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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 이야기

P-51 머스탱(North American P-51 Mustang)

작성자管韻|작성시간19.03.10|조회수836 목록 댓글 0


P-51 머스탱(North American P-51 Mustang)

 

 



 

 

 






 

 

"2차 대전 중 미국에서 가장 빠른 전투기는 무엇이었나요? , 2차 대전 때 우리 편 전투기 중 가장 멀리 날아간 전투기는 무엇이었나요? , 다른 전투기보다 더 높이 날아간 미국 전투기는 무엇이었나요? 돌 하나로 새 여러 마리를 잡을 수 있겠군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 막강! P-51 머스탱입니다.

 

 

North American P-51 Mustang,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 육군 항공대/한국 전쟁 시기의 미 공군에서 운용한 프로펠러 전투기이다. 선회능력 등은 머스탱보다 우수한 기종도 존재하지만 전투기로서의 가치는 선회능력 같은 것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일명 하늘의 캐딜락이다. 이 별명은 2차 대전 당시에 나온 것은 아니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인 태양의 제국에서 나온 것이다.

 

 

'P-51D/K'의 앞글자 P(Pursuit)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이 군용기의 명명규칙을 개정하면서 앞글자를 F(Fighter)로 변경하면서 'F-51D/K'가 되었다.

 

참고로 P-51B/C형은 같은 물건이다. 정확히는 B형은 P-51A형을 제작하던 잉겔우드 공장에서 제작되었고, C형은 라이선스를 받아 텍사스주의 달라스 공장에서 제작한 것이 차이점이다. 또한 P-51D/K형도 구분법이 동일한데 잉겔우드 제작은 D, 달라스에서 제작한건 K형으로 불렸다.

 

 

 

P-51 초기형은 주로 영국에 판매하기 위하여 생산되었다. 장착된 엔진이 4000m 이상에선 출력이 떨어져, 본 개발 목적인 중폭격기 호위에는 사용되지 못하였다. 영국군이 이 기체에 12.7mm 6정 대신 20mm 히스파노 4정혹은 12.7mm 2정과 0.303인치 4정을 달아 운용하기도 하였다. 본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P-51 특유의 많은 폭장량과 기체 안정성, 내구도를 이용해 대지 공격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20mm 기관포 4문을 장착한 초기형 P-51(A형이 아님) 북아프리카 작전에 정찰기로 투입되었다.(68정찰비행단의 111대대와 154대대)

 

이후 잔여 생산분은 A형이라는 형식을 받고 12.7mm 4정과 드롭탱크 파일런을 장착하였으며 CBI전선에 투입되었다.

 

A-36

 

 

초기형 P-51의 딸리는 엔진출력과 특유의 둔한 기체성능이 맞물려 공대공전투에선 제 역할을 못하자 대지공격용 항공폭탄을 장착할 수 있는 파일런을 달고 에어브레이크를 추가해 CAS및 공격기로 개조한 사양이다. 위 사항을 빼면 초기형 P-51과 거의 같다.

무장은 기수에 2정의 12.7mm 기관총과 주익에 4정의 12.7mm 기관총을 장착하며 중량감소를 위해 주익의 기관총을 제거한 경우도 있다.

 

 

P-51B / C

 

 

P-51A에서 멀린 엔진 교체를 비롯하여 조종석 후미 공간에 자동 방루 연료 탱크를 장착하고 외부 추가 연료 탱크를 장착한 개량형으로 항속거리(2,700km)도 무지막지하게 길어졌으며 최대속도는 80km/h 이상 증가하면서 700km/h 이상이라는 빠른 속도를 기록한 데다가 해수면 고도에서조차 600km/h 이상을 달성했다. 이후 P-51D/K형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개조키트 또한 제공되어 많은 수가 P-51D/K로 개조를 받게 된다. 자세한 성능은 하단 후술.

 

 

 

분류 : 단발 단좌 전투폭격기

 

 

전장 : 9.83m

 

 

전폭 : 11.28m

 

 

전고 : 3.71m

 

 

주익면적 : 21.9m²

 

 

익면하중 : 217.3kg/m²

 

 

자체중량 : 3,465kg

 

 

전비중량 : 4,175kg, 최대 5,490kg

 

 

엔진 : 패커드 V-1650-7 V자형 12기통 수냉식 엔진 1, 1,490마력(부스터 사용시 1,720마력)

 

 

최대속도 : 705km/h (고도 7,620m에서)

 

 

항속거리 : 1,931km (내부 연료), 최대 3,412km (110 US갤런 외부 연료탱크 2개 장착시)

 

 

무장 :

 

주익에 12.7mm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내측 2: 탄약 400/ 외측 4: 탄약 270- 61,880(D)

 

 

또는

 

 

내측 2490, 외측 2490- 41920(A/B/C)

 

 

 

 

2개소의 무장 탑재 하드포인트

 

2,000파운드(907kg)까지 폭장 가능

 

 

폭탄 장착/미장착시 4.5인치 3연장 바주카 로켓 2(주익아래 각1, D형에서 단기간사용)

 

 

폭탄 장착/미장착시 10개의 5인치 H.V.A.R. 로켓(3연장 바주카 폐지이후)

 

 

 

P-51 초기형(엘리슨 엔진 장착형)의 고고도 출력 부족이 문제가 되자 엔진을 영국제 엔진으로 바꾼 기종인 P-51B/C를 추가로 개량한 기종으로 당장 주무장인 50구경 기관총이 B/C형의 4정에서 6정으로 늘었으며 물방울형 캐노피로 교체했으며 후기에 생산된 기종의 경우 K-14 자이로 조준기가 장착되었다.

 

P-47 썬더볼트와 함께 2차대전 중 다목적 전투기로 널리 쓰였다. 특히 전투기임에도 많은 폭장량을 가져 폭장을 달고 CAS기로 운용되기도 하였다. 이후 우방국에도 공여가 되어 대한민국 공군에서도 운용되기도 했다.

 

 

P-82 Twin Mustang

 

 

P-51D의 파생형으로 P-51D의 동체 두 개를 연결한 P-82 "Twin Mustang"이 있으며 이것은 야간 및 장거리 호위/정찰용으로 사용되었다. 조종사도 두 명이며, 두 명의 조종사가 돌아가며 밥도 먹고 잠시 눈을 붙이기도 했다. 6.25 전쟁에서 미 공군이 최초 투입하면서 북한군의 Yak-9를 최초 격추한 항공기이다.

 

 

P-51H

 

 

전장 : 10.16m

 

 

전폭 : 11.28m

 

 

전고 : 3.88m

 

 

주익면적 : 22.2m²

 

 

익면하중 : 194.7kg/m²

 

 

자체중량 : 2,986kg

 

 

전비중량 : 4,322kg, 최대 5,216kg

 

 

엔진 : 패커드 V-1650-9, 1,490마력(부스터 사용시 1,930마력)

 

 

최대속도 : 758km/h (고도 7,620m에서)

 

 

항속거리 : 2,172km (내부 연료), 최대 4,667km (165 US갤런 외부 연료탱크 2개 장착시)

 

 

무장 :

 

주익에 12.7mm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내측 2: 탄약 390/ 외측 4: 탄약 260- 6

 

 

 

2개소의 무장 탑재 하드포인트

 

2,000파운드(907kg)까지 폭장 가능

 

 

폭탄 장착시 6/미장착시 10개의 5인치 H.V.A.R. 로켓

 

 

P-51 기체들이 비행성능에 비해 과하게 내구도가 책정된 탓에 너무 무겁다는 지적이 있자 업그레이드와 더불어 약간의 경량화도 실현한 모델이다.

 

 

3. 개발 및 개량

 

 

19404월 자국 항공기 생산력만으로는 루프트바페(독일 공군)에 대항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영국은 미국에 구매단을 파견하여 좀 쓸만한 미제 전투기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전투기는 성능에서 Bf109에 미치지 못하는 P-39 에어라코브라, P-40 워호크나 F4F 와일드캣 정도 뿐이었다.

 

영국 구매단은 P-40을 계약한 뒤에 개발 회사인 커티스의 제조능력 부족 때문에 추가 생산해줄 회사를 찾다가 노스 아메리칸 사를 방문해서 "커티스 생산 인원이 모자라서 그러는데, P-40 좀 같이 생산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이 말에 제임스 킨델버거 사장의 심기가 불편해졌음은 물론이다. 심기가 불편했던 킨델버거 사장은 당시 주임 설계기사였던 에드거 슈미트에게 가서 이렇게 질문했다. "영국 신사 양반들이 우리더러 P-40을 만들어 달라는데?" 사장의 속내를 꿰뚫고 있었던 슈미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천하의 영국 공군이 구닥다리 설계의 P-40이나 써서야 되겠습니까? 여기 제 책상에 제가 수년동안 혼신의 공력을 들여서 설계한 전투기 설계도가 있습니다. 이걸 영국 구매단에게 제안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사장은 좋아라 하고 설계도를 들고 바로 영국행 비행기에 올라 영국 공군에 역제안을 하게 된다.

 

사실 설계기사였던 에릭 슈미트는 오래 전부터 최고 성능의 전투기를 개발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으며 몇 년동안 혼자서 전투기 설계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최고 성능을 목표로 했기에 당시 최신 기술인 층류익이나 마이너스 항력(즉 추력)을 유발하는 라디에이터 흡기구 등을 설계에 통합시켰고 결국 당대 최저의 항력계수 0.169를 가진 기체를 설계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영국 구매단은 P-40의 성능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국과 협의를 마친뒤에 P-40보다 좋으면 즉시 400기 구매, 아니면 계약은 무효라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에릭 슈미트가 예전부터 만들어온 전투기 설계를 바탕으로 117일만에 모든 면에서 P-40을 능가하는 신형 전투기가 탄생했다.

 

 

 

A형의 모습, 엘리슨 엔진의 구조 덕분에 공기 흡입구가 프로펠러 기동축 위에 달려 있다.

 

P-40에도 사용된 엘리슨 엔진을 장착한 초기형(A)은 저고도에서는 당대의 독일 전투기보다 우수했지만 고도 4000m만 올라가도 성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영국 공군은 머스탱을 지상공격이나 저고도에서 적 공격기를 쫓아내는 정도로만 사용했다. 혹은 정찰 장비를 장착해 고속 정찰기로 사용했다. 물론 지상 지원용으로 사용된 모델은 히스파노 4정을 날개에, 50구경 2정을 카울링에 장착하여 강한 위력을 자랑했다.

 

미군도 2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영국군을 위해 개발된 전투기니 미군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것라면서흥미를 못 느껴 거의 방치해두었다. 1년 가까이 방치되어있다가 나중에 머스탱을 가지고 공압식 기관총 급탄장치를 시험해보던 테스트 파일럿이 말하라는 급탄장치 이야기는 안하고 기체 이야기만 하면서 '저고도에서는 미친 것 같다.'이라고 보고를 올렸는데도 별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진주만 공격 후 2차대전에 참전하자 한대가 아쉬웠던 미국에게 저고도 비행성능을 인정받아서 미 육군 항공대는 급강하용 에어 브레이크를 다는 등의 마개조를 통해 공격기 A-36 아파치로 채용했다. 아파치는 영국 공군에도 채용되어 Mustang Mk. I (Dive Bomber)라고 명명된다. 이 물건은 50구경 6정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군에서도 아파치라는 이름은 얼마 안 가 머스탱으로 바뀌었고, 원본의 경우, 엔진을 고성능 엘리슨으로 교체하고 20 mm 캐논만 4정을 장착해 사용했다. 비행 성능을 높이기 위해 개량을 거친 모델은 무장을 50구경 4정으로 다운그레이드하여 영국군에 Mustang Mk. II라는 이름으로 채택된다.

 

 

3.1. 엔진의 교체

 

 

머스탱의 성능을 높이 평가했던 영국 공군 기술진들은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번에 들어온 미제 전투기가 상당히 좋은 것 같아. 그런데 고도만 올라가면 힘을 못 쓰는데 차라리 엔진을 바꿔보면 어떨까?"해서 당시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DH-98 모스키토 등에 성공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롤스로이스 멀린61 엔진을 달아보았다. 그 결과 머스탱은 완전히 다른 전투기가 되었다. 특히 최대속도는 80km/h 이상 증가하면서 700km/h 이상이라는 빠른 속도를 기록한 데다가 해수면 고도에서조차 600km/h를 넘기는 등 훌륭한 능력을 지닌 전투기가 만들어진 것. 이로써 머스탱의 문제는 설계가 아니라 고고도 활동을 상정치 않고 개발한 미국 수냉식 엔진의 한계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엘리슨 엔진은 단발기에서는 1단 슈퍼차저 밖에 장착할 수 없다는 제약으로 인해 공기가 희박한 곳에서는 성능이 매우 떨어졌다. 예외적으로 1단 터보 + 1단 슈퍼차저의 구성이 가능했던 P-38 라이트닝은 제대로 된 고고도 성능을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전장 상황에 따라 고고도에서의 운용이 필요한 경우도 많고 또한 이 엔진이 제 성능을 발휘하는 저고도에서만 운용하면 표적고착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원래 지상공격 중 입사각이 낮거나 빠른 속도로 인해 급강하 후 고도 회복을 못하고 그대로 추락해버리는 것을 표적고착이라고 하며 모든 비행기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프로펠러기든 제트 전투기든. 그런데 P-51은 동체가 워낙 무거워서 2,000피트 이상으로 고도를 충분히 잡지못하면 그대로 추락한다. 물론 표적고착은 고도만 잘 잡으면 일어나지 않는 매우 기초적인 실수라서 보통은 일어나지 않지만 저고도로만 날아다니면 한번의 실수로도 충분히 걸릴 수 있다.

 

 

때문에 일정 고도 이상 높은 고도에서 활동해야 안전한데, 이럴 경우에는 엘리슨 엔진이 급격하게 힘을 잃어버렸다.

 

 

멀린 엔진 장착 시험 결과를 전해 들은 노스 아메리칸사는 대단히 기뻐했으며, 영국 공군은 구입하겠다를 외치면서 멀린 엔진 탑재형 머스탱을 머스탱 Mk.III로 명명하고 무려 1000대나 주문했다. 그러나 가장 기뻐했던 건 사실 미군이었다. 급작스럽게 전쟁을 맞이해보니 주력 전투기들이 맥을 못추는 것을 보며 골치를 썩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계 최고의 성능을 지녔을 지도 모르는 자국산 전투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셈이었다.

 

 

그 외의 개량점

 

 

P-51B형부터는 엔진의 교체로 속도의 향상 이외에도 조종석 후미 공간에 자동 방루 연료 탱크를 장착하고 외부 추가 연료 탱크를 장착하니 항속거리(2,700km)도 무지막지하게 길어졌다. 덤으로 머스탱의 순항속도는 443km/h. 이는 항속거리가 길기로 유명했던 일본군의 후기형 A6M(외부 연료 탱크 추가시)보다도 무려 100km 이상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초기형 제로센의 항속거리 3,300km(외부 연료 탱크 장착시)200km/h의 순항속도로 달성한 것이고 이조차도 전력출력의 상태로 비행하면 머스탱보다 더 숏다리가 된다.

 

덕분에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는 물론, 쌍발기인 P-38 라이트닝이나 항속거리를 억지로 잡아늘려도 2,000km에 불과했던 P-47 썬더볼트보다 더 효율적으로 폭격기 호위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원래 P-51 등장 이전까지는 연합군 기종 중 그래도 항속거리가 제일 길었던 P-47이 폭격기 호위 임무를 주로 수행했다. 그러나 P-47도 프랑스-독일 국경 즈음 와서는 폭격기 대열과 작별(?)하고 기지로 귀환해야 했으며, 당연히 Bf109, Fw190 등 독일 전투기들은 이 때를 기다렸다는듯이 폭격기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연합군의 폭격, 특히 미군의 주간폭격이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미군도 멀린 엔진의 라이센스를 롤스로이스사로부터 부랴부랴 사온 후 탑재형 머스탱을 생산하여 P-51B/C로 제식채용했다. 그러나 P-51B 배치 직후 미 육군 항공대는 A-36 시절의 떨어지는 고고도 비행 성능 때문에 의구심을 버리지 못해서 지상 공격부대에 우선적으로 배치하였다. 이후 폭격기 호위임무에 P-51B을 한 번 투입해보니 그야말로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최우수 클래스의 속도와 호위기치곤 괜찮은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폭격기를 요격하기전에 우선 호위로 붙은 머스탱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었으나 적당한 성능에 확실한 수적 우세로 밀어붙였기에 독일공군이 머스탱을 압도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그 당시 독일 상공을 수비하던 독일군의 전투기는 폭격기만 상대하면서도 상당한 출혈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항로 내내 폭격기를 호위하는 전투기가 따라붙게 되자 요격 난이도는 삽시간에 지옥불이 되었다.

 

한 가지 특이사항으로 물방울형 캐노피를 도입하기 전인 P-51B/C형 머스탱은 그 외형이 독일의 Bf109와 유사했다. 실제로 멀리서 보면 식별이 어렵다는 말이 자주 들려왔는데 이 때문에 P-51의 기체설계를 독일 회사에서 Bf109 관계로 일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기사가 했다는 루머가 생겼다. 이 루머가 마치 사실인양 퍼져 있기도 한데 사실 에드거 슈미트(Edgar Schmued) 주임설계기사가 독일에 살다가 미국에 이민 온 사람이긴 하지만 Bf109와는 관계없던 사람이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따지면 독일계 미국인은 다 체포해야 한다.(일본인이었다면 행정명령 9066호에 적용됐을 것이다.) 물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 독일계 핏줄이 섞인 사람이 미국 백인 인구의 반이다.

 

헷갈릴 정도로 유사한 외형은 전장에서 P-51 잔혹사를 만들어냈다. 잘 비행중인데 아군 대공포가 사격한다거나 혹은 전장에서 아군 전투기, 심지어는 호위대상인 폭격기의 방어기총사수들까지도 적기로 착각하여 쏴버릴 정도였으니 이로 인해 아군오사에 고통받기도 했다.

 

유명한 일화 중에는 한참 독일 본토 폭격이 진행중일 때 폭격기의 기총사수가 신나게 기총을 쏘다가 실수로 아군 호위기 P-51을 격추시키는 사고를 터뜨렸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기총사수는 "아이고 맙소사 난 이제 죽었어"라 외치며 이걸 어떻게 변명해야될지 머리를 쥐어뜯다가 에라 모르겠다라며 당시 요격용으로 별로 쓰이지도 않았던 Bf109E형으로 격추보고를 올려버렸다. 그런데 다른 폭격기의 기총사수가 Bf109E 격추가 맞다고 증언해주는 바람에 적기 격추로 기록된 적도 있었다. 수뇌부에서도 아군 오인사격을 막아보자고 독특한 줄무늬를 그려 넣었고 나중에는 아예 도색이 안된 기체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은빛 무도장 간지는 P-51의 상징이 됐다. 미군 외에 일본군 전투기들도 나중에는 무도장 기체들이 나왔는데 이쪽은 페인트까지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한 짓이다.

 

P-51의 도장제거는 경량화를 통한 기동성 향상의 목적도 있었으며 비슷한 이유로 1944년 이후로 생산되는 모든 전투용 항공기는 별도의 도장 없이 항력감소를 위한 왁스처리만을 하고 출고되었다. P-51의 경우 시험 비행에서 페인트 제거만으로 시속 23마일 정도의 속도 향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속도는 매우 우수했으며, 전투기로서의 선회성능이나 지속상승률 등도 평타는 쳤다. 다만, M2의 화력이 다소 빈약하고 급탄 불량이 자주 일어나며 후방 시야가 불량하다는 단점도 지적되었다. 이 캐노피의 경우 여닫는 방식이 약간 복잡해서(단순이 앞뒤로 미는 게 아니라 옆면과 윗면을 각각 열어야 했다.) 탈출시 애로사항이 많았고 키가 큰 조종사들에게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에 장착했던 말콤 후드를 가져와 마개조한다. 영국은 대부분 이걸로 바꿨고 미국은 몇몇 비행대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운용하다 D의 버블 캐노피로 갈아탄다. 때문에 물방울형 캐노피가 도입된 P-51D(영국명 머스탱 Mk.IV)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처럼 반쯤 버블 캐노피 형상을 가지도록 개량되기도 했다. 이를 말콤 후드라 부른다. D형이 대세가 되고 이 B/C형을 D/K형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개조키트 또한 제공되어 많은 수가 개조를 받게 된다. 덕분에 숫자는 P-51D가 많았으며 이것이 P-51로 널리 알려진 모델이기도 하다. 실루엣의 개성이 확실해진 덕분에 오인사격 문제도 대폭 줄어들었다. 비슷한 개량은 P-47 썬더볼트에도 적용되었다.

 

그 결과 P-51D형은 약 8,000대 가량 생산되면서 P-51계열 중 가장 많이 생산된 모델이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실질적으로 활약을 시작한 게 194311월 경이니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동안 P-51 계열기가 파괴한 적기는 공중전에서 4,950, 지상파괴 4,131대에 달한다. 독일 공군보다 격추집계가 느슨했던 미 육군 항공대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압도적인 물량을 자랑했던 미군이었던 만큼 어느 정도 과장이 있더라도 격추수가 손실댓수보다 많다는 건 명확해 보인다. 단적으로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독일 공군의 소티수는 1944년에 1만대를 겨우 넘겼던 반면 같은 기간 미 육군 항공대의 소티 수는 60만에 달했다.

 

 

 

P-51D형은 주무장인 50구경 기관총이 B/C형의 4정에서 6정으로 늘었다. 물론 독일의 20mm 기관포인 MG 151보다는 위력이 약하지만 높은 발사율과 곧은 탄도, 신뢰성 등이 좋아서 B-17 같은 중폭격기를 상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화망을 순식간에 칠 수 있는 M2 중기관총이 전투기 상대로는 충분한 화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기총의 배치형태 등을 수정, 종종 발생하던 기총의 탄걸림으로 인한 작동불능 상태를 막았다. 이 점이 개선되지 않은 종전의 P-51B~C형은 종종 기총 2, 3정으로 싸우게 되는 일도 있었으므로 실질적인 화력증대는 더 컸다. 이 외에도 연료 탱크 용량이 늘어났으며 기타 몇 가지 부분이 개량되었다.

 

전체적으로 늘어난 중량 때문에 기동성이나 최대속도는 P-51B/C보다 약간 떨어지게 되었으나 엔진이 V-1650-3 에서 V-1650-7로 강화되면서 중-저고도에선 오히려 약간 빨라졌으며 강한 화력과 좋은 시야 때문에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P-51D를 선호하였다. 물론 일부 조종사들은 그래도 속도/기동성이 뛰어난 P-51B/C를 더 선호하기도 했다. 나중에 P-51B/C도 말콤 후드라는 측면이 불룩 튀어나온 캐노피를 사용하여 후방확인이 쉬워지고, 기총문제를 해결하여 기총고장 문제를 줄이기도 했다.

 

D 후기형에는 자이로를 채택한 K-14 자이로 조준기가 장착되었다. 조종사들끼리는 통칭 '에이스 메이커'라 불리웠는데, 자이로 장치와 연동되어 예측 사격을 도와주는 흠좀무한 물건이었다. 이 당시 외계인 고문에 특화되었던 독일군도 이런 장치는 양산기에 장착하지 못했다. 독일이 자이로 조준기를 채택한 것은 Ta152인데, 이건 양산기지만 워낙 늦은 194412월에나 양산체제로 들어가는 통에 양산기 취급도 못받는다. Ta-152가 양산 체제에 들어갈 정도로 독일이 버틸 수 있었다면 그 세계의 독일은 최소 다른 세계의 독일일테니 깊게 들어갈 필요는 없다.

 

항공전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미국에서는 현장의 조종사 출신이라고 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심각한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은근히 빠심이 작용하는 분야이기도 하기 때문에 특히나 실증 및 비행역학, 유체역학연구를 통한 '실증'을 무엇보다도 중히 여기는 전통이 있다. 더구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인간의 기억은 매우 편향적이며 실제로 매우 제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종사들의 증언이나 '이야기(anecdote)'에는 항상 '조금 회의적인 태도로 들어라(take in with a grain of salt)'라는 격언이 존재할 정도. 저런 프로그램에서 '기억하는 그대로' 재현해주는 것은 실제로 조종사는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믿고 있고, 굳이 그것에 실증으로 태클걸만한 가치가 없는 흥미위주의 대중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저 일화에 대해서도 실제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분야든 학계는 만만치 않다.

 

P-51D의 연료를 반 정도로 계산해보면 도리어 수치상으로 Bf109 G-6와 호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선회율 및 상승률을 시뮬레이션해본 수치를 보면 매우 느린 속도가 아닌 이상 호각이다가 빠른 속도로 갈 수록 P-51D의 성능이 더 나은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G-6MW50을 장착하지 않았다면 기본적으로 G-2와 같은 성능이고 G-2는 머스탱보다 1년 일찍 나왔던 기체라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4. 평가

 

 

P-51은 의외로 제공전투기로서 우수한 기종이라 부르기는 어려운 기종이기도 하다.

 

P-51계열기 전체는 장거리 호위기인 만큼 다량의 연료를 싣는데, 이 연료 탱크의 위치 문제로 동체의 균형이 비행시간 동안 극심하게 변화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이러한 문제점은 조종석 뒤 연료 탱크가 신설된 B/C 후기형과 D/K형에서 심했다. P-51의 엔진은 스핏파이어와 같은 계열임에도 스핏파이어와 비교하여 넘사벽의 비행거리를 보여준 것은, 그 자체의 공기역학적 설계가 출중하였던 탓도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연료적재량이 엄청나서 였다.

 

P-51B/C 초기형과 P-51B/C 후기형 이후부터는 주익 중앙부근과 조종석 바로 뒤 후방에 연료 탱크가 있었는데 따지고보면 꽤 위험한 자리이지만 이 문제는 연료통에 구멍이 나면 자동으로 막히는 자동방루식(Self Sealing)설계로 해결 하였다. 그러나 조종석 후방의 연료 탱크에 연료가 25갤런 이상 남아있으면 P-51의 무게중심을 지나치게 뒤로 옮기기 때문에 기체가 불안정하여 조종사가 조종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일단 이륙과 순항이야 지속적인 트림 조절로 해결할 수 있지만, 운 나쁘게 비행 특성이 최악일 경우 공중전이 벌어지면 조종사는 행여 불안정해진 기체탓에 실속이나 하지 않을까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다른 전투기들은 장거리 작전을 위해 외부 연료 탱크를 달게 되면 일단 이 외부 연료 탱크의 연료를 먼저 써버린다음 동체 내부의 연료를 썼지만, P-51 조종사들은 조종석 후방 연료 탱크를 최우선적으로 써서 작전지역에 도달할때 즈음에는 조종석 후방 연료통이 다 비도록 했다.

 

특히 P-51의 수랭식 엔진은 평소에는 신뢰성 높아서 잘 작동하지만, 튼튼한 다른 부위와 달리 이 엔진은 한 발이라도 피탄될 경우 냉각수 유출로 순식간에 엔진 과열 크리가 작렬한다. 이럴 경우에는 회복이 불가능하여 조종사들은 엔진이 피탄될 경우 엔진을 정지시켜야 했었다. 물론 이건 머스탱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상대해야할 독일의 DB 601/605BMW 801 등은 엔진이 피격 당하더라도 내장된 기계장치가 자동으로 엔진을 컨트롤하여 가능한 무사히 작동할 수 있게 해준다는 걸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다른 걸 다 제껴두더라도, 저속 비행시 불안정성은 매우 심각한 결점이었다. 이 문제가 다른 것들보다 심각한 이유는 전투를 안 하거나 회피하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이착륙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속도가 거의 실속에 가까울 정도로 떨어지면 특정 상황(받음각, 기수 각도, 프롭 피치 등 복합적인 상황) 요우 축(양 옆으로 움직이는 축)의 안정성이 떨어져버렸고, 이렇게 느린 상황에서 약간이라도 조종간을 잘못 만지면 급작스럽게 롤이 되어버리는 괴악한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이 급작스러운 기동이 이루어지면(당연하게도 조종사가 일부러 한 것이 아니다!) 조종면이 날아가거나 아예 날개가 부러지는 등. 기체가 손상을 입게 되었고, 추락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B/C모델 중 이 문제로 추락한 경우가 보고되었으나 D/K형에서도 일어났던 문제다. 이 덕분에 개량을 거쳐 수직 꼬리날개를 앞쪽으로 살짝 늘리고 러더 트림을 설치(B형에도 있었지만 약간 개량함)하는 등 개량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체적인 날개 디자인에 문제점이 다소 있었다. 항력을 줄이기 위해 층류익형을 채택하였는데, 층류익형을 설계했을 때의 풍동시험에서는 테스트용 익형의 표면조도가 거의 보석의 표면급으로 매끈해서 애초 의도한 대로 층류 흐름이 유지되면서 항력이 줄었던 반면 실제 항공기에서는 보석표면급의 표면조도(매끈한 정도)를 만들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층류익이 실전에서 설계 의도대로 동작하지는 않았던 것.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층류익형의 형태 자체가 아음속 영역에서의 항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설계의도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기획의도 달성은 어쩌다가 성공한 희귀한 케이스가 되고 말았다.

 

 

P-51의 주요 장점이자 단점의 중심에 있는 게 이 층류익인데, 층류익은 익형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우천시나 짙은 구름층에 들어가거나, 도색이 벗겨지거나 주익에 약간의 돌출물만 생겨도 효과를 상실하는 결점이 있었다. 특히 피탄시에 이 문제점이 두드러지는데, 날개 한쪽이 피격당해 구멍이 난다거나 하면 그곳에서 난류가 발생해 비행이 불안정해지곤 했다. 다만 머스탱에 적용된 익형은 그정도까지는 아니었고 구멍나면 비행이 불안정해지는거야 층류익만의 문제가 아니니 좀 애매한 부분이다. 진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층류익은 받음각 스톨특성이 상당히 후지기 때문에 기수를 들어올리기만 해도 앞전이 그대로 천이점이 되어서 기류 박리, 즉 실속이 발생한다. 이는 곧 같은 중력가속도를 받는 기동에서 층류익이 받는 압력이 더 크다는 뜻도 되므로, 주날개의 내구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결국 제작사인 노스 아메리칸 사는 층류익을 어떻게든 써먹기위해 머리를 싸매던 끝에 P-51D의 조종간을 묵직하게 만드는 걸로 매듭짓는다.

 

더군다나 머스탱은 수냉식 단발기 치고는 꽤 크고 무거운 기체였기 때문에 전비중량에서의 익면하중이 높고 추중비가 낮아 에너지의 소모 또한 상당히 큰 편이었다.

 

일단 선회력은 당시 적기였던 독일기들도 폭격기 요격을 위해 건포드까지 덕지덕지 붙이면서 출격한 기체들이 많아 대체적으로 영 좋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지속상승력이나 수평가속력은 Bf 109 G-10이나 K-4같은 후기형 기종들이 머스탱을 능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종들을 상대로 상황우위를 점하지 못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엔진의 경우도 공간이 부족해서 워터 인젝션을 사용하지 않았고 이로 인한 과열 문제로 WEP 사용시간이 5분남짓으로 제한되었는데, DB605 계열은 WEP 사용시간이 이보다 두 배 긴 10분 정도였다.

 

축약하면 긴 항속거리와 고속 비행 성능을 갖춰 장거리 호위기로서는 매우 적합하더라도, 제공전투에 특화된 기체들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기 다소 난해한 기체였던 것.

 

그러나 P-51은 여러 단점들이 있었지만 결코 약하거나 쓸모없는 전투기가 아니였다. 다른 기종을 언급하는 경우는 기종 자체의 전투력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이며 실제로도 대전중에는 전투기로서의 면에서 머스탱을 능가하는 기종들도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그 어떤 기종도 머스탱의 장대한 항속력과 긴 체공시간, 그리고 적절한 성능의 조합이 가져오는 제공 장악력을 따라올 수 없었다. 당장 제로센 수준의 기체가 항속거리만 길다는 이유로 유럽 전선에 배치됐다면 독일 입장에선 호위기도 별로 안 무섭고 오히려 격추수를 늘려준다며 좋아했겠지만 P-51의 성능에 긴 항속거리는 위협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미 육군 항공대가 그렇게도 좋아한 전략 폭격에 있어서 P-51은 매우 훌륭한 호위기였다. 폭격 편대를 사실상 완벽히 호위가 가능한데다 순항 속도까지 빠르니 일단 여러 문제가 있다해도 당시 미국 입장에선 굉장한 호사였을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의 전장에서 Fighter Sweep 전술을 수행하며 나치 독일의 영공을 완전히 지배하는 P-51 앞에선 P-51과 맞먹거나 우위의 성능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대전 후기 독일 전투기들은 제대로 이륙하기도 어려웠고 이륙에 성공해도 착륙할때 공격당해 격추당하는 데다 전투때에는 항상 상황적 열세속에서 제 성능을 살리지 못하고 소모되어 갔다. 나치 독일 공군(루프트바페)의 조종사 인적자원 수급이 1944년도에 와서 붕괴되면서 단순히 성능이 좋은 전투기 몇 대를 더 투입한다고 해서 사정이 나아질 리도 없었다.

 

머스탱은 1:1 전투에서 최강은 아닐지라도 고속과 괜찮은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양산가가 싸고 상기한 제공장악력 덕분에 다른 기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전략적 우위성을 가져다 주었다. 즉 다른 전투기가 전투에서 이길 때 머스탱은 특유의 체공시간과 미국이 원하는 이상적 전투/호위기로서 톡톡히 활동했으므로 최강은 아니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끈 기체라는 평가는 받아도 부족하지 않다. 무엇보다 속도성능에서는 대부분의 기체에 대해 우위를 점하기도 했고다. Bf-109 후기형인 G-10, K-4와 비교하면 상승력, 선회력, K-4의 최대속도 등에는 밀리나 G-10에게는 최대속도에서 우위, 순항속도는 G-10 K-4 양쪽 모두에게 우위를 가진다. Fw-190 D형의 경우엔 선회력을 제외하면 P-51이 전체적으로 열세에 있으나 D형은 워낙 생산량이 적은 기종이다. 태평양 전선을 본다면 Ki-84 하야테, N1K 시덴, 시덴카이 같은 일본군의 전투기에게 화력과 선회력을 제외한 나머지 성능에서 우위를 가진다. 고옥탄 연료의 사용으로 하야테의 상승력까지 넘어섰기 때문이다. 캐노피나 조종석 등, 파일럿의 피로도나 편의성 면에 있어선 매우 좋게 평가되었다.

 

 

5.1. 유럽 전선

 

 

"졌어, 우리는 이미 전쟁에 진 거야." - 헤르만 괴링

 

 

나치 독일 공군장관 제국원수(Reichsmarschall) 헤르만 괴링이 베를린 상공에 나타난 P-51D Mustang을 본 순간 좌절하며 한탄한 말로 전해진다.

 

머스탱은 대주간(big week)이라 불린 19442월 나치 독일의 군수공장과 연구, 개발시설에 대한 공격부터 본격적으로 참전한다.

 

B-17 등 폭격기만 상대했을 때에도 폭격기의 강력한 자체 방어 때문에 조종사/기체 손실을 차근차근 강요받았던 독일 공군에게, 호위에 중점을 둔 기체이면서도 적절한 공중전 성능을 갖춘 P-51의 호위는 재앙이었다. 강력한 P-51의 호위를 뚫고 또 다시 방어기총으로 중무장한 폭격기에 접근해야 하는, 훨씬 어려운 임무를 강요받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폭격기 요격에 나선 독일 공군, 특히 숙련 조종사의 손실은 당연히 급증할 수 밖에 없었으며, 격추에 성공한 B-17의 숫자도 줄어들었기에 그만큼 독일은 폭격에 더욱 노출되었다.

 

독일 전투기들이 호위기를 무시하고 폭격기에만 달려들도록 지시받았기 때문에 교환비가 불리하게 나왔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신빙성이 의심스러운 내용이다. 첫째, 요격부대가 요격받을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호위전투기를 배치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전술중 하나로 막장으로 악명을 떨친 일본군의 카미카제조차도 가급적 호위기를 붙이려고 노력했다. 당연히 그나마 상식적이었던 독일 공군은 호위전투기의 위협을 받게 되자 중무장/중장갑의 Fw190에 요격임무를 주로 맡기고 Bf109Fw190을 호위하도록 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위의 호위전투기를 무시하라는 지시도 Fw190이 요격임무를 전담하고 이를 Bf109의 호위부대가 막아낸다는 가정하에서나 성립하는 것이지 독일기 전체가 호위전투기를 무시하라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둘째, 정작 연합군의 전투조종사들은 1940년의 영국 상공에서의 독일 전투조종사들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의 불리함을 안는 것을 감수해야만 하는 폭격기 호위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전투기 단독으로 수행하는 Fighter-sweep임무를 더 선호했다. 셋째, 어차피 1944년에 들어서면서 미 육군항공대와 영국 공군은 보유한 전투기가 남아도는 나머지 지상공격 임무에 전투기를 대거 투입하기 시작하고, 지상공격중 입는 손실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그걸 버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서방 연합국의 공군력이 압도적인 상황에서는 전술적 실책 한 두개가 만회되었다고 해서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다.

 

전략 폭격에 의한 생산 시설 등의 중요 시설의 파괴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과가 그다지 많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폭격기 편대의 호위와 지상공격을 통해 폭격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때에도 꾸준한 전투기와 파일럿의 손실을 일으키고, 연료 수송과 연료 그 자체를 망가뜨려버린 것이 또다른 큰 타격으로 작용했다. 폭격기 호위에 만족하지 않고 베를린이든 어디든 독일 땅이라면 어디든지 떼거지로 날아와 독일 전투기들을 많이 격추했고 기지, 비행장, 전차, 트럭, 열차, 독일군 행렬, 눈에 보이는 모든 표적에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어 기관총탄, 폭탄, 로켓탄으로 공격을 퍼부어대는 P-51과 영국군의 호커 타이푼, 미 육군 항공대의 P-47마저 공격에 가담했다.

 

더욱이 독일 공군이 영국군 미군 소련군 전투기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통에 조종사 인력들의 질적인 저하가 서서히 오기 시작해 1944년 후반이 되면 서부 전선에서는 루프트바페의의 파일럿 중 숙련된 조종사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물론 그 생존한 조종사들 중에서는 정말 톱급의 에이스 조종사도 많이 존재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P-51은 척 예거, 클라우드 크렌쇼, 빌 위스너, 조지 프레디 등 단 하루에 다섯 대 이상의 독일기를 격추하는 1일 에이스 조종사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헤르만 괴링이 위와 같이 한탄했다는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항공 우세를 상실한 상황에선 사실상 종전 선고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P-51D Mustang은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하고 나치 독일이 항복하는 날까지 독일 영공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독일군 병사라면 언제 어디서나 먹이를 찾는 송골매처럼 하늘을 떠도는 P-51의 은빛 날개를 볼 수 있었고 독일 공군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Me262도 전투 손실중의 절반 이상이 자신의 기지에서 이/착륙 도중에 P-51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P-51와 연합군의 제공권 장악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Me262는 제트기이고 제트기의 속도를 이용하여 폭격기 요격을 위해 이륙했으며 속도를 이용하여 호위기를 무시하고 요격 후 이탈하는 전략의 특성상 공중전이 벌어질 일이 없으니 당연히 이착륙 도중의 손실이 커질 수 밖에 없기는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본인들 기지에서 당했다는 것은 그만큼 연합군이 제공권을 철저히 장악했다고 볼 수 있다.

 

순수한 성능면에서 P-51이 공중전투에서 압도적으로 독일군 전투기들을 능가한 것은 아니다. 최고의 전투상황에서도 동시기의 독일군 주력기종인 Bf109G형 계열과 비교했을 때 고전적인 전투기동의 요소들인 상승력, 가속력, 선회전 능력 등은 열세에 있었고 뚜렷한 우위에 있는 것은 최고속도와 급강하성능 정도이다. 고공성능의 경우에도 압도적인 고도에서까지 무식한 출력을 자랑하던 P-47과는 달리 Bf109P-51은 서로 비등했다고 할 수 있다.

 

종래의 P-47과 비교했을 때 P-51이 독일 공군의 전투기들에 대해 갖고 있는 우위는 그 항속거리라고 할 수 있는데 직접적인 전투성능과 큰 관계가 없던 이 장점이 전략적 측면에서는 실로 엄청난 강점이 되었다.

 

1940년 영국 본토를 공격하는 독일 공군이 큰 피해를 입고 결국 히틀러가 계획한 '바다사자 작전'이 취소되면서 영국 왕립 공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독일군 전투조종사들은 독일 폭격기들을 '동속으로 동행하며 근접호위하라'라는 괴링의 명령이 전달되었을 때 일제히 탄식을 했다고 한다. 본질적으로 제공권 장악을 위해서 폭격기들과 동행하는 것은 당시에도 상책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으며 장점이라고는 폭격기 조종사들의 사기진작 이외에 전술적으로는 딱히 없다는게 중론. 호위편대는 전투기의 장점을 살려 고속, 고공으로 폭격기 본대에 한 발 앞서 가며 다가오는 적들을 색출하여 선제적으로 교전하고 막는 것이 최상의 호위전술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독일 공군 조종사들은 자조적으로 'kettenhunde'라는 표현을 썼는데, '사슬에 묶인 개'라는 뜻이다. , 호위기는 개집에 사슬로 묶여있어봤자 소용이 없고 사냥개가 사냥꾼들 앞서 나가며 사냥감을 몰이하듯 줄을 풀어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1944년 초반까지 미군도 근본적으로 동일한 호위방식을 사용했으나 준장으로 승진하여 미 육군항공대의 공중전 전략전술을 총괄하게 된 제임스 둘리틀의 등장과 함께 상황이 크게 바뀐다.

 

둘리틀 준장은 기존의 호위방식을 버리고 "모든 전투기들은 호위기에 앞서 나가 독일 깊숙히 들어가서 자유롭게 사냥하라"는 사실상의 프리헌트(free-hunt) 방침을 낸다. 폭격기들과 함께 느릿느릿 움직이면서 독일 공군 전투기들이 공격해오는 것을 반격하는게 아니라 전체적인 숫적우위를 충분히 활용하여 폭격기들에 앞서 독일 영공 깊숙히 침투하여 독일 공군을 상공으로 유인하여 일제섬멸하는 유연한 전략을 택한 것이다. 떼거지로 폭격기 멀리 앞서 몰려다니면서 독일 공군이 대규모 요격편대를 형성하기 전에 이끌어내어 박살내고 돌아다니면서 맘대로 하라는 대담한 요격섬멸 전술이었다. 그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독일 깊숙한 영토까지 날아들 수 있었던 것이 P-51D었다.

 

 

태평양 전선

 

 

 

"가장 까다로운 게 육군기(P-51 머스탱, P-47 썬더볼트), 그 다음이 운동성 좋은 구라망(F6F 헬캣)이다." - 사카이 사부로, 이와모토 테츠조

 

 

태평양 전선에 투입된 머스탱은 일본 본토에 쑥을 재배하기 위해 폭격기를 보낼때 호위기로써 나가거나 육상에서 일본군 항공기와 전투를 벌이었고 태평양 전쟁 동안 일본군 항공기를 상대로 싸우고 있던 헬켓이나 콜세어에 비해 덜 각광받기는 했지만 여기서도 사신의 자리를 얻기는 했다.

 

이미 600km/h 초반대의 F6F 헬캣과 600km/h 중반대의 P-38 라이트닝에게도 앓는 소리를 내던 일본 해군/육군항공대의 안습 기종들에게 700km/h이 넘어가는 속도 + 고도에 관계없는 성능 + 고속 순항 + 장대한 항속력 + 소이탄 세례를 퍼부어 줄 50구경 기관총 6정을 갖춘 P-51은 이미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물론 극소수 살아남은 일본 에이스들은 헬캣이나 머스탱을 상대로도 격추수를 조금씩 추가해나갔다. 2차대전 시기 공중전의 특징은 공중전의 결과가 기체의 스펙만으로 결정되는 게 절대로 아니며, 조종능력, 상황판단, 무엇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골라 싸울 수 있는 기량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3,000m 이하의 저고도에서는 저속선회전이 통용될 여지가 많았기 때문에 저고도에서는 에이스 파일럿이 모는 하야부사나 하야테가 애송이 파일럿이 모는 머스탱이나 헬캣을 잡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워낙 빈약한 일본 전투기의 방어력과 일본측 수뇌부의 병크 등이 겹치는 등의 악재로 종전까지 살아남은 일본 에이스는 독일보다 훨씬 적었다. 거기다 숙련 조종사의 부족이 독일보다 훨씬 심했던 일본군은 안습 그 자체. 거기에 일본 전투기 자체가 빈약한 방어력을 가졌기에 6정의 50구경 중기관총의 사격선을 일부러 흐트러지게 정렬해서 마치 분무기로 총알을 뿌려대듯이 대충 긁어대도 그 대충 긁어댄 총알에 격추되는 일본군 전투기들은 말 그대로 줄줄히 밥이 되었다. 일단 유럽 전선의 독일기는 그래도 방어력이 시망은 아니었기에 이런 식으로 조준선 정렬을 해두면 결정적인 화력이 부족해서 슬쩍 건드리고 마는 식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일본군 전투기들은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시망이라서. 이런 식의 정렬법은 헬켓이나 콜세어 역시 일본기를 대상으로 사용했다.

 

유럽전선에 비해 P-51이 그렇게 부각되지는 못했던 이유는 유럽전선과 달리 4발 중폭격기의 대편대에 의한 전략폭격이라는 양상이 대전 후반에 가서야 벌어졌고 대부분의 항공전역이 섬을 거점으로 한 비행장간의 교전양상이 되풀이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P-38 정도의 항속거리로도 어지간한 작전 수행에 큰 문제가 없었고 이들의 항속거리를 벗어나는 목표물에 대해서는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기동부대가 목표로 다가가서 함재기로 상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헬캣, P-38 등 기존에 배치되었던 연합군 전투기로도 일본군 전투기들을 신나게 학살하고 있던 상황에 똑같은 학살자가 하나 더 늘어났을 뿐이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당시 일본의 파일럿들의 수기를 보면 머스탱은 마왕급으로 취급된다. 여기서 P-51D보다 경량화되고 항속거리와 속도까지 강화된 P-51H도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그전에 일본이 항복해버려서 F8F 베어캣처럼 벤치멤버가 되었다.

 

태평양 전선에서도 P-51의 기나긴 항속거리는 큰 힘이 되었다. 청두(성도)나 충칭(중경), 쿤밍(곤명) 등 중국 내륙에서 출격한 미군의 P-51들이 대만과 상하이의 일본군 항공대 기지를 공격하는 등 상대적으로 훨씬 짧은 항속거리의 기체를 보유하고 있던 미군의 행동반경을 더욱 넓히는데에 공헌한 것이다.

 

P-51의 항속거리가 특히 빛을 발한 것은 19446월 사이판 전투/괌 전투 이후이다. 이곳에서 출격한 B-29의 본토 폭격을 엄호하는 것은 종전시까지 태평양 전선에서 P-51이 잘 수행해 낸 가장 중요한 전략적 역할이었다. 사이판/괌에 이어 이오지마, 오키나와 본토와 더욱 가까워진 기지에서 출격한 P-51F6F 헬캣, F4U 콜세어 등 미 해군의 함재기들과 함께 본토의 일본군 항공기를 일소하고 제공권을 확보하는 임무(fighter sweep)까지 확실하게 수행해 낸다.

 

보조 출력으로 제트엔진을 사용하는 머스탱도 실험되었다. 위의 것은 XRJ-30-MA 램 제트 엔진을 날개 끝에 달아놓은 실험기고 아래는 포드 펄스 제트엔진(PJ-31-1)을 달아 놓은 형태이다.

 

미국 육군항공대가 공군으로 독립, 개편되자, P(Pursuit: 추격기) 부호는 F(Fighter) 부호로 교체되었으며, P-51F-51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원래는 주방위군 공군으로 돌리거나 퇴역시킨 다음에 해체하거나 표적기로 사용했는데 전투기가 부족한 한국 공군에게 공여해보니까 이게 의외로 쓸만해서, 결국 미 공군은 부랴부랴 F-51을 재취역시키기로 결정하고 남아있는 기체를 있는 대로 끌어모았다. 원래는 머스탱만 모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우선 수송의 편의성을 위해 한국에서 가까운 미국 서부의 주방위군 기체부터 끌어모으니 마침 미시시피강 서쪽의 주방위군 공군이 장비하는 전투기가 머스탱이었다. 미시시피 강 동쪽의 주방위군 공군은 썬더볼트를 장비하고 있었고, 대지공격 임무에는 P-47이 튼튼한 장갑과 공냉식 엔진으로 인해 더 유리한 점도 있었지만 보급 편의성 문제 때문에 한국전쟁에서는 거의 쓰이지 못했다.

 

이렇게 소집한 F-51은 한반도 전장에서 지상 공격 임무에 투입되어 대활약했다. 당시 농업이 주 산업이었던 한국의 거친 활주로에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이륙할 수 있었으며, 비교적 짧은 활주로에서도 쉽게 출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F-80C는 네이팜탄을 장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상 공격 임무에서 네이팜을 장착한 F-51이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시찰 당시 호위로 따라붙은 전투기도 당대 최신예 기종인 F-80이 아니라 F-51이었다. 이때 북한군의 Yak-9 전투기와 맞붙었지만 그대로 격추시켜버린 전적도 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2차 대전 당시 '붉은 꼬리의 천사들'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터스키기 비행대'P-51Me262를 잡은 적이 있었다.

 

 

한국 전쟁 이후 촬영된 한국 공군의 F-51 편대, 한국 전쟁 도중 촬영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중간에 복좌형인 TF-51이 보인다. 한국 공군이 TF-51을 보유한건 전후이다.

 

F-51D/K형은 6.25 전쟁 당시 신생 한국 공군에 지원되어 한국 공군 최초의 전투기가 되었고 조종사들은 일선에서 열심히 활약해서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등 어려운 임무들을 멋지게 수행해냈다. 이 때 김영환 장성이 목에 두른 빨간 마후라가 한국 공군 조종사의 상징이 되었고 교관인 딘 헤스 대령의 전용기인 18번기에는 그 유명한 신념의 조인이라는 문구가 적히기도 했다. 당시 참전하신 한국 공군 조종사들에게는 조종하기가 힘든 기체라는 인상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아마도 기존에 경험했던 연락기, 연습기나 일본제 전투기에 비해 일단 기체가 무거운데다가 조종간을 엄청 무겁게 해놓은 것이 겹쳤기 때문이다.

 

6.25 전쟁 당시 제공권은 미국 공군을 필두로 UN군이 담당하고 있고 게다가 제트엔진을 장착한 1세대 전투기인 F-86이 있어서 사실상 한국 공군의 경우 제공권을 장악하는 전투기로 사용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훈련기가 아닌 한국 공군의 최초의 제대로 된 전투기이기도 하고 공격기 즉 지상공격용으로 사용하여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대한민국 공군은 전쟁 기간 동안 머스탱으로 총 8,495(소티) 출격해서 각종 전과를 올렸다.

 

 

위 사진은 딘 헤스 소령의 18번기를 구현한 것인데, 노즈아트만 신념의 조인일 뿐 딘 헤스 소령이 탔던 해당 기체는 한국전쟁 당시 사고로 손실되었다. 사진을 비롯한 신념의 조인으로 전시하고 있는 기체들은 그냥 노즈아트만 그린 것이다. 실기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복원기들의 사진을 참고하지 말고 차라리 당시 사진을 찾아보는 것이 낫다. 저 기체는 한국전쟁 발발일 기념으로 KBS에서 틀어준 머스탱 관련 다큐에서 원래 정체가 밝혀진다. 그나마 군 관련으로 재현을 잘 한거라면 타 비행단은 모르나 제10전투비행단 영내에 있는 전시관에 신념의 조인 머스탱 모형이 있는데 전쟁기념관에 있는 실물 머스탱보다 고증이 더 나은 편이다.

 

F-51D/K의 파생형인 P-82(F-82) Twin Mustang은 한국전쟁에서 처음으로 공산군의 항공기를 격추한 미 공군 전투기로 기록된다. 여기서 격추된 것도 Yak-9. 이것이 바로 고수와 초짜의 차이인 것이다. 참고로 Yak-9은 단좌 전투기로 소련군 내에서는 좀 큰 전투기였긴 하지만 머스탱보단 작은 기체로 독일군 상대로 날렵한을 자랑했던 전투기이다.

 

P-51D는 한국전 이후에도 중동으로 팔려나가기도 했다. 구매자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당시 일어난 1차 중동전쟁에서는 밀수입한 P-51D를 투입하여 아랍 공군 측의 스핏파이어를 격추시키기도 했다. 더 재미있는건, 이 당시 이스라엘 공군의 장비에 독일제 Bf 109도 있었을 정도였다. 이후 수에즈 운하 사태 및 영국을 비롯한 서방 열강의 비공식적인 지원을 받은 카데쉬 작전(1956)에도 전폭기로 투입되어 많은 활약을 한다. 어느 용자 이스라엘군 파일럿은 수에즈 시와 이집트군 사이에 깔린 전화선을 프로펠러로 갈아버려서 통신두절 사태를 초래했다고.

 

1943년도에 머스탱을 받은 영국의 요구에 따라 경량화 된 머스탱 연구가 진행되어 XP-51F를 시작으로 G, J형식의 시험기가 등장하였고 전쟁 말에 최후의 머스탱인 P-51H 형이 개발되었으나, 소수가 실전 배치 되기 쯤에 전쟁이 끝나버려 대량 생산이 좌절 되고 소수만 생산되어 알래스카 방어에 사용되었다. P-51H는 무거워진 P-51D보다 경량화되고 D형의 3,412 km 항속거리 보다 길어진 4,667km이며 대대적인 재설계로 더욱 날렵한 형상을 가지게 되었고 최대출력 2천마력을 넘기는 신형 V-1650-9 엔진을 장착하여 최고속도가 758km/h에 달했다. P-51H는 몰락 작전에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핵 두 방 맞고 일본이 항복하여, 비슷한 처지의 F8F 베어캣과 함께 한국전쟁 시기 주요 벤치멤버로서 전쟁에 투입되지 않고 있다가 전후에 퇴역했다. 애초부터 만능기로 두각을 나타내던 F4U 콜세어와는 달리 P-51HF8F는 한국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항공기였던 것이다. 이 시기 F-51D는 콜세어보다 떨어지는 성능을 지녔지만 프로펠러기 특유의 기동성과 저속을 살려 지상공격에서 큰 축을 차지하고 있었다. 콜세어가 지상공격만이 아니라 아예 주력 야간전투기 자리도 차지하고 해군 유일의 에이스이자 프로펠러기 최후의 에이스까지 배출하는 무쌍을 찍은 것에 비하면 수수해 보이지만 머스탱의 엔진은 수냉식이었음을 명심하자.

 

 

간혹 에어쇼 한다고 아들, 손자, 증손자급의 전투기와 함께 날아다녀 보는 사람에게 엄청난 압박을 주기도 한다. P-51에서 F-22까지 반세기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인류 과학 기술의 발전을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머스탱은 재현품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2차 대전 전투기들 중 하나다. 특히 미국에서 종종 개최되는 프로펠러기 레이스에서도 F8F 베어캣과 더불어 매우 인기있는 기종이라고 한다. 당장 미국의 유명한 포니카 포드 머스탱의 이름도 이 P-51 머스탱(Mustang)에서 따온 것이다. 그만큼 항공 레이싱에서도 유명세를 떨쳤다. 헨리 포드가 항공 레이싱 매니아이기도 했고. 물론 항공 레이싱을 할 때는 최고의 속도를 뽑아내기 위해 모든 무장을 제거하고, 엔진을 무려 3000마력짜리로 교체하는 한편, 날개 모양을 손보는 등 마개조를 거친다.

그렇게 개조를 거쳐 나오게되는 속도는 현재까지 공식기록 531MPH(=854km/h), 비공식기록 900km/h이며 왕복엔진을 사용한 항공기중 가장 빠르다고 할 수 있다.

 

양덕후들 중에서는 부품만 구해서 자신만의 머스탱을 만드는 사람들도 꽤 많다. 영화 촬영 때마다 해당 항목 덕후로 돌변했다던 톰 크루즈도 그 중 한 명. 물론 매일매일 철저한 정비를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60년된 '날아다니는 관'을 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짓. 실제로 2011917일 미국 네바다 주 리노에서 열린 '내셔널 챔피언쉽 에어 레이스'에서 P-51D 머스탱이 관중석으로 추락했다.

 

또한 능력있는 양덕은 사람이 탈 수 있는 미니 머스탱을 만들기도.

 

국공내전 때에는 공산당이 최소 39기의 머스탱을 노획하여 몇년 간 잘 굴렸고 이후 몇 대가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머스탱의 마지막 운용국은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무려 1984년까지 운용되었다. 다른 제트전투기들이 모두 퇴역한 뒤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쿠바와의 무력충돌에서 뼈아픈 패배를 겪은 후 A-37로 대체되면서 완전히 퇴역.

 






P-51D Mustang "Ferocious Fran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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