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道敎)에 대해서 알아보자
도교, 유교, 불교는 중국과 극동의 세 가지 주요 종교입니다.
그렇지만 불교와 달리, 도교와 유교는 세계 종교가 되지 못하고, 기본적으로 중국과 중국 문화의 영향권 내에 머물렀습니다.
현재 중국 내의 신자 수에 관한 공식 통계는 구할 수 없지만, 도교와 유교는 함께 과거 2000년 동안 거의 세계 인구 4분의 1의 종교 생활을 지배해 왔습니다.
‘백화 제방, 백가 쟁명.’(白化齊放, 白家爭鳴: 많은 꽃이 한꺼번에 피어나듯, 많은 학자가 거리낌없이 자유로이 논쟁하는 일) 중화 인민 공화국의 마오 쩌둥(毛澤東)이 1956년에 행한 연설로 유명해진 이 말은 사실은 중국 학자들이 전국 시대(戰國時代)라고 부르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중국의 한 시대를 묘사하는 데 사용하던 표현이었습니다. 막강하던 주(周) 왕조(기원전 1122년경-256년)는 그 무렵 결속력이 약한 봉건 국가 체제로 와해되었으며, 제후국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 평민들에게 많은 고난을 안겨 주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고통 때문에 전통적 통치 계급의 권위가 심하게 약화되었습니다.
평민들은 더 이상 귀족들의 변덕과 계략에 복종하여 그 결과를 묵묵히 감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오랫동안 억압받던 사상과 포부가 “백화”처럼 피어났습니다.
다양한 사상 유파들이 어느 정도 정상적인 생활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부·법·사회 질서·행실·윤리 등에 관해서 그리고 농업·음악·문학 같은 주제에 관해서 나름대로의 사상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유파들은 “백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유파가 매우 탁월하게 되어, 2000여 년 동안 중국인의 생활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두 유파는 마침내 도교와 유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노자가 창시하였는데, 그는 기원전 6세기에 중국에서 살았다.
도교에 의하면, 인생의 목적은 도(道)―자연의 길―와 인간 활동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불멸성에 관한 도교의 사상은 도는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이다.
도는 시작도 끝도 없다.
도와 조화를 이루어 살 때, 사람은 도에 참여하게 되고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도교의 창시자인 노자(老子)
도교는 약2000여 년 동안 중국인의 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도(道)에 관한 중국인의 기본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도는 본래 “길”을 뜻한다. 넓은 의미로는 “방법, 원리, 또는 교리”를 뜻한다. 중국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우주 가운데 나타나는 조화와 질서는 도, 곧 우주 안에 존재하면서 우주를 관리하는 일종의 신성한 의지 혹은 법칙이 겉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도교는 섭리, 하늘의 뜻, 혹은 단지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하늘 자체를 믿었다. 중국인들은 도교의 개념을 인간사에 적용하면서, 모든 일을 하는 데는 자연스럽고 정확한 길이 있고 만물과 만인은 제각기 적당한 위치와 적당한 기능이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통치자가 의무를 이행하여 백성을 공정하게 대하고 하늘과 관련된 제사 의식을 잘 보살피면, 나라에 평화와 번영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이 자진해서 도교의 길을 찾아 따르면, 만물이 조화롭고 평화스럽고 도를 역행하거나 거스르면, 혼란과 재난이 초래된 다고 믿었다.
도교는 신비주의적인 접근 방법을 취하며, 원래 형태의 도교는 무위(無?), 침묵, 수동적 태도, 사회를 등지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옹호한다.
도교의 기본 사상은 사람들이 물러앉아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대로 내버려두면 만사가 다 잘된다는 것이다.
도교의 첫 번째 현인 노자
도교는 종교라기보다 철학에 더 가까웠다. 창시자인 노자(老子)는 당시의 혼란과 동요에 불만을 품었으며, 사회를 등지고 자연으로 돌아감으로써 위안을 얻으려고 하였다.
노자는 기원전 6세기에 살았다. 흔히 “노 스승” 혹은 “노인”을 뜻하는 노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 이유는, 전설에 의하면 어머니가 그를 너무 오랫동안 임신하고 있어서 그가 태어났을 때 머리카락이 이미 희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자에 관한 유일한 공식 기록은 기원전 2세기와 1세기의 존경받는 황실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다. 그 자료에 따르면, 노자의 본명은 이이(李耳)였다.
노자는 중국 중부, 뤄양(洛陽)에서 황실 기록 보관소 사서로 일하였다.
“노자는 평생을 대부분 주(周) 나라에서 살았다. 노자는 주 나라의 몰락을 예견하고, 길을 떠나 변방에 이르렀다. 관문 관리 윤희(尹喜)가 말했다. ‘선생님, 굳이 떠나실 생각이시라면, 저를 위해 책을 한 권 써주십시오.’ 노자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약 오천 자 분량의 두 부분으로 된 책을 썼다.
그 책에서 노자는 도와 덕의 개념을 다루었다. 그 책이 도교의 경전 도덕경이다.
도덕경 한구절
“신비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있었다]
하늘과 땅이 있기 전에 생겨난 것. ···
아마도 만물의 어머니일 것이다.
그 이름은 모른다.
다만 도라고 부른다.”―제25장.
성경에는 만물의 조물주이며 전는자는 여호와라고 성경에 약 7000번 나온다
도교의 둘째 현인 장자
노자의 철학은 장주(莊周) 혹은 “스승 장”을 뜻하는 장자(莊子: 기원전 369-286년)에 의해 한걸음 더 발전하였다. 장자는 노자의 가장 탁월한 후계자로 여겨지는 인물이었다.
장자는 그의 저서 「장자」에서 도에 관해 자세히 설명했을 뿐 아니라, 「역경」(易經)에 처음 나타난 음양 사상에 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였다.
장자의 견해에서 볼 때, 진실로 영원하거나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만물은 양 극단 사이에서 변동하는 상태다. “추수”(秋水)라는 장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우주에는 영원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만물은 기껏해야 죽을 때까지만 살기 때문이다.
오직 도만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영원히 지속한다.
생명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준마에 비할 수 있다.
생명은 매 순간순간 끊임없이 계속 변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실제로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같은 무위의 철학 때문에, 도교 신자는 누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연의 작용은 결코 막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조만간, 만물은 그 반대로 되돌아갈 것이다. 아무리 견딜 수 없는 상황이라도 곧 개선될 것이다. 아무리 즐거운 상황이라도 곧 사라질 것이다
철학에서 종교로 발전한 도교
도교 신자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시도하면서, 영원한 젊음과 활력을 얻는 데 집착하였다. 도 곧 자연의 길과 조화되게 살면 여하튼 자연의 비밀에 이르러 신체의 해, 질병, 심지어는 죽음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노자는 그런 것을 중시하지 않았지만, 「도덕경」의 문구는 그런 사상을 암시한다.
“도와 하나가 되는 것은 영원하다. 몸은 비록 죽더라도, 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유명한 어록
‘백화 제방, 백가 쟁명.’(白化齊放, 白家爭鳴: 많은 꽃이 한꺼번에 피어나듯, 많은 학자가 거리낌 없이 자유로이 논쟁하는 일을 말한 중국의 모택둥(毛澤東)이 1956년에 행한 연설로 유명해진 이 말은 사실은 중국 학자들이 전국 시대(戰國時代)라고 부르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중국의 한 시대를 묘사하는 데 사용하던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