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우리는 어떻게 일본 사회를 이해해야 할 것인가
자민족(문화)중심주의
이 문화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는 문화인류학의 2가지 담론을 통해 일본 사회 혹은 문화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9세기 식민지 시대에 서구중심주의적인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식민지주의와 더불어 발전해온 문화인류학은 자민족(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적인 입장에서 인류의 문화를 문화진화론의 틀에 맞춰 파악해왔다. 즉 인류는 원시 난혼(亂婚) 시대를 거쳐 야만, 미개, 문명이라는 단계를 거쳐 진화·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유럽 사회의 중심적인 사상으로 서구 사회를 최고의 문명·문화의 정점에 두고 다른 민족이나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 문명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거나 미개 혹은 야만의 단계에 있다고 보는 시점이다. 이러한 시점은 유럽중심주의(Occidentalism)적 사고로서 식민지주의의 근원이 되기도 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서구민주주의 태생의 근본이 되었던 인간의 동일성이라는 것이 문화진화론의 전제라는 것이다. 즉 인류는 동일하니까 반드시 같은 발전단계를 거치게 될 것이며, 아직 서구와 같은 사회시스템이나 문화를 갖지 못한 사회는 발전단계가 아직 낮다는 것이다. 인류기원의 단일성을 기반으로 하여 인류가 갖는 모든 문화나 사회는 하나의 방향으로 동질적이면서도 단선적으로 발전하게 되므로 모든 인류는 같은 발전단계를 거쳐 진화한다는 논리이다. 결국 당시의 유럽인들 눈에는 아직 문명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거나 미개·야만의 단계에 있는 아프리카대륙과 아시아제국에 진출하여 그들을 유럽과 같은 문명의 단계에 도달시켜야 한다는 명목 아래 식민지적 침략을 실행하였던 것이다.
이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나 사회를 최고로 인정하여 다른 문화나 사회에 대해서는 자문화의 척도만으로 우열의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자민족(문화)중심주의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문화중심주의적인 발상은 오늘날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문명국간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논리이기도 하다. 최근에 문제가 된 미국과 프랑스의 방송프로그램에 비춰진 한국의 개고기 음식문화는 자문화중심주의에 입각한 왜곡과 오해의 극치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문화상대주의
한편 위와 같은 자문화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것이 문화상대주의(relativism)이다. 문화상대주의란 모든 문화는 각각 고유의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최적의 방법을 통해 긴 시간을 통해 축적되어온 것이므로 이에 대해 외부에서 안이하게 평가,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각각의 문화에 대해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으로 1930, 40년대에 미국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퍼지게 된 사상이다. 모든 사회에 공통하는 단일의 가치척도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인간들이 갖는 많은 경험들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나 판단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문화적 배경이나 행동양식의 전체적인 기준, 관행 및 사회규범에 비추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떠한 풍습도 당해 사회의 전체적인 문맥이나 배경으로부터 따로 떼어내어 우열, 선악이라는 이항대립적인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 문화의 다양성=이질성=특수성을 인정하고 용인하는 자세이다. 이러한 상대성론은 지금까지의 서구문명인들에 의한 자민족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국제사회의 이해와 타 문화에 대한 관용의 정신에 입각한 하나의 사상적 흐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문화상대주의는 편협한 자문화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이문화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며 상대적인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한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사고이다. 이 점 한국인인 우리들이 일본 사회나 문화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자세로서 충분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즉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이시다 에이이치로(石田英一郞)의 비판이 그것인데, 문화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라 한다면 인류에게 있어 보편적 가치라는 기준도 존재할 수 없고, 또한 이민족들끼리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통분모적 기반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류의 문화에는 다양성=이질성=특수성이라는 성격과 동시에 일양성=동질성=보편성이라는 성격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류가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할 '평화'라든지, '지구환경 보존', '인간다운 삶의 보장' 등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인류문화의 공동성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의 아시아 사회에 대한 식민지주의적 과거사도 그들의 문화적 특수성으로 치부되어 객관적이라는 입장 아래 또다시 왜곡되고 정당화되는 인류 수치의 문화가 재생산될 가능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한편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이러한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그리 용이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일본에 대해 객관적이고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기 위해서는 일본 사회나 문화에 대해 다른 사회나 문화에 대한 입장과 동일선상에서 바라볼 수 없는 양국관계의 특수성 때문이다. 즉 '반일'이라든지 '극일'이라는 가치론적 담론들이 현실적인 한일관계를 적절히 담아내지 못하고 일본이라는 개별지역의 사회와 문화를 심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입지를 상대적으로 좁혀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이문화 연구라는 범주 안에서 일본 지역은 항상 특수한 위치를 점하게 되어 이문화 연구 대상으로서의 보편성을 보장받아오지 못했다.
최근에 봇물처럼 쏟아져나오는 일본관계 서적들을 살펴보면 이전에 비해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일본 지역을 서술한 저서들도 눈에 띄게 되어 상당히 고무적이긴 하다. 그러나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흥미 위주의 백과사전식 책들도 많은 수를 차지하여 독자들은 스테레오 타입의 일본 문화를 접하게 되어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우리들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에서 그들의 문화현상이나 사회에 대해 적대시하는 일본 문화 부정론과, 일본인들의 근면, 근검, 질서의식 등 일본인들에게서도 배울 점이 많다는 일본 문화 긍정론의 양 극단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에서 추출된 우리들의 일본 문화 인식이나 사회적 현상에 대해 논리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과장되고 왜곡된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이라든지 공직사회의 청렴결백성 등이 우리들에게 교훈적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실제로는 현지의 신문들이나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공인들의 부정부패에 관한 소식이 연일 지면과 화면을 장식하기도 하며, 전철역 선로 위에 난무하는 담배꽁초를 줍기 위해 청소부들이 도구를 들고 일하는 모습 등도 일본 현지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일이다. 단지 그러한 일들이 한국과 비교하여 정도의 차이가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은 지적할 수 있지만 근면, 정직, 성실 등으로 일본인과 한국인의 특징을 구분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애매모호한 논리로 비약될 위험성이 있다.
일본의 전통사회와 근대화
일본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또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현재의 일본 사회를 규정짓는 근·현대적인 여러 요소가 일본의 대다수 지역을 점하는 촌락사회의 기본구조에서 그 틀을 형성해왔기 때문에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등 대도시 중심적인 생활양식이나 사회적 인간관계의 파악만으로는 일본 사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 살펴볼 지역사회 등에서도 지적되겠지만, 전통적인 '무라(村)'사회의 자기완결적 생활공간 속에서 연중행사, 각종 통과의례, 신앙조직이라는 유기적인 사회적 활동이 '이에(家)'들의 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촌락공동체로서의 사회적 인간관계가 오늘날의 일본 사회를 규정짓는 기본적인 틀이 되어온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일본을 보는 우리의 시점은 현대이다. 현대라는 시간적·공간적 테두리는 사회구성원 개개인이 동시대적 감각을 일정부분 공유하여 전현대라는 시간적 연속선상에서 존재하는 시대구분의 하나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적 상황을 만들어내며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 개인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즉 개인은 동시대를 살아가며 현대라는 화두의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며, 주체이자 객체이기도 한 이중적 지위를 가지고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일본의 현대사회를 메이지유신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종결까지의 근대에 이어 현재까지의 시기를 현대라는 시대구분으로 하는 것 같다. 즉 전근대, 근대, 현대라는 연속선상에 일본 문화의 에토스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근대사회의 성립배경을 살펴보면, 서구의 자본주의(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되고, 상품생산이 지배적인 사회적 생산양식. 이윤추구를 제일의 목적으로 한다)적 사회체제를 메이지유신을 통해 형성해왔다. 이는 서구의 시민사회 성숙에 의한 자본주의사회의 성립이라는 배경과는 다소 성격이 다른 정치적·사회적 지배세력에 의한 위로부터의 혁신적인 정책에 의한 자본주의사회로의 전환이었다. 메이지유신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정치, 사회적 변혁모델은 말 할 것도 없이 유럽 사회를 모델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회적·정치적 시스템을 '서구화'·'서양화'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즉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18세기 후반 영국의 증기기관의 발명과 직물기계의 발명으로 유럽에 불어닥친 산업혁명과 근대화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유럽 사회는 산업, 경제, 사회적 대변혁을 몰고 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기틀을 마련하고 공장을 중심으로 임금노동자의 도시집중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불러일으키면서 근대공업국가로 전환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이 기계에 예속되어 인간소외라는 사회적 병리현상도 생성된다. 즉 공해 문제, 인구의 도시집중, 경제적 이윤중심주의, 전통과 현대의 대립, 핵가족의 보편화, 그에 따른 가족의 해체 등 인간성 부재라는 사회 병리적 현상은 오늘날의 현대사회로까지 이어져 가치체계의 변화에 심각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일본의 산업혁명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증기기관이라는 에너지를 이용한 경공업(製絲, 紡績, 織物)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결국 유럽에 뒤지기를 약 1세기, 일본의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청일전쟁 이후에는 군비확충을 위한 철강공업에 박차를 가해 중공업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근대화 과정의 보편성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산업화·근대화 과정은 1960년대 후반 조국근대화라는 깃발 아래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해온 정책과 궤도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문명화=근대화라는 일련의 과정이 자본주의적 사회 혹은 시장경제주의적 사회를 목표로 하는 현대사회가 거치는 보편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어 도쿄와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중문화로 상징되는 패션, 생활양식, 젊은이들의 문화 등은 대동소이하다.
제도나 물질문명의 변화가 선행되고 그에 따른 가치체계나 의식의 변화는 후행하는 모습들이 보이는 것도 변하기 쉬운 부분과 변화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사회적·문화적 요소들의 복합체로서 사회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도시부의 생활양식이 균일·균질화되어가고, 현대문명은 국제화라는 화두 속에서 전 지구상의 시스템을 같은 스타일, 같은 경제적인 활동과 사회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어떤 특징적인 요소에 대해 논리적 접근을 비교사회론적으로 시도해보면 많은 점에서 한국 사회와 공통된 요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현대일본 사회가 갖는 사회적인 제 문제, 즉 공해와 관련된 지구환경 문제, 인구의 도시집중, 경제적 이윤중심주의, 전통과 현대의 대립, 핵가족의 보편화, 그에 따른 가족의 해체 등 인간성 부재라는 사회 병리적 현상은 오늘날의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서도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동시대적 현상이다. 특히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주의 시스템을 도입해온 국가나 앞으로 도입할 국가들에 있어서는 위와 같은 병리적 현상을 공통으로 경험하게 된다.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만 보더라도 일본과 한국의 경우 공통된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인구의 도시 집중률은 대단히 높다. 2000년 현재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7대 도시에 약 2,300만 명으로 48%, 중소도시까지 포함하면 약 75%가 도시부에 살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도쿄 1,200만, 삿포로 180만, 센다이 108만, 요코하마 342만, 가와사키 125만, 나고야 217만, 교토 147만, 오사카 260만, 고베 150만, 히로시마 112만, 후쿠오카 134만, 기타 큐슈 100만으로 12대 도시 인구는 3,075만 명으로 그 외의 중소도시까지 합하면 총인구 1억 2,700만 명 중 9,985만 명의 인구가 도시부에 집중되어 있다(약 78%).
돗토리현과 시마네현의 경우 각각 61만, 76만으로 현 전체가 100만 명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도시에의 인구집중은 촌락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한 공급에 기인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또한 인구의 도시집중 혹은 과밀화 현상은 지가, 물가의 상승, 공해문제, 소자화(少子化) 문제와 관련된 가족의 해체, 촌락사회의 과소화(過疎化) 현상 등을 부추겨 인간성 부재라는 사회적·심리적 괴리 현상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사회의 균질성과 배타성
일본 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마지막으로 또 하나 지적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즉 메이지시대를 전후하여 단일민족국가, 단일문화라는 이데올로기적 일본관이 형성되어 고정적이고 일원적인 스테레오타입의 일본 사회론이 구축됨으로써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일본 문화와 사회의 실상이 왜곡되어왔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단일민족국가 일본이라는 것은 북방의 아이누 민족이나 남쪽의 오키나와 민족, 그리고 재일한국인들의 존재를 애매모호하게 하였으며 오늘날의 각종 차별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즉 근·현대사의 맥락 속에서 형성되어온 '동질'적이며 '균질'적이라는 강고한 일본 민족관은 다른 문화나 언어·습속 등을 가진 '이질'적인 '타자(他者)'를 억지로 동화(同化)시킴으로써 형성되어온 허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 국내의 문화적 이질성이나 재일외국인이라는 사회구성원들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안으로의 동화를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강요하고 그러한 동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바깥으로 내몰아 차별하는 이중적인 자세가 밑바탕에 깔린 일본의 단일문화, 단일민족관에 대해 일본의 일부 학자들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동화라는 것은 원래 이질적인 것들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동질적인 것으로 변질시키는 데 그 중점이 놓여 있으므로 반드시 배제나 차별의 논리가 작용하는 구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균일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동화의 문제는 많은 차별을 생산하고 균일성=배타성의 등식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와 같은 논리구조가 일본 사회의 다양성을 어떻게 규제하고 있는지, 혹은 일본 사회에 존재하는 각종 차별의 문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인식해야 할 과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문화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에토스를 파악하고 이해해보는 것이 그 중심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현대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본론의 초점은 어디에 둘 것인가? 동질·균질·일양성이라는 문명에 대한 다양성·이질성이라는 문화의 작용을 이해하는 것이 현대일본 사회 이해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즉 현상론적 문명의 작용과 본질론적인 문화의 작용을 나누어 생각해봄으로써 일본 현대사회를 규정짓는 일본인들의 내재된 어떤 의식이나 가치관에 대해 접근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본질론적인 문화의 작용이라는 꽤나 어려운 작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 것인가? 본서의 의도를 훨씬 넘어서는 주제이지만 몇몇 주제를 통하여 일본 사회의 기본적인 모습을 파악해봄으로써 접근해보자.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일본 사회의 대다수를 점하는 촌락사회와 그러한 촌락사회의 기본적 구성요소인 가족을 통해 개인의 사회적 인간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네이버 지식백과] 일본 사회의 균질성과 배타성 (새로운 일본의 이해, 2005. 3. 2., 다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