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탈헬름(Stahlhelm) / 독일군 모자
1916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독일군이 사용했던 철모. 슈탈(Stahl)은 철, 헬름(Helm)은 헬멧. 그러니까 그냥 철모다.
그 전까지 사용하던 피켈하우베가 비싼 재료가 다량 필요한 데다가 제작시 수고와 시간이 많이 드는데 반해 전투용으로 쓰기에는 성능이 바닥인 점 때문에 연구를 한 끝에 개발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반인 1916년부터 등장했지만, 실질적으로 전군이 착용한것은 대전 끝물인 1918년.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보면 잘 드러나는데 초반에는 등장인물 대부분이 피켈하우베를 착용하며, 영화 중반부터 새로 전입된 신병들은 슈탈헬름을 착용하고 영화 극후반이 되서야 주인공을 포함한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슈탈헬름을 착용한다.
본래 참호전시 포탄 파편을 막고 포탄 폭발에 따른 충격음을 이겨내기 위해 고안된 그 특이한 디자인과 간지로 밀덕계의 슈퍼 패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2차 대전을 다룬 여러 매체에서 독일군을 묘사할 때 슈탈헬름을 눌러쓰고 어두운 계통의 제복으로 위압감을 주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시킨 덕분에 나치 독일의 아이콘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다만 피탄각도 문제로 총알이 철모를 관통하는 문제가 많았고 이 녀석도 독일제답게 일반적인 바가지형 철모에 비해서는 생산비가 높고 제작시 공이 좀 더 들어간다.
귀 부분을 덮어주는 독특한 모양의 챙을 갖추고 있는 특징적인 디자인은 측두부와 후두부를 효과적으로 방호해준다는 이점이 있어서 훗날 이른바 프리츠 헬멧이라고도 불리는 미군의 PASGT 방탄헬멧에도 계승되었다. 그리고 PASGT 방탄헬멧의 디자인은 이후 미군이 그 후속으로 도입한 ACH나 ECH 등의 신형 방탄헬멧에도 계승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국가의 방탄헬멧의 디자인에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이니, 슈탈헬름으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디자인의 생명력은 의외로 상당히 질긴 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그 후손들이 지금도 계속 쓰이고 있는 상황이니까.
제1차 세계 대전 모델
윗부분 양사이드의 둥글게 튀어나온 돌출부는 환기구 겸 증가 장갑판 슈티른판처(stirnpanzer)를 장착하기 위한 것. 매우 무겁고 하중이 앞쪽에 심하게 쏠리지만, 두껍고 표면 처리가 잘 되어있어 350~450m에서 소총탄에 대해 의미있는 방호력을 제공했다고 한다. 고로 기동할 일이 잦은 일반 소총수보다는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고 소총수보다 교전거리가 길어 탄환 방어를 어느 정도는 기대해 볼 여지가 있는 저격수나 기관총 사수를 중심으로 사용되었다.
영화판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보면 피켈하우베형 뾰족철모를 쓴 주인공 일행과 달리, 중반부에 합류하는 신병들이 새삥 슈탈헬름을 쓰고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인공 일행을 굴리던 히멜슈타트 상병 역시 슈탈헬름을 쓰고 나타나서 거들먹대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모델
제2차 세계 대전에도 독일군의 주력 헬멧으로 사용되었다.
공수부대용 슈탈헬름. 일반적인 슈탈헬름이 귀를 가리는 형태인 것과는 정반대로 귀를 드러낸 형태로 설계되었다. 이는 착지시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것으로(그 외에도 강하시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걸리적거리는 게 없다는 장점 때문에 크릭스마리네에서도 잠수함(U보트) 승조원용 헬멧으로 소수 도입했다고 한다.
1930년대 국민정부는 일본의 침략에 맞선 대대적인 국방건설을 진행하면서 독일에 텅스텐을 수출하고 그 대가로 막대한 양의 독일제 무기를 수입하였는데 슈탈헬름도 그 일부였다. 이후 독일식 정예사단인 87사단과 88사단을 비롯한 교도사단을 중심으로 보급되었고 중일전쟁 발발 이후 1941년 독일과 단교한 후에도 일부 정예사단을 중심으로 사용되었으나 추가 보급이 없어서 파편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수운과 철로가 모두 마비되어 병력의 배치는 모두 도보로 진행되었는데 이 때문에 무거운 독일제 슈탈헬름이나 방독면 등은 산악지대에서 몇날며칠을 행군하면서 지칠대로 지친 병사들이 버리거나 파묻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보급도 안되는 귀한 물자들의 소모가 극심했다.
독일에서 구입한 슈탈헬름을 착용한 국부군.
제2차 세계 대전 개전 이후 일부 추축군도 사용했다. 핀란드군이라든지 여러 친독 국가의 군대에서 쓰이면서 겨울전쟁 당시 이걸 쓴 핀란드군이 소련군과 싸웠는데 덕분에 영화 겨울전쟁에 나오는 핀란드군을 독일군으로 잘못 아는 경우도 많다. 세계대전에 참전하지는 않았지만 스페인군이나 스위스군에서도 오랫동안 애용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도 몇몇 남아메리카 국가에서는 아직도 제식으로 쓰인다. 주로 피켈하우베와 함께 의장용으로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전후 독일에서의 사용
냉전 시절을 기점으로 서독군은 미국식의 장비로 전부 교체하였으나, 군대만 아니라면 슈탈헬름 디자인을 사용해도 괜찮았던건지 독일 소방관들은 1956년부터 DIN 소방 헬멧이라 불리는 알루미늄 버전 슈탈헬름을 써왔고 지금도 교체 중이긴 하나 여전히 현역이다. 심지어 1960년 색상이 형광 라임색으로 표준화 되기 전까지 빨간색을 칠해서 쓴 바이에른을 제외하곤 색도 그대로였다.
한편, 구 독일군의 외형을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계승한 동독군은 슈탈헬름의 직계후손이라고 볼 수 있는 이 뒤집어놓은 바가지같이 생긴 헬멧인 M1956를 사용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만들어진 프로토타입을 기반으로 하여 소련군의 헬멧도 참고로 해서 전후 약간의 개량을 추가한 뒤 양산화하여 사용한 것인데, 저 요상한 외형은 생산비가 높아 생산성에도 다소 제한이 있던 슈탈헬름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라 한다. 기존의 슈탈헬름에 비해 생산성이 높아져서 대량생산에 용이한 설계가 된 것이 장점이다.(가격도 낮아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가 이 신형 슈탈헬름의 도입에 반대하였기에 생산이 늦어졌고, 전쟁 다 끝나갈 무렵에 도입된지라 2차대전 당시에는 소량만 생산되어서 종전 후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 함 경비에 투입된 히틀러 유겐트 대원이 쓰고 있는 사진 등 극소수의 착용례만 보인다. 또한 외형적으로 상당히 간지가 나는 슈탈헬름과 달리 뭔가 상당히 어색하고 기괴한 느낌을 주는 묘한 외관이고 걸리적거리는 데다가 방어력은 그대로인데 보호면이 오히려 적어지고 움직임에 방해되는(걸리적 거리는 것 등) 디자인적 문제 때문에, 밀덕들조차 보통은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슈탈헬름의 파생형이자 후손 중 하나인데다가(그 때문에 영미권 자료 중에서는 기존의 슈탈헬름들과 더불어 이 M1956 역시 슈탈헬름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좀 못 생기긴 했어도 보다 보면 의외로 특유의 묘한 매력도 있기 때문에 동독군 쪽을 파는 밀덕들 중에서는 이 헬멧 역시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다.
한편으로는 냉전이 끝난 이후에는 슈탈헬름의 본가인 독일에서도 과거의 슈탈헬름을 닮은 모양새의 헬멧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냉전 시절 동안에는 국경경비대를 제외하고 슈탈헬름을 닮은 모양새의 헬멧을 사용하지 않았던 독일연방군이었지만, 냉전이 끝나고 난 이후부터는 미군의 PASGT 방탄헬멧을 참고로 하여 만들어진 방탄헬멧인 M826 헬멧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비록 예전의 원조 슈탈헬름을 그대로 쓰는 건 아니긴 하지만, 미군식의 PASGT 형태의 방탄헬멧을 도입하게 되면서 이것을 실전용으로서 뿐만 아니라 의장용으로도 쓰게 된 것. 현 독일연방군 육군 및 공군의 의장대나 군악대와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다 보면 종종 볼 수 있는 모습들인데, 예를 들자면 아래 사진과 같다.
위 사진은 독일 육군의 전사자 장례식, 아래 사진은 독일 공군 군악대의 연주 장면을 촬영한 모습. 사진의 화질이 좋지 못해서 알아보기 힘들긴 하지만, 사진 속의 저 헬멧은 예전 독일군에서 사용되던 원조 슈탈헬름은 아니고 냉전이 끝난 이후 도입된 미군식의 PASGT 형태의 방탄모를 위장포 없이 의장용으로 사용한 것이라 한다. 행사 성격에 따라 베레모와 슈탈헬름을 지시에 맞춰 착용한다. 독일 해군 의장대 및 군악대 등은 행사시 정모를 착용하는 편이라 슈탈헬름을 쓴 모습을 보기 힘들다.
1960년 초반 한국만화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에서 악역인 녹의 여왕 군대가 바로 동독식 슈탈헬름을 하고 나와 라이파이에게 털린다.
메탈슬러그 시리즈의 모덴군도 독일군이 모티브이니 슈탈헬름을 쓰고 나온다. 이후 메탈슬러그 디펜스, 메탈슬러그 어택 등 모덴군 보병을 팔레트 스왑한 정규군, 아마데우스군의 보병으로 나온다.
한국에서 식당 배달음식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사람들 중 슈탈헬름 모양의 하이바를 쓰고 다니는 경우가 종종 목격되고 있다(...). 오토바이 헬멧으로 슈탈헬름을 쓰는 것은 미국 폭주족 바이커들의 패션을 모방한 것이다. 초기에 사용된 것은 스페인제.
전후에는 상당량의 슈탈헬름이 재가공되어서 냄비가 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김수정 선생의 초기작 O달자의 봄에 등장하는 학주 박기만 선생이 두발 검사를 할 때 여학생들의 머리에 이걸 씌워서 튀어나오는 부분을 가위로 자르는, 21세기엔 상상도 못할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독립운동가 이범석 장군도 슈탈헬름을 쓰고 다닌 사진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