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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 이야기

코린트 동맹(League of Corinth, BC 337)

작성자관운|작성시간15.12.10|조회수210 목록 댓글 1

 

코린트 동맹(League of Corinth, BC 337)

 

 

 

 

 

고대 그리스에 존재했던 폴리스이자, 현재 그리스에도 존재하는 도시 이름. 개신교 성경에는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가 있으므로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고린도로 알려져있기도 하다. 가톨릭 성경에는 코린트 1, 코린트 2서라고 되어 있어서 가톨릭 신자들은 듣자마자 "~그 코린트"라고 알아보는 그 코린트다. 그리스식 발음으로는 코린토스.

 

그리스 북부와 스파르타가 자리잡고 있는 펠로포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지협에 위치하고 있었다. 길목을 꽉 잡고 있는 나라 답게 상업이 많이 발전했다. 고대 그리스 세계의 양대 강국인 아테네, 스파르타만은 못하지만 나름대로 강대한 폴리스였다.

 

일전에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코르키라와 앙숙 관계였다. 코르키라도 만만치 않은 해군력을 갖고 있던 터라 그리스사 최초의 해전에서 코린트가 패하여 코르키라는 독립하고 경제적 실권도 뜯기게 되었기 때문. 이후, 코린트는 스파르타와 친선 관계를 유지했는데, 스파르타는 코린트의 해군력과 경제력 때문에 코린트가 자신과의 동맹을 취소하고 아테네 편에 붙을까 늘 걱정했다고 한다.

 

덕분에 아테네가 코린트와 싸우려는 코르키라에게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을 때[2] 스파르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그것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많은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코린트 양식의 기둥으로 유명하다. 코린트 양식의 기둥은 그리스 시대에 매우 유명했던 건축 양식으로 대학에서 고대 그리스 역사를 배우면 첫학기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코린트 양식의 그림을 외워야한다. 이 건축 양식은 코린트 뿐 아니라 지금의 터키, 그리스, 남부 이탈리아, 시칠리아, 에게해안을 아우르던 그리스 세계 전체가 쓰던 건축양식이었다.

 

이렇듯 그리스 세계에서 꽤 유명하고 큰 도시였으나 로마에 의해 카르타고와 사이좋게 멸망당하는 신세가 된다. 이는 코린트가 로마에 대한 반란을 주도하여 전쟁을 일으킨데 대한 본보기로 멸망당한 것이었다. 코린트는 카르타고와 똑같이 도시가 파괴당하고, 소금뿌려지고 주민들은 몽땅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된다. 두 도시는 같은 해인 146 BCE에 멸망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로마인에 의해 도시가 통째로 다시 세워지고, 그 결과 이 전의 민족과는 관련없는 새로운 민족이 이주하여 코린트의 주인이 된다.

 

펠로포네소스 지협을 통과하는 코린트 운하가 뚫려 있다. 고대로부터 이 지협을 뚫어버리면 참 편하겠구나 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기술 부족으로 실현된 것은 현대에 들어와서였다. 코린트 운하는 고대에서 수많은 정치가들이 시도하였다. 최초의 작업은 기원전 7세기경때 그리스 폴리스의 정치가에 의해 시도되었으나 기술 부족으로 중단된다. 그 후 그리스의 여러 정치가들과, 율리우스 카이사르, 칼리굴라 등이 이를 시작하였다가 암살당하면서 중단된다. 제대로 작정하고 뚫어본건 네로였는데, 그는 유태인 포로들을 동원해 양쪽에서 뚫고가는 공사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중앙에 엄청나게 큰 암석지대를 만났고 이를 도무지 뚫을 수 없었으므로 결국 공사를 중단하고 만다. 따라서 그때 이후로 계속 보류되오다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첨단 기술이 가능해진 근대에 이르러 운하를 파는데 성공한다. ****

 

 

케로네아 전투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테네인들은 두려움 속에서 조상의 신성한 무덤 돌까지 파헤쳐가며 도시의 방어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필리포스로서는 그리스 문명의 상징인 아테네를 어떻게든 자신의 대 페르시아 원정계획에 끌어들이고 싶었다. 그리하여 아테네에 화의를 청하였고 아테네인들은 기꺼이 이를 수용하였다. 필리포스의 은혜를 입은 아테네인들은 그에게 아테네 시민권을 부여하고 도시의 광장인 아고라(Agora)에 조각상을 세우기까지 하였다. 마케도니아에서도 사절단이 아테네를 방문했는데 그 대표는 알렉산드로스였다. 아테네인들은 그를 성대하게 맞이하였고 조약은 필리포스의 의도대로 맺어졌다.

 

케로네아 전투의 승리 이후에 필리포스는 그리스 전체를 한 바퀴 주유하였다. 이러한 여정은 기원전 337년 여름까지 1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는데 그 목적은 마케도니아를 중심으로 페르시아 원정을 위한 그리스 연합군을 결성하는 것이었다. 가을이 되자 코린트에서는 스파르타를 제외한 전 그리스 대표자 회의가 열렸다. 그는 소아시아로의 진군 계획을 알린 뒤에 만장일치로 전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으로 선출되었다. 이소크라테스가 외치던 공허해 보였던 꿈이 바야흐로 이제 필리포스에 의해 성취되려는 순간이었다. 데모스테네스는 그리스의 자유가 사라진 것을 개탄하였으나 그리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국가가 되려 하고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코린트 동맹 (알렉산드로스, 2004. 7. 30., 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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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지환 | 작성시간 15.12.11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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