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天皇 てんのう 덴노)
일본 천황(일본어: 天皇 てんのう 덴노) 또는 일왕(日王), 일황(日皇)은 일본의 군주로 일본 황실의 대표이다.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 일본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일정 부분의 외교 관계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다.
지위로서 천황의 기능에 대해서는 일본국 헌법 제1조부터 제7조에 명시되어 있다.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제1조)으로 규정되어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의해, 법률이나 조약의 공포, 국회가 지명한 내각총리대신의 임명, 국회의 소집 등의 국사행위로 제한된 권한(제7조)을 가진다.
일본에는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라는 격언이 있는데, 이는 천황의 절대권을 의미한다. 일본 황실의 계보가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존속되었다고 주장하는 의미로 만세일계(萬世一系)라는 말이 있다. 일본 제국 때에는 세계의 만방이 모두 천황의 지배하에 있다는 팔굉일우(八紘一宇)라는 이념이 천황제 파시즘과 황국사관의 근본사상이 되었다. 한편 천황이 국가원수의 지위를 갖느냐와 관련하여서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아서, 국가 원수라고 보는 견해와[5] 반대하는 견해가 대립된다. 현재는 제125대 천황인 아키히토가 황위에 있다.
천황가(家)의 유래는 나라 시대(710년~794년)에 편찬된 《고지키》, 《니혼쇼키》 등의 역사서에 따르면 초대 진무 천황이 기원전 660년에 즉위했다고 추정된다. 이에 대해 여러 학설이 있으나, 주로 중국이나 한반도의 왕조와 비교하여 천황의 역사를 정당화하고자 후대에 연대를 올려 고쳤거나, 아예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두 설이 유력하다.
고대에는 오키미(大君)라 불렸다. 1192년 이후는 가마쿠라 막부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세이이타이쇼군에 임명되면서 정치적 실권을 잃었다. 다만 쇼군 등의 관위는 형식상으로는 천황이 임명하는 것이었다. 근대 이전에는 연호가 국가적인 경조사 또는 재해에 의한 피해가 있을 때마다 바뀌어, 지금의 일세일원(一世一元)과는 달랐다.
제국 시대 (1868년 ~ 1945년) 에는 일본제국 헌법에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라고 규정되었다. 1947년에 제정된 일본국 헌법부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다”라고 규정되었다.
헤이안 시대 이전
'천황'이라는 칭호가 생기기 이전에 고대 야마토에서 수장이라는 뜻의 칭호를 국내에서는 「오오키미(大王)」(치천하대왕) 또는 천왕(天王)이라 불렀고, 대외적으로는 왜왕(倭王), 왜국왕(倭國王), 대왜왕(大倭王) 등으로 칭했다. 고대에는 스베라기(須米良伎), 스메라기(須賣良伎), 스메로기(須賣漏岐), 스메라미코토(須明樂美御德), 스메미마노미코토(皇御孫命) 등으로 불렸다.
'천황'이라는 칭호가 성립된 것은 7세기 후반의 일로 다이호 율령(大宝律令)에서 「천황(天皇)」이라는 칭호를 법제화하기 직전인 덴무 천황(天武天皇) 또는 지토 천황(持統天皇)의 시대의 일로 보는 것이 통설인데, 시기상 7세기 후반은 중국 당(唐)의 고종(高宗)이 '천황'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직후의 일이기도 했다.[6] 태평양 전쟁 이전의 사학자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는 스이코 천황(推古天皇) 시대에 성립되었다는 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13세기 이후 「천황」이라는 칭호의 사용은 잠시 폐해지기도 했으나, 19세기 초에 다시 사용되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본 고대의 한자음 차자표기에서는 「덴와(てんわう)」로 표기된다. 「덴와(てんわう)」는 중세를 지나며 「덴노(てんのう)」로 변화되었다.
「천황」이라는 칭호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고대 중국에서 북극성(北極星)을 신격화하여 가리키던 도교(道教)의 용어 「천황대제(天皇大帝)」 또는 「부상대제동황부(扶桑大帝東皇父)」에서 따왔다는 설.
당 고종이 도교적 용어인 「천황」을 칭한 것을 일본에서도 수입해서 썼다는 설.
5세기경에 대외적으로 「가외천왕(可畏天王)」, 「귀국천왕(貴國天王)」 등 단순히 「천왕(天王)」 등으로 불리던 것이 스이코조(또는 덴무조)에 「천황」이 되었다는 설.
천황이라는 칭호는 율령(律令)(「의제령儀制令」)에 규정이 있는데, 《양로율령》(養老律令) 천자조(天子条)에 따르면 제제사에서는 ‘천자’(天子), 조서에서는 ‘천황’, 대외적으로는 ‘황제’, 신하가 직접 주달할 때에는 ‘폐하’, 황태자 등 후계자에게 양위한 경우에는 ‘태상천황’(太上天皇), 외출시에는 ‘승여’(乘輿), 행행시에는 ‘거가’(車駕) 등으로 부르는 7개의 호칭이 정해져 있었지만, 이러한 표현은 표기시에만 사용할 뿐, 어떻게 쓰더라도 읽는 것은 당시의 풍속을 따라 ‘스메미마노미코토’(すめみまのみこと)나 ‘스메라미코토’(すめらみこと) 등으로 칭한다(특히 제사 지낼 때에는 「天子」라 쓰고 「스메미마노미코토」로 읽었다). 사망한 경우에는 ‘붕어’(崩御)라고 칭하며, 재위 중인 천황은 ‘금상천황’(今上天皇)이라고 부르며, 사망한 뒤에 시호가 정해질 때까지는 ‘대행천황’(大行天皇)으로 불린다. 배우자는 ‘황후’(皇后), 자칭은 ‘짐’(朕), 신하에게는 ‘지존’(至尊) 등으로도 불렸다. 또한 천황의 죽음은 붕어(崩御)라 했고, 재위중인 천황은 금상천황(今上天皇), 사망한 뒤 추시되는 시호가 정해질 때까지는 대행천황(大行天皇)이라 불렸다. 배우자는 「황후(皇后)」. 천황 자신이 칭할 때는 「짐(朕)」, 신하들로부터는 「지존(至尊)」이라 불렸는데, 모두 중국의 제도를 답습한 것이었다.
나라 시대(奈良時代)인 덴표호지(天平宝字) 6년에 진무 천황(神武天皇)부터 지토 천황까지의 41명의 천황 및 겐메이 천황(元明天皇) ・ 겐쇼 천황(元正天皇)에 대한 한풍(漢風) 시호가 오우미노 미후네(淡海三船)에 의해 일괄적으로 바쳐졌음이 《쇼쿠니혼키》(続日本紀)에 기술되어 있지만, 이것은 당대의 칭호와는 관계없는 시호일 뿐이다.
가마쿠라 막부에서 에도 막부까지
헤이안 시대부터 도쿠가와 시대까지는 ‘미카도’(御門, 帝)라거나 ‘긴리’(禁裏), ‘다이리’(内裏), ‘긴주’(禁中) 등의 여러 표현으로 칭해졌다. 미카도는 원래 어소(御所, 천황의 거처)에서 천황이 드나드는 문을 가리키며, 긴리·다이리·긴주는 그 어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표현은 천황을 직접 지칭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표현이다. 폐하도 마찬가지다. 또한 ‘주상’(主上, 오카미, 슈조)라는 표현도 이용되었다. ‘천조’(天朝, 덴초)는 일본의 왕조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조정이나 국가, 또는 천황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 ‘스메라미코토’, ‘스메로기’, ‘스베라키’ 등 또한 사용되었다. ‘황후’는 ‘중궁’(中宮)이라고도 불렸으며, 금상천황 또한 ‘당금의 제’(當今の帝, 도긴노미카도)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태상천황은 ‘상황’(上皇), ‘선동’(仙洞), ‘원’(院)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출가한 경우에는 ‘법황’(法皇)이라고도 불렸다. 태상천황은 고카쿠 천황이 닌코 천황에게 양위한 이후에는 사실상 사라진 표현이며, 제국 시대 이후에는 제도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황실전범이 퇴위에 대한 규정 없이, 천황의 붕어를 통해 황태자가 즉위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제국 헌법에서 처음으로 천황의 호칭이 ‘천황’으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외교 문서 등에서는 ‘일본국 황제’가 많이 이용되었으며, 국내의 공문서에서도 종종 사용되었다. 표기는 통일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는 ‘천자님’(天子様)으로 불리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육해군의 통수권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대원수’라고도 불렸다.
일반적으로는 일본 내의 각종 보도 등에서 천황의 경칭은 황실전범에 규정된 ‘폐하’를 채용하여 ‘천황폐하’로 칭한다. 궁내청 등의 공문서에서는 다른 천황과의 혼동을 막기 위해 ‘금상폐하’로 칭하기도 한다. 3인칭으로 경칭없이 ‘지금 천황’(今の天皇)이나 ‘현재 천황’(現在の天皇), ‘금상 천황’(今上天皇) 등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지만, 근래에는 완곡한 표현을 이용하는 것은 드물다.
역사적으로 한국에서는 에도 막부까지는 천황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그러나 쇼군은 자신을 ‘일본 국왕’이 아니라 ‘일본국 상국’(日本國相國)으로 칭했으며, 조선 또한 국왕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1407년 이후에는 쇼군을 일본의 최고 실권자로 인식하고 국왕으로 호칭하였으며, 천황의 계보를 서술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와 같은 경우에는 쇼군을 국왕으로 호칭하고, 천황은 국정과 무관한 존재로 이름만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직전인 1590년에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의 부사였던 학봉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알현형식에 대한 논의에서 ‘관백’(關白)을 ‘위황(僞皇)의 정승’으로 칭하고, 천황을 일본의 최고 통치자로 인식하였다. 다만 일본의 입장에서 천황을 지칭할 때는 ‘천황’이라고 지칭하여 호칭을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조선 중기 이후에는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종교적·의례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자리만 있을 뿐 정사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쇼군에 대한 호칭도 관백으로 변화하였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천황(天皇)’이 ‘일본에서 그 왕을 이르는 말’로 설명되어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된 《한국사》에는 ‘덴노’로 표기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천황’이라는 호칭을 인정하지 않으며 ‘일왕’(日王)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매체는 존재한다. 종종 ‘일황’(日皇)이라는 말도 쓰이기도 하지만 거의 쓰이지 않는 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낮추어 부르는 말로 ‘왜왕’(倭王)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일본 측은 일왕(日王) 또는 왜왕(倭王)등의 호칭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기타 나라와의 관계
현재의 아키히토 천황이 즉위한 이후에 다른 국가와 천황가 사이에 문제가 빚어진 사례는 없다. 다만 쇼와 천황의 경우나 이전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좋지 않은 관계를 보여,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에는 화염병 공격을 받기도 했다. 타이나 부탄 왕실과는 교우가 깊다.
천황의 지위는 메이지 유신과 일본제국 헌법의 제정으로 일본에서 헌법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일본제국 헌법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 제정된 일본국 헌법에서 언급되어 있는 천황의 지위와 권한을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를 가진다. 전자의 경우에는 천황이 통치권자이자 신성한 존재로 규정되었음에 비하여, 후자의 경우에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다”고 규정된 것이다.
일본제국 헌법 체제에서 천황의 지위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의사에 기초한 만세일계의 지위이다. 따라서 천황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였으며, 천황의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는 불경죄로 의율하여 중하게 처벌한다. 또한 천황은 천황대권으로 불리는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모든 통치권을 총람하는 존재였다. 즉 국가의 모든 작용을 통괄하는 권한을 가진다.
그에 비하여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일본국 헌법의 천황의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 것으로, 국민주권의 원리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천황제는 절대적인 것이라거나 불가변의 것이라고 할 수 없고, 국민의 총의에 기하여 가변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전체적인 내용면에서도 ‘신의 자손’으로 특별히 보는 규정은 없다. 권한의 면에서도 천황은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국사에 관한 행위”, 이른바 국사행위만을 행할 수 있다.
천황의 국가원수 여부
일본국 헌법 제4조에서는 천황이 “헌법이 정한 국사에 관한 행위만을 행하며, 국정에 관한 권능은 갖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국사 행위로 규정된 내용도 비준서 및 법률이 정하는 기타의 외교 문서를 인증하고, 외국의 대사 및 공사를 접수하는 등의 의례적인 행위에 해당해, 천황이 일반적인 ‘국가원수’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천황을 국가 원수로 보는 견해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의 통합의 상징”(헌법 제1조)이라고 규정되어 있으며, 각각 국회와 내각의 지명에 근거하여 행정부(내각)의 수장인 내각총리대신과 사법권을 행사하는 최고재판소 장관을 임명한다(제6조)는 내용에 근거한다. 또한 “국권의 최고 기관이며, 국가의 유일한 입법기관”인 국회를 소집(제7조 2호)·해산(제7조 3호)하는 등, 국정의 중요한 행위를 ‘국사행위’로 수행한다고 규정되어 있다(제7조, 다만 국사행위에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의함). 또한 “전권위임장 및 대사, 공사의 신임장을 인증”(제7조 5호)하고, “비준서 및 법률이 정하는 기타 외교 문서를 인증”(제7조 8호)하며, “외국의 대사 및 공사를 접수”(제7조 9호)하는 등, 일반적으로 국가 원수가 수행하는 외교상의 주요 행위를 천황이 실시하다고 정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천황이 국가 원수라고 본다.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로는, ‘천황은 국가 원수’라고 한 1990년 5월 14일 참의원의 내각법제국 장관 답변이 있었다. 또한 천황을 ‘나라의 상징이며, 또 일정 부분의 외교 관계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한정된 의미의 국가 원수로 표현했다. 천황 플래카드 사건에서 도쿄 지방재판소는 ‘국가원수인 천황’이라고 표현하여 천황을 국가원수로 표현했다.
천황을 국가원수로 인정하지 않는 견해는 일반적으로 일본국 헌법 제4조에서는 천황이 “헌법이 정한 국사에 관한 행위만을 행하며, 국정에 관한 권능은 갖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국사행위로 규정된 내용도 “비준서 및 법률이 정하는 기타의 외교 문서를 인증"하고, “외국의 대사 및 공사를 접수"하는 등의 의례적인 행위에 해당되어, 실질적인 ‘국가원수’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