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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 이야기

후기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물들

작성자관운|작성시간15.11.29|조회수184 목록 댓글 0


후기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물들

 

 

 

 

파라오들을 위한 묘역(the Valley of the Kings)

 

나일강 하류 기자를 중심으로 사막가운데 흩어져 있는 피라밋들은 초기 고대 이집트 문명(기원전 2700 에서부터 2000년경 까지)()의 왕과 그 가족들을 위한 묘역으로 만든 것이지만 귀중품들이 함께 안장되기 때문에 고대 초기부터 도굴을 방지하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피라밋 안에 방을 여러개 만들고 오르 내리면서 미로를 만들어 일단 들어가더라도 왕의 미라와 귀중품들이 들어있는 본실은 쉽게 찾지 못하도록 조치들을 취해보기도 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이집트의 피라밋 가운데 도굴당하지 않고 원형을 보존한 왕의 묘소는 없다고 볼 정도입니다. 그것은 후대 도굴꾼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대에도 이미 매장 다음날부터 도굴당했다고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계곡에는 묘실로 들어가는 통행로가 만들어졌으며 군데 군데 출입문들이 보이는데 아직까지 찾지 못한 출입구도 있을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민족 힉소스(Hyksos)족의 통치를 몰아낸 이집트의 아모세(Ahmose) 왕자가 하나의 중앙정부 아래 이집트를 통일하고 수도를 데베(Thebes)로 옮긴 후기 고대 이집트 시대(The New Kingdom, 후기 청동기 시대, 기원 전 1600-945)에 와서는 이러한 파라호 묘역 도난 방지책의 하나로 왕의 묘역을 피라밋 대신 나일강의 서쪽 연안 Therban Hills 계곡에 있는 the Valley of the Kings의 바위산을 뚫어 만들었습니다.

 

데베 건너편 서쪽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동과 서로 나누이는 이 계곡에는 기원전 16세기부터 기원전 11세기까지 500여년 동안의 파라호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극히 제한된 고위 권력자들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아래 그림과 같이 들어가는 입구가 여러곳으로 나누어져 있고 들어가서도 미로와 같이 여기저기 갈라지며 한 파라호의 묘역에서도 방을 여럿 만들어서 어느 것이 파라호의 미라가 있는 곳인지 쉽게 알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더구나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들어가는 입구들이 모래에 덮혀 소재마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18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인 발굴작업이 시작되었고 1922년 영국계 이집트 발굴단의 카터(Edward Carter)에 의해 전혀 도굴꾼에 의해 손상되지 않은 투텐카문(Tutankhamun)왕의 묘실이 원형 그대로 발굴되면서 이집트 역사의 현장으로 세계의 관심을 끌게 되었으며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본격적인 발굴작업이 조심스럽게 진행되어 2008년에 새로운 출입구 두 곳을 발견하는 등, 현재까지 적어도 63개의 파라호의 묘역이 이곳에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묘역안에는 벽화가 그려진 계단이 있는 복도(왼쪽), 시신을 지켜줄 장정이 조각되어 있는 돌기둥(가운데) 그리고 벽화(오른쪽)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집트를 소개하는 포스터에는 으례 따라 다니는 누런 황금 왕관과 마스크를 쓴 인물이 King Tut로 알려진 파로호 투텐카문입니다. 이집트를 오래동안 통치했던 파라호 아케나튼(Akhenaten)의 아들로 기원전 1333, 9살 때 왕위에 올라 19세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나 소년왕(the boy-king)으로 알려진 그의 무덤의 소재를 18세기부터 많은 탐험가들이 찾아나서서 결국 1922년 카터에 의해 발견, 개봉되었습니다. 카터의 발견은 이집트 역사와 문화연구에 중요한 계기를 가져왔습니다.

 

금으로 만든 king Tut의 미라 마스크

 

첫째로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왜 투텐카문왕이 19세에 갑자기 죽었느냐? 자연사냐? 타살이냐?하는 논의가 있었는데 그의 미라가 발견됨으로 해결의 가능성이 점쳐졌습니다. 둘째로는 유물이 도난당하고 원형을 보존하지 못한 묘실들과는 달리 Tut의 묘실은 수장품들이 전혀 도난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라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이집트 문화의 실상을 아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 십년을 통치하면서 미리미리 자신의 묘역을 잘 만들어 놓은 파라호들과는 달리 섭정을 하다가 19세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Tut의 묘역과 묘실들은 갑자기 서둘러 만든 것이 역력할 정도로 소박하였지만 그안에 수장되어 있는 것들은 그때까지 발굴된 다른 어느 파라오의 것들보다 호화스러웠습니다. 황금으로 만든 관에 황금으로 만든 왕관과 마스크가 미라에 그대로 씌워진 상태였습니다. 금장식의 의자와 대검 등 수장품들 역시 다른 묘실에서는 볼 수 없는 세련된 고급품들이었습니다. 만일 수 십년씩 통치했던 파라호들의 묘실이 도난당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사치스러웠을까?를 상상케하며 당시의 이집트 문명이 도굴당한 파라호들의 묘실들을 보고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발달했고 나일강변의 농업만이 아니라 광물질을 채취, 세공하는 기술도 크게 발전하였으며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교역이 빈번하였다는 것들을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파라오 투텐카문의 묘실에 소장되어 있던 옷장(가운데), 죽은사람의 영혼을 돌아오게 한다는 풍뎅이 모양의 세공품으로 만든 하트형 부적(오른쪽) 그리고 벽화(왼쪽)

 

King Tut의 발견으로 세계는 이집트에 관심을 갖게되었고 그의 유물들이 세계 주요 박물관들을 돌며 전시되면서 한때 이집트 붐을 가져왔으며 황금마스크를 쓴 King Tut의 모습은 이집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파라호들과 국민들은 왜 지난 수 천년 동안 국력을 온통 파라호의 묘역조성에 쏟은듯한 인상을 주면서 그렇게 목을 매달은 걸까요?

 

타툰카문 왕의 미라와 미라를 담는 목관

 

이집트의 종교를 다루면서 잠간 언급한대로 파라호들이 매장되어 있는 the Valley of the Kings는 지하의 신인 Orisis의 왕국입니다. 파라호들은 이곳에서 사후의 신들을 만나 영생을 얻기 위한 험난하고 어려운 여행을 떠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필요한 가구들과 생필품들은 물론 돌이나 나무로 만든 사람모양의 종(servant)들도 만들어 놓고 벽에는 죽음의 서()’와 같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사후(死後) 이후에 관한 그림들을 그려 놓아 여정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더욱이 이집트인들은 불사(immotality)에로의 여정을 위해서는 흠없는 육신을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어서 파라호가 죽으면 신체의 각 부위를 꺼내고 온몸을 방부제와 기름으로 발라 썩지 않게 말린후 잘 싸서 최고의 의상으로 장식하여 관에 눕혀 묘실에 모십니다. 이때 여행중에 필요할런지도 모른다하여 몸에서 꺼낸 내장들까지도 말려서 묘실 한곳에 모셔놓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미라(mummy)라고 하는 것으로 미라를 만드는 과정이 70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파라호들은 또한 해가 지는 나일강 서쪽 연안에 자리한 the Vallery of the Kings는 위대한 태양신 레이(Re)가 밤이면 돌아가 휴식하는 곳으로 아침이면 태양이 다시 떠오르듯이 파라호 역시 사후에 그곳에서 태양신과 함께 이집트를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부활한다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왕권이 강화되면서 신권(神權)을 장악하는 신화입니다만 백성들은 파라호들이 수호신의 역활을 잘 감당하여 자신들이 잘 살기 위해서는 지하의 생활에 전혀 불편과 부족함이 없게 하여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파라호의 묘역조성이 이집트 사회의 국사(國事) 1호가 되었던 것입니다.

 

햇셉수트(Hatshepsut)와 신전 건축

 

여자 파라오 햇셉수트의 석상

 

이집트의 여왕 크레오파트라 이름은 너무나 잘 알려졌습니다만 이집트 역사로 보면 그것은 최근의 일이고 그보다 1400여 년 전인 기원전 1400년 경에 이미 햇셉수트(Hatshepsut)라는 여자 파라호가 있었습니다. 후기 고대 이집트 왕국시대에 들어서서 나라가 안정되고 강력해지던 때 파라호 토트메스 2(Thutmose,기원전 1492-1479)가 죽어 다른 여인에게서 난 아들 토트메스3세가 어린 나이에 바라호의 대를 있자 왕비였던 햇셉수트가 섭정을 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녀가 파라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죽은 후 다시 권력을 장악한 토트메스3세에 의해 그녀에 관한 기록들이 파기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룬 건축물들과 이미지들과 조각들이 훼손된채 남아 있어서 그의 존재는 확인되었고 특히 토목공사와 외국원정에서 남긴 그의 공헌으로 당대의 유능한 파라호의 하나로 역사가들에 의해 평가받고 있습니다.

 

 

햇셉수트가 만든 신전, 이집트 신전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신전으로 '거룩한 곳 가운데서도 가장 거룩한 곳'이라는 뜻으로 'Dieser Dieseu'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서는 지상의 신이요 죽어서는 이집트의 수호신이 된다고 믿었던 파라호들은 영원히 경배받을 수 있는 자신을 위한 신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햇셉수트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자신을 위한 신전을 건축하였는데 신전의 벽에 그려진 벽화들로 그녀의 공적을 알 수 있으며 그녀의 묘역을 통틀어 ‘Djeser Djeseu’라고 부르는데 거룩한 곳 가운데서도 가장 거룩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햇셉수트의 업적을 기록한 돌판으로 양쪽에 그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카낙 신전에 두 개의 오베리스크를 건립했다는 뜻으로 두개의 포죽탑이 새겨져 있다.

 

암벽을 깎아 만든 이 신전은 나무와 숲이 있는 정원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숲은 볼 수 없고 기다란 램프가 있는 일층을 지나서 2층에 이르면 돌기둥이 있는 홀이 있고 돌벽을 깎아 만든 제단이 나옵니다. 그리고 돌기둥 뒷벽에는 파라호 핫셉수트의 공적을 보여주는 벽화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카낙 사원이 들어서 있는 일대의 모습으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종교단지로 꼽히고 있다.

 

이외에도 거의 같은 시기(고대 이집트 후기)에 건립된 신전들 가운데 인상적이고 가장 거대한 사원은 카낙(Karnak) 사원입니다. 지금의 Luxor에서 2.5 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이곳에는 3개의 대 사원과 3개의 보조사원 그리고 여러개의 여작은 사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500여년의 후기고대왕국 동안에 파라호들이 이 지역에 그때 그때 신전을 하나씩 추가함으로 거댜한 사원단지가 형성되었는데 시대에 따른 각기 다른 건축양식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신전의 기둥들과 벽에 조각된 그림들로 신전의 규모를 알 수 있다. 파라호들의 업적이 그려져 있어 역사적 자료로서도 큰 가치가 있으며 그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벽화들 역시 곁들여져 있다.

 

 

이곳에는 파라호 핫셉수트가 세운 2개의 오벨리스크(obelisks, 끝이 뾰죽한 탑)가 있는데 하나는 아랫단만 남아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도 남아 있는데 100피트 높이로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는 가장 높은것입니다. 오베리스크는 햇살의 모양으로 태양의 상징이며 태양신을 숭배하는 곳에서는 대개 찾아 볼 수 있는데 꼭대기 3각의 부분은 피라밋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 서있는 오벨리스크에는 돌에 새겨진 핫셉수트의 이름이 치즐로 깍여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정치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상징입니다.

 

 

후기 고대이집트의 전성기에 세워진 이 신전은 아스완 댐 건설때문에 자리를 옮겼다.

 

또 하나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신전으로 이집트 남부 지금의 나셀 호수 서쪽 연안에 자리한 두 개의 거대한 바위 사원인 Abu Simbel이 있습니다. 기원전13세기 전성기를 이루었던 위대한 파라호 람세스 2세때 자신과 왕비 Nefertari를 위하여 산을 깎아서 만든 것으로 1960년대에 나일강에 아스완 댐을 만들면서 잠수하지 않도록 현재의 자리로 옮긴것입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발자취를 보면서 그 풍부한 유물들과 엄청난 건축술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가능케 하였을 엄청난 재정적인 뒷바침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역사책에서나 들어 왔던 그들의 문화와 문명이 이렇게 엄청난 것이었던가?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언젠가 보았던 1900년 경의 숭례문과 그 일대의 흑백사진이 떠올랐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지난 봄에 이집트에서 시작된 아프리카의 봄이 오버랲 되었습니다. 무덤과 신전으로 요약되는 통치자들의 이라는 착각이 오늘의 이집트를 어디고 끌고 왔는가? 역사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출처 :

http://www.webegt.com/cgi-bin/egt/read.cgi?board=AncientHistory&nnew=2&y_numbe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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