문제, 다른 하나는 잉크를 재보충하기 위해 딥펜을 잉크통에 찍었다가 꺼낼 때 잉크가 튀는 문제다.
볼펜의 발명 이후 만년필은 서서히 몰락해갔으나, 몽블랑을 중심으로 만년필의 고급화가 진행되었고 볼펜과는 아예 다른 장르로서 생존했다. 이후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더욱 높아지자 사람들은 고급 필기구로 눈을 다시금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만년필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다시 '성능'에 의한 전환인 스마트폰과 스타일러스 펜의 등장과 함께 둘 다 다시 몰락해버리긴 해버렸지만 말이다. 심지어 이번엔 아예 필기구 산업 전체가 쫄딱 망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년필에 대한 로망은 남아있고, 클래식한 멋과 느낌을 즐기는 소비자들 덕분에 만년필은 여전히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판매량을 볼 때 서구권에서는 독일, 미국 브랜드가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도 한몫 거들고 있다. 브랜드와 생산 기업의 국가가 다른 경우도 제법 있어서, 사실상 독일, 미국 기업이 상당수를 차지. 한국에서는 몽블랑, 파커가 단연 인기를 얻고 있다. 몽블랑은 전체적 가격대가 높고 명품 이미지로 인지도도 높기 때문이고, 파커는 한국 판매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고 20세기에는 파커의 히트작들이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기에 어르신들은 만년필 하면 파커라 말할 정도로 대중성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나이 든 세대라면 누구나 아는 파이롯트를 필두로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진 세일러와, 가성비 최고라는 평가를 듣는 플래티넘이 일본산 만년필 고산케라고 불리며 삼분지계를 하고 있다. 세 회사 모두 자체적으로 닙을 생산하고 규격을 정할 정도로 대단한 회사들이다. 가늘고 날카로우며 막힘 없이 이어지는 세필과 그에 맞는 전용 잉크 등 서구에서도 적지 않은 인기를 끌며 유럽산 만년필 바로 다음 자리를 고수하는 중이다. 한동안 이 자리를 놓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한글 필기 목적으로 만년필을 구입하고자 할 때에는 일본산 만년필이 적절할 가능성이 높다. 한자 문화권인 아시아권과 알파벳 문화권인 유럽권의 만년필 닙 굵기 차이가 워낙 심하기 때문인데, 단적으로 독일제 라미 사파리의 가장 가는 닙인 EF 닙이, 파일럿의 F 닙보다 두껍게 나오는 수준이다. 큼지막한 글씨를 즐겨 쓰는 경우면 몰라도 노트 필기 등의 경우에는 유럽산 만년필을 사용할 경우 칸 안에서 글씨를 쓰고자 할 때 선들이 서로 뭉개져 버릴 가능성이 있다.
한중 수교 이후 못 만드는 것이 없는 중국산 만년필도 한국에 등장했다. 사실 만년필 제조 업체가 만들어진 것은 19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기술력은 생각보다 높은 편이지만, 한국에는 과거 저렴한 제품군이 밀수로 들어온 것 이외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상당수가 카피 모델이었고 여전히 몇몇 회사의 경우 고르지 못한 품질 관리 등으로 인해 잘 고를 경우 자랑하는 높은 가성비를 믿고 싼 맛에 쓰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닙 제조에서 유럽, 일본 등 유수의 기업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실력을 자랑하는 것은 물론,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고가 제품군의 경우 품질 관리도 잘되어 있고, 타 회사의 고급 라인업에 밀리지 않는 중국 특유의 예술 감각을 살린 디자인의 제품도 다수 출시되고 있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덕분에 유럽 등에서 호평을 받고 있으며 특유의 대범한 디자인 센스 덕분에 색다른 것을 찾는 사람에게도 좋은 답이 되고 있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 과거 저가 라인 업은 중국의 만년필이 수입되면서 전멸해 버렸다고 한다. 다만 고가 라인업은 유럽과 일본 제품에 비하면 큰 가격 경쟁력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소개도 잘 안 되어서, 저가 라인업에 비하면 많이 밀리고 있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곳은 인도로,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미국 사업가들에 의해 새롭게 떠오르는 중이다. 물론 품질에서는 아직 한계가 있지만, 의외로 만년필 사용 역사도 길고 관련 회사도 많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 만년필에서는 드문 아이드로퍼 방식의 제품부터, 저가 만년필에 피스톤 필러를 채용하기도 한다. 닙같은 경우 직접 제작하는 업체도 있고, 타 업체의 제품을 사용하는 곳도 있다.
한국의 경우 과거 다양한 회사에서 만년필을 제조하였지만, 현재는 거의 명맥이 끊어졌다고 봐야 한다. 아피스는 현재 주문 생산 외에는 생산이 없으며 한국 빠이롯드와 마이크로의 경우 과거 재고를 제외하면 구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 모나미에서는 한동안 만년필을 생산하지 않고 있었지만, 2016년 4월 12일 올리카 만년필과 2018년 2월 19일 153 네오 만년필을 출시하였다. 자바에서 계속 만년필이 제조되고 있지만 수입산에 밀릴 뿐 아니라 100% 자체 기술로 생산한 것이 아니기에 평가절하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이유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다만 개인 취향, 추억 보정 등으로 과거 생산품들을 찾아 옛날 문방구를 순례하는 이들도 꽤나 많은 편. 간혹가다 좋은 물건도 있고, 너무 극악이라 얘네가 왜 망했는지 알 것 같은 제품도 있는지라 구입에 앞서 리뷰를 찾아보고 가야 한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유명한 옛날 문방구 거리는 이미 마니아들에 의해 다 싹쓸이당했다고 보면 된다. 더군다나 점차 골목 문방구들이 사라지고 있는지라 빈티지 국산 만년필을 새것으로 구하는 것은 점점 험난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목재를 외장으로 사용한 만년필을 국내의 몇몇 공방에서 만들어 수제 만년필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지만, 이러한 공방들은 자체적인 만년필 설계 제작 능력이나 특성을 조정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고, 이미 만년필로서의 기능과 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립만 하면 되는 저가형 수입산 만년필 키트를 구입하여 그 위에 나무를 규격에 맞춰 깎아 덧씌워 장식한 뒤 국산이라며 재판매하고 있을 뿐이기에 자신들이 주장하듯이 수제라든지, 만년필 제작소라고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것들을 수제라고 할 수 있다면 세상에 수제가 아닌 만년필이 없으며, 비유하자면 마트에서 파는 유부초밥 세트를 사서 만든 유부초밥을 수제 고급 초밥이라고 판매하고 있는 꼴이다. 수제, 주문 제작 등의 과대 광고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다음의 펜후드의 경우 이와 같은 이유로 우든펜의 중고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나무를 사용한 만년필을 원한다면, Faber-Castell, PILOT, Sailor에서 나오는 목재 만년필을 알아보도록 하자. 품질 면에서 저질 만년필 키트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우수하며, 가격대도 키트를 사용한 우든펜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저렴한 경우도 많다.
만년필이 종이에 닿으면 잉크 탱크의 잉크가 모세관 현상에 의해 피드로 내려오고 이때 필기 시 펜에 가해지는 압력으로 인해 슬릿이 살짝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피드의 잉크 채널에 차오른 잉크가 슬릿(펜촉의 중앙에 있는 선)을 타고 흘러 닙 끝부분에 닿는다. 그 상태에서 닙 끝부분의 잉크가 종이와의 모세관 현상으로 종이로 이동하며 글씨가 써지는 것이다.
피드(Feed)
위의 닙이 실제로 종이에 닿아 글을 쓰는 역할을 한다면 피드는 모세관 현상을 통해 닙에 잉크를 공급하는 일을 한다. 여기에서 공급하는 잉크의 양도 필기감을 결정하는 요소 중의 하나다. 닙이 아무리 좋아도 피드에 문제가 있으면 말짱 꽝이다. 흐름이 들쭉날쭉하다고 생각해 보자. 끔찍한 일이다.
중국산 만년필 중에는 전반적인 퀄리티는 높은데 피드에 문제가 있어서 필기감이 좋지 않은 경우가 자주 있다.
Feed body: 피드 전체를 이루고 있는 바디. 피드 바디는 펜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이 있고 재질도 다양하나. 사진의 피드는 일반적이면서도 대표적인 플라스틱 사출 몰드 피드이다. 빈티지 피드는 친수성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하드러버가 많다. 하지만 현재는 플라스틱에 코팅 을 하거나 표면을 거칠게 처리해서 친수성을 가지도록 만들어 사용한다. 일부 저가형 만년필(모나미 올리카, 빠이롯드 푸치, Vpen, 다이소 만년필 등)은 피드가 사인펜마냥 섬유 재질로 된 '펠트피드'도 있으니 주의.
Feed tube: 피드 튜브는 만년필의 잉크 저장 공간에 삽입되어 피드 잉크 채널을 통해 잉크를 피드로 운반한다. 피드 디자인에 따라 피드 안쪽에 메인 잉크채널과 이어진 잉크 저장 공간이 있어 이 부분으로 잉크를 공급하기도 한다.
Feed tube ink channels: 피드 튜브 위에 난 미세한 잉크 채널로 메인 잉크 채널 쪽을 향하는 잉크 채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잉크 채널은 모세관 현상에 의해 만년필의 잉크 저장 공간에서 피드로 잉크를 공급한다. 피드 디자인에 따라 채널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 피드 튜브를 따라 피드 내부에서 메인 잉크 채널로 잉크를 공급하는 경우다.
Combs: 피드의 콤은 잉크가 메인 잉크 채널보다 넘치는 비정상적인 상황(기압이 바뀌는 등)에서 넘치는 잉크가 종이에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콤은 피드 전체에 분포한다.
Main ink channel: 메인 잉크 채널은 잉크를 모세관 현상에 의해 잉크를 닙의 슬릿으로 배달해 준다. 보통은 하나이나 두 개나 세 개까지 있을 수 있다. 모세관 현상은 관이 넓으면 약해지기 때문에 잉크 흐름을 높이면서도 잉크가 불필요하게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한 채널을 넓게 파는 대신 얇은 채널을 여러 개 파는 것이다. 이 부분이 막히면 펜이 나오지 않으며 반대로 막힌 곳을 파내면 잉크 흐름을 풍부하게 쓸 수 있다.
어지간한 만년필 브랜드는 각기 출시된 잉크가 있으며 만년필 본체의 자사 잉크가 아니라도 서로 호환이 가능하다. 단 제조사의 제품 개발은 자사 잉크로 시행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같은 제조사의 잉크와 본체가 최상의 궁합인 것은 당연.
당연한 이야기지만 캘리그래피전용 유성 잉크나 펄이 들어간 잉크, 증권용 잉크, 제도용 잉크 등은 만년필에 사용할 수 없다. 간혹 사용 가능하게 나온 제품도 있지만 되도록 쓰지 마라. 얼마 못 가 피드가 막혀 만년필을 망가뜨릴 것이다. 꼭 만년필용 잉크를 사용하도록 하자. 정 쓰기가 뭣한 걸 사버렸다면 근처 문구점에서 딥펜을 구하든가 아니면 잉크젯 프린터에 때려박는 방법도 있다. 오히려 잉크젯 프린터가 구조상 덜 민감한데 잉크젯은 염료와 안료를 동시에 이용하지만 만년필은 막히면 수리가 불가능한지라 세일러의 극흑을 제외하면 안료 잉크(먹 같은 가루 잉크) 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만년필 잉크를 잉크젯 프린터에 막히지 않고 잘 쓸 수 있다.
같은 블랙 잉크라도 점도와 그 톤이 아주 미묘하게 다를 수 있다. 블루 계열로 빠지는 블랙이 있는가 하면 퍼플 계열로 빠지는 블랙도 있다. 아주 진한 블랙은 Sailor사의 극흑과 Aurora사의 블랙 잉크가 유명하다. 입문용 잉크로서는 Parker사의 큉크와 Pelikan사의 4001, Sheaffer사의 스크립 등이 거론된다. 특히 펠리칸 잉크의 가성비는 꽤 막강하기로 유명한데, 라미와 같이 여타 이름 좀 들어봤을 만한 브랜드의 잉크는 30ml에 최소 6~7천으로 시작하지만 펠리칸 4001은 62.5ml에 8천 원 내외로 판매되고 있다. 게다가 안정성은 오히려 타 잉크를 압도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 다 한 셈. 특히 블루가 안정적이기로 유명하다. 단, 여기서 안정성이란 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지, 혹은 내수성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고려한 것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 색깔로 멋을 부리려면 제이허빈의 잉크들이 인기가 많다. 이쪽은 항상 무독성 천연 소재와 오랜 역사를 강조하는 브랜드로, 30ml에 10,000~20,000원 사이. 파이롯트 이로시주쿠 시리즈도 스테디셀러에 속한다. 색상의 수를 생각하면 종류만 100가지가 넘어가는 디아민 잉크가 압도적이다. 종류가 많아서인지 색상별로 병은 동일하고 뚜껑에만 색상을 스티커로 부착해 놓은 심플함을 자랑한다. 여러 색을 체험하기엔 제이허빈이나 이로시주쿠보다 이쪽이 저렴하다.
잉크와 잉크를 섞어 새로운 색을 조색하는 '잉금술'(잉크+연금술)을 시행하는 유저도 종종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행위는 잉크의 안정성을 떨어트려 피드를 상하게 할 우려가 있으니 어지간하면 단일 색을 구입해 쓰도록 하자. 단 플래티넘사의 믹스 프리 잉크와 모나미사의 DIY 잉크 키트는 예외. 이쪽은 아예 혼합해서 쓰라고 나온 물건이다. 물론 믹스 프리 잉크 자체가 비싼 축에 속한다는 점은 감안하고.
잉크 본연의 단일 색과는 별개로 획 외곽에 '테'가 도는 잉크들이 있다. 대개 해당 잉크의 보색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얇은 EF, F 촉에서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고 굵은 획이나 캘리그래피용 촉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디아민의 마제스틱 블루,임페리얼 블루(적테), 빌베리(금테), 파이롯트 이로시주쿠 홍엽(금테), 송로, 월야(적테), 세일러 젠틀 사계절 토키와마츠(적테), 오쿠야마(녹~황색테) 등이 대표적이다. 흔하디 흔한 잉크인 파카 큉크 블루도 남색에 대비되는 적테가 선명한 편이다.
잉크의 안정성은 늘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나, 안료형/아이언겔등의 보존용 잉크를 제외하면 대체로 펜을 망가뜨릴 정도로 심각한 잉크는 없다고 보면 된다. 잉크계에서 명성이 있는 제조사의 잉크는 염료형이기만 한다면 대체로 아무거나 집어도 큰 문제는 없는 편. 다만 안정성이 좋다 해도 착색이 심한 경우도 있으니 착색은 알아보고 사야 한다. 데몬스트레이션 만년필을 쓰거나 애초에 재판매를 생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착색을 고민할 필요는 없지만.
만년필 잉크가 대체로 가는 피드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염료 잉크(이러한 이유로 펄이 들어가지 않은 중국산 잉크(알리발 영웅, 피카소, duke 등등)도 안전하다. 염료 녹이는 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거나 혹은 안료라도 초미세 입자(세0러의 극흑 잉크 같은 경우)를 사용하기 때문에 프린터 같은 데 사용해도 작동은 정상적으로...... 잘되기는 한다. 다만 반대로 프린터 잉크를 만년필에 넣는 건 절대로 해선 안 된다! 입자야 더 미세하겠지만 자연스러운 공기압으로 내려가는 환경을 상정해 만든 만년필 잉크와 달리 노즐의 힘으로 강제로 분사되고 출력되자마자 빨리 말라야 하는 환경을 상정해 만들어져서 점도도 더 높고 마르는 속도도 훨씬 더 빠르기 때문에 넣은 직후에는 잘 써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피드 전체에 마른 채로 들러붙어 버려서 꽉 막히게 만든다. 물론 만년필 잉크보다 잉크젯 프린터용 잉크(재생 염료 잉크 기준)가 압도적으로 싸므로 만년필 잉크를 사다가 주사기로 잉크젯 프린터에 집어넣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자.
만년필의 잉크를 쓸 수 있는 볼펜도 있는데 제이허빈 등에서 생산하고 있다.
종이
만년필의 사용은 종이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종이의 질에 따라 필기감이 크게 좌우된다. 필기감은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른지라, 펜 커뮤니티에는 자신에게 가장 이상적인 필기감의 종이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가령 '똥종이' 라고 부르는 회색 재생지(갱지)는 만년필과 극악의 상성이다. 잉크가 번져 제대로 된 필기가 어려울뿐더러 종이 섬유가 닙에 끼어 만년필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만년필과 천년만년 함께하려면 좋은 종이를 사용하는 정성이 필요하다.
만년필 유저들이 추천하는 노트 브랜드는 '로디아', '복면 사과 까르네', '미도리', '라이프', '클레르퐁텐' 등이다. 양질의 종이를 사용하다 보니 가격 메리트는 없다. 몰스킨의 경우는 만년필 유저들 사이에서 '몰(상식)스킨' 이라며 까인다. 디자인은 예쁘지만 번짐이 심하고 가면 갈수록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이 많다. 가격과 성능을 모두 생각한다면 모닝글로리의 노트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번짐도 적은 편에 가격도 싸다.
A4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80gsm 이상을 권한다. A4 용지의 브랜드는 밀크 용지와 더블에이가 곧잘 추천되고 있다. 밀크지는 금색 포장의 밀크PREMIUM이 가장 평가가 좋다. 밀크용지는 만년필 특유의 사각거리는 필감을 느껴보고 싶을 때, 더블에이는 부드럽게 쓰고 싶을 때 사용하면 된다. 다만 펜의 제동력은 각자 취향이 있으므로 골라 쓰면 된다. 번짐 저항은 밀크 프리미엄이 더블에이보다 더 양호하다. 또한 더블에이는 앞면과 뒷면에 따라서도 번짐에 다소 차이가 있다. 모닝글로리에서 나온 80gsm 고품질 복사지도 평이 괜찮긴 하지만, 밀크PREMIUM과 동일한 제품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최근 밀크지가 전체적으로 리뉴얼 되면서 실번짐이 많이 나타난다. 구형 종이를 소진 후에 다른 용지로 갈아타겠다면서 아쉬워하는 만년필 애호가들이 많다.
테가 잘 뜨는 종이를 원한다면 두성종이사의 인더페이퍼에서, 비세븐지를 추천한다. 200장 이상 주문하면 A4 크기 B5 크기 등 특정 종이 규격대로 절단해서 약 900장 정도를 받을 수 있다. 종이 옆에 적힌 무게가 클수록 두꺼우며 100g대 근처가 적당하다. 다만 비세븐지는 유분을 잘 먹어 유분이 닿은 부분은 잉크가 흐리게 나올 수 있다. 같은 회사의 매쉬멜로우지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편.
종이 질감이 뛰어난 것으로는 컬러 복사기 전용지가 있다. 후지제록스에서 나오는 160gsm 컬러 전용지는 살짝 노란 기가 도는 보기 좋은 미색에 대단히 뛰어난 질감을 가지고 있는데, 250매 한 권에 22,500원으로 가격이 사악하다.(배송비 더하면 한 장에 100원꼴) 동 사에서는 90,120,160gsm 짜리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도 팔고 있으니 골라서 쓰자. 다면 원래 복사용지라 수분에는 약간의 우그러짐이 있는 편. 글자 쓰는 정도로는 문제없다.
잉크의 발색이 뛰어난 종이로는 토모에리버의 명성이 높다. 테도 잘 뜨는 편.
저렴한 가격으로 명성이 높은 것은 단연 모닝글로리의 노트. 다만 제품군이 넓은 편이고, 같은 제품 안에서도 편차가 있다. 의외로 알파문구사의 핸디패드(흰색)도 부드러운 필기감을 자랑한다. 단지 코팅이 되어 있는 앞면 한정.
하지만 아무리 좋은 종이를 쓴다 한들, 물(습기)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좋은 종이를 쓰는 것만큼이나 습기를 덜 먹도록 잘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다.
간혹 머메이드지라고 불리는 울퉁불퉁한 종이 위에 쓰는 사람도 있는데, 필기감 문단에 상기되어 있는 "사포 위에만 쓰지 않는다면"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례이므로 절대 쓰지 말자. 머메이드지 위에 단 수십 자라도 썼다면 바로 닙의 정렬이 틀어지고 잉크의 흐름이 영 나빠지게 되어 공방에 맡겨야 한다.
펜 파우치
말 그대로 만년필 파우치. 지퍼로 열리는 것, 돌돌 마는 것, 펜을 하나만 수납하는 가죽형 파우치 등의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당연히 필통도 좋다. 오히려 낙하 등으로 인한 충격에서의 보호에서는 잘 만들어진 필통이 파우치를 능가한다.
룬룬과 같이 펜의 클립을 이용해 개별로 수납할 수 있는 펜 홀더가 있는 제품이 좋다. 필통 속에서 펜이 굴러다니다 보면 서로 부딪혀 상처를 입히거나 심할 경우 크랙이 갈 수도 있다. 부딪혀서 배럴에 금이 갔는데 그게 아이드로퍼형이라면... 꼭 그렇지 않더라도 만년필 뚜껑을 열었을 때 넘쳐 흐른 잉크와 더러워진 손을 보면서 욕이 나올 것이다. 다만 룬룬 필통의 펜홀더는 매우 거친 재질로, 배럴 광을 죽이며 흠집을 낼 가능성이 크다. 잘 알아보고 구입하자.
최근엔 중국산 브랜드인 KACO의 펜 파우치도 유명하다. 왠만한 만년필 메이커의 가죽 펜 파우치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생활 방수 기능이나 펜이 맞닿는 걸 방지하는 덮개 등 있을 건 다 있다. 10구 파우치는 2만 원, 20구 파우치는 3만 원대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국내 브랜드에서 찾는다면 오롬에서 다양한 가죽의 펜 파우치를 판매하고 있다. 소프트한 타입의 펜 파우치는 4~7만 원대, 하드한 타입의 펜 파우치는 10~15만 원대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가장 인기있는 파우치는 엘크가죽으로 만든 3구 파우치제품이며, 엘크 3구라고 불린다.
더 높은 가격대로는 만년필 제작사의 악세서리에 펜 파우치를 판매한다. 예를 들어, 몽블랑의 경우 지갑과 비슷한 시리즈로 1구, 2구 펜 파우치를 판매하고, 펠리칸에는 6구, 12구 송아지 가죽으로 된 파우치를 제작해 판매한다. 물론 가격은 10만, 20만 원 이상 생각해야 한다.
펜 닦는 천이나 티슈도 있으면 좋다. 잉크가 넘쳐 흐르거나, 잉크 주입 후 더러워진 닙을 말끔하게 하는 상황에서 쓰인다. 다만 펜에 스크래치를 내지 않으면서 잉크를 잘 흡수하는 재질을 잘 고를 필요가 있다. 주로 안경닦이를 구하기가 쉽기에 애용하는 편이다.
휴지를 쓴다면 가루 날리는 화장실 막휴지보다는 손 닦을 때 쓰는 페이퍼타올을 쓰자. 아니면 킴테크도 좋다. 애초에 킴테크는 먼지 안 날리는 연구용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고다품 특유의 애착이 크다. 자기 이름 석 자는 품질 좋은 필기구로 써야 한다는 인식이 적지 않은데, 이러한 애착에 근거한 가치 부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에는 스쿨 펜과 같이 저렴한 만년필이 거의 없는 이유로 그런 인식이 더 강하다. 때문에 서명용 만년필을 고급으로 장만하는 경향이 있으며, 보통 높으신 분들이 그러하다. 예를 들어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썼다는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제 워터맨 만년필은 약 230만 원. 정상급 인사가 공식 석상이나 중요한 문서에 서명할 때는 만년필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일 만큼 품위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 때문에 2018년 9월 평양 선언문 서명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네임펜으로 서명하는 모습이 소소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명용으로 사용하는 경우, 내수성이 강해 잘 번지지 않는 문서 보존용 잉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퍼머넌트(Permanent)', '피그먼트(Pigment)', '아이언 갤(Iron Gall)' 등의 태그가 붙은 것이 바로 이러한 잉크인데, 이러한 잉크를 사용하는 경우 펜 관리에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
가죽제품과 마찬가지로 점점 자신에게 맞게 길들여진다는 것 역시 이런 애착을 한결 저 강화한다. 볼펜과 샤프 역시 몽블랑 후드려까는 가격대의 제품이 존재하지만, 그런 제품들보다도 만년필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특히 만년필의 이러한 특징은 만년필 애호가들이 자신의 만년필을 다른 이에게 빌려주는 걸 극혐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만년필은 볼을 굴리는 볼펜이나 흑연을 마모시켜 글씨를 쓰는 연필보다 손의 피로감이 훨씬 적다. 손목에 힘을 빼고 써도 글이 술술 써진다. 글을 많이 쓰는 작가나 고시생들이 만년필을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펠리칸 M200같은 제품의 리뷰를 보면 죄다 고시생들의 리뷰로 꽉 차 있는 걸 볼 수 있기도 하다.
만년필도 한번 마니아의 길에 빠져들면 음향기기, DSLR, 자전거와 스팀 등의 취미와 더불어 중생들로 하여금 지름신의 가혹한 시험으로 격게 할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자. 펜 한 자루에 수십만 원은 그냥 날아가고, 수백~수천만 원짜리도 덜컥 구입하게 되는 개미지옥이다. 게다가 질 좋은 종이와 잉크까지 갖춰져야 하기 때문에 부가 비용이 상당히 든다. 본인이 즐겁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가심비적으로는 크게 상관없는 문제이기는 하다. 그리고 굳이 비싼 만년필이 아닌 1~2자루의 어지간한 만년필도 얼마든지 애착을 줄 수 있으며, 관리만 잘해주면 반평생 이상 쓸 수 있다. 그러니까 이름이 만년필인 것.
학생층에서도 사용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중년층 이상의 경우, 학생 시절에 만년필을 쓴 경우가 제법 많다. 특히 파커 만년필. 이게 가능해진 것은 1980~90년대 이후 만년필 제조사들이 선보인 저가형 만년필이 많기 때문이다. 만년필을 제조하는 대부분의 필기구 브랜드에는 저가형 모델도 출시하고 있다. 가끔은 1~2만 원 미만의 저가형이 출시되기도 하는데, 국내에 들어오는 제품들은 유명 브랜드에 한정되어 싼 가격에 만년필을 사용해 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