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을 위한 조건인가? / 군산복합체가 사라지기 어려운 이유
1960년 11월 8일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가 당선된 이후 레임덕 대통령이 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는 겨울 내내 백악관 앞에 케네디 취임식을 위한 무대가 세워지는 것을 침울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 교수대가 만들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사형수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사색적인 무드에 잠기면서 역사와 국가의 장래를 의식한 양심이 발동했던 걸까? 아이젠하워는 1961년 1월 17일 대통령직을 떠나면서 한 고별연설에서 군부를 포함한 행정부와 산업체가 하나로 결탁한 이른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실상을 지적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방대한 군사체제와 대규모 무기산업간의 결합은 전엔 미국인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입니다. 경제, 정치, 심지어 정신 영역에까지 침투한 그것의 전면적인 영향력은 모든 도시, 모든 주 정부, 모든 연방 정부의 사무실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 우리는 군산복합체가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갖게 될 부당한 영향력을 경계해야 합니다. 잘못된 힘이 재앙적인 모습으로 등장할 가능성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군산복합체의 권력이 우리의 자유나 민주적 절차를 위협하는 걸 방치해선 안됩니다. 우리는 이를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됩니다. 깨어 있고 지식을 갖춘 시민들이 평화적 방법과 목표로 이 군산복합체를 통제할 때에 비로소 국가 안보와 자유가 함께 번영할 것입니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미 해군 항공 모함 ‘아이젠하워(USS Eisenhower)’를 헬리콥터에서 엄호하고 있다(1990. 8. 22.)
훗날 널리 쓰일 ‘군산복합체’라는 단어가 최초로 공개적으로 등장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물론 군산복합체라는 개념의 초기적 형태는 이미 19세기 말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나타났으며, 1930년대의 미국에서도 제법 활발하게 거론되었다.
전쟁은 국제적인 사기인가?
1934년 헬무드 앵겔브리히트(Helmuth Engelbrecht, 1895-1939)와 프랭크 하니겐(Frank Hanighen, 1899-1964)이 출간한 [죽음의 상인(Merchants of Death)]이라는 책은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무기 제조업자들이 미국의 경제와 정치체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들이 1차세계대전 동안 미국의 중립을 망치는 데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널리 퍼져있던 생각이었기에, 미 상원위원회는 제랄드 나이(Gerald P. Nye, 1892-1971) 상원의원의 주도하에 1934년 9월부터 1936년 2월까지 청문회를 열었다. 무기 제조업자와 은행가들이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 대통령으로 하여금 1차세계대전에 참전하게끔 부추겼는지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군수산업의 국유화를 목표로 삼았던 나이위원회는 혐의를 확인할 증거를 확보하진 못했지만, 연일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반전(反戰) 무드를 강화하고 이후 중립법(Neutrality Acts) 통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청문회가 열리고 있던 1935년, 당시 해병대 최고계급인 소장 출신의 전쟁 영웅 스메들리 버틀러(Smedley Butler, 1881-1940)는 자신의 반전(反戰) 강연 내용을 묶은 [전쟁은 사기다(War Is a Racket)]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는 군산복합체의 실상을 폭로한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전쟁은 사기다. 언제나 그랬다. 전쟁은 아마 가장 오래된 사기일 것이다. 또 쉽게 가장 큰 이득을 남길 수 있는 사기이며, 확실히 가장 사악한 사기이기도 하다. 규모로 볼 것 같으면 독보적인 국제적 사기다. 이득은 달러로 계산하고 손실은 인명으로 계산하는 유일한 사기이기도 하다 (…) 세계대전에서 소수에 불과한 사람들이 전쟁에서 오는 이득을 챙겼다. 세계대전 중에 미국에서 적어도 2만1000명의 새로운 백만장자와 억만장자가 생겨났다.”
1940년대엔 ‘영구적인 전쟁 경제(permanent war economy)’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1950년대엔 사회학자 C. 라이트 밀스(C. Wright Mills, 1916-1962)의 [파워엘리트(The Power Elite)](1956) 등이 군산복합체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그러나 군산복합체에 대한 이런 문제 제기가 수많은 미국인이 지켜보는 대통령의 고별 연설에서 나올 줄 누가 알았으랴. 다른 사람이 이런 엄청난 주장을 했다면 ‘좌파’나 ‘빨갱이’로 몰아 붙이면 그만이겠지만, 아이젠하워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 출신인데다 보수적인 공화당 소속으로 대통령까지 지낸 인물이 아닌가.
이상한 일이었다. 군과 대기업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아이젠하워는 재임시 2차대전 직후 군사비의 3-4배에 달하는 4200억-4900억 달러를 군사비로 썼고, 대량 핵보복 독트린을 고수함으로써 핵전쟁의 위기를 고조시켰고, 이란이나 과테말라의 쿠데타를 도와 페르시아만과 중앙아메리카의 불안을 부추긴 인물이 아니었던가.
1944년 아이젠하워의 모습. 제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 출신이었던 그가 대통령 고별연설에서 ‘군산복합체’의 실상을 지적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런 인물이 위와 같이 이야기했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혹 대통령 권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구조의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대통령조차 ‘조직인간’으로서 일단 틀이 잡히면 저절로 굴러가는 시스템의 포로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론의 뒷받침이 없다면 군산복합체는 영원할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아이젠하워의 경고는 1975-76년 군산복합체의 부정부패가 대규모로 드러나면서 더 주목을 받게 되는데, 이 때엔 미국 경제가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영구적인 전쟁 경제’로 바뀌었다는 주장이 더 큰 설득력을 얻게 된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 1908-2006)는 1977년에 출간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군산복합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찍이 존 메이나드 케인스는 영국정부가 파운드 지폐뭉치를 폐갱에 넣고 갱을 메우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일이 있다. 이렇게 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번에는 파운드를 파내는 작업에 의해 더욱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나아가서는 이 지폐를 사용함으로써 많은 수요가 생겨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착상은 한 번도 실천에 옮겨진 일이 없었는데, 그 대신에 케인스 이후의 세계에 있어서는 무기구매를 위한 지출--설계, 생산, 폐기, 대체의 순환--이 케인스의 정책을 대신했다. 나는 전에 이것을 군사 케인즈주의(military Keynesianism)라고 부른 적이 있다. 정직한 경제학자들은 누구나 군사비 지출이 현대 경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젠 정직한 경제학자들뿐만 아니라 웬만큼 사리에 밝은 보통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군산복합체에 관한 수많은 통계 수치들이 언급되곤 하지만, 전 세계 인구의 4.4%를 점하는 미국이 전 세계 군사비의 절반 이상(2012년 기준)를 쓰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족하다.
범죄와의 전쟁은 군수 계약자들의 펀딩 채널
김진균과 홍성태는 군산복합체와 현대 자본주의가 ‘경제의 군사화’로 불륜 관계를 맺는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경제의 군사화’는 민수(民需)부문만으로는 더 이상 재생산이 불가능하게 된 현대 자본주의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하는 바, 군산복합체의 형성과 성장은 군사전략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차원으로도 설명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군산복합체는 정치적 현상이기도 하다. 정욱식은 군산복합체는 군수산업체와 펜타곤, 그리고 의회 사이의 관계를 일컫는 ‘철의 삼각(iron triangle)’을 중심으로, 행정부 내의 친군사파, 군수산업체로부터 연구기금을 지원받는 보수적 싱크탱크, 보수적인 언론 등으로 짜여진다고 말한다. 이들이 강력한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미국의 외교안보전략 및 국방예산 수립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물론 군산복합체는 의회마저 장악했다. 아이젠하워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연설문 원본에는 "군-산업-의회 복합체(military-industrial-congressional complex)"로 쓰여 있었지만 퇴임하는 대통령이 새로 구성될 의회를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아이젠하워는 의회를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다.
미국 대학의 명문도 순위는 군산복합체의 연구자금 획득 순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학도 군산복합체의 굳건한 파트너다. 그래서 MAGIC(Military-Academic-Governmental-Industrial Complex: 군정산학 복합체)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어디 그뿐인가. 범죄와의 전쟁, 특히 마약전쟁은 군수 계약자들의 영원한 펀딩 채널이 되었기 때문에, 바로 이 지점에서 범산복합체(prison-industrial complex)는 군산복합체에 편입된다9)(“왜 교도소는 성장산업이 되었나?: 미국의 ‘범산(犯産) 복합체’”, <네이버 캐스트>, 2013년 4월 23일 참고.)
그게 끝이 아니다. 미국은 ‘군 효율화’를 내세워 전투 이외 부분을 적극적으로 아웃소싱했다. 이런 아웃소싱 때문에 무기를 제외한 각종 물자와 용역을 군대에 공급하는 민간군사기업(PMC: Private Military Company)이 크게 성장했다. 이라크전에선 미군 10여명에 PMC 직원 1명 꼴이었다. 이제 ‘제2의 군대’로 발전한 PMC는 전쟁의 부스러기를 먹고 산다고 해서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PMC는 미국 정부에게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1석3조의 효과를 안겨주었다. 군인 대신 민간 경호원을 전쟁터에 내보내면 의회와 여론의 감시를 받지 않아도 되고, 정치적 부담이 적으며, 전역 군인들에게 취업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에서 카오스 컴패니 군인들이 사마라에 위치한 브라스필드 캠프에서 폭발물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2005. 1. 1.)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미국인들은 군산복합체에 대해 별 문제의식이 없다. 오죽하면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일본정책연구소장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은 “미국사회에서 군산복합체의 영향력을 사람들이 우습게 대하는 것을 보면 언제나 놀라워요”라고 말할까?
보스턴대학 역사학 교수 앤드류 배써비치(Andrew Bacevich)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주의: 미국인들은 어떻게 전쟁에 매혹되는가(The New American Militarism: How Americans Are Seduced by War)]에서 그 이유를 전지구적인 군사 우월주의라는 꿈에 대한 미국인의 집착에서 찾았다. 그는 군 경험도 없거니와 접촉의 기회도 전혀 없는 사람들이 전쟁 이미지를 낭만화하는 할리우드 대중문화에 빠져 드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military-industrial-media complex지만, 사실 군산복합체의 핵심은 여론의 향방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할리우드인지도 모른다. 미 국방부는 군부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전쟁 영화 제작에 최첨단 무기와 병력을 거의 무료로 지원해준다. 물론 영화 내용은 국방부의 사전 검열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군부에 대한 미화로 흐를 수밖에 없게 돼 있다. 군산복합체는 ‘피를 먹고 사는 괴물’로 불리기도 하지만, 할리우드를 거쳐 재탄생되면 [탑건]의 경우처럼 군 입대 지원자를 폭주하게 만드는 신통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저널리스트 닉 터스(Nick Turse)는 2008년에 출간한 [콤플렉스: 군부는 어떻게 우리의 일상적 삶에 침투했는가(The Complex: How the Military Invades Our Everyday Lives)]에서 corporate-military-entertainment complex의 실상을 파헤치고 있다. 할리우드 뿐만 아니라 각종 게임에서 커피·콜라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이 일상적 삶에서 즐기는 거의 모든 엔터테인먼트가 군산복합체와 연결돼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군산복합체는 ‘military’의 냄새를 전혀 풍기지 않으면서 미국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탑건(1986)]의 한 장면. 영화 개봉 후 군 입대 지원자가 폭주했다.
2011년 1월 아이젠하워의 대국민 고별연설 50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군산복합체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지만, 보수파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아이젠하워의 연설 당시에도 국방부는 아이젠하워의 진의가 왜곡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여전히 그 타령이다. 보수 논객 빈센트 칸나토(Vincent Cannato)는 <내셔널 리뷰> 기고문에서 아이젠하워는 단지 국방부의 방만하고 낭비가 심한 군사비 비출 및 군수물자 조달정책을 경고하면서 재정지출을 규제할 것을 촉구했을 뿐인데 좌파가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아이젠하워의 말을 멋대로 인용하는 바람에 공연한 오해만 생겼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그린버그(David Greenberg)도 <워싱턴포스트>에서 운영하는 웹진 <슬레이트>에서 아이젠하워의 연설은 잘못 이해되었고 군산복합체를 비난하는 것은 나태하고 진부하며 히스테리에서 나온 짓이라고 단정했다.
보수파의 입장이 이렇게 확고한데다, 미국인들은 전지구적인 군사 우월주의라는 꿈을 버릴 뜻이 없으니, 군산복합체는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군산복합체를 평산복합체(peace-industrial complex)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후자는 전자에 비해 ‘이익’과 ‘영광’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이제 개인 차원의 ‘아메리칸 드림’이 몰락해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국가의 영광, 국가적 차원의 ‘아메리칸 드림’이 필요한 걸까? ‘아메리칸 드림’은 정녕 미국의 축복이자 저주인지도 모르겠다.
글, 이미지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글쓴이 강준만은 언론과 대중문화를 포함하여 문화사 전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조지아대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위스컨신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고 1989년부터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현대사 산책(전 23권)](2002~2011), [한국대중매체사](2007), [미국사 산책(전17권)](2010), [세계문화의 겉과 속](201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