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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 이야기

우즈베키스탄(O‘zbekiston Respublikasi)

작성자관운|작성시간14.06.18|조회수403 목록 댓글 0

 

우즈베키스탄(O‘zbekiston Respublikasi)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 국토면적은 447,000, 인구 약 2800만 명. 의외로 (옛 소련 출신) 중앙아시아 5개국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수도는 '돌의 도시'라는 의미의 타슈켄트. 우즈베크어로는 터슈켄트(Toshkent, /tɒʃˈkent/)라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는 130개가 넘는 민족들이 살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우즈벡인이며, 그 다음에 많은 민족은 러시아인이다. 이들 외에도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타타르인, 타지크인, 투르크멘인, 카라칼파크인 등이 있으며, 스탈린 집권 시기에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끌려가 그곳에 정착한 고려인도 있다. 심지어는 아랍인들도 있고, 아르메니아인, 아제리인, 극소수의 우크라이나인과 독일인도 있다. 중앙아시아 개간을 위해 소련 시절 사방팔방에서 여러 민족들을 이 지역으로 보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 CIS 국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나라다.

 

참고로 한국에서 '우즈벡인'이라고 하면 민족으로써의 '우즈벡인''우즈베키스탄 국적 사람'의 줄인말로써의 '우즈벡인'이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아래 미녀 항목에서도 나오지만 이래저래 많은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예를 들어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러시아인에서 우즈베키스탄 국민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우즈벡인'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 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민족으로써의 우즈벡인과 매우 햇갈리는 상황이 생겨버린다. 참고로 민족으로서의 우즈벡인은 아래 미녀 사진에서 첫 번째 사진 참고할 것. 대체로 민족으로서의 우즈벡인은 검은 모발에 인도인과 동북아시아 민족의 얼굴을 섞어놓은 듯한 얼굴이다.

 

다민족국가답게 러시아어, 중앙아시아 한국어, 카라칼파크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들이 쓰이고 있지만, 독립이후엔 우즈벡 민족주의의 영향때문에 다른 언어들의 사용이 줄고 있다. 타지크어는 타지크족들이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일본과의 관계 및 일본인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일본어를 일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북부에 위치한 아랄해가 소련 시절의 면화 사업으로 인해 강물의 유입이 해마다 줄어들면서 급격히 작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호수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인근의 어민들과 주민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이웃 나라가 모두 내륙국인 탓에 리히텐슈타인과 더불어 둘뿐인 이중내륙국이다. 이중내륙국이란 의미는 해당 국가의 인접 국가들 모두가 또한 내륙국인 경우를 뜻한다. 리히텐슈타인은 인접국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모두가 내륙국이다.

 

정치는 현재 심한 독재국가로 인권이나 언론자유 순위에서 하위권을 맴도는 국가 중 하나. 쉬쉬하던 미국도 결국은 최악의 독재자로 인정하신 천하의 개쌍놈 이슬롬 카리모프라는 독재자가 20년 가까이 독재중이다. 2대 세습을 준비하고 있다고...

 

2005년 안디잔에서 민중시위가 벌어지자 이 작자가 무차별 사격을 명령하면서 최저 5백에서 최대 2500명이 학살당했다...미국은 당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였는데 결과적으로 당시 미국에 요긴했던 우즈베키스탄 내 미 공군 기지를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선 안디잔 학살을 함부로 거론하질 말라고 한다...당시 현장은 깨끗하게 정리되었고, 우즈베키스탄 어디에서도 이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고 한다. 하긴, 1970년대 한국에서 대통령과 유신에 대한 얘기를 했다면...굉장히 민감하다고...참고로 소련의 일부였던 나라고, 소련은 KGB의 나라였기 때문에, 1970년대 한국과는 비교도 안된다. 중국에서 천안문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빅 브라더는 소련이 중국보다 위였다.

 

더불어 자치 공화국인 카라칼파크스탄(Qaraqalpaqstan)이 있지만 여기도 카리모프 독재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다. 영토는 아랄해를 주축으로 우즈베키스탄 영토의 40% 가까이나 차지하지만 인구는 고작 170만 수준이라 독립을 원하면서도 우즈베키스탄에게 억눌리고 있다. 여기 대통령이 타슈켄트로 소환되어 행불되고 허수아비 대통령이 새롭게 앉혀진 적이 있다.

 

프리덤 하우스는 우즈베키스탄을 북한, 에리트레아, 투르크메니스탄 등과 더불어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국 9개국으로 지정했다.

 

 

부정부패는 세계 최악 수준으로 2011년의 경우 부패지수에선 소말리아와 북한, 아프가니스탄, 미얀마에 이어서 세계에서 5번째로 부패한 나라로 꼽혔다.

 

세계적인 천연가스 매장국이자 산유국이다. 더불어 면화도 세계적인 나라이며 그 밖에 망간, 몰리브덴, 아연, 구리 같은 광물자원도 엄청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다. 덕분에 수출량에 자원이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

 

포도와 멜론 같은 농작물 및 과일도 많이 재배되는 편. 그 덕에 굶주리는 일은 없다. , 밀은 소련 시절 '목화의, 목화에 의한, 목화를 위한 땅'으로 개조당해서 자급자족이 되지 않아 옆나라 카자흐스탄에서 많이 수입해오고 있다.

 

오랜 독재로 인하여 막대한 수입원이 되는 분야를 일부가 독점하는 빈부격차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불만을 억제하기 위해 식자재 가격을 상당히 낮은 가격으로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수출 금지를 시키기도 한다.

 

당연히 이러다보니 전반적인 국민 소득은 낮은 편. 특히 농촌으로 갈 수록 소득은 낮아져서, 농촌에는 한달 소득이 100달러 미만인 곳도 허다하다. 당연히 도시 노동자들 역시 월급이 상당히 낮은 편. 하지만 공업이 별로 발달하지 못한데다 이중내륙국이라는 점까지 겹쳐서 공산품은 대부분 수입하는데, 당연히 공산품 가격은 이들 소득에 비해 턱없이 비싼 편이다. 공산품 가격은 일반인들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가히 살인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프링글스 한 통을 사기 위해서는 감자 10kg 팔아도 택도 없다.

 

이런 문제가 너무 심해지다보니 최근에는 경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품질과 가격은 그럭저럭 괜찮은 제품들인데 구소련 국가 아니랄까봐 포장이...심지어는 같은 제품인데 포장한 것보다 차라리 포장 안 되어 있는 제품의 질이 더 뛰어난 경우도 있다.

 

경수로 사업 당시 북한에 가서 많이 일하면서 숫적으로 중국 노동자를 압도할 정도였으며 한국에서도 제법 3D 분야에 와서 일하는 이들이 많은데, 러시아나 다른 나라보다도 한국에서 버는 돈이 많다고 한국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더불어 우즈베키스탄 여성들은 한국남성과 결혼하려는 경우도 많다.상당수가 우즈베키스탄 지방에 거주하는데 일이라곤 종일 면화 및 농장일이며 벌어들이는 돈이 너무 적어서 고민이라고.

 

윗 나라 카자흐스탄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충격이라는 점은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카자흐스탄 가는 일은 매우 쉬우며, 실제 친지방문 등의 목적으로 카자흐스탄에 다녀오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소련 시절까지만 해도 아주 별 볼 일 없던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기들의 도시들보다 못했던 알마티, 아스타나가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는 것. '우리나라 원래 경제 상황 안 좋아''우리나라보다 못한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더 발전해버렸다'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정부에서도 여기에서 오는 불만을 인지하고 있는 듯 하지만, 아직까지 주목할만한 특별한 큰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국민들의 경제에 대한 불만이 단순히 못 사는 데에서 오는 불만이 아니라 이웃 카자흐스탄의 발전으로 인한 불만임을 고려하면 이 불만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정권의 안정과 직결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구소련 국가들 중 가장 많은 민족들이 사는 나라로, 130개가 넘는 민족이 존재한다. 그만큼 문화도 다양하나, 대체로 우즈벡인의 전통 문화와 러시아인의 서양 문화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고 우즈벡인들의 전통 문화는 지역별로는 타슈켄트부터 안디잔까지의 동부권,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중심으로 한 중부권, 히바를 중심으로 한 서부권으로 갈린다. 이는 과거 우즈베키스탄이 소련의 지배에 들어가기 전 이 지역에 있었던 3개 칸국과도 일치하는 편.

 

유목민 성향 때문에, 마할라라는 집단을 이루며 거주하는데 차(초이라고 부른다.)를 즐겨마신다. 공산주의국가여서 전혀 어울리지 않겠지만, 굉장히 자본주의적이다. 왜냐하면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 무역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카자흐스탄 속담에는 "우즈벡 사람들은 달나라에 가서도 장사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티무르나 15세기에 활동하던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문학가 알리셰르 나바이(Ali-sher Navoiy)가 국부로 추앙받는다. 알리셰르 나바이는 영어에서 셰익스피어, 독일어에서 괴테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당시 거의 유일하자 최초로 우즈베크어로 문학 작품들을 집필해서 우즈베크어 형성 및 발전에 엄청난 공을 세웠다.

 

음식으로는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해서, 만든 야외의 볶음밥인 쁠롭이 유명하다고...우즈베크어로는 오쉬 osh 라고 한다.

 

이 나라의 예절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지 않는다. 이는 절교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또한 실내에서 모자를 쓰거나 신발을 신는다. 머리고기는 연장자에게 준다고 한다.

 

한편, 소련의 영향으로 굉장히 관료주의적이어서,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서류가 너무 많이 필요하며, 시간도 오래 걸린다.

 

대부분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과거에는 소련 소속이었던 나라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이슬람 국가들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 보다는 매우 느슨하게 율법을 지키는 편. 그래도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엄격하게 믿는 편이다. 이슬람 명절 휴일을 며칠으로 할 지는 그 즈음 되어서 정부가 공식 발표한다. 그래서 달력에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러시아인들은 주로 러시아 정교를 믿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슬람 외의 종교에는 관대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 행사는 상당히 조용히 치르는 편. 주로 가정에서 조용히 치른다.

 

축구 열기가 뜨거운 나라이기도 한데, 성적은 그렇게 시원찮은 편으로 국대 관련은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고할 것.

 

프로리그에서도 석유자본 및 자원 부국답게 히바우두라든지 스콜라리 감독을 영입한 FC 분요드코르가 아시안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렸으나, 2009년 파리아스가 이끌던 포항 스틸러스에게 덜미를 잡혀버렸고 2010년 대회에선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에게 일찌감치 덜미를 잡혀서 금세 퇴장당했다. 2011년 대회에서도 이란 세파한에게 16강에서 덜미를 잡혀 역시나 금세 퇴장당했다. 하지만 2012년 대회에선 확 달라져서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2승을 거두며 포항을 16강 탈락시켰고 16강전에서도 성남 일화를 1-0으로 탈락시키고 8강에 오르면서 한 시즌 대회에서 K리그 팀을 2팀이나 탈락시키면서 K리그 킬러가 되나 했지만 4강에선 우승팀 울산 현대 호랑이에게 완패하면서 또 4강을 넘지 못했다. 분요드코르는 2013년 대회에선 16강에서 타이 부리람 유나이티드에게 덜미를 잡혀 또 일찌감치 탈락해버렸다.그렇긴 해도 2014년에도 16강 진출을 해냈기에 연이어 16강은 가고 있다. 다만 오로지 분요드코르만이 우즈베키스탄 리그팀에서 홀로 아시안 클럽대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준이다.

 

여담으로 K리그의 FC서울을 거쳐 2014년 현재 성남 FC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세르베르 제파로프가 분요드코르 출신이며 수원 블루윙즈 소속이었다가 2012년 아랍에미리트 구단으로 이적한 알렉산더 게인리흐도 분요드코르의 라이벌인 파흐타코르 출신이다.

 

2011FIFAU-17 월드컵 대회에서 8강까지 올라왔다. 뉴질랜드에게 4-1로 대패했지만 체코와 미국을 2-1로 이기고 조 1위로 16강에 올라와 630일에 벌어진 16강전에서 호주를 4-0으로 뭉개며 건국 역사상 첫 청소년 월드컵 8강에 진출했다. 2013FIFA U-20 월드컵에서도 8강까지 올라갔었다.

 

한국에는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대한민국과 1991년에 국가승인을 한데 이어 이듬해인 1992년에 양국간 수교가 이뤄졌다.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한 한국인들이 많고,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갔다 온 사람들도 많아서 한국에 대한 인식도 좋은 편이고, 한국이 잘 알려져 있다. 드라마 주몽과 대장금이 공중파 방송으로 방송되어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 일하러 가는 것을 원하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많다. 당장 우즈베키스탄 시골로 가면 한달 수입이 100불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 , 한국에서 1년 일해서 돈을 모아오면 시골에서는 10년 넘게 벌어야하는 돈을 한 방에 버는 셈.

 

한국과의 관계는 매우 밀접해서 양국 대통령이 양국에 방문하고 답방하고 있다. 또한 이런 밀접한 관계로 인해 인천-타슈켄트 직항 노선에 아시아나 항공, 우즈베키스탄 항공, 대한항공이 취항하고 있다.

 

대한민국 내 우즈벡인들은 꽤 많은 편인데, 러시아말이나 우즈벡말을 하면 놀란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서울엔 동대문 근처에 있다. 유명한 사마르칸트의 이름을 딴 식당도 영업중인데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며 양꼬치와 러시아식 병맥주를 마실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우즈베크 족은 15세기까지 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받던 유목민이었으나 킵차크 한국이 붕괴되면서 남하하기 시작했다. 16세기 초, 무함마드 샤이바니 때에 크게 팽창하여 카자흐 족과 모굴리스탄 한국을 격파하고 티무르 왕조를 멸망시켜 트란속시아나(우즈베키스탄 일대)를 장악했으며 호라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1510, 샤이바니 칸이 사파비 왕조와의 마르브 전투에서 패하여 영토 확장이 중단된 이후 우즈베크 족은 기존에 점령한 중앙아시아 일대에 정착하여 부하라 한국, 히바 한국을 세웠으며 약 200년 뒤인 1709년엔 코칸트 지역에 코칸트 한국도 건국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러시아 제국의 남하 정책에 의해 침략을 받아 러시아의 보호령이 되었고 소련이 탄생한 직후인 1920년에 완전히 합병되었다. 소련 지배 기간 동안 유목민과 무슬림들은 스탈린의 집단 농장 체제에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우즈베키스탄은 1991128일에 독립 선언을 하였고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하였다. 소비에트 연방은 19911226일에 붕괴하였다.

 

지리

 

동쪽은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남쪽은 아프가니스탄, 남서쪽은 투르크메니스탄, 북쪽과 북서쪽은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한다. 북서 일부는 아랄 해에 면한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중부에 위치한 나라이다. 이곳도 사막성 기후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곳이다. 아랄 해가 위치해 있지만, 소련 시절엔 강을 개간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현재는 호수 면적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우즈베키스탄은 국토의 대부분이 저평한 지대로서 특히 북서부와 중앙부에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남동부에 일부 산지 및 분지가 나타난다. 우스튜르트대지, 아랄해() 연안, 키질쿰사막, 아무다리야강() ·하류의 충적지 등 평탄한 북서부와 중앙부가 국토의 71%를 차지한다. 동남부는 톈산산맥과 기사르 알라이산맥의 서단으로 자라프샨, 투르키스탄, 차트칼, 페르가나, 누라타우, 바바탕 등의 산맥이 지나는 산지로 페르가나, 제라프샨, 시르다리야, 산자르 누라타우, 카쉬카다르야, 수르한다랴 등의 산간분지가 전개된다. 협곡 중에는 토양이 기름지고 인구가 밀집된 곳이 몇 군데 있고 80여 종의 유용한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어 개발 잠재성이 크다.

 

파미르고원과 톈산산맥에서 발원한 아무르다리야강()과 지류가 흐르며 이 강은 내륙하천이다. ·상류는 건조지역으로 지류망 발달이 미약하고 와디(wadi)가 많다. 동부와 남동부 산간을 흐르는 나린, 제라프샨 및 카라다르야강 유역에는 관개수로망이 발달되었다. 대부분의 강들이 지나친 관개수로로 이용되고 증발이 많아 유량이 줄어들었으며, 특히 아랄해는 낮아진 수위, 높아진 염도, 강에서 흘러드는 화학비료와 농약, 산업폐수, 토양의 방사능 폐기물 등으로 많이 오염되었다. 전체 면적 447,400 중에서 경작가능지가 0.51%, 농경지가 0.76%, 기타 88.73% (2005) 이다. 관개면적은 42,810 (2003)이다.

 

독립국가연합 15개 국가 중 다섯 번째로 큰 땅덩어리를 가지고있으며, 동서로 약 1,425키로미터 남북으로 925키로미터 총면적이 447,400제곱키로미터이다. 국토의 70프로가 황무지나 산지이며 중앙부는 사막이다. 님동부지역의 시르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야강은 우즈벡을 거쳐 아랄해까지 흐른다. 대부분의 도시들은 이 두강을 끼고 오아시스에 건설되어 있고 인구밀도가 높다. 서북부지역은 아랄해의 남해안에 위치하고있고 사막 및 건조한 지대가 아랄해 주변에 위치하고있다. 아랄해는 한 때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내륙호였으며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에게 담수어장과 가축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중북부 지역은 거대 사막으로 덮혀잇고, 남부는 소금 광산이 많이 개발되어있다. 페르가나 분지는 소비에트 연방의 1%도 되지 않았지만 소련 면화의 1/3을 생산하였으며 비단의 35%를 생산하였다.

 

우즈베키스탄은 사막형 대륙성기후에 속하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이 연중 매우 건조하며 대체로 길게 지속되는 여름은 건기로서 열대공기의 영향으로 매우 뜨겁고 건조하며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여름에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다가 미처 땅에 도달하기도 전에 말라버리는 마른비가 내린다. 반면 겨울에는 우기로 비와 눈이 자주 내리면서 비교적 습도가 높고 강수량이 적은 편이고 굉장히 춥다.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 기후의 특성을 잘 나타내준다.

 

정치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소비에트에서 독립하면서 독립당시 우즈베키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있던 이슬람 카리모프가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이 되었다. 헌법이 제정된 이후 대통령의 연임이 가능하도록 개정하였으며, 이후 종신직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였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며, 199512월에 신설되었다.

 

휴먼라이트워치와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반체제인사에 대한 심문과 고문을 비판하고 있으며, 카리모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독재자로 비난받고 있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또한 2006513일 안디잔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에 발포명령을 내리는 등 무력으로 강경진압하여 500~1500(추정)을 학살하여 국제사회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

 

러시아와도 가깝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적대적이기도 했다. 2012년에는 집단 안보 조약 기구에서 탈퇴했다.

 

사회

 

주민

 

우즈벡족은 원래 타지크 민족과 15세기에 그들을 정복한 몽골 민족의 혼혈이라고 한다. 몽골제국의 세력이 위축되던 시기인 1312년에서 1340년까지 시르다리야 강의 북부 유목지역을 통치한 사람의 이름이 우즈벡 칸이었다. 우즈벡 칸이 이슬람을 강력히 전파하면서 우즈벡이라는 말이 무슬림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차 이들의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우즈벡이라는 이름의 왕조와 국가의 명칭 그리고 민족명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14세기까지 이 지역 사람들을 큽착인이라 불렀으며 우즈벡이 민족명으로 사용된 것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무렵으로 추정된다. 14세기 중엽 이후 차가타이 칸국이, 14세기 말에는 큽착왕국이 쇠잔해짐으로써 중앙아시아의 힘에 공백상태가 나타났다. 15세기 중반에 이르자 투르크계 장군 압알하일 칸이 큽착초원에 강력한 국가를 건설함에 따라 그의 일족들과 그를 따르던 자들을 우즈벡이라고 부르게 되면서 이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27606007(2009년 추정치)이며, 130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우즈벡 민족의 이슬람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으로 러시아 인들과 다른 소수 민족들의 입지에 대한 불안으로 우즈베키스탄을 떠나고, 옛 소련의 다른 나라에서 우즈벡인이 돌아오고 있어서, 소수 민족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89년 통계에서 러시아인들의 비율이 35%였으나, 2005년에는 3.7%로 대폭 감소하였다. 2005년에 전체 인구 중 우즈벡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80%로 가장 많으며 그 밖의 타지크인(5%), 러시아인(3.7%), 카자흐족(3.6%), 타타르족(0.61%), 고려인(0.6%)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동부지역, 특히 페르가나 분지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별로 보면 사마르칸트 주에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페르가나 주와 타슈켄트 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인구밀도 면에서 수도 타슈켄트를 제외하면 안디잔 주와 페르가나 주가 가장 높은 편이다.

 

참고로 인접국가인 카자흐스탄의 인구는 현재 1,518만 명이다.

 

언어

 

이 부분의 본문은 우즈베키스탄의 언어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은 공식적으로 우즈벡어를 사용하며 우즈벡어는 우즈베키스탄의 공용어이다. 우즈베크어가 74.3%가 되어 있지만, 민족 간의 소통언어로는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아직까지 러시아어만 알아도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독립 이후에 우즈베크어 사용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에 공용어에서 배제된 러시아어의 중요도는 떨어졌다. 특히, 지방, 농촌으로 가면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꽤 많고, 노년층에서는 러시아어를 말할 수 없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우즈벡 정부의 민족주의 노선에 따라 거리의 대부분 간판이나 공식서류가 거의 우즈벡어로 되어 있으며 2004년부터는 100% 우즈벡어로만 공식 서류가 발행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계와 고려인 등 우즈벡어를 모르는 소수 민족들은 생활의 불편과 함께 그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영어 사용률은 1%도 되지 않는채 그 사용률이 적다. 그러나 정부 홈폐이지는 영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러시아어는 이민족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잡을 때에 중요한 언어이며, 특히 도시에서 이 경향이 강하다. , 사업, 학술 등의 분야에서는 러시아어사용이 필수적인 경우도 많고, 대부분의 대학교육에서 러시아어가 교수언어가 되고 있다. 러시아어는 전인구의 14.2%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제1언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외의 사람들도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지방에서 러시아어사용은 제한되어 있으며, 심지어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에서 아이들은 도시중심부에서조차 러시아어에 숙달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2003년 보고에 의하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어를 말하거나 또는 이해할 수 있으며,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밀접한 외교관계가 생겨난 때부터, 정부에 의한 러시아어사용을 비권장이라고 판단하는 운동은 급속히 시들고 있다. , 초등교육에서 교수언어는 우즈베크어와 러시아어로 나뉘어져 있으며, 대학진학이나 사업에서 유리하게 되기 때문에, 우즈베크인이라도 교수언어로 러시아어를 선택하는 사람도 많으며, 영어 사용률은 거의 없다.

 

우즈베크어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된 언어이며, 1992년 이후 로마자에 의한 표기법이 도입되었다. 사마르칸트나 부하라, 샤흐리삽스, 키타브 등 남부 지역, 나망간, 코칸트, 페르가나, 카산, 카니바담 등의 페르가나 분지지역, 바기스탄 등의 시르다리야 강연안지역에서는 타지크어가 광범위하게 걸쳐서 사용되고 있지만, 학교교육에서 타지크어교육은 금지되어 있으며, 가정이나 지역 공동체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타지크어는 대부분 우즈베크어화가로도 있기 때문에 통계에서는 타지크어의 비율은 4.4%로 낮아졌다. 하지만, 전인구의 20%30%전후가 타지크인이기 때문에, 타지크어화자도 엇비슷하게 있을거라고 추정되고 있다.

 

1920년대 이전에 우즈베크어 표기로 아랍 문자필기체인 나스탈리크 체로 사용하고 있었다. 1926년에 새롭게 로마자가 도입되었고, 1930년대를 통해 몇차례의 문자계정을 거쳤다. 1940년에는 다시 문자개정이 행해지고, 소련정부에 의해 키릴 문자로 바뀌었다. 키릴 문자의 사용은 소련붕괴까지 계속되었지만, 1993년 우즈베키스탄은 재차 로마자를 정서법으로 제정, 1996년에 법제화가 행해지며 2005년이후에는 학교에서 가르칠 때에 로마자를 사용한 지도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공식출판물 등에서는 로마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전히 키릴 문자를 사용한 간판이 자주 눈에 띄는 등 키릴 문자 사용은 널리 행해지고 있다.

 

우즈베크어(74.3%), 러시아어(14.2%), 기타 언어(타지크어, 카자흐어, 투르크멘어)(4.4%))순으로 되어 있으며 그 외, 부하라어, 카라칼파크어, 카자흐어, 키르기스어, 크림타타르어, 중앙아시아 한국어 등도 사용되고 있는 다언어국가이다.

 

종교

 

주민의 88%가 무슬림이며, 이 중 다수(70%)가 수니파이다. 원래 불교와 조로아스터 교의 영향을 받았으나, 8 ~ 9세기 경, 이슬람 제국의 침략으로 이슬람화 되었다. 1991년 독립 이후에는 이슬람 부흥 운동으로 자발적인 이슬람 교육과 여성들의 베일 착용이 증가하였다. 소수 종교 중에서 러시아 정교회를 포함한 기독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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