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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 이야기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

작성자管韻|작성시간19.03.26|조회수277 목록 댓글 0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

 

 

 

 

 

 

 

 

헬레니즘 문화에서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 사상이 조화되어 나타난 이원론적 사상 운동. 오래된 유대 신비주의교 카발라와 연관이 있으며 이 사상 운동을 밑에 나오는 그리스도교 이단으로써의 영지주의와 구분하여 전영지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스도교 이단으로써의 영지주의는 위의 영향을 받아 1세기까지는 운동차원으로 머물다가, 후술하는 발렌티누스의 영향으로 인해 체계화되어서 하나의 종파가 된 이단이다. 물론 모든 영지주의 자체가 이단이라는 건 아니다. 애초에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는 기원 자체가 다르며, 이단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원본(여기서는 그리스도교)에 기원을 둔 것만을 지칭한다. 다만, 그리스도교의 이단 종파 중에 영지주의가 혼합되거나 적어도 그 영향을 받아 생겨난 케이스들이 많이 있다.

 

영지주의의 생성 과정과 역사를 규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까지 원정하여 대제국을 세운 이후, 헬레니즘 문화는 동서양의 사상을 조화하여 찬란히 꽃 피웠다. 그리스 철학에 기원을 둔 영지주의 사상은 동방 종교들의 이원론을 흡수하여 독특한 구원관을 전개시켰다. 영지주의는 여러가지 종교와 다양한 철학에서 요소들을 끌어들여 혼합적인 사상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플라톤 철학의 신과 인간의 중개사상, 피타고라스 철학의 자연 신비사상, 스토아 철학의 개인의 가치와 윤리성, 여기에 그리스 신화와 유대교와 페르시아 종교 등의 요소까지 두루 가미되었다.

 

그리스도교 내에서는 교회의 설립시기부터 이를 경계하였는데, 신약성경, 특히 요한 복음서와 바오로의 서간들에는 영지주의의 그릇된 교설을 경계하는 구절들이 있다. 사도들이 활동하던 때는 영지주의가 그대로 사상운동 차원에만 머물러 있었지만, 2세기부터 교회 안에서 조직화 되면서 신자들에게 큰 혼란을 초래하게 하였다.

 

교부들은 일반적으로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 마구스(Simon Magus)를 영지주의 이단의 원조로 보고 있다. 그 다음 도시테오스, 메난데로스, 바실리데스, 이시도로스, 발렌티누스, 프톨레마이오스, 헤라클라온, 바르데사네스, 하르모니오스, 테오도토스, 마르코스, 카르포크라테스, 에피파네스, 아펠레 등을 영지주의자들로 열거하고 있다.

 

영지주의의 분파가 이처럼 많고, 그 교설들이 서로 다르며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명확히 규명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영지주의자들의 교설을 말해 주는 본인들의 저서가 대부분 전해 오지 않고 보편교회(Ecclesia Catholica) 편에서 쓴 이단 반박 저서들에 인용되어 단편적으로 전해져 오기 때문에 그들의 교설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로 영지주의에 관련된 문헌들이 계속 발견되어, 현대 학자들이 끈질기게 연구한 덕분에 그들의 이론체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다.

 

 

2. 영지주의란?

 

 

사실 물질과 영혼의 뚜렷한 이원론을 특징으로 함은 역사상 영지주의만이 아니라 서양에서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발상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질을 악마의 창조물이나 그 부산물로 여기는 경우가 흔히 말하는 영지주의이다.

 

신의 피조물인 영혼이 악마의 창조물인 물질(육체)에 갇혀 있으므로 영지(그노시스)를 얻어서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개념이다. 왠지 가상현실 감옥우주 음모론 같지만 놀랍게도 플라톤의 <파이돈>에도 나오는 개념이다.

 

롤란드 베인턴의 <세계교회사>에서는 영지주의를 이렇게 인식했다.

 

 

 

영지주의에는 매우 다양한 체계와 사상이 있지만, 영지주의 신화의 핵심은 이와 같았다. , 궁극적인 것은 부정적인 점들로만 (알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셀 수 없는 것, 헤아릴 수 없는 것) 묘사할 수 있는 존재의 거대한 심연이다. 이 심연은 역동적이고, 그 충만(플레로마) 속에서 발출(emanation)에 의해 상이한 것들이 발생한다. 그 발출된 것 중 하나가 지혜(Wisdom)이다. 지혜는 플레로마의 비밀을 알려는 과도한 호기심에 잔뜩 사로잡혀 있다가 고통 속에서 물질을 발산했는데, 이 물질이 데미우르고스(demiurge)의 도움으로 이 가시적인 세계로 조성되었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의 창조관과 정 반대된다.

 

 

영혼과 육체를 근원적으로 다르게 여기는 것은 지중해 주위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사고방식이며, 기본적으로 육체를 단순한 껍질로 보고, 영혼만이 진실된 것이라고 주장한 플라톤 주의가 발전된 형태로 여러 지역의 특성과 사상에 융합되었다.

 

영지주의는 일관된 하나의 체계가 아니라, 당시 그리스도교가 퍼진 여러 지역에서 이원론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사람이 다르게 해석한 것을 모두 싸잡아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영지주의 연구의 핵심은 '공통분모를 찾아 정리하는 것'이라고 단언하는 학자도 있을 정도. 게다가 비영지주의 교파, 즉 보편교회 및 기타 교파에서 영지주의에 대한 기록 단편들이 남아도는 것이 더 문제가 되었다.

 

3. 영지란?

 

 

영지는 그리스어로 그노시스(gnosis)인데, 이건 그냥 '지식'이라는 일반명사이다. 영지주의(Gnosticism)에서 말하는 영지는 진정한 신에게 도달하는 진정한 앎해탈을 뜻한다. 영지는 소수만이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므로, 특정 공동체에 소속되어 선택받은 자만이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영지를 추구한 공동체로는 특히 발렌티누스 파가 크고 유명했다.

 

 

4. 용어

 

 

아이온이 어쨌느니 소피아가 어쨌느니 하는 내용은 도서관 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책에 있는 내용인데, 그 내용을 인터넷에 제대로 올려놓은 경우는 없다. 지금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들은 적당히 주워들은 소리에 내용을 보탠 것들이 전부다. 관심있는 사람은 한국어로 번역된 유다복음을 추천한다. 그 외의 책은 대부분 영어다... 유다복음의 경우는 최소한 기본 개념을 잡고는 있지만, 실제 영지주의에 대한 내용을 제대로 알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바로 발렌티누스에 대한 연구이다. 발렌티누스는 2세기에 로마 주교(교황) 후보자로 있다가 선출 되지 못한 자로서 사실상 영지주의의 대부이며, 실상적으로 좋건 싫건 영지주의 사상을 집대성한 것은 그이다.

 

사연이 좀 징한데, 플라톤주의의 용어들을 차용하여 영지주의를 설명하고 삼위일체를 처음 고안한 사람 자체가 바로 발렌티누스였다. 문제는 이후의 상황인데, 현재 영지주의에 대한 내용은 실은 유다복음의 연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나왔다 하더라도 이레네오의 이단반박에서 차용한 내용을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윤색한 경우가 많지만, 실은 이건 과장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카인파, 즉 있지도 않은 분파에 대해 있다고 주장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며, 나그함마디 문서의 연구 등 이후 사료의 발견으로 발렌티누스주의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되기 전까지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상당부분 당시 보편교회의 입장을 차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 애초에 데미우르고스의 개념을 정립한 사람이 발렌티누스인데, 문제가 이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다른 영지주의 분파를 들어 주장하는 것은 더없이 애매한 문제라고 할수 있다.

 

 

4.1. 모나드

 

 

아랍 계열의 영지주의자 모노이무스가 창조한 개념으로, 영지주의에서의 절대신에 해당하는 개념이라고 보는 게 그나마 이해가 쉽다. 다른 이름으로는 아이온 탈레오스(Aion teleos 완전한 아이온), 뷔토스(Bythos, 심연, 심원한 존재), 프로아르케(Proarkhe, 태초 이전의 존재), 에 아르케(E Arkhe, 태초의 존재) 등이 있으며, 일단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최초의 아이온인 동시에, 아이온들을 낳는 아이온이라고 한다.

 

 

4.2. 아이온

 

 

그리스어로 '시간', '영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냥 '영원한 존재' 정도의 뜻. 보통이 아이온은 데미우르고스를 창조했다고 여겨진다. 아이온은 하나 또는 여럿으로 나타난다.

 

 

4.3. 아르콘

 

 

아르콘은 본래 그리스어로 '집정관' 정도의 의미이다. 아이온에 대비하여 현재의 물질 세계를 압도적인 힘으로 만들어낸 신, 혹은 기존에 믿어지던 신들을 포괄하여 나타내는 용어이다. 데미우르고스 역시 아르콘의 일종이다.

 

 

4.4. 데미우르고스

 

 

그리스어로 '제작자'라는 뜻이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온다. 보통 영지주의에서는 물질을 창조한 신으로 나타난다. 이 제작자(데미우르고스)를 야훼와 동일시하고, 예수가 말하는 아버지는 그보다 상위의 신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위에 언급했듯이 영지주의에서 물질은 '악마의 창조물'이므로 데미우르고스는 악신이다. 설령 악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불완전한 물질과 악을 출현시킬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일부 영지주의자는 데미우르고스를 악신이 아닌, 선하기는 하나 약한 존재로 보았다.

 

데미우르고스는 사악한 신이라, 데미우르고스가 만들어낸 세계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악덕으로 가득했다. 데미우르고스는 인간에게 육체를 주었고 또 영혼을 부여했지만, 고귀한 영혼이 육신에 사로잡힌 인간이 나왔다.

 

데미우르고스는 이러한 사태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른 아이온의 개입으로 몇몇 인간들은 육체의 틀을 벗어나 참된 인식을 얻을 수도 있는 씨앗이 있었다. 이러한 인식의 가능성을 가진 인간은 노력 여하에 따라 참된 인식을 얻을 수도 있으나, 가능성이 없는 인간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영지주의라고 편의상 하나의 명칭으로 부르긴 하지만, 이는 갖가지 분파를 싸잡아 불러진 호칭이다. 분파는 대단히 다양하며, 당연히 해석 또한 대단히 다양하다. 데미우르고스를 사악한 신으로 보는 분파도 있었으나 어떤 분파는 데미우르고스를 삐뚤어진 가짜 신으로 보지않고, 뭔가 하려는 능력은 되나, 의욕이 없는 무기력자라던가, 개념은 잡혔는데 능력이 안되는 무능력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대개 통용되는 개념이라고 해도 모든 분파에 적용되는 일괄적인 개념이라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기억해두자.

 

그러나 사실 반대로 원개념은 악이었는데 이후 타협적 관점에서 악이 아닌 형태로 개수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유? 바로 그 플라톤주의를 배껴온 원흉인 발렌티누스의 정의 문제이다.

 

상술한 '데미우르고스의 선에 대한 설파'는 실은 기록상으로 이레네오의 이단논박, 특히 발렌티누스 주의에 대한 반박에서 드러나는 사상이다. 이 경우 교계의 다분히 '정치적'인 상황을 살펴야 하는데, 발렌티누스는 교황 될 뻔한 사람이었던 관계로 당시 최대 정파였고, 이레네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까야만 할' 입장이었던 관계로 '발렌티누스의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성향성 주장을 뒤집어' 주장하는 셈이었다. , 없는 분파도 있다고 우길 판이었으니 어련할까만...

 

여하튼 그 개념의 정의에서 보면 발렌티누스에 대한 반박으로 볼때 원래 영지주의의 개념정의는 악이었으되, 이후 보편교회의 주장에 대한 타협적 입장으로 전제된 것이라고 볼수 있는 것이 바로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여러 주장이 된다. 실제로 이후 키프로스에서 영향받은 각종 영지주의 분파들이 '유동적인 이단'이었다는 점을 살펴 보면 그 '유동성'의 의미가 어떤 것들을 타협했는가에 대한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4.5. 소피아

 

 

그리스어로 '지혜'라는 뜻이다. 구약에도 지혜는 여성으로 의인화되어서 나타난다. 게다가 그리스어에서도 지혜(소피아)는 여성명사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여신으로 확대해석한 것이 이른바 영지주의의 소피아.

 

허나 정확히는 이것을 존재하는 여신의 개념으로 처음 발상하지는 않았다. 실은 이 개념은 '엔노이아-엔노이아 소피아(대 소피아)-에온 소피아'라는 3중 개념으로 이어지는 경우이므로 사실은 여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아니무스-아니마의 개념과 비슷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알파와 오메가로 보는 개념이 적용되기도 한다.

 

, 엔노이아는 생각을 의미하므로 실제로 그 단어 그대로 신과 결합된 사고를 의미하는데, 그것을 '배우자' 형태로 보았다. 남녀 중성의 형태로 개념화 된 신의 형상에 대한 주장은 사실은 여기서 기인한 것.

 

또한 소피아는 원죄를 의미한다. 사실 소피아의 잉태를 두고, 소피아가 '불완전한 존재인 데미우르고스를 처녀생식'했기 때문에, 달리 말하면 '배우자인 그리스도와의 협력이 없이 창조했기에' 세상이 불완전해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실상적으로 보면 인간의 원죄의 개념을 적용하지 않은 영지주의 분파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의미를 소피아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4.6. 렉스 문디

 

 

신과 대비되는 악신의 개념으로 이원론적 영지주의에서 기인한 해석이다. 이는 13세기 카타리파에 의해 제창된 이론인데, 중세 영지주의와 초기 영지주의의 가장 큰 차이점을 부여하라면 바로 이 이원론의 존재이다.

 

초기 영지주의는 근원이 되는 신, 즉 아담이나 사람의 아들로 대변되는 일원이 제기되고, 데미우르고스로 의미되는 창조신, 달리 말해 악신이 대비되는 개념으로 제창되지만, 이것이 13세기 해석에서는 선악이 동등한 개념으로 공동창조를 한 것으로 의미된다. , 사실상 이 2가지, 일원적 이원론과 이원론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면 영지주의를 분류할수 있는 기준을 전혀 모른다는 것과도 진배 없다.

 

 

5. 세계관

 

 

영지주의는 물질적인 현 상계를 더러운 것으로 본다. 물질은 사악한 신(=악마)이 창조했거나 결함투성이로 만들어졌다는 것. 인간의 육체도 물질이므로 사악한 피조물이며, 이 더러운 육신 안에 영혼이 갇혀 있다. 따라서 영혼을 육체와 물질세계로부터 탈출시켜야 한다는 것.

 

어쨌든 진정한 신은, 비록 자신이 창조하지는 않았으나 비참한 상태에 있는 인간들을 가련히 여겨 예수를 '인간이 아닌' 몸으로 내려보내게 된다. 인간 중에서 영지를 깨달을 수 있는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은 예수를 통하여 영지를 깨달음으로써 사악한 물질세계로부터 탈출하여 빛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오르페우스교나 피타고라스교에서도 이런 식의 영혼해방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니까 영지주의는 그리스도교 내에서 특별하게 생겨난 이단이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그리스 세계로 들어와 접합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해석의 한 방식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적 영육이원론과 유대전통의 유일신론이 신비주의적으로 접합되면 영지주의는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다.

 

, 13세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영지주의는 이슬람의 수피즘, 혹은 그 전단계의 다른 영지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 일원적 이원론의 관점에서의 영지주의는 세계관에 있어서 창조의 근원이 결국은 하나이지만, 이원론적 영지주의에서는 창조관이 완전히 둘로 나뉘게 되며, 이 특징은 반대로 이슬람 신비주의의 영향에서 왔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사상 운동으로서의 영지주의

 

 

영지주의는 이원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음양사상을 조화적인 이원론이라 한다면, 영지주의의 이원론은 철저히 대립적이다. 문제는 원류라고 볼 수 있는 카발라는 대립적 이원론이라고 보기에는 양쪽 힘의 균형의 중요성과 양측 모두의 성스러움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기에 제대로 배웠다면 저런 표현을 쓸 수가 없으며,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수많은 분파들의 삽질에서 비롯된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걸러 듣자.

 

 

7. 그리스도교 이단으로서의 영지주의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의 전통과 예수로 대변되는 유대교 개혁운동, 그리고 플라톤 철학을 위시한 그리스 사상체계가 뒤섞여 있었으며, 이 때문에 당시 그리스 철학의 큰 흐름중 하나였던 영지주의적 사상이 전파되었으며 부분적으로 수용하기도 했으나, 이후 기독교 내에서 영지주의가 강한 교파는 이단으로 규정되며 치열한 종교 투쟁을 벌이게 된다.

 

초기 기독교와 영지주의가 충돌한 것은 영지주의가 기독교의 유일신 야훼 자체를 악한, 혹은 허약한 데미우르고스로 구분해 더러운 육신의 세상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2명의 신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구약의 신(야훼)과 신약의 신의 분리해서 구약의 신을 하위신으로, 신약의 신을 상위신으로 구분하는 식.

 

기독교와 영지주의가 충돌한 것은 영지주의가 기독교의 유일신인 야훼를 아이온이나 데미우르고스라 부르며 '허역한 신'이나 '악한 세상을 만든 신'으로 깍아내린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사악한 육신에 고결한 신성이 깃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 예수를 아예 인간인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야훼를 최고신으로 보고 별도의 데미우르고스를 간주하는 경우에도 야훼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것, 선한 신성이 잘못된 물질과 연관될 수 없기에 신성에 육신에 머무를 수 없다고 여겨 성육신-예수의 인성-을 부정하는 점등 많은 차이가 보인다. 하느님과 예수의 정의, 설명이 다르면 이단으로 여길 수 밖에 없기 때문.

 

여기에서 중요한 용어인 데미우르고스, 소피아, 아이온 등은 원류가 플라톤 철학이며 기독교의 원류라 할수 있는 유대교식의 유대-아람어가 아닌 그리스어인 것만 보아도 문제의 여지가 많다. , 그리스 철학을 받아 들였다고는 해도 원류는 유대교에서 출발한 기독교 본래의 사상, 신화체계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불교 교파가 기독교의 교리를 받아들여 연기론을 부정하고 예수를 석가모니보다 우위에 놓는다면 이것을 불교라 할수 없는 것과 같은 의미다.

 

 

7.1. 이레네오의 기록

 

 

그리스도교 이단으로서의 영지주의에 대해 처음 기록된 것은 리옹의 주교 이레네오의 λεγχος καὶ ἀνατροπτς ψευδωνύμου γνώσεως, (현대에서 저 단어들이 쓰이는 의미를 기준으로 직역하면, '자칭 '영지'에 대한 산파와 타도') 이다.

 

헌데, 이 책 내용을 살피기 전에, 이 책이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였으며, 상당수의 단어가 코이네 그리스어에서 추가된 단어가 아니라 고전 그리스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음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교롭게도, 이레네오의 저술의 제목이 하나같이 전부 그리스 철학용어이며, 모두 고유명사다. , 저게 어원이라는 게 문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작성자 본인이 희대의 키배 전문국 그리스의 기상이 흐르는 인물이다.

 

 

•ψευδωνύμου - ψευδωνύμο 일명/자칭 이란 뜻...이긴 한데, 키배 그리스의 기상 (...)을 부어넣으면, ψευδωνύμου는 단순히 '자칭'이라기 보다는, 카더라 와 비슷하게 써먹던 말에 가깝다.

 

 

•γνώσεως, - 그노시스(gnosis)라는 말은 '지식'이라는 뜻인데, 이 말을 쓰던 사람들이 희대의 키보드 워리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본래 '진리''비진리'라는 절대적 구분은 그리스 철학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애초에 소크라테스가 죽어라고 꼬치꼬치 캐물고 다녀야 겨우 '이건 틀렸다'란 결론이 나오던 대책없는 시절부터 시작한 게 그리스 철학이었다.

 

 

λεγχος -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적 방법을 말하는데, 그래도 소크라테스는 당시에도 죽은 지 오래된 양반이었기 때문에, (...) 소크라테스가 한 '문답행위' 자체를 말하기 보다는 지금의 비판적 사고에 가깝겠으나, 어쨌든 '진리의 분만(?)을 돕는다'라는 목표(?)를 소크라테스가 내세웠다는 걸 그리스인들이 모르면 이상하다.

 

 

νατροπὴ - 지금은 '타도하다'를 의미하고, 당대에도 비스무리하게 쓰였으나, 저 단어 자체의 본래 의미는 '비틀다' 였다.

 

 

하여, 여기에 쓰인 용어들은 전부 그리스 철학에서 사용하는 그것이 맞다. , '철학과 신학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시점'이므로, 이레네오는 문자 그대로의 산파술을 투입한 것이다.

 

따라서, 저 책의 제목은 이런 말로 풀이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진리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 카더라.' 하고 있는데, 카더라 통신으로 돌고 있는 이 '진리'라 카는 것이, 진짜로 진리를 도출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소크라테스가 그리하였던 것처럼 산파로써, 씹고 뜯고 맛보고 철저한 검증을 해본 결과, 해당 '카더라'는 짝퉁임이 밝혀졌으며, 이것은 그리스도교에서 타도되어야 한다.

 

, '진리'에 대한 그럴싸한 도해를 발렌티누스가 내놓음 굉장히 만들어서 이게 바로 '진리'라는 카더라 통신이 돌기 시작 이레네오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사용하여 검증 우왕 역시 이단!!!!

 

유교식으로는 사문난적이란 결론을 냈다고 하면 되겠다.

 

 

발렌티누스가 주장한 '영지'의 치명적 결함을 발견하였고, 이 이론을 바탕으로 한 모든 것이 자동으로 이단이 되었다. 이것은 공식적인 기록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그리스도교의 이단 사례다.

 

그리고 이레네오는 어떤 가르침이 참으로 사도적이고 정통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임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원 사도의 교회들 안에 보존된 가르침을 조사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작업은 상대적으로 곤란하고 어려운 방법이었고, 그는 이것 말고 훨씬 더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말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로마 교회의 가르침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이 교회(로마 교회)와 더불어 그리고 이 교회의 우위적인 권위에 힘입어 전체 교회, 즉 세상의 모든 신자들과 일치를 이룬다. 왜냐하면 이 교회 안에는 전 지역의 신자들을 통해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전승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단반론

 

 

그리고 이어서 역대 로마 주교(교황)들의 연대표가 나온다.

 

 

7.2. 영지주의 이단자들의 생애와 가르침

 

 

여기서는 '모든 영지주의 이단의 아버지'인 발렌티누스만 쓰도록 한다.

 

영지주의라 부르는 여러 형태의 이단설들을 특정짓는 공통된 사항은 이러하다.

 

인간 안에는 신적 섬광이 있는데, 원래 이 신적 섬광은 원래 영적 세계의 존재로서 죄를 지어 탄생과 죽음의 운명에 속한 이 물질 세상에 떨어져 육신 안에 감금되었다. 그리고 신적 섬광이 영적 세계에 다시 복원되기 위해서는 신적 존재의 '영지'를 통해 깨우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지는 일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 선택된 사람들에게 국한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지는 자기 자신 안에 신적 섬광이 있다는 사실, 즉 자기가 영적 존재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도구인 것이다.

 

 

7.2.1.1. 발렌티누스의 생애

 

 

발렌티누스는 2세기 로마에서 활약한 영지주의 이단의 창설자이며 지도자였다.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주로 이레네오의 이단반론에 간략하게 언급된 내용 외에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는 이집트에서 태어났으며, 알렉산드리아에서 교육을 받고 그곳에서 가르치기도 하다가, 성 히지노 교황(136~140년 재위) 때 로마에 와서 로마 교회 안에서 활약하였다.

 

발렌티누스는 재능과 언변이 뛰어났기 때문에 교황직을 기대하였지만, 박해에서 살아난 다른 사람이 교황직에 오르자 이에 격분하여 보편교회를 떠났다. 그 후 그는 성 아니체토 교황(155~166년 재위) 때에 로마를 떠나 동방으로 갔다가 말년에 다시 로마로 돌아와서 160년 무렵에 사망하였다.

 

발렌티누스는 서간과 강론과 시들을 썼는데, 알렉산드리아의 스트로마타에 몇 가지 단편들만 전해오고 있으며, 대부분 상실되었다. 그리고 그는 진리의 복음(Evangelium Veritatis)을 썼는데, 이것은 정경 복음서와는 전혀 다른 것이며 영지주의적 바탕 위에 그가 조작해낸 복음서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이단설의 기초가 되는 '에온'설이 아직 나와있지 않을 정도로 이단 창설 초기의 작품이다.

 

발렌티누스가 만든 이단 사상은 로마에서 급속도로 파급되었을 뿐 아니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발렌티누스의 이단설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급격히 발전되었다. 그의 제자들은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프롤레마이오스와 헤라클라온이 중심이 되어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서방계 발렌티누스파'와 바르데사네스와 악시오니코스가 중심이 되어 동방으로 번져나간 '동방계 발렌티누스파'이다.

 

 

그리스도교는 이미 사도 시대부터 가톨릭적 체계가 있었으며 몇몇 사도의 순회 설교와 서간을 통해 정통 교리와 어긋난 해석이나 이단화된 해석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있어왔다. 즉 초창기부터 정통과 이단이라는 개념이 있었던 것이며,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Episcopos)들이나 그들의 보조자인 신부(Presbyteros)들이 자신들이 사도들로부터 이어받은 가르침과는 다른 가르침들과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교회의 반석으로 임명한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회의 대통령 내지는 총리인 로마 주교(교황)의 권위와 그의 가르침과 권위에 힘입어서 사도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교설들을 제거해 나갔다.

 

또한 주교들로 구성된 교회의 의회 격인 공의회는 기존에 믿어오던 사도들로부터 이어온 가르침이 새로운 이설에 의해 논란이 되면 기존에 믿어오던 가르침이 옳음을 로마 주교의 권한으로 천명할 수 있었고 서로의 결정사항을 알리는 등 연대의식이 있었지만, 그에 반하여 많은 영지주의는 우주관과 구원관의 상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인 주장들이 다른 교파들이 많았고, 이들끼리는 서로 손을 잡지 못했다. 그 결과 보편교회에 의해 이단으로서 각개 격파, 제거될 수밖에 없었다.

 

유다복음을 쓴 교단을 예로 보편교회가 해당 영지주의 교단을 직접적으로 탄압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유다복음이 집필될 당시에는 그리스도교 자체가 비공인 종교로 활동하던 때라 직접적인 탄압은 불가능하다. 또한 유다복음을 쓴 분파는 영지주의 중에서도 소수분파다. 유다복음을 쓴 분파는 기존 교회의 부패를 비난하다 공개 매장된 게 아니다. 유다복음을 쓴 분파가 별달리 호응을 얻지 못해 영지주의 중에서도 소수분파였던 것이다. 유다복음을 쓴 분파는 기존 교단의 개혁을 원한 게 아니라 독자적인 교리체계를 갖춘 곳이었고, 그들만의 교리 내에서는 비영지주의파의 도덕은 타락한 수준으로 간주한 것이다.

 

실제 당시 비영지주의파 교회가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부패/타락했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는 있다. 상대를 비판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부패나 상황에 따라서는 더 심각한 법죄 혐의를 덧씌우는 것은 흔한 수법. 인데다가, 기본적으로 영지주의는 육체적, 물질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예수의 육화(인간이 됨)를 인정한 주류 교회를 무조건적으로 부패한 것으로 인식했을 가능성도 높다.

 

중요한 것은 영지주의를 비롯한 이단과의 종교투쟁을 통해서 대략적으로만 존재했던 그리스도교의 교리체계가 점차 확고한 체계를 잡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단논쟁이 쓸고 지나간 뒤, 이단으로 몰리면서도 자신들의 사상과 접근법을 고수한 영지주의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교와 분리되었으나, 영지주의적인 해석은 플라톤 철학의 보존과 함께 끊임 없이 등장했다.

 

 

7.4. 현대의 영지주의

 

 

없다. 루시퍼처럼 종교가 아니라 소설이나 판타지에서만 종종 이야기된다.

 

그러나 영지주의의 모태가 되는 이원론은 기독교 내에 알게 모르게 폭넓게 퍼져 있다.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데, 만약 당신이 '성경의 주제는 하느님과 악마가 대립하여 싸우다가 하느님이 승리할 것이라는 예언이며, 이 싸움에서의 승리가 하느님의 의도이자 최종목표'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도 영지주의의 모태가 되는 이원론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원론에 근거한 세계관 또는 신앙관을 가진 기독교 신자들은 은근히 많다.

 

당장에 평신도들이 아닌 목회자들 중에도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는 것은 하느님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보이는데, 순전히 성경 내의 서술만 가지고 본다면 성경에서 '사탄'이라고 명시된 자는 하느님에게 대적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 인간을 방해하는 존재로 기술된다. , 유일신 하느님에게 대적하는 존재가 아니라 유일신 하느님 밑에서 일하는 존재로 나와있다는 것이다.

 

성경 내에서 하느님에게 대적하다가 하늘에서 추방된 천사가 있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내용은 이사야 14, 12-15절뿐인데, 이 구절 또한 그냥 여기에서 끝나기 때문에 이 천사 때문에 천계에서 내전이 벌어졌느니 하는 얘기는 전부 전승에 불과할 뿐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전승을 마치 성경에 직접 기술된 듯 잘못 입력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은, 비록 영지주의는 없어졌지만 그와 비슷한 이원론적 세계관은 아직도 교단 내부에 짙게 남아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주장하는 세계관은 무엇인가? 신학의 계통에 따라 답이 달라지므로 이 문서에서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그럼에도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을 든다면 '사랑'이지 '선과 악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결코 아니다. 악마, 이단이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스스로가 그들이 비난하는 흑백논리에 빠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카발라에는 '선택받은 자'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그저 영적 발전을 이룬다, 그리고 그 길은 이러이러한 여정을 거치게 된다, 어느 상태인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이것이다, 핵심은 그게 거의 전부다. 결국 영지주의는 카발라에서 삐져나온 이원론의 함정일 뿐이다. 구원을 매개로 사람을 꼬시는 것은 어느 종교에나 있는 흔한 전도 방법이며, '구원' 이라는 단어의 해석에도 여러 방식이 존재하는 만큼 서로 대응시키는 것도 무리다. 결국 카발리스트 입장에서도 이 문서에서 말하는 방식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 처럼 너 이단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유대교는 선택받은 '민족' 이라는 의식이 여기저기 깔려 있고, 당연히 유대교에서 발생한 카발라는 어느 정도 엮일 수밖에 없다.

 

현대에 영지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종교는 여호와의 증인 정도인데, 이들도 영지주의를 따르지는 않는다. 여호와의 증인 교리 중 이 세계를 악마적으로 여긴다는 점이 영지주의와의 공통분모인데, 이것 말고는 비슷한 점이 없다. 무엇보다 여호와의 증인은 영지를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고, 오히려 그 정반대로 볼 수 있는 극단적인 지복천년설을 따른다. (기존 기독교 중에서도 특히 가톨릭과 대립이 심했던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

 

대한민국에 알려진 영지주의에 대한 내용은 발렌티누스파로 대표되는 철학계통의 유명한 분파이나, 정신적인 깨달음을 강조하는 형태를 취하기에 사상이나 학문적인 접근은 어려운 편이다. 이 때문에 불교와 영지주의를 모두 잘 모르는 경우, 이 둘을 영지주의를 불교와 유사한 면이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적인 깨달음을 중시하는 외형은 비숫할지 몰라도, 영지주의에서 육체와 영혼을 극단적인 이원론으로 구분하고 소수의 타고난 사람만 깨달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둘 다 불교에서 배척하는 주장이다. 물론 불교에도 중생의 근기를 나눌 때 '일천제'라 하여 깨달을 수 없는 사람을 언급하지만, 일천제란 속세의 사람들 중 불교에 관심이 없거나 불교의 가르침을 비방/훼손하면서 깨달음을 구하지 않는 세속주의자를 말하는 것이다. 유식론의 영향을 받은 법상종 계열에서는 이들의 성불이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천태종, 화엄종, 정토종 등 다른 대승불교에서는 '이들도 불성이 있으니 얼마든지 불교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수행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즉 근본적으로 영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해서 보는 영지주의의 관점하고는 전혀 다르다. 상식적으로, 애초에 불교에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대로 성불이 가능하겠는가? 현실적이다

 

영지주의를 간단히 정리했을 때 믿음으로 인한 구원이 아닌, 특정한 지식을 가지고 자신을 수련해야지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으로 요약하면 현재 이런 주장을 설파하는 이단들은 제법 많다.

 

그나마 현대에 영지주의와 가장 비슷한 종교로는, 같은 뿌리의 소수 종교인 만다야교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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