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 1892~1980)
본명은 Josip Broz. 티토는 당원 이름이다. 전후(戰後) 유고슬라비아의 창설자로 초대 대통령(1953~1980 재임). 공산당의 활동가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 이탈리아에 의한 점령에 대해 저항운동을 지도하여 전후 유고슬라비아의 영웅이 되었다. 유고슬라비아는 다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각 민족간에는 대립의 역사가 길다. 통일이 실현된 것은 티토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에트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립운동을 추진하였기 때문에 당초부터 다른 동유럽 각국과는 달랐다. 내정은 지방분권과 기업의 자주관리를 중심으로 한 독자의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서방측 제국과의 외교관계를 지속하였다. 1955년에는 중립을 선언하고 인도의 네루(Jawāharlāl Nēhrū) 등과 비동맹의 입장에서 활동하였다.
내정과 외교의 양 측면에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사후 유고슬라비아에는 구심력이 없어져 붕괴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요시프 브로즈 티토 [Josip Broz Tito] (21세기 정치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본명은 Josip Broz. 티토는 당원명이다. 크로아티아의 농가에서 태어나 금속노동자가 되었고, 1910년 그 지방의 사회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3년 오스트리아-헝가리군(軍)에 소집되어, 1915년 카르파티아 전선에서 러시아군의 포로가 되었고, 그 후 러시아혁명에 투신하였다. 1920년 귀국하여 공산당에 입당하였으며, 1927년 당 자그레브 시위원회 서기가 되었으나 곧 체포되어 1928∼1934년 투옥되었다. 1935년부터 모스크바의 코민테른 서기국에서 일하였고 에스파냐내란에도 참가하였다. 그 뒤 티토라는 당명으로 당 크로아티아 지방위원으로서 지하활동에 종사하였고, 1937년에는 당 서기장으로 뽑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독일 ·이탈리아 양군이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한 후에는 80만 명의 빨치산을 거느리고 그들과 싸웠으며, 민족해방운동에 앞장서서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1943년에는 해방전국위원회(임시정부) 의장에 취임하였고 원수(元帥)의 칭호를 받았다. 조국이 해방된 1945년부터는 수상과 국방상을 겸임하였고, 1953년에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948년 6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이 코민포름에서 제명되고 그의 정강(政綱)은 수정주의라는 낙인이 찍혔으나, 그는 독자적인 사회주의를 목표로 한 비동맹중립외교의 정책을 굳게 지켰다. 1969년에 소련과의 관계가 개선되었고, 1974년 5월 연방의회에서 종신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민족적 ·종교적으로 복잡한 유고슬라비아의 통일을 지키며 경제건설을 추진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요시프 티토 [Josip Broz Tito]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