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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 이야기

머스킷(musket)

작성자관운|작성시간18.02.15|조회수2,000 목록 댓글 0


머스킷(musket)

 

 

 

 

 

 


 

 

머스킷의 좋은 점이 뭔지 알아? 쏘기 전에 진정할 시간을 주거든. - 짐 제프리스

 

 

영어 : musket

프랑스어 : mousquet

독일어 : Die Muskete

이탈리아어 : Il moschetto

스페인어 : El mosquete

 

18~19세기에 널리 쓰였던 초기의 총기. 개머리판과 방아쇠, 총신 등 현대 총기의 기본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는 흑색 화약 무기이다. 조총이라고 부르면 이 쪽에 조예가 없는 사람들도 알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와 일본 등이 쓰던 조총은 매치락 방식의 아르케부스(=Arquebus) 계열이고, 머스킷은 아르케부스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아르케부스는 개머리판이 없으며 구경도 보다 작고 총신도 짧은 반면 머스킷은 구경이 보다 크며 총열도 4피트(대략 122cm) 이상, 그리고 개머리판까지 갖춘 보다 진보된 총기다. 매치락이나 플린트락과 같은 격발 방식과 머스킷의 정의는 하등 관계가 없으며, 위의 조건에 부합한다면 매치락도 얼마든지 머스킷으로 분류된다. 다만 아르케부스가 플린트락 방식이 개발되기 이전에 쓰였다가 도태된 총기라 아르케부스는 매치락이라고 보면 대체로 정확하다. 반면 머스킷은 플린트락이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매치락 아르케부스인 조총과 매치락 머스킷을 비교해보면 차이점이 보인다. 아래가 머스킷이다.

 

물론 나중에는 아르케부스도 대구경화 되며 총열도 길어지는 양상을 보이게 되기 때문에 양자간 명확한 구분은 힘들어진다. 조선도 천보총과 같은 대구경 아르케부스를 썼기 때문에 차이는 개머리판의 유무 정도만 남게 되는 셈.

 

보통의 경우는 전장식(앞으로 장전하는) 총기로 분류되며 이쪽이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후장식 구조를 사용하는 것들도 은근히 많았다(개중에는 리볼버식도 있었다).

 

상기 분류표에는 강선의 유무로 머스킷과 소총을 나누었으나 그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초기에 강선을 판 총기는 머스킷으로서 영국군 제식으로 채택됐던 베이커 라이플이 유명하다. 라이플은 전장식에 최적화된 무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전장식 라이플 머스킷은 일반적으로 극악의 장전속도를 보여주었다. 총탄이 총열에 꽉 물려야 했기 때문에 총알을 헝겊이나 가죽으로 싸 총구로부터 망치질로 때려박아야 했다고 한다. 이러한 라이플 재장전의 문제점은 머스킷에서 벗어나 후장식 소총이 도입된 다음에야 해결되었다. 따라서 근대적인 소총과 머스킷의 차이는 장전 방식과 격발 방식을 복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물론 'rifle'을 문자 그대로 강선의 의미로만 본다면 확실히 강선을 파기 전의 총기와 이후의 총기는 확실히 다르기는 하다. 강선을 판 머스킷은 형식과 무관하게 따로 라이플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참고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 삼총사의 원래 명칭이 Les Trois Mousquetaires (The Three Musketeers), 말 그대로 머스킷 사수 삼인방이란 뜻으로, 당시 프랑스에서 머스킷 보병은 국왕 친위대였다.

 

 

2. 역사

 

 

가장 초창기의 머스킷은 불이 붙은 밧줄로 점화약을 점화하는 화승식(매치락) 머스킷이었다. 흔히 말하는 화승총이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이후 차륜식(휠락)방식에 이어 부싯돌의 마찰을 통해 점화약에 불을 붙이는 수발식 혹은 수석식(플린트락) 머스킷이 등장하였다. 화승식 머스킷과 차륜식 머스킷이 사용되던 시기의 군대에는 머스킷 사수뿐 아니라 장창병 등 냉병기로 무장한 병사들도 상당수 있었으나(본격적인 백병전 상황이 되면 냉병기 쪽이 더 유리하니까), 수발식 머스킷이 등장할 때쯤에는 이제 보병=머스킷 사수였다.

 

유럽인들이 세계 각국에 식민지를 건설할 때 그 첨병이 되었고, 그를 통해 아메리카 등 유럽 바깥의 문명권에도 전래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때문에 아메리카의 어떤 영국 식민지에서는 머스킷으로 무장한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백인이 활로 대항하거나 서아프리카에서도 머스킷으로 무장한 흑인 부족들이 석궁을 든 스코틀랜드의 노예상인에게 맞섰다는 식의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머스킷은 온갖 동네에서 워낙 많이 만들고 팔아 치워서, 유럽인들이 상대해야 할 토착군대도 보유한 총기류의 숫자가 만만치 않은 경우가 흔했다. 게다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경우 아예 대장장이들이 총기를 자체 생산/수리하기까지 해서(성능도 의외로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 전투시 유럽인들이 대장간을 우선 순위로 공격하는 일도 생겨났다. 아랍권의 유격전용 전장식 소총인 제자일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유럽의 우위를 확고히 한 사례는 대개 천지개벽 산업혁명 후. 세상사가 무기만으로는 안 된다는 중요한 교훈이다. 물론 유럽에겐 금은보화와 초석(화약의 중요한 재료)이 떼로 굴러 들어온 아메리카가 있었던 덕도 크다.

 

수발식 머스킷이 등장한 이래 거의 100여년간 구조상의 큰 변화가 없이 사용되다가, 19세기 초중반에 발명된 뇌관과 미니에 탄으로 인해서 성능이 크게 개선되었다. 이것이 머스킷 라이플의 최종 진화형으로 당시의 금속 가공 기술과 경제성, 생산성 등의 한계로 잠시 종이 탄피, 금속 탄피 소총 들과 공존하다가 기술의 발전, 무연화약의 등장 이후 새로운 총기 기술의 발달로 점차 도태되다가 사라진다.

 

 

활과의 비교

 

 

총기류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이었던 원거리 무기인 활과 비교하자면 활에 비해 명중률이 떨어지고, 장전하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며, 날씨가 습해지면 화약이 물을 먹어 발사불능 상태가 되기도 하는 등 고질적 단점들이 있었다.

 

 

당장 일반 머스킷 기준으로 최대 사거리 자체는 500~700미터 가량으로 활을 능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실질적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유효 사거리는 매우 짧았다. 일반 사수의 평균적인 적정교전거리는 150~200미터 정도라고 말하고 당시의 탄환은 십몇mm 지름의(당시 기술이 좋지 않아서 나라마다 지름이 조금씩 달랐다.) 납구슬이었고, 운동에너지는 2000~3000J 까지도 올라가 살상력만은 확실하지만, 일단 맞아야 죽을 거 아닌가.

 

일단 탄의 형상이 공기역학적이지 못해서 일정 사거리를 넘어가게 되면 탄도가 제멋대로였고, 강선 등의 탄도안정기술도 없었기에 명중률이 지독하게 나빴다. 브라운 베스를 쓰던 대영제국 시기의 경우 일반 레드 코트 병사가 인간 크기의 표적에 대해 단발로 쐈을 때 명중률을 장담할 수 있는 것은 50야드(45m) 정도라고 봤었다. 때문에 느린 재장전 속도와 나쁜 명중률을 극복하기 위해 머스킷 사수들은 최대한 적을 끌어들여서 밀집한 상태로 일제 사격하여 탄막을 펼치는 전술로 기본 교육을 받았다. 이 일제사격 훈련시 표적은 인간형 표적 하나가 아니라 보병 소부대나 말 탄 인간 크기를 상정한 커다란 현수막이었는데, 탄착흔이 50% 이상이라면 유효라고 봤다. 이렇게 일제사격할 경우 유효사거리는 100야드 내외로 늘어났다.

 

다만 저격병이나 명사수의 경우 활강 머스킷으로 150m까지도 커버하는 경우도 있었다. 흑색화약을 사용하는 머스킷은 몇 발 발사하면 탄매가 심하게 끼기 때문에 일부러 헐렁한 탄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빠른 재장전을 위해 와드도 꽉 차는 것을 쓰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느긋하게 쏠 수 있는 민간인 사냥꾼들은 가죽이나 천으로 된 와드로 꽉 들어맞는 탄을 장전했고 100야드 너머의 사냥감도 곧잘 노렸다.

 

장전 속도의 경우에도 보통 병사는 1분에 2, 대부분이 나무조각이나 끼우며 연습할 때 실탄으로 훈련을 하던 영국의 레드 코트처럼 매우 숙련된 사수는 분당 3발 정도를 쏠 수 있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 평안도와 함경도 포수들 중에서는 조준이 아닌 방포의 경우에 한해서 분당 4발에서 최대 5발까지 방포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31킬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지만 그래도 활보다는 연사력이 느리다.

 

하지만 활도 날씨가 나빠지면 사용이 불가능한 것은 마찬가지였으며, 활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력이 뛰어나고 숙련된 머스킷 사수를 양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숙련된 궁수를 양성하는 데 드는 시간보다 훨씬 짧았기 때문에 곧 전장의 주역이 되었다. 활보다 속사능력이 떨어지고 사거리도 떨어지지만 다루기 쉽기 때문에 사수를 많이 양성할 수 있음으로서 물량으로 사거리와 속사력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기 때문. 게다가 활의 속사력도 양날의 검이었는데, 활의 발사 속도와 연사력은 당시의 총보다는 나았지만 대신 끊임없이 힘을 써야하는 무구라 사격 유지 능력과 지속발사 능력은 오히려 총이 더 나았다. 100파운드가 넘어가는 전투용 활을 끊임없이 발사하는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게임 만화 등 대중매체에서 연약한 마른 여성 등이 활을 무기삼는 묘사가 많다보니 착각하기 쉬운데 옛날 전쟁 활은 당기는 힘이 상당히 많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머스킷뿐만 아니라 모든 화약병기의 강점이기도 한 화약폭발음은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데 더 할 나위없이 훌륭했다. 활보다 사수 양성에 유리했던 쇠뇌도 같은 이유로 머스킷에게 밀려 도태되었다. 조선을 포함해서, 활로 한가닥 한다고 유명하던 민족들이 전부 머스킷을 접하자마자 활 대신 총으로 갈아타거나 적어도 총을 매우 중요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제국주의 시대의 여명기에 세계를 정복하기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치명적인 무기.

 

사실 머스킷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가격이였다. 총기 자체도 지금 기준으로는 저열하기 짝이 없는 쇠파이프에 나무쪼가리 붙인것에 불과하지만 아직 산업혁명도 없었던 시기에는 최첨단 기계공학이 듬뿍 들어간 작동 기계였고 그렇게 온갖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봐야 심심하면 오발이 나는 물건이였다. 그때문에 총기 장인들을 닥달하며 만들어봐야 머스킷의 생산성은 영 좋지 않았고 당연히 머스킷의 가격을 올라갈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도 어떻게든 머스킷을 확보하려고 죽어라고 개고생했을정도.

 

머스킷만 비싼게 아니라서 머스킷을 쏘려면 꼭 필요한 화약 같은 소모재도 엄청나게 비쌌다. 화약에 들어가는 숯은 그렇다 쳐도 유황, 특히 초석은 유럽에선 대량으로 구하기가 난감한 물건이라 대부분 신대륙에서 수입해와야 했다. 게다가 격발에 필요한 화승이나 고급 부싯돌도 비싸긴 매일반이라... 때문에 현대 군대에선 당연히 실탄 훈련을 하는데 반해서 당시의 전열보병들에게 실탄훈련은 극히 적은 횟수만 하거나 아니면 그냥 한번도 해본적 없는 일이였다. 때문에 빈총으로 대충 훈련해놓고 부사관들이 "실제로는 다르니까 실전에선 다르게 하라~"라는 말을 덧붙이는 일은 당연한것이였다. 때문에 전쟁이 격해지자 대충대충 훈련받고 투입된 전열보병 신병은 자기가 쏴놓고 자기가 겁먹는일이 비일비재했다.

 

활과 마찬가지로 근접전에서는 치명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머스킷티어의 기록에 따르면 검을 휘두르거나 총을 몽둥이처럼 사용하는건 예사고, 심지어는 투구나 지지대는 물론 탄띠나 맨손으로도 발악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총검이 널리 퍼지기 전인 근세에는 머스킷 사수들이 한손 도검을 보조무장으로 챙기거나, 란츠크네히트 용병대 등에서 도검을 다루는 도펠죌트너들이 포수를 겸하기도 하였다. 보병들이 반자동 소총을 제식화기로 삼은 2차대전기의 미군도 백병전 상황에서는 총을 거꾸로 들고 휘두르거나 주먹질을 하거나 철모를 집어던지는 등의 난리를 쳤는데, 총검도 없이 전장식 화기를 쓰던 근세의 머스킷티어들은 오죽했겠는가. 다만 총검이 배치된 이후부터는 그런거 없다. 모든 냉병기 병종은 거의 다 머스킷 병의 총검으로 대체되었으며 총알을 퍼부어대면서도 단창과 같은 운용을 할수 있었던 착검 머스킷 앞에 기병들은 눈물을 흘리며 물러설수밖에 없었다.

 

 

2.2. 18~19세기 머스킷 사수의 전술

 

 

보통 머스킷 사수끼리의 교전은 현대의 총격전에 비하면 짧은 거리에서 이루어졌는데 머스킷의 정확도와 사거리가 몹시 떨어졌기 때문이다. 머스킷의 명중률은 상기했듯이 몹시 조악해서, 100야드(91m)를 초과한 목표물에 대해서의 사격은 명중률이 많이 떨어졌다. 머스킷 소총의 통상 교전거리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약 60~80m 정도였고, 좀 더 나은 명중률을 얻기 위해 적군의 코앞, 40m까지 접근해서 일제사격을 퍼붓는 경우도 있었다. 그 거리에서는 바보 같은 신병이 하늘을 향해 발포하지 않는 이상 맞출 수 있었다.

 

게다가 머스킷의 구조상 오히려 높게 쏘지 않아 명중률이 더 나빠졌다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애초에 납구슬인 당시 총알 특성상 거리가 멀어질수록 탄속이 크게 감소하고 현대의 총보다 심한 곡선 탄도를 그릴 수밖에 없는데 명중률이 나쁜 가장 큰 이유는 비회전으로 인한 탄도 불안정 다음으로는 거리에 따라 조준선을 조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숙련된 사냥꾼이나 저격수들은 탄도에 대한 감각이 좋았으니 거리가 멀어지면 조준선을 위로 향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먼 거리에서는 머리를 조준해서 가슴을 맞추는 식이다. 이렇게 세밀한 운용은 조선시대 사냥꾼이나 나폴레옹 시대 볼티저 경보병처럼 머스킷으로 상대를 저격하는 데 숙련된 인원만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머스킷이 반동이 강했다는 점도 근거로 들 수 있는데, 현대에도 권총 입문자에게는 반동이 작은 권총을 먼저 추천한다. 처음부터 강한 탄을 쓰면 보통 무의식적으로 반동을 겁내 방아쇠를 당길 때 조준선을 아래로 향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건 본인이 의식하기도 힘든 일이라 단시간내에 교정하기도 힘들다. 이와 마찬가지로 머스킷도 반동이 강한 편이었으니 무심결에 조준선을 내리는 병사가 많았을 거라 추측할 수 있다. 전장식 머스킷은 둥근 납탄을 썼기 때문에 현대의 총기에 비해 구경이 무식하게 큰데다 현대 총기처럼 반동을 흡수하기 위한 악세사리가 달린 것도 아니니 체감 반동이 클 수 밖에 없다. 실제로도 총열을 직선으로 놓고 쏘면, boresight가 상대 가슴을 향할 때 40m 거리에선 대충 복부에 80m 정도면 대개 허리 아래에 맞게 된다. 당시 소총병의 전투 양상과 조준장치를 고려하면 대략 80m 부근에서 교전을 하고 확실히 맞추려면 40m이내가 되는 것은 당연한 셈. 그정도 거리라면 앞서 말했듯이 대충 조준한 곳보다 10~20cm 아래쪽으로 떨어질 뿐이니 어지간히 아래 방향으로 쏘지 않은 다음에야 표적에 맞는다. '낮게 쏴라'는 명령은 근접 사격시 해당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한 발 쏘고 착검돌격을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상황에 따라 같은 자리를 지키면서 연속적으로 사격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보통의 병사들은 횡대 등 조밀한 진형을 짜서 사격하였다. 일제사격을 통해 화망을 구성하는 것으로 총기의 낮은 명중률을 보강하고, 화력상의 우위와 백병전 상황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머스킷으로도 나름대로 정밀한 개인별 조준 사격이 실시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Voltigeurs를 비롯하여 각국의 경보병(Light Infantry)들은 전열을 짜지 않고 자연적 엄폐물을 이용하여 21개조로 사격전을 펼치면서 싸우는 전술(스커미시)을 즐겨 활용하였다. 이러한 경보병들은 추가적으로 사격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

 

머스킷의 정확도나 사거리가 현대 총기에 비해 몹시 떨어졌다는 점 때문에, 당시 전쟁이 사격보다는 총검 돌격을 위시한 백병전만으로 결정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다. 비록 머스킷이 현대 화기에 비해서 정확도와 사정거리가 떨어진다고 하지만 얘도 일단은 총포다. 유효 사거리 내에서, 숙련된 머스킷 사수들이 퍼붓는 일제사격을 받으면 그 누구도 목숨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단적인 예로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군을 향해 돌격하던 프랑스군의 제국근위대는 능선 뒤에 엄폐하고 있던 영국군의 머스킷 일제사격을 얻어맞고 제1파가 박살났다. 총검 돌격이 당시 보병의 결전기술로 쓰인 진짜 이유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장전 속도 때문이다. 방금 언급한 워털루의 영국군도(당시 세계 최고의 장전 속도를 가졌음에도!), 이어진 제4근위엽기병연대의 돌격에 그대로 녹아내렸다. 참고로 나폴레옹 전쟁 후반기로 가면 유달리 프랑스군이 총검돌격과 근접전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러시아와 스페인 등지에서 숙련병과 장교들이 다수 희생되었고 물자 문제로 사격전으로 좋은 결과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지 총이 문제는 아니었다.

 

머스킷도 맞추기만 하면 무지막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걸 입증하는 사례가 하나 있는데, 해부학, 의학사를 공부하다 보면 나오는 일화 중에는 머스킷 오발사고로 스스로의 배때지를 쏜 사람이 구멍난 위장을 몸 밖으로 노출한 채로 병상에 누워 의사양반이 위장 속 내용물과 위장의 역할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해괴한 이야기가 있다.

 

 

머스킷의 최종진화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이후 머스킷은 두 가지 발명품 덕에 더욱 발전하게 된다. 첫 번째는 뇌관(Percussion cap)이고, 두 번째는 미니에 탄(Minie ball)이었다.

 

첫 영국의 포사이스에 의해 발명된 뇌관은 작은 금속 관 안에 뇌산염을 넣은 물건으로, 충격을 가하면 불꽃을 일으킨다. 그 이전까지의 머스킷은 화약 접시에 부은 점화약에 부싯돌로 불꽃을 일으켜 총신 안의 장약을 터뜨리는 수발식이었는데 수발식 머스킷은 비가 오거나 해서 점화약이 젖으면 발사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치명적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나 점화약이 흑색화약이 아닌 뇌관으로 대체되면서 병사들은 날씨에 상관없이 머스킷을 사격할 수 있게 되었다. 덤으로 장전 절차도 약간 편리해졌다(화약 접시에 화약을 부을 필요 없이 뇌관만 끼우면 되니까). 게다가 장전시 불발률도 떨어졌다. 수석식 총의 불발률은 25%() 그래서 불발시 행동군율까지 다 정해졌고, 그 절차를 다 거치면 교전중 도주도(!!) 허용되었다. 하지만 어차피 그사이 동료가 죽고 그 총을 받아서 쏘게 되니.

 

두 번째인 미니에탄은 프랑스의 미니에가 발명한 머스킷용 탄환이다. 미니에탄에 대해 설명하려면 우선 당시의 라이플(선조총)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강선이 없는 머스킷이 전장을 지배하던 18세기 이전부터도, 이미 총열에 강선이 새겨진 총(라이플)은 존재했으나 군용으로 광범위하게 쓰이지는 못했다. 우선 당시 기술로는 총열에 강선을 새기는 것이 비싸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더 큰 이유는 당시 라이플의 경우 장전에 걸리는 시간이 머스킷보다도 더 길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라이플의 강선이 효과를 보려면 탄환이 강선에 꽉 낄 정도로 맞물려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 탄환 한발한발을 가죽이나 헝겊으로 감싸서 총열에 밀어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 자체도 번거로울 뿐더러 헝겊에 감싸여 지름이 커진 탄환은 장전봉으로 밀어넣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당시 라이플 사수는 심지어 장전봉과는 별도로 탄환을 총열 안에 때려박는 나무 망치를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미니에탄은 당시 라이플의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주었다. 1849년 프랑스 육군 장교 클로드-에티엔 미니에가 개발한 미니에탄은 이전까지의 머스킷 탄환처럼 공 모양이 아니라 원추형으로, 뒷부분이 움푹 패여 있었다. 이 탄환을 머스킷에 넣고 발사하면, 발사시의 화약 연소 가스가 미니에탄의 크기를 확장시켜서 탄환이 강선에 딱 맞물리게 된다. 즉 미니에 탄환을 사용하면 비교적 빠른(즉 일반적인 머스킷 수준의) 장전 속도로 강선총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장전 속도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미니에탄은 유선형이므로 공 모양인 구식 머스킷 탄환보다 정확도나 사거리라는 측면에서 우월하다. 즉 미니에탄 덕택에 머스킷은 장전속도와 정확도&사거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9세기 중반 이후의 머스킷은 이전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머스킷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정거리와 발사속도, 그리고 신뢰성을 가진 무기로 진화하였다. 당장 뇌관을 사용하는 머스킷의 경우 총열 내부의 화약 자체가 젖지 않는 한 어지간해서는 불발될 일이 없다는 것만 생각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그래서 이 시기의 머스킷을 이전 시기의 활강(강선이 없는) 머스킷과 구분하여 보통 강선 머스킷(Rifled-musket)이라 부른다. 강선 머스킷은 19세기 중후반까지 쓰였으나 후장식 총기와 금속 탄피 탄환이 발명되고 개량되어 점차 널리 보급되면서 사라져갔다.

 

하지만 막 종이탄피를 이용한 후장식 소총인 드라이제 소총이 등장했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나 금속 탄피를 이용한 연발 소총인 헨리 소총이 등장한 미국 남북 전쟁 시기에도 전장식 소총은 여기저기서 잘만 쓰였다.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당시 초창기 후장식 소총들의 성능이 생각만큼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니들건이라 불리던 프로이센의 드라이제 소총은 비효율적인 종이탄피의 구조로 인해 만들어진 바늘 모양 공이가 툭하면 부러지기 일수였으며 부족한 기술력으로 약실이 제대로 폐쇄되지 않아 틈으로 화약 연소가스가 뿜어져 사수의 얼굴을 구워버리는(...) 사태가 종종 발생했다. 연사력 이외에 유효사거리, 정확도, 신뢰성은 다 떨어진 셈. 전쟁은 프로이센이 승리했으나 이건 전략적인 이유가 더 컸다. 후에 나오는 금속 탄피제 헨리 소총은 작동은 좀 더 매끄러웠으나 많은 화약을 넣을 수 없어 초구 탄속은 머스킷 라이플이 3배 이상 빨랐다고 한다.

 

둘째는 단연 가격이다. 말할 것도 없이 당시의 종이 탄피 후장식 소총은 머스킷 라이플에 비해 3배 이상 비쌌으며 헨리 라이플은 그보다도 훨씬 더 비쌌다. 당연히 군대의 제식무기는 대량 생산하여 대량 지급하여야 하는데 가성비 면에서 대부분의 국가는 기존에 산업 설비까지 다 갖춰진 전장식 소총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남북전쟁에서 남군은 울며 겨자먹기로 머스킷 소총을 사용할 때 상대적으로 경제력과 기술이 뛰어났던 북군은 장탄수 7+1의 헨리 소총을 마구 쏴재꼈으며 결국 '더러운 양키 새퀴들이 월요일에 장전해서 일주일 내내 쏴대는 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초창기 리볼버들도 사실상 작동방식 자체는 머스킷과 같았다. 실린더에 흑색화약과 탄환을 넣고 총에 달린 램로드로 꽉 눌러준 후 실린더 뒷부분에 뇌관 캡을 달아 점화시키는 방식. 비단 콜트뿐 아니라 레밍턴, STARR, Beaumont-Adams등 당대 리볼버가 전부 다 그랬다.

 

 

20세기 이후

 

 

현재는 미국 등지에서 민수용으로만 사용되는데, 그런데도 소지허가가 필요없다나 뭐라나. 사실 전장식 총기는 미국 연방총기법률로는 ""이 아니다. 앤티크(골동품), 레포츠 도구(활과 마찬가지)로 구분될 뿐... 그래서 딱히 등록할 필요도 없고, 대형 마트에서 활이나 나이프와 같이 즉석으로 판매한다. 제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실총 구매시에는 반드시 신분 확인(범죄 경력 확인) 절차가 들어가는데, 머스킷은 총 취급을 하지 않다보니 돈만 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판다. 물론 법률상 총이 아닐 뿐 위험한 도구이긴 마찬가지이기에, 지역에 따라서는 총기법이 아닌 별개 법률로도 규제할 수 있다. 미국 연방법률 상 도검은 규제되지 않지만, 위험한 물건이니 거리에 차고 다니거나 남한테 휘두르면 경찰에 잡혀가듯이.

 

매치락, 플린트락과 퍼커션 캡 방식 모두 리프로덕션되고 있다. 활이 그렇듯 이런 재래식 총기는 나름대로 팬층이 있기에, 되도록 재래식을 재현한 물건을 원하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플린트락과 퍼커션 캡은 총포사에 가면 대부분 비치하고 있을 정도로 찾아보기 쉽다. 화승식은 상당히 드물지만 리인액터 시장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 주문으로 조달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하지만 스톡이 목재가 아닌 카본 파이버로 되어 있고 피카티니 레일이 장착된 신소재 머스킷도 생산되고 있다. 생김새는 딱 보면 볼트액션이나 중절식 엽총 같지만, 사실은 전장식이며 볼트액션이나 중절부위처럼 생긴 그쪽으로는 209 프라이머를 장전한다. 플래툰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현대 총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화염과 연기의 양에 매료된 매니아들이 주로 찾는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국은 사냥 시즌에 흑색화약 총기만 쓸 수 있게 하는 특례 기간이 따로 있어서 이 시기에 사냥하고 싶어서 사냥용 머스킷을 사는 사람도 있고, 아직 실총을 구매할 수 없는 나이의 청소년들이 머스킷과 구식 C&B 흑색화약 리볼버로 총기 관련 취미에 입문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좀 더 나가면 최신식인 전기 격발식이 있다. 흑색화약이 전기에 민감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요새 나오는 흑색화약은 전부 흑연 코팅을 해서 80만볼트 스턴건으로 지져도 기폭하지 않는다. 그래서 캐퍼시터로 승압한 전기를 챔버 쪽에 흘려서 전기 아크를 일으켜 그 불꽃으로 화약을 점화한다고 한다. 방아쇠가 그냥 스위치일 뿐이다보니, 일반 뇌관을 사용하는 머스킷보다 훨씬 방아쇠 반응이 빠르다는 게 장점. 뇌관 교체조차 필요 없기에 궁극의 머스킷으로 불리지만... 시장의 반응은 영 아니라서 시범적으로 팔리고 만 모양.

 

흑색화약에서도 꽤나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옛날식 그대로 알갱이형(코닝 거친) 진짜 흑색화약도 판매하지만, 유사 흑색화약(Black powder substitute)이라고 하여 흑색화약과 같은 부피로 같은 화력을 내며(요건 제품마다 좀 다르다) 비슷하게 연기가 나지만, 연소물이 덜 남고 깨끗하게 잘 타고, 효율적이고, 더 안정적이라 무연화약처럼 편하게 다룰 수 있는(흑색화약은 꽤 위험물이다. 통으로 쌓아놨다 잘못 불붙으면 밀폐공간에서는 고폭약에 준하게 폭발한다.) 물건이라 근래의 머스킷 사수들이 많이들 애용한다. 파이로덱스, 블랙 맥, 트리플 세븐 등의 제품이 있다. 다만 유사 흑색화약은 점화 온도가 좀 높은 편이라 플린트락으로는 불발이 잘 나고, 최소한 퍼커션 캡이나 현대 총기용 프라이머를 쓰는 게 좋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서, 화약을 분말/알갱이로 파는 게 아니라 총열 크기에 쏙 들어가는 원통형 고형 화약으로도 판매한다. 미리 크기가 결정돼 있기에, 몇 개의 원통을 넣으면 되는지만 정하면 되므로 항상 계량컵이 필요한 분말보다 필드에서 다루기 쉽다. 분말보다 연소효율이나 안정성도 더 우수하다.

 

뇌관 역시 재래식 구리 캡을 쓰는 것도 있지만, 폴리머 스톡을 사용하는 신형 머스킷은 산탄 샷셸용 뇌관인 209 프라이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플린트락 총기는 예나 지금이나 그냥 구식 플린트락 구조를 계속 쓴다.

 






머스킷(조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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