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고전주의란 말 그대로 고전주의 가운데 낭만적 경향을 갖는 사조를 말한다. 주로 18세기 후반부에 나타났으며 다양한 실험운동에서 영국다운 신고전주의에 이르는 폭넓은 내용을 추구했던 사조이다. 낭만주의가 직접적인 건축 운동으로 나타나기 힘든 상황에서 고전주의를 통해 낭만주의의 기본 정신을 실험하고 구현해 보려던 운동이었다. 18세기 신고전주의의 계보에서 보면 고전 규범의 붕괴가 급진적 신고전주의보다 더 진행된 최종 단계에 해당된다.
낭만적 고전주의의 세 갈래
구체적 경향은 폐허 수채화운동, 영국다운 신고전주의, 혁명기 건축의 세 방향으로 나타났다. 폐허 수채화운동은 실제 건물을 남기지 않은 페이퍼 건축이었고 영국다운 신고전주의부터 구체적 작품을 남겼다. 이탈리아의 피라네시(Giovanni Battista Pira9nesi)를 스승으로 삼아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행했다. 프랑스는 클레리소, 르게이, 르로아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하며 폐허 수채화운동을 가장 활발하게 펼쳐 독립적 건축운동으로 발전시켰다. 영국에서는 스튜어트와 레벳 파트너가 이들과 경쟁하며 맞섰다.
낭만주의는 영국의 기본적 국민성이기 때문에 영국다운 신고전주의가 낭만적 고전주의로 진행된 것은 당연한 측면이 있었다. 고전주의가 영국의 국가 양식이 될 수 있는가라는 고민은 17~18세기를 관통하며 영국 건축가들 사이에 계속되고 있었고 그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도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이것이 18세기 후반부 낭만주의 및 급진적 신고전주의 등과 맞물리면서 하나의 흐름으로 집약된 것이 영국다운 신고전주의였다. ‘체임버스-댄스 2세-손’으로 이어지는 흐름이었다.
조지 댄스 2세. 뉴게이트 감옥. 고전주의를 기본으로 삼아 중세 성채 이미지, 숭고미를 활용한 감옥의 공포 분위기, 부조화와 의외성 등의 중세다움을 섞어 낭만적으로 표현했다.
이미 부분적 고딕 리바이벌에서 이런 경향이 싹텄다. 켄트와 조지 댄스 2세(George Dance the Younger, 1741~1825)가 대표적 예로 이들은 고전주의와 고딕의 두 사조를 모두 구사할 수 있었다. 차이도 있어서 켄트는 두 양식을 직접 혼합하지 않고 각각 다른 건물에 구사한 반면 댄스 2세는 두 양식을 한 건물 안에 혼합한 새로운 경향을 창출했다. 이런 점에서 켄트는 다원주의에 가까웠으며 댄스 2세가 진정한 영국다운 신고전주의를 추구한 건축가였다. 고딕이 낭만주의 건축을 이루던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댄스 2세의 이런 경향은 낭만적 고전주의로 볼 수 있다.
댄스 2세와 영국다운 신고전주의
댄스 2세는 18세기에 등장했던 여러 건축경향에 대해 종합적으로 교육을 받고 다양한 사조를 구사하다 영국다운 신고전주의의 완성된 형식을 선보인 뉴게이트 감옥(Newgate Prison, 런던, 1768~85, 철거)을 대표작으로 남겼다. 고전주의를 기본 소재로 삼아 낭만주의 미학으로 재해석해낸 건물이었다. 반원 아치와 신전 박공이 고전 어휘였다. 건물의 전체 윤곽이 육면체의 반듯한 덩어리 느낌을 유지한 점, 조적 부재를 동일한 크기로 쌓은 점, 기하학적 간결성을 바탕으로 합리적 질서를 표현한 점, 장식을 절제한 점 등이 고전주의의 특징적 분위기였다.
낭만주의 미학은 교정 기능을 강조하기 위한 중세 성채 이미지, 숭고미를 활용한 감옥의 공포 분위기, 부조화와 의외성 등의 중세적 분위기 등이었다. 러스티케이션을 이용한 거친 표면 질감은 이런 내용을 보강하는 역할을 했다. 도심 감옥이기 때문에 보안상 창 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는데 이런 기능적 처리가 거친 돌 처리를 가할 수 있는 벽체 면적을 증가시켰다. 고전 어휘를 처리한 구체적 기법도 거친 매너리즘식이어서 중세 분위기와 어울렸다. 중앙 간수실에서는 홍예돌을 벽면보다 더 두껍게 돌출시킨 뒤 표면을 거칠게 처리했다. 측 동 옥사에서는 소품화된 신전 파사드를 거친 돌 쌓기로 각색한 뒤 아치로 한 겹을 더 쌓았다. 이런 처리들은 ‘매너리즘-바로크-낭만주의’로 이어지는 비정형 사조의 연관성을 암시하면서 낭만주의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조지 댄스 2세. 뉴게이트 감옥. 매너리즘 기법은 낭만적 고전주의의 한 뿌리를 이룬다. | 존 손. 영국은행. 구 배당사무소. 큰 육면체 속에 다양한 평면과 공간 유형을 담아서 픽처레스크 개념을 표현했다. |
이론을 중심으로 규범을 좇아야 하는 대륙의 고전주의와 달리 개별 어휘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이 영국의 전통적인 낭만적 국민성이라고 볼 때 이런 경향은 영국다운 신고전주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었다. 대립 양식인 고전과 고딕의 두 선례를 잘 혼합해서 최종 결과는 둘 다 아닌 제3의 다른 모습, 즉 영국다운 모습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존 손과 낭만적 고전주의의 완성
존 손(John Soane, 1753~1837)은 벽돌 시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18세기 말~19세기 초 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가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창조력 넘치는 작품을 남겼는데 이 때문에 규범을 반복하는 대륙 고전주의는 이런 기질과 안 맞았다. 고전주의를 기본 매개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급진적 고전주의 이상의 자유로운 규범 분해 경향을 추구했다. 낭만주의 미학으로 고전을 해석하는 경향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런 점에서 댄스 2세의 뒤를 이어 낭만적 고전주의로 영국다운 신고전주의를 완성시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손은 영국적 신고전주의의 기초를 닦은 체임버스와 댄스 2세에게서 중요한 영향을 받았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창작적 작품성을 더해 손 스타일을 창출했다. 체임버스는 일찍이 손의 재능을 알아보고 적극적 후원자 역할을 하며 영국적 신고전주의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가르쳤다. 댄스 2세는 자신의 설계사무소에 4년 동안 손을 데리고 있으면서 낭만주의 정신에 대해 가르쳤다. 이를 바탕으로 우물 광정, 부유하는 돔, 픽처레스크 구성, 중세주의, 원시주의 등을 특징으로 갖는 손 스타일을 창출했다. 대표작은 영국 은행(Bank of England, 1788~1833, 철거)과 링컨스 인 필즈(Lincoln‘s Inn Fields, 1812~13)이었다.
영국 은행의 평면은 픽처레스크 특징을 잘 보여준다. 유기적 평면 구성으로 풀었는데, 동일성과 정형적 질서를 배격하고 다양한 이질 요소를 상호간 쌍방향 작용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한다는 의미였다. 축이나 대칭 같은 중심질서가 없었으며 각 방의 크기, 형상, 방향이 달랐다. 유형학적 다양성도 있었다. 주요 방들은 유형학적 기준에 따라 변화를 주며 다양성을 높였다. 사각형의 전체 윤곽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릭 크로스, 사엽형, 반원형, 타원형, 열주 홀, 이집트식 홀 등으로 기하형태와 실내골격을 다양화했다. 이것을 3차원 공간으로 만드는 구조 골격도 펜던티브 돔, 접시 형 돔, 배럴 볼트, 그로인 볼트, 평천장, 1/2 반구, 우산 형 돔 등으로 다양하게 구사했다.
링컨스 인 필즈
링컨스 인 필즈는 손 개인, 낭만적 고전주의, 영국다운 신고전주의 등에서 모두 최고의 걸작이었다. 부지를 4회에 걸쳐서 분할, 구입했으며 매번 집을 한 채씩 지어 네 채의 집을 묶은 복합 건물이 되었다. 네 채는 갤러리, 손 하우스, 미술실, 수도사실로 각각 이루어졌다. 각 집은 서로 층이 어긋나며 상호 관입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수직 방향으로 픽처레스크 구성을 만들어내는 손만의 독특한 공간 구성이 완성되었다. 고전어휘, 골동품, 빛의 세 매개를 사용했다.
존 손. 링컨스 인 필즈. 영국 은행의 픽처레스크 개념을 수직으로 집적한 구성이다. | 존 손. 링컨스 인 필즈. 골동품까지 가세하고 공간의 얼개가 교차하면서 픽처레스크는 하지 파지(hodge podge)로 발전한다. |
엇갈린 공간 골격에 콜로네이드, 아치, 볼트, 돔, 다양한 오더 양식 등 고전 부재들이 더해지면서 실내는 고전 어휘의 파노라마를 이루었다. 부재들 사이에는 더 이상 선험적 위치 관계나 위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공간 골격의 풍부함과 가변성을 돕는 방향만이 유일한 위치 기준이었다. 이런 공간 골격에 골동품을 더했다. 손은 당대에 유명한 골동품 수집가로 골동품은 그의 건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다.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건축적으로 의미와 기능을 갖는 요소였다. 실내 전체에 유적 파편이 꽉 차면서 골동품은 그 자체가 역사 양식의 역할을 했는데 배열 방식에서 역사 양식 사이에 차별과 구별을 없애면서 실내의 픽처레스크 분위기를 도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복합 공간 사이를 빛이 흘러 다니면서 중세적 빛 개념을 낭만주의 미학으로 재해석 해낸 장면을 연출했다. 명암 대비가 중요한 매개였는데 매우 분산적이어서 중세다운 신비주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서로 마주치는 네 개의 건물들 사이에서 각 층이 어긋나면서 공간의 골격 자체가 흐트러졌다. 공간의 크기는 분수(分數)의 조각 단위로 잘게 나뉘었다. 광원도 분산적이 되었다. 햇빛의 상태도 가변적이었다. 런던은 하루 중에도 흐린 날씨와 맑은 날씨가 수시로 바뀌었으며 일 년을 단위로 하면 극단적 가변성을 특징으로 가졌다. 분산적 건물 골격에 가변적 햇빛이 작용하면서 실내에서 빛 작용은 한시도 고정되지 않은 부유하는 분위기로 나타났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