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Hayao Miyazaki, 1941년~ )-은퇴와 그 번복
그리고 2013년 9월 1일 공식은퇴 발표가 떴다. 9월 6일 베니스 국제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은퇴의 이유로 나이를 들었다. 벼랑위의 포뇨에서 바람이 분다가 나올때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더이상 작품을 만들기가 버거워서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몇번 은퇴선언 후 번복하긴 했지만 이번엔 진심이다라고 주장했다(...) 은퇴 이후에는 운전이 가능할 때까지 매일 지브리 미술관에 다니면서 쉴 예정이라고. 하지만 후계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2014년 연초부터 은퇴 번복의 기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12월 31일 도쿄FM 라디오 인터뷰에서 스즈키 토시오가 미야자키 감독이 "자원봉사 차원이라면 영화를 만들어도 좋다"고 밝혔다. 진행자가 은퇴 철회를 시사하는거냐고 묻자, 스즈키 프로듀서가 애매한 한마디를 던진다. 원래 은퇴 기자회견에서도 자유롭게 산다고 했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 자유도 있다. 일각에서는 미야자키의 은퇴 선언이 지브리 경영자들과 충분한 교감 없이 내지른 것이거나, 혹은 미야자키 은퇴 후 구도에 대한 우려때문에 은퇴 번복에 대한 압박이 나오는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일단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말하기 전까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그가 복귀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듯 하다.
2014년 7월에 지브리 해체설이 불거지고 추억의 마니가 최악의 시작을 보이면서 결국 미야자키가 은퇴 번복하고 다시 돌아오는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슬금슬금 나왔다.
그런데 미야자키가 추억의 마니 제작진들에게 이것저것 제안하기도 했다는데 제작진이 이번에는 미야자키에서 벗어나서 우리끼리 해보자라고 했다고. 은퇴했다는 양반이 저러는걸 두고 젊은 사람들 못믿고 간섭하려드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4년 말경에 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 부문은 해체됐다.
2015년 7월. 지브리 박물관에서 상영할 10분 분량의 단편을 제작 중이라고 한다. 털벌레가 주인공이며 3D와 CG 작업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2015년 8월 30일. 오키나와 현 구메지마 삼림공원에 약 1만 평 규모의 생태체험시설을 조성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내년 4월 착공해 2018년 완공을 목표로 하며 해당 기초자치단체에 기증될 예정이라고 한다.
레드 터틀 제작보고회에서 조건부 복귀를 내비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본래 은퇴 발표를 했을때도 업계에서 완전 은퇴하는게 아니라 장편 영화 제작에서 은퇴한다는 이야기였다.
2016년 10월, 미야자키가 '평생의 전우'라고 불렀던 토에이 동화 시절부터 동료였던 야스다 미치요가 암으로 사망하고 상심한다. 미치요는 입버릇처럼 이대로 은퇴하지 말고 한 편 더 만들라고 말했는데, 미야자키는 미치요가 (건강을 되찾아서) 같이 만든다면 만들겠다고 대답했는데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2016년 11월 13일 방송한 일본 NHK 스페셜 다큐멘터리 <끝나지 않은 사람, 미야자키 하야오>에 출연해 은퇴를 번복했다. 현재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애벌레 보로>를 제작 중이고, 새로운 극장용 장편 영화를 만들 의향을 비췄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전까지 제작을 끝내고 개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그때면 연세가 무려 80세가 되시니 정말로 마지막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스즈키 토시오에 의하면, 아일랜드 작가 존 코널리의 잃어버린 것들의 책을 원안으로 무대를 일본으로 옮긴 오리지널 장편 기획이 진행중이다. 2017년 여름에는 작화작업에 들어가서 2019년에 완성 예정으로 작화감독은 스튜디오 카라 소속의 혼다 다케시가 담당한다. 4월 30일발 소식으론 그림콘티(스토리 보드)는 20분 분량이 완성됐고, 2019년 개봉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2017년 5월 28일, 일본의 한 시사&예능 방송 프로그램(ワイドナショー 2017年5月28日)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 선언 발언이라면서, 일본의 트윗터 유저가 장난 삼아 올린 글을 마치 미야자키 감독이 실제로 한 발언으로 소개하며, 은퇴 철회 발언을 비웃으며 놀려대는 방송을 내보냈다. 결국 진위가 밝혀지면서 잘못된 자료를 인용해서 방송을 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를 했다. 그렇다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전부터 극장용 영화 감독직을 몇 번이고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이 조작이라는 것은 아니다. 미야자키 본인이 인터뷰와 직접 쓴 글에서 몇 번이나 감독직은 힘들어서 그만 두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공식적으로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은퇴 선언을 한 것은 바람이 분다를 만들고 나서이다. 비화를 들어보면, "나 은퇴 할거야!"라고 하면서 공표하지 않으면 못지킬거니까 기자를 불러달라고 해서, 스즈키 토시오는 공식 은퇴 기자회견 중계까지 마련했는데, 그 직전 타카하타 이사오와 만난 자리에서는 "정말로 은퇴할 거야?"라고 물어보니, 미야자키는 "그것은 스즈키 씨의 음모에요."라고 말해서 스즈키가 벙벙했다든가, 은퇴 기자회견을 앞두고, 완전 은퇴에서 "나는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직에서만 은퇴할 거고 단편 작품은 계속 만들거야."라고 말을 돌렸다라든가, 2017년 시점에서 은퇴 번복을 하고 장편 영화를 만들려고 의욕적이라는 소식을 보면, 한 작품을 만들고 나서 체력이나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푸념처럼 은퇴 발언을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창작 의욕이 생기면 은퇴를 번복하는 패턴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은퇴 사기꾼'으로 조롱을 받고 있다.
미야자키가 그린 원화는 미국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만화적인 과장을 허용한 표현이 눈에 띈다. 그렇다고 황당무계하거나 비현실적인 표현은 거의 없고,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토에이 동화 출신답게 동화(動畵)매수를 풍부하게 사용한 캐릭터의 움직임을 중시하는 작풍을 보여준다.
일단 그가 감독한 작품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동화풍 그림체가 눈에 띄는데, 감정표현에서 입이 굉장히 커지거나 눈동자가 작아지는 다채로운 변화가 특징. 특히 특유의 몽글몽글 꿀렁꿀렁거리는 실감나는 액체 질감표현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면 센과 치히로의 오물신 이라던가 가오나시 광폭화 라던가.
애니메이터로서의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작화보루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태그로 분류된 포스트들을 보는것도 좋다.
성장 환경 덕에 상당한 수준의 비행기 덕후로 그의 상당수의 작품들에는 비행기와 비행이라는 요소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거 말고 그의 그러한 성향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이 바로 붉은 돼지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작중 등장하는 비행기를 전부 그가 디자인했다.
마찬가지로 성장 환경 덕인지 모노노케 히메 같은 옛이야기풍 내지는 포뇨같은 정말 동화같은 배경이 아니면 작품에 세계대전 당시의 전쟁 무장이나 차량을 모델로 한 병기들이 자주 보여진다.
이탈리아 관련된 것들이 상당히 자주 나온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의 장교인 모우로와 군인들은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과 많이 유사하며, 붉은 돼지는 아예 배경이 이탈리아다. FIAT제 트럭과 군대, 공간적 배경 등 아무리 봐도 이탈리아. On Your Mark의 결말 중 탈출에 성공해 지상으로 나가는 결말에서 타는 노란색 컨버터블도 알파 로메오 차량이다. 그리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름부터가 이탈리아어인 Ghibli, 모래폭풍이라는 뜻. 이외에도 어딘가 모르게 이탈리아 냄새 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어딘가 모자란 군인들이라던지
또한 페미니스트로서 주인공을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을 강인하고 지혜롭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요 여성 등장인물들은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 등 여러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고정적 성 역할의 전형적 여성 등장인물과 상반되는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여성 등장인물의 강인하고 주체적 성격은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작품 특성에 대하여 미야자키 하야오는 '나의 많은 작품들에는 강인한 여성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용감하고 의존적이지 않으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우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친구나 조력자가 필요할 수는 있으나 구원자는 절대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든 여성은 어느 남성과 같이 영웅이 될 역량이 있다. 소피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으로 세운 이유는 '남성으로부터 정복당해온 여성과 문명으로부터 고통 받는 자연이 닮았다고 믿기 때문'이며 '남자 주인공으로는 그냥 악과 맞서 싸우는 관습적인 이야기밖에 만들 수 없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주인공의 조력자나 조언자 포지션에 있는 할머니 캐릭터 역시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천공의 성 라퓨타의 도라와 시타의 친할머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제니바,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켄타의 할머니, 마녀 배달부 키키의 빵 만드는 할머니, 모노노케 히메의 무녀 히이사마 등.
1957년에 만든 소련 애니메이션 눈의 여왕을 보고 주연인 게르다보단 조연인 이름없는 산적 소녀에 매료되어 그의 여자 캐릭터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여성이지만 칼을 뽑고 맹활약하며 겁이 없는 이 소녀는 종전 애니메이션에서 나약하던 여성 이미지와 상반되어서 잊을 수가 없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사람이 달리는 장면을 그릴 때 진짜 빠르게 그리는 경향이 있다. 동작에서 중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래 달려도 페이스가 느려지지 않는다! 미래소년 코난같은 작품이야 만화적 과장이라고 치더라도, 바람이 분다같은 작품에서조차 100미터 10초 끊을 기세로 달린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아시타카가 평지도 아니고 험난한 산을 들개와 맞먹는 속도로 달려내려가는 장면을 보면 이건 아주 그냥 인간의 한계를 이미 초월한 달리기다. 아시타카는 스튜디오 지브리 세계관의 주인공들 중에서도 무술 만렙을 찍은 초인 중 하나니 이상할 건 없을지도 모른다. 적은 프레임으로 빠른 속도감을 보여줄 수 있고 해당 테이크를 빠르게 넘길 수 있으니 애용하는 노하우인 듯.
그리고 음식을 맛있게 그린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음식,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음식 등 미야자키가 감독한 만화영화의 음식은 죄다 위꼴사 수준. 음식의 찰짐이 느껴진다. 상기한 특유의 액체표현도 이것의 연장선상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의 식성은 매우 검소한 편이다. 스튜디오 직원들이 근처 식당이 맛있니 맛없니 하는 것을 들으면, 인간은 살기 위해 먹지, 맛있는가 맛없는가로 먹는 것이 아니라고 꾸짖는다. 매일 부인이 싸 준 검소한 도시락 하나로 하루 두 끼를 때우고, 비싸고 호화로운 음식은 일 년에 서너 차례나 먹을까 말까라고 한다. 그래서 스즈키 토시오 말로는 가끔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정말로 기뻐한다고 한다. 그런 면이 있으니까 감성이 둔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밝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에는 그의 젊은 시절의 세계명작동화의 스타일이 녹아들어 있고 악한 캐릭터라고 해도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악당을 그린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구제불능의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칼리오스트로의 성'에서 라살 칼리오스트로, 코난의 레프카, 라퓨타의 무스카가 그러하다. 다만 이 셋은 사실상 동일인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캐릭터성이 일치한다. 미야자키의 악역에 대한 관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캐릭터는 시대와 함께하는 것이라는 지론이 있다. 그래서 캐릭터가 인기가 있다 해서 사자에상 시공에서 무한 반복으로 사골처럼 우려먹지 않는다. 이웃집 토토로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냐고 물으면 메이와 사츠키는 결혼해서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다고 대답한다. 등장하는 캐릭터는 작품을 만들고 있는 당시의 시대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상을 반영하되, 그렇다고 시대의 유행에 영합하지 않는다.
작업 스타일은 대단히 독특한데 시나리오가 없이 미야자키 감독이 직접 기획서를 쓰고 콘티를 짜며 그 콘티를 바탕으로 미야자키 감독 본인이 레이아웃까지 잡은 원화까지 그리는 스타일이라 거의 혼자서 애니메이션을 다 만드는 별종이라고 불린다. 사실 이래서 체력에 한계가 있는 노년으로 갈수록 힘들어질 것 같다. 현대카드 컬쳐프로젝트 일환으로 유치된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에선 미야자키 감독의 진짜 레이아웃을 가져다 전시했는데, 작화지 한 장에 다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사물들은 작화지 3-4장을 테잎으로 고정하여 통으로 사용하는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거대한 레이아웃 작품도 일부 있다. 일본에서 콘티집을 시중에 발매한 최초의 애니메이션 감독이 미야자키라고 하니 말 다한 듯. 이렇게 자세하게 서술하는 타입인데도 작품을 제작할 때 "대충 적어놔서 미안합니다"라고 할때도 있다고 한다.
위대한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이며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헐리웃 감독들의 존경도 받고 있다. 아카데미에서 이들의 추천으로 공로상을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작업 스타일 때문에 후계자를 키우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긴 하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제작 당시 참여했던 안노 히데아키가 미야자키가 다 해먹어서 난 할일 없었어여라고 회고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미야자키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스타일이라서 젊은 스탭들이 참여해서 기량을 성장시킬 여지가 부족한 게 아닐까 싶다. 콘티와 레이아웃을 디테일하게 그리는 것도 그러한데, 사실 작화가들에게 선택권과 기회를 많이 부여하려면 어느정도 콘티를 느슨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런 작품들의 경우 적당히 테두리만 쓱쓱 그려놓거나 심하게는 '액션'이라고만 적어놓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토미노와의 관계
미야자키와 가장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은 역시 토미노 요시유키로 봐야 할 것 같다.
토미노는 안노 히데아키와의 대담에서 "그 인간은 자기가 로리콘이라는 걸 솔직히 인정해야 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로리콘 취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서 로리콘인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비판. 여기서 안노는 "토미노 선생님의 작품은 토미노 선생님께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x를 덜렁거리며 춤을 추는 느낌이라 존경한다. 하지만 미야자키 선생님의 작품은 '나 지금 벌거벗었다~'라고 외치면서도 하반신에는 멋드러진 팬티를 입고 있는 느낌"이라고 비유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지나치게 체면을 차리면서 멋부리고 있는 느낌이라 꼴불견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대담에서만큼은 안노가 폭주하며 미야자키를 까고 토미노는 오히려 미야자키를 옹호하는 느낌이었다. 동년배인만큼 그 기분만큼은 전부 이해를 한다고. 오히려 머리도 좋고 기술도 있으며 센스도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칭찬하기까지. 로리콘 취향에 관한 부분만 빼고(…).
또한 토미노 요시유키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 것 같다. 실제로 몇몇 작품에서 함께 일한 적도 있다. 어떤 강연에서 토미노가 미야자키를 대놓고 언급하면서 '미야자키 본인에게 말해도 괜찮다. 아는 사이이므로'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토미노가 미야자키와 의도적으로 대척점에 서는 이유에 대해선 미야자키가 테즈카 오사무 사후 한 인터뷰에서 테즈카로 인해서 리미티드 기법이 유행했고 낮은 제작비가 관행이 되었다고 비판한 것으로 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함으로써 원화는 별로 줄지 않은 것에 비해 동화는 팍 줄어버린 셈이 되어 타격을 받았긴 했다. 그 외의 파트들은 이에 별 상관없이 먹고는 산다. 허나 이것이 동화가들을 영세하게 만든게 아니라 제일 중요한 이유는 제작회사의 마인드다. 현재 한국 동화 단가가 1000원이 평균인데, 1500~2000원대로만 진입해도 회사는 적자는 면하면서도 동화가들을 살릴 수 있는 셈이 된다.
픽사와의 관계
미야자키 하야오는 픽사의 수장 존 라세터의 막대한 존경을 받고있다. 존 라세터는 미야자키야말로 월트 디즈니와 함께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라며 찬사했다. 애니메이터였던 시절, 존 라세터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용이다'라는 평가에 상심했다. 그러던 어느날, 미야자키의 첫 영화인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 작품을 본 라세터는 애니메이션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심지어 청혼하기 전에, 아내가 자신의 소울 메이트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루팡을 같이 봤다고 했을 정도로 라세터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라세터는 미야자키의 모든 영화는 하나도 빠짐 없이 명작이고 한 사람이 이걸 다 상상하고 스토리 보드를 손수 그렸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야자키는 라세터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게 되었고, 때문에 에머리빌에 있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의 작품의 영어 더빙 감독도 픽사의 수장 존 라세터와 그의 동료와 제자 감독들이 맡기도 했다. 참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깡총거리며 뛰는 전등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픽사의 룩소 주니어의 오마주라고 한다. 한편 그에 대한 보답인지 2010년에 개봉한 토이 스토리 3에서는 토토로 인형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과의 관계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종주의자에 한국을 싫어한다는 루머가 90년대에 하이텔 애니동을 비롯한 애니메이션 동호회에 계속 돌면서 전설처럼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런 내용이 온라인을 넘어서 퍼져가는 데는 모 밀리터리 소설에서 쓴 부분도 한몫을 했다.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며, 당시 일본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만들어진 헛소문이다.
미야자키가 한국을 싫어한다는 말은 예전에 한국 쪽에 하청을 줬다가 그 완성도에 실망했었던 일에 대한 표현이 완전 과장되면서 생긴 것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혐한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국 쪽에 하청 주는 걸 꺼리는 것도 이젠 예전 이야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작하던 시기에 스튜디오 지브리는 촉박한 스케줄 속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한국의 DR무비 쪽에 하청을 넘겼는데, DR에서 만든 결과물에는 미야자키도 크게 만족을 표현했다고 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제작에 참여한 직원들만을 초청해 한국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시사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는 DR무비 관계자들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다. 그가 혐한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 이후 DR무비는 고양이의 보은 등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10억 받고 하청했다는데, 자세한 사항은 내부 기밀이다. 그래도 따지고 보면 10억은 많이 받은 게 아니다. 32분 정도면 5만컷 정도가 동화로 들어가는데, 애니메이션은 동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이후에 클린업, 채색, 이펙트, 디지털 CG 등도 포함되기에 최종적으로 분배되는 단가는 그리 많지 않다.
여담으로 벼랑 위의 포뇨에서 직접 한글 로고를 쓰기도 했다. 이는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한 것이라고.
오타쿠와 모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타쿠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자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팬들은 세간 사람들에게 오타쿠 취급을 받지 않고 있다.
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실망하거나 적대적인 시각을 보이는 사람들이 대립을 벌인 적도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찬사를 받는 명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지만, 예술가로서의 고집이 굉장히 강한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런 발언들은 각자 생각해 볼 문제일 것이다.
그가 오타쿠나 모에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오타쿠에 대한 미야자키의 다른 발언을 첨가하자면,
"이런 건 말야 실제로 어린애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 그런 관찰 못하면 못 그리지. 이걸 안하고 아무것도 못 보고, 자기 자아밖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일상생활만 보내고 있고. 인간관찰을 싫어하는 인간이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오타쿠 소굴이 되는 거지."
"난 정열도 인생 경험도 없는 오타쿠를 고용할 생각은 없다. 불을 표현하려면 불을 접하지 않으면 안된다. 누군가의 작품을 따라 만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애니메이션은 맡길 수 없다"
분명한 건 타인이 오덕을 자처하는 언동을 싫어한다는 점으로 이는 지브리 작품에 참여한 적이 있는 안노와의 에피소드에서도 알려져 있고, 아소 타로 전 총리의 오덕 행적에 대한 질문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본인은 상당한 실력의 모델러이자 중증 밀덕후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만드는 프라모델이나 모형지 "모델 그래픽스"를 통한 단편 만화들의 주인공들은 창작물을 제외하고는 전부 추축국 병기들이다. 이 때문에 이 양반도 마츠모토 레이지처럼 그 시절에 대한 어렴풋한 동경을 갖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전쟁이나 혹은 무기 등에 대한 이상이 아니라 과거의 도시화/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았던 시절에 대한 동경에 가깝다. 출생 대목을 다시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릴 때부터 비행기나 군인들을 많이 보면서 자란 탓에 무기나 군인 복장 등을 그리게 되면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보아 익숙한 양식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유년의 향수처럼 드러나게 되는듯하다.
좌우 성향 논란
인종차별자라든가 혐한론자라는 의혹과 상반되게, 노조 활동이나 공산당 신문의 연재 이력 때문인지 무정부주의 좌파라는 얘기도 듣고있는데, 그런 색깔이 강하게 나타나는 작품으로는 반파시즘적인 색깔이 확연한 붉은 돼지, 반전 메시지가 강한 미래소년 코난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있다.
그리고 가쿠슈인 대학 재학 중에 직접 공산당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좌익을 지지하는 글을 투고했다고도 한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일본 공산당과 사회당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좌익세력은 일관되게 군국주의와 천황제에 반대하는 세력이었고, 극좌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적군파와는 전혀 노선이 다르다는 점이다.
정치적 발언의 기피로 우익이라는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우익성향을 나타냈다기보다는 정치적으로 파장을 부를 수 있는 민감한 발언을 삼갔다고 보는게 맞다. "나우시카" 개봉 당시 영화잡지 '키네마준보'에 나우시카가 은연중에 가미가제 특공을 미화하고 있다는 비평이 게재되었을 때 이에 반론하지 않은 것으로 오해를 산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떻게 발언을 해도 좌익과 우익에서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예 민감한 대답을 피한 것이다. 이 일은 1980년대에 있었던 일인데, 그 당시조차 일본의 참전자 단체나 우익야쿠자들이 공공연히 백주에 테러를 저지르던 시기였기때문.
마찬가지로 그가 한국을 2000년대 초반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당시 이슈가 되고 있던 위안부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저는 그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고 대답한 바가 있는데, 이것도 한국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바로 그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근친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덕분에 역시 좌파 운동권 출신의 오시이 마모루에게는 두고두고 까인다. 안노 히데아키 또한 비슷한 의견을 개진한 적이 있고 심지어 미야자키의 작품은 "데이트 무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극언을 붉은 돼지 공개 직후 한 적도 있다.(인터뷰집 스키조 에반게리온 )
하지만, 나우시카 이외에 미야자키의 작품에서 우익 논란이 있었던 작품은 거의 없으며, 그의 대부분의 작품 성향으로 볼 때, 서구적 좌파가 그의 지향점으로 생각된다. 다만, 중국이나 북한, 베트남과 같이, 공산주의 사상이 동양에 들어오면 민족주의와 묘하게 결합하는 경향이 있으며, 서구에서는 민족주의가 자본가의 수탈을 정당화하는 이념으로 악용된 반면, 동양에서는 자본가에게 맞서 싸울 노동계층을 결집시키는 이념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강해(대개의 동양 국가들이 외세의 침략과 수탈을 받았으니...), 동양에서는 우익=민족주의/좌익=공산주의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게 되는 점이 있으며, 미야자키의 경우 초기에는 일본적 전통 및 일본적 민족의식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경향을 가지게 됨에 따라, 좌파적 색채와 서구적 묘사가 공존하는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모노노케 히메 이후로는 그가 확실히 일본적 전통을 긍정하게됨에 따라, 초기의 좌파/서구 지향의 색채가 등장인물의 생김새 외에는 거의 사라졌다.
또한 이러한 우익적으로 보이는 연출이 미야자키 본인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었을 가능성도 높다. 키네마준보에서 지적한 카미카제 논란에 대해서는, 미야자키 본인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다가 정곡을 찔려서 아무 대답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비슷한 예로, 홍콩의 오우삼 감독이 본인의 대표작인 "영웅본색" 시리즈와 "첩혈쌍웅"에서 남자 주인공들의 관계가 동성애적 코드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미국 평론가의 지적에 대해 "나는 그렇게 의도하고 연출한 것이 아니지만,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도 보인다."라고 수긍한 적이 있다. 작품이 작가의 구속에서 탈출한다고도 하는데 이런 경우로 보는 쪽이 타당할 듯.
그런데 애니판의 논란과 달리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코믹스의 경우 우익 논란 따위는 쏙 들어가버리게 할 정도로 엄청나게 무정부주의적이고 반(反)전체주의적인 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미야자키의 최대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나우시카 코믹스를 보면, 미야자키는 일단 좌익 쪽에 기울어져 있지만 현실에서 나타난 공산주의 체제의 모습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이며 특히 좌우파를 막론하고 나타난 전체주의(스탈린주의와 파시즘 양쪽 다)를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좌익 논란을 떠나서, 적어도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한 관심을 가진 건 틀림없어 보이며, 그런 경향의 작품으로는 미래소년 코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위의 포뇨 등등이 있다.
그런데 바람이 분다 개봉을 앞두고 공개된 시놉시스가 루리웹에서 논란을 불렀다(참고). '신화로 변한 제로센의 탄생'이란 표현이 문제시되는 부분. 다만 해당 작품에서 전쟁묘사나 사상관련의 이야기는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정말로 호리코시 지로와 제로센에 관한 이야기 밖에 묘사되지 않는다고.
2013년 7월에 미야자키가 쓴 칼럼이 공개됐는데, 미야자키가 본인의 사상적인 문제에 대해 이렇게 분명히 밝힌 적은 여태껏 없는 일이었던지라 화제가 되었다. 참고.
해당 칼럼에서는 '일본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주변국들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논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어째서 이런 글러먹은 나라에서 태어나버린 것일까'라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30대가 되어서 일본을 좋아하게 되긴 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로서가 아닌 '일본이라는 섬'으로 좋아하게 됐다는듯. '일본은 인간만 없으면 정말로 아름다운 땅이다'라며, 일본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안고 있으며, 아베 정부의 헌법9조 개정 문제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였다. 아베노믹스도 조만간 망할게 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일본 내에서도 바람이 분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영화 개봉 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데 일본 문화과학부 문화부장 출신 프로듀서 데라와키 켄은 2013년 8월 13일 기자회견에서 "한마디로 말해 미야자키 감독은 역사 의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그런 반응이 있건 말건 개의치 않고 2014년 2월 TBS 라디오에서 방송된 인터뷰에서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은 지배되지 않도록 노력한 결과 자신들이 제국주의를 흉내냈다. 결과적으로 3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전쟁을 했고, 원폭이 두 번이나 떨어지는 일을 당했다. 주변국의 원한은 없어지지 않는다. 법적으로 해결한다 해도 감정이 풀리지 않고 남아 있다."라며 일본이 침략전쟁으로 주변국들에게 피해를 줬으며 일본 정부가 법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해도 주변국들의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며 일본이 "어떻게든 해야 한다." 라는 소신 발언을 그치지 않았다. 또한 단세포적인 아베 총리를 비판하면서 일본이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토 분할, 공동소유 주장 논란
독도, 센카쿠 열도, 쿠릴 열도등의 주변국들과의 영토분쟁에 대해서는 반으로 나누든가 공동관리를 제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조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양국간의 견해차를 좁히는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라는 옹호도 있으나, 일본과 영토문제를 겪고 있는 한, 중, 러 국민들은 물론 일본인 입장에서도 좋게 받아들이기는 힘든 발언이다. (참고) 다만, 일본 민주당 의원이 독도는 한국 땅이라 주장했다가 자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도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발언임을 참작해야 할 것이다.@
기술자 옹호, 제로센 찬양 논란
일본인들에게 일반적으로 제로센은 상당히 호감가는 위치에 있고, 특히 일본 밀덕에게는 중심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위에서의 링크도 일본인에게서의 제로센의 위치에 한 문단 전부를 길게 할애하고 있다. 현대에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워낙 위치가 확고하여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제로센은 전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로망'인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제로센이 한참 로망을 달리던 시기를 청춘으로 보내고, 성장했기에 제로센에 대해서 양면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참고) 이 부분은 위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난다.
Q: 전쟁을 비판하는 한편으로, 제로센이라는 무기에 애착은 갖는다. 모순되지 않습니까?
A: 모순 덩어립니다.
이런 면에서 미야자키의 말을 살펴보아야 된다.
제로센 관련으로 악명높은 카미카제 자살특공대를 '그들은 구식이라 별 역할을 한 게 없다' 라고 표현한 것을 지적하여 제로센 찬양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인터뷰 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원문은 (카미카제 피해자인 한국인에 대한 책임에 대해)'호리코시 지로가 만든 제로센이란 전투기는 구식이라 가미가제 특공대가 활동할 때 유용하게 쓰이진 않았다. 그가 잘했다고는 할 수 없다.'로, 제로센은 구식이라고 까는 내용이다. 이를 제로센과 관련된 것은 미화하거나 옹호, 축소하려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이패드 비난 논란
지브리가 발행하는 소책자 '열풍' 2010년 7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그 게임기 같은 것을 이상한 손놀림으로 문지르는 행동은 나에게는 어색할 뿐이며 어떠한 감동도 주지 못합니다. 혐오감만 줄 뿐이죠. 전철 안에서 이상한 손놀림으로 자위행위를 하는 것처럼 (아이패드를) 문지르는 사람들이 늘겠죠."라는 말로 아이패드를 비판했다.
한국 네티즌들 반응은 대체로 "그럴 수도 있다.", "아직 아이패드의 활용성을 잘 모르셨을뿐..."이거나 일부에서는 "타블렛과 어도비 포토샵 왜 안 까는가?"로 논리 빈약을 문제 삼았지만 뭐 대충은 공감이 간다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자국인 일본 네티즌들은 뼈가 가루가 되도록 깠다. 중에는 신상품 하나 들고 있다고 스스로 창조적인 사람이나 된듯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고 반성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창조적인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오만한 발언"이라거나 "새로운 세계를 거부하는 옛 사람 고집"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는 일본 웹에선 애플 유저의 발언력도 크기때문이다. 일본에서 애플 제품 쓰는 사람들은 주로 올드비가 많기 때문에 2ch등지에서도 많이 서식하는 편.
반지의 제왕 비난 논란
2002년에 한 반지의 제왕이 인종차별이 담겨진것이라고 한 논평(인터뷰)가 15년후인 2017년에 논란이 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아프리카인"은 내용상 하라드림을 지칭하는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반지의 제왕에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있는것 아닌가라는 논란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당시 영국인으로써의 시각의 한계가 존재할뿐만 아니라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톨킨은 인종차별 자체를 혐오하는듯한 시각을 여러번 보여줬다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 항목에 이러한 논란과 반박이 서술되어 있다.
다만 같이 깐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경우는 실제 인종차별에 관한 비판이 많이 존재한다. 당장 영화 내용만 해도 "작중에 나오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는 한없이 미개하고 야만적이며 결국 그들의 보물은 영웅적인 활약을 한 백인 남성이 구해내고 이후 서양의 박물관에 장식된다는 결말" 이라는 내용이니. 실제로 2편의 경우 인도의 음식이 지옥의 음식이라며 비하한탓에 인도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다.
요컨대 미야자키 하야오가 헐리웃 영화의 백인우월주의적 성향과 인종차별 논란을 비판한거 까지는 그럴수 있지만 그 대상이 반지의 제왕 이란건 공감하기가 어려운 내용이다. 다만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경우 실제로 인종차별적 논란이 존재하니 틀린 비판은 아니라고 볼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인터뷰에 대한 논란은 2017년에 터졌지만, 이 발언이 나온 인터뷰는 그 보다도 15년 전인 2002년 때 이뤄진 것이었다. 즉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반지원정대가 개봉된 지 1년이 지난 뒤다.(...) 일본 위키피디아에는 "구미 세계에 대한 비판" 이란 내용으로 꽤나 오래 전부터 서술되어 있던 내용인데 나중에서야 마토메 블로그 등지에서 논란이 된거라고 한다.
포스트 미야자키
존 라세터의 말대로,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 미야자키 하야오 급의 영향력을 보여준 감독은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한 애니메이션은 100억 엔은 기본으로 흥행했지만 2016년 너의 이름은.이 개봉할때까지 이 100억엔을 넘은 작품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을 제외하곤 단 한 작품도 나오지 않았다. 이는 지브리 스튜디오 뿐만이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에서도 꽤 큰 고민으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그의 후계자가 나오지 않는 건 점점 대중적인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위치가 아슬아슬해진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의 수준에는 아직 확실히 도달했다고 보기 힘들지만 그 희망이 보이는 감독들이 몇 명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건 아래 2명 정도이다.
호소다 마모루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가장 꾸준하게 대중 극장판 애니메이션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인물.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시작으로 썸머 워즈,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가 연이어 히트하고 흥행 성적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신작인 괴물의 아이의 최종흥행성적은 59억 엔으로 2015년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가장 근접한 흥행을 기록하였다.
작품성도 매우 좋고 많은 관객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한 대중적인 작품들이 많은데다가, 무엇보다 이 감독은 꾸준하게 좋은 작품들을 뽑아내고 있어 미래가 매우 기대된다.
다만 아직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역에 완벽하게 들어섰다고 할 만한 흥행기록을 가진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대로 이름값을 올린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흥행 실적과는 별개로 작품성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을 받고있다.
호소다 마모루 본인은 '포스트 미야자키'라는 말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되기 위해서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야자키류 작품같은 것은 미야자키씨가 하면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다는 장래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 미야자키 감독의 영화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이었고, 스튜디오 지브리 연수생 시험에도 응모했다가 불합격한 경험이 있는 그는 '미야자키씨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초기작에 한해서'라고 밝혔다. 미야자키 감독작에서는 이웃집 토토로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신카이 마코토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중 유일하게 미야자키 하야오의 흥행영역에 들어서는 데 성공한 감독.
이전부터 호소다 마모루와 함께 유망한 포스트 미야자키 후보로 떠올랐던 천재 감독이었지만, 예술성이나 영상미는 좋아도 스토리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 많아 그 만큼의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해 계속 뒤쳐지는 인상이었다. "영상미는 몰라도 감독 그 자체로써의 능력은 호소다 마모루보다 떨어진다"라는 것이 2016년 이전의 보편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다가 2016년에 개봉한 너의 이름은. 단 한 작품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흥행을 기록하는 대박을 터트리고 지브리 이외에서 제작된 일본 애니메이션 중 유일하게 100억 엔이 넘는 흥행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고도 흥행가도는 멈추지 않고 2016년 10월 23일 기준 164억엔을 기록하며 155억 엔의 벼랑 위의 포뇨를 뛰어넘었고, 200억 엔을 넘길 가능성도 높아져 모노노케 히메(193억 엔)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196억 엔)까지도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개봉 102일 차인 12월 5일에 드디어 입장수익 200억엔을 돌파하였고,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제치고 역대 일본 흥행 수입 4위에 위치하였다. 흥행 뿐만이 아니라 평가도 역대 애니메이션 중 최고 수준을 기록하여 호소다 마모루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는 옛날 말이 되어버렸다.
신카이의 문제는 호소다와 정 반대다. 앞서 말했듯 지금까지 신카이의 작품은 하나같이 예술성은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스토리가 빈약하거나 대중적이지 못해 대박을 터트린 작품은 없었다. 호소다와는 달리 신카이는 앞으로도 꾸준하게 이런 흥행가도를 달릴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는 신카이 마코토 본인조차도 흥행 100억 엔을 넘기는 것이 무섭다고 밝혔을 정도로 부담이 큰 부분. 물론 이번 작품으로 이름은 널리 알리게 되었으니 어느 정도는 흥행하겠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꾸준하게 이 정도 대박을 터트릴지는 지켜봐야 한다.
신카이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 이 흥행에 성공한 것은 감독 때문이 아니라 제작팀덕분이라고 말하고,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불리는 것에는 '어느 나라에 가도 그런 질문을 받는데, 미야자키 하야오상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것은 과대평가, 같은 방향으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다른 것을 목표로 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