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르크 성(Malbork Castle)
말보르크 성은 13세기 후반 튜튼 기사단이 프로이센 지방을 정복한 뒤 지은 벽돌 고딕(Brick Gothic) 양식의 성으로 현재 폴란드 포모제 주 말보르크 시에 위치해 있다. 1457년 폴란드에 넘어갈 때까지 독일기사단장의 거성이자 기사단의 수도로 기능했다. 독일어 명칭은 마리엔부르크 성 또는 '올덴스부르크 마리엔부르크'.
제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크게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었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지상 면적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성채다.
2. 역사
튜튼 기사단은 1226년 폴란드 마조프셰 공 콘라드 2세의 요청으로 현지민의 복속과 카톨릭화를 위해 프로이센 지방으로 들어왔다. 우월한 군사기술을 가지고 있던 기사단은 약 20년에 걸쳐 천천히 이 지방을 정복하고 복음을 전파했다. 프루시인들은 순순히 기사단에 굴복하는 듯 했지만 1242년과 1260년 두차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튜튼 기사단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엄청난 학살과 파괴를 자행하며 반란을 진압한 튜튼 기사단은 자신의 영지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약 1280년 경 이 성을 지었고 '성모 마리아의 성'이란 뜻으로 마리엔부르크(이하 현재의 이름인 말보르크 성으로 통일)라 이름붙였다.
1308년 그단스크와 포메라니아 일대를 정복한 기사단은 1309년 본부를 베니스에서 말보르크 성으로 이전하면서 이 성은 기사단국의 수도가 되었다. 엘빙(엘블롱크)에 있던 포메라니아-프러시아 일대의 행정 본부도 말보르크 성으로 옮겨왔다. 말보르크 성은 튜튼 기사단장의 궁전이면서 약 3000명의 기사와 그 휘하 병사들의 병영이기도 했다. 따라서 14세기 내내 성은 개축과 확장을 계속했고 유럽 최대의 요새가 되었다. 성이 비스와 강의 지류인 노가트 강에 딱 붙어 있어서 이 성은 무역항의 기능까지 수행했다. 또한 다른 튜튼 기사단의 성과 마찬가지로 이 강을 지나는 배에 통행세를 물려 소소한 수익을 챙기기도 했다.
1410년 7월 15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연합군은 그룬발트 전투에서 튜튼 기사단군을 궤멸시켰다. 3만의 연합군은 여세를 몰아 말보르크 성도 공성했지만 성의 엄청난 방어능력 때문에 실패했다. 1454년 폴란드 야기에우워 왕조의 카지미에시 4세는 기사단국에 대한 정복을 재차 단행했다. 1410년의 전쟁으로 세가 크게 약화된 기사단은 핵심 전력인 '형제 기사'와 그 휘하 병사들을 야전에 보낼 수밖에 없었고 말보르크 성은 보헤미아의 용병들에 의해 방어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기사단은 폴란드에 포로로 잡히는 기사와 병사들의 몸값을 점점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고 용병들에 대한 급료 지불도 계속 늦어졌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사단은 도시의 세금을 올렸지만 엄청난 반발을 사기만 할 뿐이었다. 당시 기사단의 지배를 받던 단치히는 폴란드와의 무역 금지조치, 세금 인상 등의 문제로 기사단의 지배에 불만이 많았다. 단치히는 폴란드로 복속되길 원하며 왕국에 자금을 지원해줬는데 폴란드는 이 자금을 모아 급료를 못 받고 있던 보헤미아 용병들에게 대신 지불하고 성을 떠나 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중부유럽 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던 말보르크 성은 어처구니없게도 빈 성이 되어버렸고 1457년 카지미에시 4세는 적국의 수도에 입성했다. 왕은 단치히(그단스크)에 감사를 표하며 특권을 향상시켜주었다. 1466년 전쟁이 끝나고 폴란드와 기사단이 2차 토룬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말보르크는 완전히 폴란드 왕국에 편입되었다.
1466년 폴란드의 왕령 프루시에 편입된 말보르크 성은 폴란드 왕의 별궁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폴란드가 몰락하고 1772년 1차 폴란드 분할 이후 말보르크는 프로이센 왕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성은 한동안 프로이센군의 병영으로 쓰였다. 당시 프로이센의 건축가였던 다비트 길리와 프리드리히 길리 부자는 1794년부터 이 성에 대한 건축학적, 역사적 조사를 시작했고 1799년부터 1803년까지 이 성의 역사에 관한 자료들과 성을 묘사한 판화들을 베를린에 전시해 프로이센인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뒤 말보르크 성은 프로이센 역사와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프로이센, 독일 제국은 다소 낡아있던 이 성을 정성스럽게 재건하고 다듬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한 뒤 이 성은 '독일인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명소'로서 히틀러 유겐트 독일소녀동맹의 정기 순례지가 되고 말았다. 나치 정부는 이 성을 선전물에 자주 등장시키며 불순한 용도로 이용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소련을 침공했던 나치군이 소련군의 역습에 밀려 동프로이센을 빼앗기게 되었을 때, 말보르크 성은 동프로이센의 나치군 최후의 저항 거점 중 하나로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장이 되었다. 100년에 걸친 독일 정부의 보존 노력이 무색하게도 전투 기간 동안 성의 절반 이상이 완파되었다.
전후 이 지역은 폴란드에 돌아갔고 폴란드 인민정부는 심각하게 파괴된 이 성을 완전히 철거하기로 했다. 하지만 폴란드인의 역사에도 매우 중요한 이 성을 함부로 철거하는 건 아니라는 의견이 많아 인민정부는 결국 성을 복원하기로 결정을 바꾸었다. 1962년부터 진행된 복원의 결과 말보르크 성은 현재 거의 완벽에 가깝게 복원되어 있다. 하지만 그 복원 작업의 방대함 때문에 인테리어 일부는 아직까지 정교한 복원이 진행중이다. 1997년 유네스코는 성 자체의 예술성, 독일 기사단국이라는 독특한 국가의 중심이었다는 점 등을 인정해 말보르크 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3. 관광
그단스크가 관광의 중심이 되며 그단스크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약 한 시간 쯤 가면 말보르크 역에 도착한다. 말보르크 역에서 나와 우회전 한 뒤 조금 걸어가면 대로와 로타리가 나오는데, 이 로타리를 건너면 나오는 보행자 거리를 따라 약 10분 쯤 걸어간다.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어떤 왕의 동상이 나오는데 이 왕은 1457년 말보르크 성을 정복한 야기에우워 왕조의 카지미에시 4세이다. 여기서 길이 갈라지는데 성이 보이는 쪽, 그러니까 맥도날드가 있는 쪽으로 가면 된다. 쪼금만 더 가면 성의 매표소가 나온다.
입장료는 2017년 기준 39즈워티(약 12000원, 9유로.)로 전체적으로 입장료가 저렴한 폴란드에서는 비싼 축이다.(물론 서유럽에 비하면 여전히 저렴하다.) 7, 8월에는 11시 반부터 영어 가이드투어를 하는데, 가이드 투어 포함 성 내 외부를 넉넉히 다 둘러보는데 서너 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단스크 왕복까지 고려하면 한나절을 꼬박 잡아먹지만 그단스크까지 올라온 배낭여행객에겐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여행지다. 주의할 점은 월요일엔 내부 박물관이 문을 닫는다. 외부와 인테리어 일부만 개방하고 때문에 입장료는 무료(다만 8즈워티짜리 오디오 가이드가 필수)지만, 성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월요일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외부는 전형적인 고딕 건축 기법이 녹아들어가 화려한 듯 담백하다. 기사단장의 궁전이면서도 일대 최강의 요새로 기능했기 때문에 튼튼하고 강인한 인상을 주며, 아름다운 성의 대명사인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반대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내부에는 당시 쓰이던 기사단의 군기와 무기, 가톨릭 포교를 위해 사용하던 성상, 그리고 옛날 폴란드 왕국군이 쓰던 무기와 갑옷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인테리어도 화려하기보단 담백한 편이다. 성에 입장하던 방향 반대 쪽에는 강이 흐르는데, 이 강에는 보행자 다리가 놓여 있다. 이 다리를 건너 강 반대편으로 가면 사진 찍기 좋은 구도가 나오는데, 말보르크 성을 소개하는 사진 대부분은 여기서 찍힌다. 날씨 좋은 날 정오 쯤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여기서 사진을 찍을 때 엄청난 역광에 고통받게 될 텐데 알아서 잘 찍어 보자.
여름에 운이 좋다면 기사단과 폴란드 왕국군이 대결하는 리인액트 행사를 볼 수 있다는데, 보고 싶은 사람은 사이트에서 일정을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