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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 이야기

게르만족(Germanic peoples)

작성자관운|작성시간15.12.24|조회수621 목록 댓글 1

 

게르만족(Germanic peoples)

 

 




 

 

주도는 뮌헨이다. 영어로는 바바리아(Bavaria)라고 한다. 니더바이에른의 비옥한 농업지대, 알프스 산록의 낙농지대, 마인강() 유역의 포도재배지대 등으로 구분되며, 독일의 중요한 농업주를 이루고 있다. 또 근년 공업화가 급속히 진전함에 따라 독일의 선진(先進) 공업주로 성장하였으며, 특히 알루미늄 정련(精鍊화학공업 등 크게 발전하였다.

 

지명은 BC 500년경 서(西)게르만계 부족인 바요바리인()이 이곳에 침입한 것에 연유되며 그들은 동()알프스 계곡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6세기 이후에는 프랑크 왕국에게 종속되었고 1180년 이후에는 위텔스바흐 공국(公國)으로서 영역을 확대하였다. 막시밀리안 1(15971651)의 시대에는 반종교개혁에 앞장섰었으며, 선제후시대(選帝侯時代)1742년 칼 알브레히트가 독일 황제가 되었다. 1806, 왕국으로 승격하여 라인 동맹의 일원이 되었고, 1866년 독일의 주도권을 둘러싼 프로이센과의 싸움에서 오스트리아와 함께 패배하였으며, 1919812일 바이마르 체제(體制)로 자유국가가 되었다. 모든 대도시에는 박물관·미술관·극장들이 여러 개 있으며, 종합대학은 뮌헨·뷔르츠부르크·에를랑겐·뉘른베르크 등지에 있다.

 

게르만족(독일어: Germanen. 영어: Germanic peoples)은 고대 유럽의 게르만계 민족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게르만인들은 상호 의사소통이 가능한 방언들을 사용했으며 공통된 신화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켈트족에 비해 철기보급이 떨어지고 무기의 시대 차이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 약세였고 켈트족의 로마화 이후에도 한동안은 계속 그 상태였다. 하지만 로마와 인접해있던 프랑크족과 같은 게르만족은 로마의 비호뿐만 아니라 용병 차출과 교역 등으로 많은 부와 권력을 쌓고 일부 로마화가 되어서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후 가장 성장하게 되는 주역들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마니아 원정을 계획했으나 그의 전쟁과정은 갈리아 전쟁 때보다 더 길었다. 그만큼 세금이 많이 지출되어 전쟁의 종료를 기념할 성대한 개선식을 수십 년이 흘러도 못하였다. 따라서 내부에서는 갈리아 전쟁 때와 비교되어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한편, 외부에서는 9년에 게르만족 출신으로서 로마군에 복무하며 로마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 특히 군사적인 지식을 쌓아두었던 아르미니우스가 무능하고 군사적 재능마저도 없던 바루스의 점령군을 토이토부르크 숲으로 유인해 대패시켰다. 이후에도 게르만 탈환은 계속되었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치세말년, 골치아픈 게르만으로 인해 라인강, 도나우강과 주요 방어 거점을 중심으로 국경정책을 짓고 긴 리메스와 방어군을 배치하면서 방어적인 태도로 변모했다. 그 이후에도 이런 정책에서 벗어나 정복을 계속 시도했으나 게르마니쿠스와 같은 명장들이 죽는 악재가 겹쳤다. 사실상 국지전이나 소규모의 전투만 변변히 일어나고 로마가 대대적인 원정군을 개편하여 침공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로마에겐 게르마니아 정복사업이 본국사정으로 잠깐동안 지체가 됐을 뿐 잊혀졌던 많은 게르만 전쟁들도 밝혀졌다. 아우구스투스의 패배 이후에도 기록물은 아직 별로 없으나 여러번 게르마니아에서 전장터와 수많은 군사 무기, 시대별 황제가 찍힌 주화 의식주가 발견되고 현재에도 발굴이 진척된 것은 토이토부르크 숲 패배 이후에도 전쟁이 계속되었음을 알려준다. 혼란스러운 군인황제시대나 그 이후에도 여전히 게르만에 대한 군사적 원정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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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지환 | 작성시간 15.12.25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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