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Cadillac, 1901년) 자동차 이야기
지붕이 달린 자동차를 최초로 만든 브랜드
오리지널 세계 3대 명차
1901년에 헨리 포드의 '헨리 포드 컴퍼니'로 시작했으며 포드가 포드 모터 컴퍼니로 옮기자, 헨리 릴런드(Henry Leland)는 파산 위기에 있던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Detroit Automobile Company)’를 인수해 ‘캐딜락 자동차 회사(Cadillac Automobile Company)’를 설립했다. 이후 1909년 GM에 인수되어 GM의 럭셔리 디비전이 되었다. 게다가 캐딜락을 GM에 판 이후 릴런드가 설립한 회사가 바로 현재 포드의 럭셔리 브랜드인 링컨이다.(...) 포드와 GM의 위치를 고려하면 엄청난 아이러니.
캐딜락이란 브랜드 이름은 1701년 미국 디트로이트(Detroit)시를 개척한 프랑스 귀족이자 탐험가인 ‘르쉬외르 앙투안 드라 모스 카디약(Le Sieur Antoine de la Mothe Cadillac)’ 경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캐딜락의 엠블럼 또한 캐딜락 가문의 문장을 따왔다.
1902년에 ‘가변식 밸브 타이밍 1기통 엔진(Variable Valve Timing Single Cylinder Engine)’을 장착한 캐딜락 최초의 프로토타입 모델 Runabout and Tonneau를 750달러로 출시했다. 이 차량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25MPG(Miles Per Gallon, 차량의 연료 소비 정도. 1갤런은 3.78리터)의 연비와 시속 30마일(약 48Km, 1마일은 1.6km)의 성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1903년 뉴욕오토쇼에서 양산형 모델 A를 선보였다. 모델 A는 1903년을 통틀어 2,497대가 제작되었고 상류층의 큰 인기를 끌었다
1905년 캐딜락은 4.9l 4기통 엔진을 장착해 성능을 향상시킨 모델 D를 출시했다. 유성 기어식 3단 변속기가 장착되었고 제어식 스로틀, 그리고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크루즈 컨트롤이 장착되었다.
1907년에는 세계 최초로 250개 부품을 표준화해 부품 호환이 가능한 모델 S를 선보였고, 이 차는 1908년 영국왕립자동차클럽(RAC)으로부터 자동차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드와 트로피(The Dewar Trophy, 매년 뛰어난 성능과 기술력을 선보인 자동차 업체에게 상을 수여함)를 수상했다.
1909년 헨리 릴런드는 캐딜락을 제너럴 모터스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시킨다는 조건으로 캐딜락 오토모빌 컴퍼니를 제너럴 모터스에 매각했다. 1910년에는 지붕과 창문 일체형 바디의 자동차를 선보였고, 1912년에는 세계 최초로 전자식 시동장치를 장착한 모델 30으로 두번째 드와 트로피를 수상했다. 1914년에 최초로 V타입 수냉식의 실린더 8개를 사용해 2,400RPM과 70마력의 성능을 낼 수 있는 ‘V8 엔진(V8 Engine)’을 발표했고 이 엔진은 1915년에 V8엔진의 실용화에 성공하고 대량생산 체제로 생산체제를 전환했다.
오일 쇼크 이전까지의 전후 호황기 (1945 ~ 1973)
이 시대의 캐딜락을 대표하는 차종을 꼽자면 캐딜락 엘도라도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인간을 다른 천체로 보낼 정도의 넘사벽의 호황을 누리던 천조국미국의 경제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엘도라도의 모델 변경 주기이다. 엘도라도는 1953년에 1세대가 나왔는데, (당시 다른 미국차들의 유행처럼)1954년 바로 2세대가 출시되고 모델 주기가 길어봐야 4년 정도의 주기의 모델 변경 주기를 가졌다. 특히 이때 GM을 이끌던 총괄 수석 디자이너인 할리 얼이 캐딜락의 디자인 전성기에 기여했고, 한때 야구계의 모 인사나 엘비스 프레슬리도 캐딜락을 높게 평가하곤 했다. 특히 1959년식 캐딜락 라인업은 당대 최대 크기의 테일핀, 길면서도 낮고 넓은 차체, 핑크색 외장컬러 옵션이 잘 알려져 가장 잘 알려진 캐딜락 차종 중 하나가 되었다.
더 이어서 1960년대에도 캐딜락은 여전히 전성시대를 구현하고 있었으며, 특히 1965년 출시된 5세대 엘도라도는 현재의 Art & Science 디자인 랭귀지에까지 내려오는 캐딜락 디자인 헤리티지의 시작이 되는 기념비적 차종이며, 얼의 후임인 빌 미첼이 1960년대의 GM차 및 캐딜락의 디자인을 이끌었다. 이번에는 크롬 도금의 비중을 대폭 줄여 그릴과 범퍼처럼 중요한 곳에 크롬 도금 사용을 집중시키는 등, 유럽 스타일을 일부 응용하면서도 미국적인 대범함을 결합한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이에 힘입어 캐딜락은 1966년에 판매량 60%가 늘어난 약 19만 2천대를 팔 수 있었고, 1968년에는 20만대 이상을 판매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시기의 엘도라도는 세로배치 전륜구동 설계를 올즈모빌 토로나도에 이어 사용해 코드 L29 이례 최초의 전륜구동 미국차로 기록되었고, 나중엔 엔진 배기량도 8.2L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전성기 동안에는 완전 자동변속기와 고성능 엔진, 차량용 트랜지스터 라디오(1957)와 셀프 레벨링 서스펜션(1957), 밝기 자동 조절식 헤드램프(1953) 등의 수많은 전동 편의장비처럼 기술적으로도 큰 발전이 이루어졌다. 특히 이중저류 브레이크 마스터 실린더(dual-reservoir brake master cylinder)는 미국 법규에서 규정하기 6년 전인 1962년에 캐딜락에서 내놓았고, 자사의 "터보 하이드라매틱" 3단 자동변속기와 완전자동 히터 및 에어컨 역시 캐딜락에서 선보였다. 당시 미국차의 특징이었던 테일핀 역시 1948년에 P-38 라이트닝 전투기에서 영감을 얻은 할리 얼이 도입했고, 총알탄 형상의 범퍼 가드도 캐딜락이 먼저 사용했다.
오일 쇼크 이후 드리운 그림자 (1973 ~ 1998)
오일 쇼크 이후 캐딜락 역시 캐딜락 스빌이나 1977년식 드빌을 비롯해 다운사이징을 모토로 한 차종을 제작하기는 했으나, 쉐보레 카발리에를 뱃지 엔지니어링한 캐딜락 시마론은 역대급 망작으로 판정받고 쓸쓸히 퇴장했다. 시마론은 GM J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는데, 그 플랫폼은 쉐보레와 뷰익, 올즈모빌, 폰티악, 오펠, 복스홀, 이스즈 등 정말 당시의 GM 브랜드라면 다 돌려썼다. 그나마도 성능 같은 부분도 다른 형제차들과 차별화되어 있지 않았고, 결국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로까지 등장하고 말았다.
디자인에 있어서도 더 발전한 제품으로 승부하지 않고 비용절감으로 이윤을 내겠다는 GM 경영진의 뜻을 충실히 따른 총괄 수석디자이너 어빈 리비츠키의 지휘 아래, 뱃지 엔지니어링을 남용하거나 모든 차에 FF 레이아웃을 도입하겠다는 당시 GM의 무리수적인 정책에 의해, 웅장한 후륜구동 레이아웃이나 이에 준하는 세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을 버리고 가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을 쓰는 등, 가면 갈수록 캐딜락의 고유한 디자인 특징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나마 피닌파리나와 공동 제작한 캐딜락 알랑테 컨버터블이 예외이기는 했으나 상업적으로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나머지 라인업은 폰티악이나 올즈모빌, 뷰익 차량들의 붕어빵에 불과해져갔다.
1991년에 등장한 10세대 엘도라도는 명가가 얼마나 처절하게 몰락했는지의 척도였다. 지난 1세대 부터 4세대까지의 화려함의 극치도 5세대부터 이어온 고유의 디자인 헤리티지도 사라진, 과도한 프론트 오버행과 구식의 차체 비례는, 캐딜락이라는 브랜드와 그 대표작의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줬다. 그나마도 전형적인 뱃지 엔지니어링 차종이었던 9세대보다는 상황이 낫긴 했으나, 결국은 1990년대 RV 열풍에 밀려 판매부진에 시달리다 10세대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그 이외에도 GM에서는 캐딜락의 매출액을 크게 늘리겠다고 렌터카로 물량을 왕창 몰아주면서 중고차 가격과 브랜드 가치를 팍팍 떨어뜨리는 "뻘짓"'을 링컨과 같이 밀어붙이고, 1980년대 기술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4-6-8기통 변환 엔진을 장착하는 무리수를 두는 등, 위에서 상술한 온갖 삽질로 인해 캐딜락은 고급차로서의 옛 지위를 상실해가고 있었다.
게다가 모기업 GM의 재정 상황이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는 모습에 사람들은 캐딜락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Art & Science와 고성능 럭셔리 브랜드로의 부활(1999 ~ )
캐딜락은 할아버지들의 바퀴 달린 쇼파라는 굴욕적인 평가, 낮은 판매 실적, 실추된 브랜드 가치를 회복할 계획을 세웠다. 1999년 북미국제오토쇼에 Evoq라는 컨셉카를 통해 새로운 캐딜락의 디자인 랭귀지 Art & Science를 선포했다. 캐딜락이 아트 앤 사이언스를 통해 선보인 초창기 디자인이 가장 과감했으며, 최근의 디자인은 트렌드와 공기역학을 따라가서, 초기의 각지고 날카로운 조형보다는 부드러운 인상의 조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독창성은 유지하면서 세련미를 더하고 있다. 양산차에서는 1세대 캐딜락 CTS와 캐딜락 XLR부터 Art & Science가 적용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컨셉카 Evoq는 양산차 하드톱 컨버터블인 XLR에 거의 그대로 적용되었다. 또한 영화 아일랜드(영화)에서는 2002년에 발표된 미드십 스포츠 컨셉트 차량인 Cien이 주인공[스포일러]원본의 차량으로 등장하여, 경찰차를 따돌리는 등 나름 활약을 한다. 영화에서는 V12 엔진이라고 한다.
다만 캐딜락의 라인업은 2010년대까지는 스포티 럭셔리 브랜드라는 자신들이 주장한 방향성과는 다른 차인 DTS와 그 후속작 XTS, 역대급 실패작 중 하나인 BLS와 같은 전륜구동 차종들이 꾸준히 출시되었다. 특히 BLS는 '캐딜락의 새로운 방향성에 맞지도 않고 재미있는 차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급의 차 중에서 최고도 아니다'는 혹평과 함께 단명했다. 그래도 DTS나 XTS는 보수적인 장년, 노년층 고객들의 취향을 어느 정도 충족해서 판매 실적은 괜찮다.
그렇지만 캐딜락은 CTS-V와 XLR-V를 시작으로 BMW M, Mercedes-AMG, Audi RS, Lexus F, Jaguar R과 같은 고성능 디비전 캐딜락 V를 출범하여 고성능 스포티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단순히 스포티한 이미지가 아닌 CTS-V 쿠페와 ATS.V.R 등을 개수하여 GT3급 레이스에 출전하여 수상하고 2세대 CTS-V로 뉘르부르크링에서 순정 4도어 세단 최초로 랩타임 8분대의 벽을 깨고 3세대 CTS-V로 고성능 고급 중형 세단 세계에서 600마력대의 시작을 알리는 등 단순히 이미지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닌 실제 생산 차량과 모터스포츠에서도 뜻깊은 성과를 거두었다.
2016년 7월 그룹 내 최상위 브랜드 겸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GM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캐딜락이, 향후 계획을 발표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캐딜락의 세단 라인업 계획은 스포츠 세단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다. 이전에 최고 마케팅 책임자 우베 엘링하우스나 요한 드 나이슨 사장이 ATS 아랫급을 후륜 기반으로 제작한다고 밝혔다가, 전륜 기반으로 제작하겠다고 발표가 나는 등 이야기가 많았던 ATS 아랫급 차량은 출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날이 성장해가는 크로스오버/SUV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서가 캐딜락에서 최종적으로 밝힌 공식적인 이유이지만, 사실상 계륵에 가까운 체급의 모델이어서 출시를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ATS는 2018년 중반 캐딜락의 새로운 Alpha-numeric 명명 체계를 따라 CT4로 다시 태어나며, 현재의 세단, 쿠페에 컨버터블 모델까지 추가할 계획이라고 한다. CTS는 2019년 상반기에 CT5로 거듭나며, CT5 쿠페가 2020년 출시될 전망이라고 한다. XTS는 2019년을 끝으로 후속 차종 없이 완전히 단종될 예정이다. CT6는 2017년 상반기에 중국에서 제작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 미국 시장에서 판매될 예정이며, 2018년형 모델부터 4.2리터 트윈터보 LT5 엔진을 장착한다고 한다. 현재 개발 중인 캐딜락의 플래그십 모델은, 요한 드 나이슨 사장의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전통적인 4도어 세단이 아닌 다른 형태의 차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SUV, 크로스오버 라인업은 2018년에는 컴팩트 크로스오버 XT3, 2019년에는 XT5의 길이를 늘여 3열 공간을 확보한 XT7을 추가하여 라인업을 완성시켜 SUV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시장의 트렌드를 따르려는 계획이다. 에스컬레이드는 2017년형 모델에 10단 변속기 장착 외에는 큰 변동 사항없이 2018년까지는 현행 모델로 판매될 예정이며 풀체인지는 2020년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전통적으로 링컨 차량을 선호했으나,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의전용 차량을 캐딜락에서 공급받고 있으며, 이후 자국내에서는 거의 99%의 빈도로 캐딜락만 타고 있다. 정확하게는 일반 양산 차종의 개량형이 아니라 캐딜락의 디자인을 적용한 GM 헤비듀티 트럭인 쉐보레 코디악 기반 특수 차량이다. 사진을 봐도 알겠지만 키 185cm인 오바마와 비교해도 높이가 상당히 높은데, 실제로 차체 사이즈가 그냥 리무진 정도가 아니다. 길이도 긴 탓에 경사길에서 차체가 시소처럼 걸리는 바람에 견인해야 했던 사건도 있었다.(...)
이 차의 별명은 '더 비스트'이다. 다른 대통령 전용기처럼 여벌과 짝지어 2대를 운용하며,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이 관리한다. 철저하게 마개조되어 그 성능이 대단할 것으로 추측되지만 구체적인 성능은 철저한 보안에 붙여져 있다. 연료는 피격시 폭발이 지연되는 경유를 사용하며 이를 위해 미상의 디젤 엔진을 탑재한다. 원본 차량과 기타 쉐보레 대형 픽업트럭들이 사용하는 Duramax 6.6L 터보 디젤 엔진으로 추측된다. 물론 매우 높은 수준의 방탄, 방폭 성능은 기본, 로켓 및 IED 방호력도 가지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화생방전을 대비해 기밀 유지가 가능하며, 각종 비상사태에 대비한 통신기기나 의료기기, 심지어 수혈을 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서 대통령 본인의 혈액도 실려 있다. 사실 이 정도는 웬만한 국가원수 전용 의전차량의 기본옵션이기도 하다.
하지만 항상 이 차량만을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기에, 미 대통령 일가는 쉐보레 서버번 방탄 모델을 탄다.
2017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의 제45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최신형 모델이 공개된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앞모습은 에스컬레이드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듯 하다.(사진)
2017년 한국 방한시에는 이전 모델의 더 비스트를 가지고 왔고 중국에 도착했을때 영상을 보면 대기하고 있는 더 비스트 두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은 나라를 순방할때에는 최소 4대를 가지고 돌아다니는 듯 하다.
Art & Science를 기반으로 디자인에 있어서 개인적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개성의 측면과 완성도에 있어 호평을 받는 캐딜락.
Art & Science의 대담함으로 인해 "어디서 갑자기 이런 디자인이 나왔지?"하는 반응이 많으나 Art & Science는 현대적인 세련미와 함께 캐딜락이라는 브랜드가 수십 년간 쌓은 정체성이 응축되어 나온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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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까지 캐딜락의 이미지는 상어 지느러미(shark fin)형의 날카로운 형상의 디자인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모습과 5세대 엘도라도부터 시작된 정제되었으면서 웅장한 모습의 매우 고급스럽고 멋진 브랜드였다. 고급스럽지만, 중후한 권위만 있는 것이 아닌 멋까지 부리는 그런 느낌인 셈. 거기에다 당대의 최신 기술들을 적용한 컨셉카와 실차를 선보이며 아메리칸 럭셔리의 끝판왕으로 군림하였다.
전후인 1950~70년대까지 엘비스 프레슬리, 마릴린 먼로 등 정상급 스타들과 대통령이 애용하는, 롤스로이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급차 브랜드로 성공의 상징이었다. 캐딜락에 대한 로망(?)을 다룬 곡으로 Southwest Cadillac과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의 White Walls가 있다. 이 외에도 게임 캐딜락&디노사우르스에서도 주인공의 주요 차량으로 나오기도. 정확히 말하자면 캐딜락 62시리즈의 1952년 판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분홍색 캐딜락 엘도라도도 유명하다.
1960년대에 흑인들이 자신들을 무시하던 백인들에게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막 미국에 대량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던 한국인들도 그걸 보고 멋도 모르고 따라서 탔다고...
하지만 오일 쇼크 등으로 인해 효율적인 차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는 당대의 트렌드를 무시하고, 플랫폼과 파워 트레인의 공유는 현재에도 이루어지지만, 당시 GM의 차는 브랜드의 엠블럼 외에는 다른 점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브랜드마다 같은 차를 재탕하고 있었고, 그룹 내에서 서로 겹치는 브랜드도 너무 많았다. 그 결과 캐딜락도 한물 갔다는 인식이 늘어났다. 대표적인 예로 캐딜락 시마론이 있다.
거기에다 1965년 5세대 캐딜락 엘도라도부터 시작된 볼록한 후드와 깎아지른 버티컬(Vertical, 수직) 타입 헤드램프, 위에서 봤을 때 V자 모양의 뾰족한 후드, 웅장한 멋 등의 고유한 디자인 헤리티지까지 버린 10세대 엘도라도와 스빌 STS, 카테라의 등장은 명가의 몰락은 시간 문제라는 세간의 평의 명확한 근거가 되었다.
한때 젊은층을 공략한다고 사브 9-3을 기반으로 한 전륜구동 세단인 캐딜락 BLS라는 차종을 출시했으나, 처참하게 망해버리면서 캐딜락 시마론 이후로 손꼽히는 GM의 역대급 실책이 되어버렸다.
1999년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 오토쇼에서 Evoq 컨셉을 공개하며 과거의 디자인 헤리티지를 세련되게 계승한 아트 앤 사이언스라는 디자인 랭귀지를 선포하여 과감한 직선과 후륜구동 특유의 역동성과 우아함을 2016년 현재까지 세단 라인업에 불어넣고 었다.
14년만에 다시 엠블럼를 바꾸었다. 월계관과 문장 안의 새가 빠지고 방패 모양의 로고만을 남겨두었다. 변경된 엠블럼이 젊고 신선하며 Art & Science 이후 캐딜락의 방향성에 어울린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월계관이 없어지면서 옛 엠블럼에 비해 품격이 떨어져 보인다는 평가도 있고 옛날에 디자인된 차들에는 신형 엠블럼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 또한 많이 있다.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 중 뷰익 다음으로 오래 되었으며, 브랜드 가치로는 미국의 자동차 중 원탑이다. 지금 미국에 럭셔리 카 브랜드가 캐딜락이랑 링컨밖에 없는 실정인 데다, 미국을 제외한 해외 시장에서의 캐딜락의 판매량은 안습이기는 하지만... 다만 최근 중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부쩍 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그 동안의 부침에서 벗어나는듯한 모습이지만, 사실 성장의 이면에는 건전하지 못한 판매정책이 있다. 2016년 4월 CTS 4륜 최고급 트림 기준으로 1700만원 가까이 싸게 팔고 있다. 이렇게 대규모로 진행되는 파격적인 프로모션은 단순히 보면 소비자들이 좋은 차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만큼 문제를 떠안고 있다. 일단 평소에 정가를 주고 구입한 소비자들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고, 브랜드는 신뢰를 잃게 될 수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사실상 전부를 잃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게다가 이렇게 할인을 진행하면 그만큼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GM코리아는 A/S와 같은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줄이거나 부품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는 등, 결국 캐딜락을 선택한 소비자들에게는 손해가 되는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미있는 시장 지분을 얻고자 한다면 GM코리아는 좀 더 건전한 판매 정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같은 GM 소속 브랜드인 뷰익과 함께 중국에서 폭발적인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의 어르신들에게는 저 브랜드 자부심이 괴상하게 변형되어 쓰이기도 한다. "죽을 때는 캐딜락 좀 타야 되지 않겠냐?" 일본에서 고급 장의차량으로 캐딜락의 왜건이 많이 쓰이는 것에 대한 풍자. 요즘은 한국에서도 일본 상조사업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가끔 캐딜락 장의차가 보인다.
가끔씩 캐딜락의 수입 법인 GM코리아와 한국GM과의 통합설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당사자들은 "각 법인 특성에 따른 제반 법·제도 요건이 달라 실효성이 없다"라고 매번 부인하지만, 현재 한국GM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제임스 김이 GM코리아의 기타비상무이사로 올라가 있고, 2월 ATS-V 발표회에서 장재준 GM코리아 대표와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물론 출신성분은 전혀 다르지만(...)
캐딜락이 정치 논란에 휩싸였다. Real People이라는 이름의 미국 내 온갖 계층의 사람들을 담는 광고에 출연할 사람을 모집하는데 그 역할이 대안 우파 인사라, 사회적으로 영국의 통신사 <로이터>를 통해 처음 알려진 이번 사건에 대해 인터넷에서 비난이 크게 일었다. 극작가이자 연극배우인 지나 영(Gina Young), 변호사 체이스 스트레인지오(Chase Strangio)는 물론 대부분의 시민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표했다. 다만 이 모집을 캐딜락이 직접 기획한 것은 아니며, 이 모집을 기획한 회사는 이 공고를 낸 직원을 해고한 후, 캐딜락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한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