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이집트 나일강의 신화
이집트 종교의 역사
선왕조
고대 이집트는 고고학적 연구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고고학적 발견으로 말미암아 이집트의 종교는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집트 선왕조시대 장례 매장 방식은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의 초기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동시대에 매장된 동물들은 후기 이집트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동물형태 신들의 기원도 일정부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초기 이집트시대에는 사람이나 신의 모습을 재현한 토우들도 발견되었고,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동물 형태의 신들보다는 사람 모습을 한 신들의 출현이 더 늦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학자들은 초기 이집트의 종교는 지역마다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었으나, 이 작은 지역들이 서로 정복하고 정복되면서 서로의 신들이 각각의 신화에 편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이론은 고대 이집트 종교가 복잡한 다신론적인 종교로써 어떻게 지역의 수호신들이 전국의 보편적인 신으로 자리 잡게 되는지 설명해준다.
그런 와중에 약 기원적 3000년경에 상·하 이집트가 통일되면서 초기왕조가 들어섰다. 새로운 왕조에서 특정 신이 국가 중요의 신으로 부각 되고 파라오가 신격화되는 등 이집트 종교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집트 제1왕조의 파라오들과 같은 초기의 왕들은 막대한 돈과 인원이 투입된 무덤에 매장되었는데, 당시에는 사후세계에서 왕의 시중을 들어줄 사람을 같이 매장하는는 순장제도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매장방식은 왕족의 장례의식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설명한다. 고위 관료들과 귀족들은 하급의 무덤에 매장되었다.
고왕국과 중왕국
고왕국 시대에 지어진 기자의 피라미드
고왕국 시대를 통하여 주요 신들의 사제들은 각각의 다른 신화와 문화를 가진 여러 신을 단체로 묶어 조직화하는 것을 시도하였다. 헬리오폴리스와 헤르모폴리스, 멤피스의 신학이 발전함에 따라 이 시대에 혼합주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고왕국 시대에는 중요한 왕족이 아닌 귀족들이 여전히 석실 분묘에 묻혔지만, 파라오들은 피라미드들이 석실 분묘를 대신하게 되었다. 피라미드들은 거대한 장례 신전의 집합체로써, 이집트의 신전 건축 개발에 굉장한 역할을 하였으며,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왕국 시대에는 헬리오폴리스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종교 도시가 되었고 그 도시의 수호신인 라의 영향력은 매우 막강해졌다. 제4왕조는 기존 계단식 피라미드를 태양 광선을 상징하는 정방형 피라미드와 같은 모습으로 바꾸었다. 제5왕조에 의해서 태양신 라는 왕권과 사후세계와 관련되어 국가적 신으로 추앙받았다. 동시대에는 오시리스 또한 사후세계의 주요한 신이 되었다.
제5왕조 말에 파라오들은 그들의 무덤에 피라미드텍스트를 새겨 놓기 시작하였다. 이 기록들은 당대에 널리 퍼져 있던 태양과 오시리스식의 사후세계 개념뿐만 아니라 선왕조시대의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도 포함하였다. 그래서 피라미드 텍스트는 고왕조와 그전 시대의 이집트 신학을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기원전 22세기에 고왕조는 몰락하여 고왕조 시대 동안 발전했던 이집트 종교의 결과물들과 함께 무질서적인 제1중간기에 진입하였다. 고왕조시대에는 사후세계에서의 부활을 왕족에 제한하였었지만, 제1중간기에 들어 사회적 계층의 장벽이 무너짐에 따라 모든 이집트인이 “사후세계의 민주화”라 불리는, 모든 이들에게 맞는 부활에 대한 믿음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사후세계에 대한 오시리스식의 관점은 일반인들에게 더욱 매력 있어졌고, 그 때문에 오시리스는 가장 중요한 신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집트를 재통일한 중왕국의 새 왕조는 테베에 기반을 둠에 따라, 그들의 수호신인 몬수가 국가적 신으로 숭배되었다. 하지만, 중왕국 후반에 들어 이 신앙은 테베의 새로운 수호신이 된 아문의 부상과 함께 빛을 잃었다.
신왕국
기원전 1872년 중왕국의 마지막 왕조인 제12왕조가 몰락한 이후, 제 2중간기가 도래하였다. 하지만, 다시 기원전 1570년경에 신왕국의 첫 파라오인 테베의 지배자들에 의하여 재연합되었다. 제18왕조는 테베의 수호신인 아문을 강력한 신으로 증진시키고 오랫동안 왕권을 수호하는 신으로 여겨진 태양신 라와 융합시켰다. 테베에 있는 아문-라의 카르낙 신전은 이집트의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이 시대에는 이집트가 외국과 교류를 활발히 하게 되면서, 많은 근동의 신들도 흡수하게 되었다. 신왕국시대에 정복된 누비아에서도 그 지역의 신들이 이집트로 흡수되었으며, 부분적으로는 아문신의 특징에도 영향을 끼쳤다.
아톤을 숭배하는 모습을 그린 아크나톤과 그의 가족
신왕국의 종교적 전통은 기원전 1350년에 아멘호테프 4세가 파라오가 되면서 깨졌는데, 당시 왕권을 지나치게 간섭하던 테베의 신관들을 견제하고자 그는 아톤이라는 유일신으로 아문의 신적 지위를 교체하였고 자신의 이름도 ‘아톤의 종’이라는 뜻의 아크나톤으로 개명하였다. 또한, 그는 이집트의 수도를 새로 지은 아마르나로 천도하였다. 고고학자들과 미술사학자들은 이 시대를 아마르나 시대라고 부른다. 아크나톤은 전례가 없는, 아톤의 외관으로써 태양 그 자체를 숭배의 유일한 매개자로 섬겨 달라고 요구하였는데, 아톤주의는 발전한 신화 관이나 신학 바탕도 없었고 비 인격성과 그로 인한 거리감 때문에 이집트인들에게 감흥을 끌지 못했다. 일반 민중 사이에서는 여전히 비밀리에 기존의 신앙을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대 이집트 정부는 이집트 사회의 기반이 되는 다른 신들에 대한 금전적 지원과 투자를 중단하였다. 민중의 지지가 없었던 아텐주의 신앙은 결국 아크나톤의 사후, 아크나톤의 후계자인 투탕카멘이 모든 아텐주의 기념물을 파괴하고 전통적인 신앙을 부활시킴으로써 끝을 맺었다.
아마르나 시대의 결과물들을 후대의 파라오들이 제거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장기간에 걸쳐 파라오의 종교에 영향을 끼치며 쇠퇴하였다. 아톤주의 신앙이 끝난 후 그에 대한 사회적 반동 때문에 대중들은 평상시에도 더욱 직접적인 방법으로 신들을 믿었고, 그로 인하여 파라오의 신성은 줄고 인간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더군다나 아몬 신앙의 부활로 말미암아 테베 사제들의 권력은 더욱 신장하였고 이는 신왕국이 몰락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로마제국
로마의 이시스 신전 터
여신의 모습으로 조각된 클레오파트라 7세
기원전 1000년경부터 매우 쇠약해진 이집트는, 외부에서 침입한 리비아인과 누비아 인들과 같은 외국인들에게 점령당하여 혼란스러운 제3중간기를 보냈다. 이 시기에는 정권의 불안정과 외국문화의 영향 등으로, 이집트 숭배 형태의 특징으로서 동물숭배가 대중화되었다. 특히 제3중간기에는 여신 이시스가 더욱 대중화되었고,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여신으로 숭배받게 되었다.
기원전 4세기에 이집트는 제32왕조라고도 불리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치하에서 주로 전통적인 종교와 건물을 건설하고 많은 신전을 복구하면서 헬레니즘 문명을 꽃피웠다. 그리스에서 유래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기존 이집트 종교와 자신들의 정체성을 동일시하게 되었고, 그리스와 이집트의 문화를 결합시키기 위하여 두 문명의 신들을 세라피스(오시리스와 아피스)와 같이 혼합하였다. 그럼에도 두 종교의 특징 대부분은 각자 분리된 상태로 유지되었다.
클레오파트라 7세가 기원전 30년에 자살한 이후, 로마의 황제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왕좌를 대신하여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면서 이집트는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종교 제도는 이집트가 사실상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변하게 되었다. 이시스 숭배의식은 그리스와 로마를 비롯한 해외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헬레니즘 문명화되어 로마 제국 전체에 걸쳐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정작 이집트에서는 이집트 종교의 신학과 신앙을 비롯한 교세는 신전이 있는 섬과 지역에 한정되는 소규모로 점점 축소되었다.
이집트 종교는 결국 기원후 1세기에 배타주의적 일신교인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더욱 쇠퇴하였으며, 서기 383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았고, 이집트를 비롯한 모든 로마 제국의 영토에 있는 이집트 종교 관련 신전은 이교도로 취급되어 강제로 폐쇄되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이집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으나 사실상 죽은 종교가 되었다.
영향
이집트 종교는 고대 이집트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기념물인 수 많은 신전들과 무덤들을 생산하였으며 수 많은 문화들에 거대한 영향을 남겼다. 파라오 시대의 스핑크스와 태양 원반등을 비롯한 다양한 상징과 기호들은 지중해와 근동을 넘어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그리스인들의 엘리시온의 발상은 이집트의 사후 세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시작으로 많은 학자들은 유대교 또한 이집트의 아텐주의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후기에 시작된 기독교의 지옥에 대한 개념 역시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두아트와 닮은 점이 많으며 성모마리아 또한 이시스와 호루스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이집트 종교는 영지주의의 탄생과 개념화에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신비주의는 이집트인들이 믿었던 비밀스러운 마법 지식과 혼합된 토트 신앙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신앙의 자취는 현대의 이집트 민족 문화속에서도 남아있다. 특히 1798년 프랑스가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군사 활동을 벌이면서 이집트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서구 문명은 처음으로 고대 이집트 종교를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이집트 종교의 다양한 내용을 서양 예술의 주제로 받아들였다. 이집트 종교는 대중 문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데,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신이교주의 운동과 함께 ‘케네티즘’이라는 이름으로 재발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