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Babylon)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위치한 곳으로, 인류 문명 초창기에 관개 농업을 시행한 도시들 중의 하나이고, 현대의 시계에도 사용되는 60분 체계를 확립했으며, 잉여 자원을 통해 교역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도시였다.
주로 《성경》에서 자기 나라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 의해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 찬 악의 도시, 복마전 등과 같은 이미지로 서구 세계에 많이 알려졌다. 대표적인 것이 《구약성경》의 <시편 137편>으로, 화자가 바빌론에 약탈을 당해 노예로 끌려가서 예루살렘과 시온을 그리며 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중 8절과 9절은 각각 "파괴자 바빌론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악을 그대로 갚아주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 네 어린 것들을 잡아다가 바위에 메어치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라는 상당히 노골적인 저주 문구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에도 기독교의 영향으로 오만한 인간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서 높은 탑을 쌓다가 천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있는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바빌론이다. 또 서아시아 문명의 중심지로서 장기간 큰 영화를 누린 것 때문에 화려한 대도시, 위대한 제국의 수도 같은 이미지로 많이 등장한다.
기원전 2000년대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의 여러 도시들이 한창 이전투구를 벌이던 시절, 셈족의 일파인 아모리인은 바빌론을 세우고(바빌론 제1왕조) 이윽고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시켰다. 이후 도시국가 바빌론이 확장된 영토 국가 바빌로니아 제1제국이 되어 활발한 정복 활동을 하여, 마침내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석권하는 대국이 되었다. 이후 함무라비 대왕 등의 명군들에 의해 번영이 계속되면서 바빌론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의 수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다 히타이트의 침략으로 고바빌로니아, 즉 바빌론 제1왕조가 멸망한 뒤 바빌론은 약탈되었으나 아시리아 등 여러 제국들의 패권이 이어진 뒤에도 바빌론은 여전히 주요 대도시로서 건재했다. 카시트인, 엘람인 등 여러 민족이 차지를 반복하다가 기원전 8세기에 아시리아에게 병합된다. 그러나 비빌론에서 지속된 반란이 일어나자 센나케립 왕은 바빌론 파괴를 결정하여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에사르하돈 왕의 치세부터 재건하기 시작했다. 바빌론을 비롯한 인근 국가들의 연합에 의해 신아시리아 제국이 멸망한 후 칼데아인들이 신바빌로니아(바빌론 제10왕조)를 건설하자 바빌론은 다시금 '세계의 수도'로 재등장했다. 그 전성기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치세로 당시 인구만 약 15만 명으로 추산될 정도였다. 하지만 재건한지 몇 세기 만에 다시 키루스 2세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게 멸망당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에게 정복되고 나서도 중요성을 인정 받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시대에 수사, 페르세폴리스, 엑바타나와 함께 4대 대도시 중 하나로 번영하였다. 아케메네스 왕조를 정복한 아르가이 왕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는 바빌론을 수도로 삼았고 바빌론에서 죽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과 바빌론을 차지한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는 바빌론 옆에 셀레우키아라는 새로운 대도시를 조영하여 바빌론의 영향력은 축소되었다. 또한 전쟁 중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바빌론까지 밀어붙이는 기염을 토했다.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한 후에는 셀레우키아 옆에 새로운 도시 크테시폰을 만들었고, 이 크테시폰이 사산 왕조 페르시아 시대에도 수도가 되면서 바빌론은 완전히 쇠락했으며 바빌로니아인들은 파르티아/페르시아인에게 동화되었다. 이후에는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로마 제국의 트라야누스 대제가 파르티아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할 때 수도인 크테시폰을 털어버린 후 이곳에 성지순례땅밟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바빌론은 사라졌어도 풍요로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계속 오리엔트 세계의 중심지의 지위를 누렸다. 바빌론의 위상을 대체한 크테시폰이 이슬람교 발흥 이후 사산 왕조에 쳐들어온 아랍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근처에 또다시 아바스 왕조의 새로운 수도 바그다드가 세워져 수백 년 동안 번영하고 현재까지 이라크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당시 바빌론의 거대함과 아름다움은 여러 문헌에서 많이 거론되며, 특히 가장 거대한 지구라트였던 바벨탑과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유명했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성경 속에서나 나오는 전설 중 하나로 치부되었으나 독일의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Robert Koldewey, 1855~1925)가 찾아내면서 실존했던 도시임이 드러났다. 전설적인 고대 이슈타르의 문도 이 도시에서 발굴되었다.
도시의 규모는 당대 최고의 크기였다. 각종 기록에 따르면 도시 건축에 사용된 기술들은 현대에 와서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기원전의 도시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대도시이자 당대 최신 기술의 산물인 곳이었다.
도시의 여러 건물과 문들에 구워서 만들어낸 흙 벽돌과 아치 기술이 사용되었다.
성벽 높이는 14m, 짧은 쪽 성벽의 길이는 18km, 긴 쪽은 72km에 달하며, 3중 성벽 중 제일 안쪽의 성벽의 경우 말 8마리가 동시에 달려도 넉넉할 만큼 너비가 넓었다고 한다. 성벽 바로 밖은 강과 연결된 거대한 해자에 둘러싸여 있었고, 해자를 넘어 도시로 통하는 여덟 성문과, 그와 연결된 튼튼한 석조 다리들이 있었다.
각각의 성문에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적들이 혐오하는 문이라는 뜻인 우라쉬(Urash), 침입자들이 싫어하는 문이라는 뜻인 자바바(Zababa)잡아봐, 군인들을 지켜주는 문이라는 뜻인 아다드(Adad), 전쟁의 신 이슈타르가 지키는 문이자 정문인 이슈타르의 문 등.
유프라테스 강을 활용해 해자의 물이 도시 내부의 토관과 연결되어 생활 용수로 사용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하수관을 건설해 운영한 도시이다.
역청, 즉 아스팔트를 깔아 포장한 벽과 도로가 존재했고, 하수도 등에도 아스팔트를 이용해 물이 새는 것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